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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판사가 국보위, 청와대 갔다 다시 법원으로…5공 사법부

판사가 국보위, 청와대 갔다 다시 법원으로…5공 사법부
[뉴스]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가 된 사연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쳤다. 손진곤(孫鎭坤, 1941~ ) 항목을 읽다가 한 가지 사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는 판사였다. 그런데 1980년 5·17 내란의 수행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법사위원을 맡았다. 그리고 전두환(1931~2021) 정권의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거쳐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가 됐다. 판사가 쿠데타기구의 위원으로 일하고,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뒤 법원으로 돌아와 비밀영장을 발부했다. 이것이 5공화국 사법부의 현실이었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구조가 선명하게 보인다. 독립해야 할 사법부가 정치권력과 인적으로 교차되는 구조. 판사와 청와대 비서관 사이의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41년 출생, 경북고·경신회, TK 법조 카르텔의 핵심 손진곤은 1941년에 태어났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법대를 나와 1963년 제1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시험 동기로는 서성(1942~ ), 김성남(1942~ ), 김택수(1936~ ) 등이 있다. 이 기수에서 여러 명이 나란히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이름을 올렸다. 손진곤이 한국 TK 법조 카르텔에서 특별한 위치를 갖는 것은 경신회 멤버였기 때문이다. 경신회는 경북고 출신 법조인들의 비밀모임이다. 경신회 인맥은 5공화국 사법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손진곤을 경북고·경신회 인맥을 중심으로 사법부 장악을 시도한 정치판사 로 규정한다. 세계사 속의 동류, 권력과 사법 사이를 오간 인물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가 떠오른다. 나치 독일에서 판사들이 친위대나 정보기관과 인적으로 교류하고 사건 처리 방향을 사전에 조율했다는 기록이 있다. 법복을 입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권력의 연장이었다. 소련 시절 판사와 KGB 사이의 인사교류도 비슷한 구조였다. 법원이 독립적이라는 형식은 유지했지만, 인사와 정보가 권력기관과 연결돼 있었다. 손진곤의 이력을 보면, 판사에서 국보위 위원으로, 국보위 위원에서 청와대 비서관으로, 청와대 비서관에서 다시 수석부장판사로 옮겨 다녔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80년 국보위 법사위원, 쿠데타 기구 안에 들어간 판사 손진곤의 반헌법 행위 첫 번째 장면은 1980년 5·17 내란 직후다. 전두환 신군부가 만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는 사실상 군사정부의 최고 권력기구였다. 이 기구에 법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판사 손진곤이었다. 국보위 법사위는 사법·법무 관련정책을 다루면서 전두환 정권의 법제화를 지원했다. 삼청교육 관련 법적정비, 언론통폐합의 법률처리, 각종 공안법령의 정비가 이 위원회를 거쳐 이루어졌다. 판사가 법원이 아닌 쿠데타 기구의 위원으로 앉아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다는 사실 자체가 전두환 정권 사법부의 민낯을 보여준다.   전기환의 노량진 수산시장 강탈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1988년 11월 9일 지면. 전두환의 형 전기환은 청와대를 등에 업고 서울시에 압력을 넣어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을 강탈했다. ⓒ 동아일보 청와대 민정비서관, 법원 인사와 시국사건에 개입 국보위 참여 이후 손진곤은 전두환 정권의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됐다. 민정비서관은 법무·검찰·사법부 관련 업무를 청와대에서 총괄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 손진곤은 법원 인사와 시국사건 처리에 개입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를 명시한다. 5공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법원 인사와 시국사건, 5공 비리(노량진수산시장 비리 등) 개입. 판사가 청와대에서 법원 인사에 개입했다. 이것이 사법부 독립의 원칙과 얼마나 정면으로 충돌하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관련해 불구속 기소된 박처원 전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이 1993년 2월 선고공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뒤 허탈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 비밀영장 왕국 청와대를 거쳐 법원으로 돌아온 손진곤은 5공 말 서울형사지법 수석부장판사에 올랐다. 이 자리는 법원의 공안부장, 출세길의 노른자위 로 불렸다. 공안사건의 판결 방향을 사전에 수석부장판사에게 보고하는 관행이 있었고, 안기부와 검찰의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 손진곤은 이 자리에서 민민투 등 시국사건에 비밀영장을 발부했다. 비밀영장이란 당직 판사가 아닌 수석부장판사가 새벽에 사전 발부하는 영장으로, 전임 박만호(1936~ ) 시절 본격화됐다. 손진곤은 이 관행을 이어받아 시국사건 피의자들에게 비밀영장을 발부했다. 또 손진곤은 박종철(1965~1987) 고문치사를 은폐하도록 지시한 박처원(1927~2008) 당시 치안감 등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물고문으로 대학생을 숨지게 한 경찰관들에게 은폐를 지시한 인물이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같은 시기 민주화운동 관련 학생들에게는 실형이 선고됐다. 이 이중 잣대가 손진곤의 법정을 상징한다. 방청객 감치명령, 변호사 없이 재판 강행 손진곤이 대구지법원장으로 재직할 때의 기록도 『반헌법행위자열전』에 남아 있다. 5공·6공 시국공안사건 맡아 편파적 재판에 항의하는 의문사 유가족 등 방청객에 감치명령 남발. 피해자 유가족들이 재판과정에 항의하자 법정 질서유지를 명목으로 감치명령을 남발했다. 문익환(1918~1994) 목사 방북사건 재판에서는 변호사 없이 재판을 강행했다.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는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다. 그 기본권을 법원장이 직접 짓밟았다.   1989년 방북 사건 관련 첫 공판에 참석하는 문익환 목사. 한국일보 자료사진 안기부의 대선개입 수사를 맡다, 1992년 손진곤의 이력에서 마지막으로 주목할 장면이 있다. 안기부 1차장 이재훈(1942~2022)이 1992년 대선에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간첩단 사건을 이용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을 때, 이와 연관된 재판이 손진곤의 손을 거쳤다는 기록이 있다. 선거개입 의혹사건이 공안법관 손진곤의 법정에 배당된 것이다.   손진곤.(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는 사법부 독립의 원칙이 법률과 관행으로 촘촘하게 지켜진다. 판사가 행정부 기구의 위원으로 참여하거나, 청와대에 해당하는 총리실 비서관을 맡았다가 다시 법원으로 돌아와 재판을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사법부 독립은 단순히 선언이 아니라 구조로 보장돼야 한다. 한국에서 손진곤은 국보위 위원, 청와대 비서관, 수석부장판사를 오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비밀영장을 발부하고, 고문범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방청객에게 감치명령을 남발하고, 변호사 없이 재판을 강행했다. 이 이력이 전두환 정권 사법부의 자화상이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손진곤을 떠올렸다. 판사와 권력기구 사이의 인적 교류가 사법부를 어떻게 만드는지 그의 이력이 보여준다. 그 구조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작동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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