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우울을 떠안은 한 가족의 ‘센티멘탈 밸류’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영화 의 제목을 결정하는 데는 분분한 해석이 많았을 것이다. 이건 한국어의 ‘한(恨)’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풀어서는 설명이 되지만 그 나라에 맞는 정확한 어휘는 찾기가 어렵다. 오히려 노르웨이어 제목이 이 영화의 의미를 가져오기가 더 쉬워 보인다. 이 영화는 주연인 딸역의 레나테 레인스베(노르웨이), 아버지 역의 스텔란 스카스가드(스웨데), 감독 요아킴 트리에(덴마크)가 노르웨이를 배경으로 만든 합작영화이다. 세 나라는 거기가 거기인, 북유럽 3개 나라이다. 이 영화의 노르웨이어 제목은 ‘아펙슌스베르디’라고 한다. 직역하면 ‘밸류 오브 어펙션(Value of affection)’으로 ‘애착의 가치’이다.
가출했던 감독 아빠와 연극배우로 성장한 큰딸의 재회
영화의 주인공 자매 노라(레나테 레인스베)와 아그네스(잉가 입스도테르 릴레오스)는 그들이 살던 집, 그 집에서 어머니가 수집했던 물병(이탈리아 수공예 작품인 무라노 글라스인 듯 보인다) 등에 대해 특별한 감정과 애착을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맥거핀(MacGuffin, 눈속임이거나 영화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우회적으로 사용하는 도구나 장치)이다. 이 자매, 특히 노라의 마음속 ‘센티멘탈 밸류’는 아버지 구스타브 보르그(스텔란 스카스가드)에 대한 것이다. 구스타브는 노라가 어릴 때 자신과 자신의 엄마 그리고 동생인 아그네스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노라는 노르웨이 사회에서 꽤 비중 있는 연극배우로 성장했다. 그녀는 체호프나 셰익스피어 연극의 주인공 역을 맡는다. 아버지 구스타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장 감독이지만 신작을 만든 지가 15년이나 됐다. 그는 늙고 퇴물이 되어 가고 있으며 무엇보다 딸과의 관계가 소원하다. 그는 노라의 연극을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연극은 늘 과장된 무엇이다. 실제로 연극은, 영화와 달리, 발성과 액션의 기초가 과장법에 기초한 예술이다. 아버지 구스타브는 자신의 전처, 그러니까 노라와 아그네스의 엄마가 죽은 후 옛집에서 열린 장례식 리셉션에서 딸들과 재회한다. 그는 곧 큰딸 노라를 따로 만나, 너를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라며 자기가 준비 중인 새 영화에 출연해 달라고 부탁한다. 노라는 냉정하고 단호하게, 시나리오는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아빠와는 같이 일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구스타브는 자신의 20년 전 영화를 상영하는 회고전 일로 프랑스의 한 영화제(‘도빌’로 보인다)에 갔다가 할리우드 배우 레이첼(엘 패닝)을 만나 친밀한 관계가 된다. 구스타브는 노라 대신 레이첼을 자기 영화에 출연시키기로 한다.
15년간 새 작품 만들지 못한 늙은 감독의 트라우마
딸 노라가 아빠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과 트라우마가 심한 만큼 구스타브의 ‘센티멘탈 밸류’ 또한 만만치가 않다. 구스타브가 지난 15년간 신작을 만들지 못한 것은 단순히 제작 투자를 못 받아서거나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는 어쩌면 평생을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었으며, 그것을 풀어내려 애썼으나, 그간은 마치 개인적인 고백처럼, 내밀하고 정직하게 해내지 못해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구스타브의 오랜 파트너 프로듀서이자 친구(예스페르 크리스텐센)는 어느 날 신작 문제로 고민하는 그와 마주 앉아 이렇게 말한다. 너무 애쓰지 마. 우린 늙었어. 하던 대로 해. 요즘 트렌드니 하는 것들에 마음 쓰지 마. 이번 건 당신이 늘 하던 얘기야. 늘 좇던 주제야. 다만 이번 영화가 더 개인적이고 구체적일 뿐이야. 그러니까 하던 대로 하면 돼.”
구스타브는 명성과 인기를 되찾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쓴 새 시나리오의 여자 주인공은 카린인데, 이 카린은 자신의 엄마를 모델로 한 것이다. 엄마는 2차 대전 때 반나치 저항군의 일원이었으며 종전 직전인 1943년에 체포돼 구금과 고문을 당했다. 엄마는 전후인 1951년 결혼해 53년에 구스타브를 낳았으며 아이가 7살 때인 1960년 우울증을 견디지 못하고 목을 매 자살했다. 구스타브는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구스타브의 영화에는 늘 나치의 만행이 나왔던 모양이다. 회고전에서 상영된 그의 20년 전 작품의 엔딩 씬에서도, 독일군에게 잡혀가는 동생을 뒤로한 채 기차를 타고 도주하는 누나의 모습이 나온다.
개인 간 우울 방치한 채 시대의 우울 극복할 수 있을까?
구스타브의 영화는 ‘우울의 시대성’을 주제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번 신작 또한 자신들이 겪었던 시대가 세대를 이어 가며 어떠한 우울의 증후군을 만들어 내는 가를 역설한 작품으로 보인다. 노르웨이의 우울증은 역사적이지만 매우 개인적으로 구체화한 것이어서 전체와 한 개인의 모든 것을 통찰하지 않는 한, 그렇게 모든 것을 아우르며 이해하지 못하는 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이 감독 구스타브 영화의 핵심이다. 바로 이 영화 속 영화의 주제 의식이야말로 를 두고 단순하게 ‘힐링의 영화’라고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저급할 수 있는 이유이다.
사람의 정신을 어루만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감정과 감각의 통시성(通時性)이 있어야 한다. 구스타브는 자신 스스로가 자살한 어머니로 인해 겪어 왔던 심리적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큰딸 노라가 (자신 때문에) 겪고 있는 우울증을 위로하거나 고쳐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 왔다. 구스타브가 새 영화를 노라와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진정한 이유는 자신을 이겨 내야 궁극적으로 자신 때문에 다친 딸의 감정을 달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딸로부터 용서받아야만 비로소 자신도 어머니가 선택한 극단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구스타브의 영화는 둘 사이의 약한 고리이다. 우울의 시대적 문제는 개인 간의 ‘센티멘탈 밸류’를 풀거나 해소하지 않으면 극복될 수 없다. 영화 는 한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의 얘기지만 의외로 더 큰 주제, 한층 거시적인 시선의 접근까지 가져가게 하는 작품이다. 작은 우물에 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결국 작은 냇물이 큰 바다를 만든다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가 지닌 서사의 뛰어남, 스토리 텔링의 정교함이 돋보인다는 평가가 이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세상이 버틸 수 있는 이유를 신들린 연기로 설명하는 배우들
이런 영화는 배우들의, 말 그대로, 신들린 연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정수가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아버지 역의 스텔란 스카스가드는 노년에 이른 경력이지만 인생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 노라 역의 레나테 레인스베는 노르웨이를 넘어서서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한 지 오래다. 그녀는 자신의 전작들 (2021)와 (2024), (2024)를 통해 늘 한 단계씩 성장해 왔으며 이번 영화를 통해 정점에 이르렀음을 증명해 냈다.
희생적인 성격의 동생 아그네스는, 언니인 노라가 자신과 다르게 너는 정상적으로 성장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자, 내겐 언니가 있었고 언니는 언니 같은 언니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그네스는, 엄마와 아빠가 크게 싸울 때마다 노라가 자기 머리를 감겨주고 빗겨줬던 기억에 대해 말한다. 두 자매에게 있어 어릴 적의 고통은 ‘센티멘탈 밸류’로 남아 있으며 바로 그 점 때문에 둘은 절대로 서로를 놓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인간 개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고 행복의 조건이라는, 그 흔한 상태를 만들어 내는 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무엇이 아니다. 인간 사회는 이념과 체제가 완성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무너진 세상의 한구석을 힘겹게 버티어 내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들 각자가 안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든 이해하고 수용하며 함께 풀어나가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에 대한 50대 감독의 놀라운 통찰력
영화 는 바로 그 점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50대에 불과한 감독, 요아킴 트리에가 그 같은 삶의 통찰을 두 시간여(133분) 안에 풀어낼 줄을 미처 기대하지 못했다. 이 영화에 찬사가 이어지는 이유이다. 는 오늘 3월 초에 열릴 제9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8개 부문 후보(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편집상)에 올랐다. 국내에서는 지난 18일 전국 개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