지역 의사 늘려야 지역 균형 발전도 가능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안종주 보건학 박사
지역 소멸이라는 다소 과장된 말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말하는 이들이 많다. 정치인도, 전문가도 그런 말을 즐겨 한다. 물론 소멸이라는 말이 아주 적확하지는 않다. 한때 팽팽했던 풍선에서 바람(인구)이 빠져 풍선 모습이 쪼그라들었다고 하는 비유가 적절할 것 같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는 지역에 인구가 늘어나고 일자리도 많아져 지역이 균형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반경 십리에 병원 하나 없는 지역 현실에 ‘의사 불패’ 아이러니
이를 위해서는 지역의료 수준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임신부가 마음 놓고 출산하고 위급한 상황 때는 제때 응급처치를 받을 수 있는 지역의료 환경을 만드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래야 떠났던 청년이 돌아오고, 떠나려 마음먹었던 이들도 눌러앉고, 지역을 새로운 삶의 터로 만들려는 사람들도 들어오고, 노인들도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돌보는 의사가 턱없이 부족하다. 어떤 곳은 반경 십리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병 · 의원이 없다. 사람에게 가장 귀중한 가치인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는 곳에서 눌러 앉겠다는 사람보다 떠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지사다.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지병이자 난치병이기도 하다.
오늘도 의사 집단은 영화 제목으로나 어울릴 만한 ‘의사 불패’를 부르대고 있다. 이들은 정부를 사이에 둔 국민과 몇 번 치른 대회전에서 늘 승리해온 것을 훈장처럼 자랑한다. 가까이는 윤석열 정부 때, 국민들은 정권의 어처구니 없는 짓거리로 인해 또 한 번 패배를 맛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수 없으면 죽는다. 가족과 친구들과 ‘절대로 아프지 마세요’라는 말을 안부 인사로 나누었던 서글픈 기억을 또렷이 간직하고 있다.
2024년 6월 여의도에서 열렸던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 2024. 6. 27 연합뉴스
의사 수 적정하게 늘리기를 지난 30년간 사실상 못했던 것은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히포크라테스의 가운’ 대신에 ‘영구면허의 갑옷’을 입고 국민한테 ‘칼을 휘두르는’ 의사집단의 도덕성 붕괴, 이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역대 정부의 무능, 모래알 같은 환자와 왜소한 환자단체의 미약한 저항력, 언론의 소극적 태도 등이 얽히고설켜 이런 오욕의 역사를 만들었다.
지난 12월 30일 또 시작된 의사 대 정부‧국민 간 대결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의사들과 대결해야 할지도 모를 벼랑 끝에 서 있다. 앞서 말했듯이 지역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려면 의사들을 지역으로 오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대 정원 확대를 통한 지역의사제 정착이다. 철저하고 정확한 현실 분석과 전략으로 무장해 의사 집단이 반대 핑계를 댈 수 없게끔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의사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가 지난해 12월 30일 2040년에는 부족 의사 수가 5700~1만 1136명이라고 발표하면서 의사와 정부 · 국민 간 대결이 시작됐다. 정부는 추계위 결과 발표 뒤 이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1월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2차 회의를 열어 추계위 결과를 보고 받았고 1월 13일 3차 회의에서 ▲2027년 이후 의대 정원 증원분을 전부 ‘지역의사제’ 정원으로 활용하는 방안 ▲공공의료사관학교(가칭) 설립 여부와 의대 미설치 지역 신설 의대의 정원·배출 시점 ▲2026학년도 모집인원(3058명) 대비 2027학년도 입학 정원 증가 폭 상한 설정 ▲2027~2031학년도까지 5년간 동일 정원을 적용하고, 2037년을 수급 관리 기준연도로 삼은 뒤 2029년에 다음 수급 추계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13일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의정연)이 분석한 자체 추계 결과를 발표해 의사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2035년경에 3161명의 의사 과잉이 될 것이라고 추계위 결과와 정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의협회관. 연합뉴스
또 의정연은 추계위가 사용한 모형의 부적합성과 AI(인공지능) 생산성 향상(30~50%)의 미반영 등을 지적하며 자신들은 의사들의 실제 근무시간(연 2303시간)과 미래 환경 변화를 반영한 모델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해관계 없이 혜안과 탁견 지닌 전문가들 집단이성 존중해야
의협의 이런 발표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몽니를 부리고 이를 토대로 또 정부 · 국민과 전면전을 벌이기 위한 밑자락 깔기이거나 앞으로 정부가 최종 결과를 발표할 때 자신들의 주장을 더 강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사전 포석일 가능성이 크다.
의협의 이런 전략에 추계위에 참여한 환자 ·시민 · 노동단체의 반발은 거세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민주노총, 경실련 등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국민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는 최근 공동 입장을 성명으로 내어 의료계는 추계위 과정에서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가정과 변수를 끝까지 밀어 넣어 추계의 하한을 낮추는 데 영향력을 행사해놓고, 이제 와서는 ‘근거가 없다’며 결과 전체를 흔드는 전형적인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2월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국민중심 의료개혁 연대회의’ 연합뉴스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의 추천으로 추계위에 데이터 기반 보건의료 연구전문가로서 참여한 고려대 의대 정재훈 교수는 에서 형식적인 다양성과 민주성을 강하게 의식한 위원회 구성의 아쉬움과 함께 장기 추계에 시계열 모형을 선택한 문제점 등을 지적하고 우리에게는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심사평가원이라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하지만 흩어져 있어 앞으로 유기적으로 연계하고 정제하여, 정교한 추계가 가능한 표준 데이터셋을 미리 구축해 두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많은 사람을 부문별로 다양하게 참여케 해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의견을 모으는 과정도 물론 존중해야 하지만 특정 부문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이 혜안 있는 탁견을 지닌 전문가들을 모아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집단지성으로 도출한 의견에 정부가 무게를 두고 받아들여 실행에 옮기는 것이 국가 미래와 환자, 국민 전체를 위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래 예측 어렵지만 의사 수는 약간 많은 것이 좋아
우리 사회의 미래 의료 모습을 그리기가 쉽지는 않을 터이다. 또 20년, 30년 후 의료기술과 한국인의 삶의 행태가 어떻게 바뀔지, 환자와 의사들의 행태가 어떻게 바뀔지도 정확하게 그려내기가 쉽지 않다. 이는 결국 어느 정도의 의사가, 어느 영역에서 일하는 것이 적절한지 추계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의 경험과 의사들의 행태, 보건의료의 역사를 살펴보았을 때 몇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첫째, 매년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노동계와 경영계가 극한 대립을 할 때를 되돌아보면 경영계는 거의 매번 동결을 주장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의료계는 이런 점에서 경영계와 많이 닮았다. 하지만 경영주들은 회사 문을 닫지 않는데 의사는 파업한다는 점이 다르다.
둘째, 특정 이익집단이나 회사가 정책이나 제품과 관련해 연구기관이나 연구자한테 청부한 사안은 거의 예외 없이 과학이라는 탈을 쓰고, 돈을 댄 곳이 이익을 얻도록 분석과 연구를 짜 맞춰 결과를 내놓는다는 사실이다. 의협의 추계 연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의사 적정 수를 결정할 때, 많은 것이 모자란 것보다는 더 낫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모자라면 환자가 불편하고, 심각한 문제가 많이 생기지만 약간 남는 것은 외려 의료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다만 의사의 보수는 과잉 진료를 하지 않는다면 약간 줄어들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의대 정원 늘리기 정책에 대한 의사 집단의 반발이 어느 수준까지 갈지를 예단해서는 안 된다. 2000년 의약분업, 윤석열 정부 때의 의사 집단 반발 등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해 다양한 경우의 수에 따른 다양한 대응 전략을 미리 세워놓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