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 음모론은 수구 세력의 공작 정치 ‘자백’ [뉴스] 극우 유튜버 전한길씨와 지지자들이 12일 개표소 봉쇄 시위 현장인 서울 송파구 SK핸드볼경기장 앞에서 잠실7동 제2투표소에 보관돼 있다 사라진 투표용지 보관상자 중 1개를 제보를 통해 확보했다고 주장하며 상자를 공개하고 있다. 앞서 전씨가 설립한 언론사 원웨이뉴스(구 전한길뉴스)는 보도자료를 내 선거관리위원회가 폐기했다고 밝힌 투표용지 보관상자의 추정 원물이 제보됐다 고 전했다. 2026.6.12 연합뉴스
2020년 제21대 총선 이후 대한민국 정치권의 한 축은 기이한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 선거 때마다 어김없이 고개를 드는 극우 세력의 ‘부정선거 음모론’이 그것이다. 사전투표 조작설, 형상기억 종이, 배춧잎 투표용지, 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해킹설 등 이들이 양산해내는 음모론의 종류는 날마다 새롭게 만들어지고 차츰 과격해진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합리적 의혹 제기가 아니라 기묘한 심리적 기제에 기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투사 (Projection)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과오나 내면의 지저분한 욕망을 상대에게 투영해 저들도 분명 나처럼 행동했을 것”이라고 믿어버리려는 마음이다. 즉, 2020년대 대한민국을 휩쓸고 있는 부정선거 음모론은 역설적이게도 한국 수구 권력이 걸어온 국가권력 남용과 선거 공작의 역사를 내보이는 ‘자기고백’에 가깝다.
이들이 남들도 다 그렇게 야바위로 권력을 잡고 속임수를 쓸 것”이라 확신하는 배경에는, 실제로 자신들이 헌정을 파괴하고 선거를 오염시키며 권력을 유지해 왔던 역사적 사실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이승만 정권부터 최근 윤석열의 폭거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거쳐온 권력 창출과 유지는 언제나 반헌법적 공작과 폭력이었다.
이승만 정권: 독재의 시초가 된 개헌 사기와 혈투
발췌개헌(1952)과 사사오입 개헌(1954): 이승만은 피란 수도 부산에서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국회의원들을 협박, 대통령 직선제안을 골자로 한 발췌개헌안 을 통과시켰다. 2년 뒤에는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수수께끼 같은 수학적 궤변을 동원했다. 재적 의원 203명 중 3분의 2인 135.33명에서 올림이 아닌 내림을 적용해 135명만으로 개헌이 통과되었다고 선포한 사사오입 개헌 은 한국 보수 세력이 룰을 제멋대로 바꾸는 모습을 최초로 보여줬다.
조봉암 숙청(정치적 사법살인): 강력한 대선 라이벌이자 진보당 당수였던 조봉암이 대중적 지지를 얻자, 이승만 정권은 그에게 간첩 혐의를 씌워 사형에 처했다. 대안 권력을 물리적·사법적으로 말살하는 보수 독재의 원형이다.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 이승만 정권의 부패는 1960년 3월 15일 극에 달했다. 내무부 장관 최인규의 지휘 아래 4할 사전투표, 3인조·5인조 공개투표, 완장 부대 동원, 표 바꾸기 등 인류 선거사에 유례없는 막걸리와 고무신이 오간 조직적 부정선거가 자행됐다. 이에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피를 흘리며 일어난 것이 바로 4·19 혁명이었으며, 이승만은 결국 하야라는 비참한 선택을 해야 했다.
박정희 정권: 쿠데타와 총칼로 세운 체제 조작
5·16 쿠데타와 6·8 부정선거: 박정희는 민주적 정부를 총칼로 전복한 쿠데타로 집권했다. 이후 1967년 치러진 제7대 총선(6.8 총선)에서는 개헌선 확보를 위해 투표함 바꿔치기, 무더기 대리투표 등 극심한 부정선거를 저질러 ‘6.8 부정선거’라는 오명을 남겼다.
3선 개헌과 10월 유신: 장기 집권을 위해 1969년 변칙적으로 3선 개헌을 통과시킨 박정희는, 1972년 국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마비시키는 ‘10월 유신’을 단행했다.
그 헌법 아래에서 대통령은 국민이 아닌 체육관에 모인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의 찬성표로 선출됐다. 장충체육관에서 치러진 선거는 99.9%라는 기괴한 찬성률을 기록했다.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사실상 지명하는 ‘유신정우회(유정회)’ 제도를 통해 의회 권력까지 완벽하게 틀어쥐었다.
간첩 조작 사건: 정권의 위기가 올 때마다 무고한 재일교포 유학생, 납북 피해 어부들을 고문해 간첩으로 조작하며 공포 정치를 이어갔다.
전두환 정권: 광주의 피 위에서 가동된 ‘땡전’ 체제
12·12 및 5·17 쿠데타와 광주 학살: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은 하극상 군사 반란을 일으켜 군권을 장악한 뒤, 5.17 비상계엄 확대를 통해 정권을 찬탈했다. 이 과정에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하고 정권을 잡았다.
땡전뉴스: 정권의 정통성이 없다 보니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매일 저녁 9시 뉴스 시보가 땡” 하고 울리면 전두환 대통령은 오늘…”로 시작하는 낯뜨거운 용비어어천가식 뉴스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다.
민주화 이후: 정보기관과 공작 정치의 교묘한 진화
보수 권력의 공작 본능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법망을 피해 교묘하게 뻗어나갔다.
노태우 정권: 1987년 대선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등을 동원해 김대중·김영삼의 ‘양김 이간질’ 공작을 펼쳐 노태우 전 대통령이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군 내부에서는 여당 후보 표를 찍도록 강요하는 일이 버젓이 자행됐고, 이지문 중위 등의 폭로로 군 부재자투표의 추악한 실상이 드러났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유사시 친위 쿠데타와 계엄령을 준비했던 야당 인사 사찰 계획인 ‘청명계획’ 역시 보수 권력의 본질을 보여준다.
김영삼 정권: 1997년 대선 직전 대기업들로부터 수천억 원의 불법 대선 자금을 트럭째로 전해 받은 이른바 ‘차떼기’ 사건은 보수 정당의 자금 동원 방식을 상징하게 했다. 또한 지지율 반등을 위해 안기부 권력을 동원해 북한 측에 휴전선 부근에서 총을 쏴달라고 밀거래를 시도한 ‘총풍 사건’은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안보와 국민의 목숨까지 담보로 잡는 이들의 민낯을 드러냈다.
이명박 정권(국정원 댓글부대): 선거에 국가정보기관을 직접 개입시켰다. 원세훈 원장이 이끄는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은 대규모 ‘댓글부대’를 운영, 야당 후보를 비방하고 여당 우위의 여론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 했다.
박근혜 정권: 정권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의 목줄을 죄기 위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정부 지원을 배제하는 사상 통제를 감행했다. 정권 말기 탄핵 국면에서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촛불 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하기 위해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하는 ‘계엄 문건’을 구체적으로 작성했던 사실이 폭로되며 충격을 안겼다.
윤석열 정권(12.3 내란): 급기야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은 헌법적 절차와 요건을 완전히 무시한 채 아닌 밤중에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무장한 계엄군을 국회에 투입해 입법권을 마비시키려 한 이 사건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수구 권력이 위기에 몰릴 때 언제든 총칼을 꺼내 들 수 있다는 음습한 본능을 재확인시킨 ‘내란 폭거’였다.
김범진 서울시선관위 사무처장이 4일 서울 송파구 잠실7동 제2투표소로 들어가려다 투표함 반출을 막는 시민들의 제지를 받고 있다. 이 투표소에서는 전날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 시간이 오후 10시까지 연장됐고, 투표함이 개표소로 옮겨지지 못했다. 2026.6.4 연합뉴스 자료사진
내가 해봤으니 남들도 할 것 … 비선실세 데자뷔
결국 이승만부터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지저분한 방법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유지해 온 주체가 바로 현재의 극우·수구 세력이다. 그들이 가치관의 중심에 두고 있는 선거와 권력은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속임수와 공작의 쟁탈전’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민주당, 진보당, 정의당 등 진보·개혁 진영이 합법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을 통해 선거에서 이기는 것을 도저히 믿지 못한다. 우리가 권력을 잡을 때 그렇게 온갖 야바위를 썼으니, 저들이 이긴 것도 분명 더 거대한 조작과 야바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기괴한 확증편향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공작 정치의 내면화’는 인물에 대한 음모론과 억지 밈(Meme)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최근 극우 유튜버들과 국민의힘, 수구 언론에서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쏟아내는 ‘비선실세’ 프레임이 대표적이다. 아무런 객관적 근거도 없이 공식 직함에 있는 참모를 향해 모든 국정을 뒤에서 조종하는 어둠의 손”이라며 괴담을 유포한다.
이것도 철저한 자기고백이다. 박근혜 정권을 붕괴시켰던 최순실(최서원)의 전횡, 윤석열 정권 시절 주가조작과 인사개입, 매관매직 의혹으로 나라를 뒤흔든 김건희의 행보, 그리고 정권 핵심부 주변을 맴돌며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혹을 받았던 천공과 건진법사 등등. 보수 정권은 언제나 공적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비선실세’와 무속인들을 권력의 안쪽에 깊숙이 쟁여두고 국정을 운영해 왔다. 자신들의 대통령은 예외 없이 비선에 휘둘렸거나 비선을 활용했기에, 상대 진영의 대통령과 정부 역시 공식 조직 뒤에 더 무시무시한 비선세력이 존재할 것이라 맹신하는 우스꽝스러움이다.
그들이 원하는 ‘공정선거’ 종착지, 북한식 전체주의
그렇다면 극우 세력이 그토록 울부짖는 ‘공정하고 완벽한 선거 시스템’의 실체는 무엇일까? 투표용지에 바코드를 없애고 일일이 수개표를 하며, 사전투표를 폐지하는 등 그들이 요구하는 모든 기술적 조치를 다 수용해 준다 한들 그들이 선거 결과에 승복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왜냐하면 그들이 뇌리에 그리는 ‘공정’이란 절차의 투명성이 아니라, 오직 ‘자신들의 승리’라는 결과론적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승리하지 못하는 선거는 그 자체로 조작이자 부정인 셈이다.
역설적이게도 이들이 마음속 깊이 바라는 이상적인 선거 모델은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고 멸시하는 북한의 선거 시스템과 정확히 일치한다. 투표율 100%, 찬성률 100%, 그리고 여당 의석 300 대 0이라는 무결점의 숫자가 나와야 비로소 드디어 불순분자들의 조작이 없는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가 이뤄졌다”며 만족할 집단이 바로 대한민국의 극우 세력이다. 다양성과 이견을 인정하지 못하고, 오직 일사불란한 전체주의적 결과만을 정의로 규정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은 북한 노동당의 그것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결론: 광기의 음모론을 끝내는 법
선거 시스템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감시는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극우 세력의 부정선거 음모론은 민주적 감시가 아니라,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부정과 야합의 역사가 만들어낸 콤플렉스이자 공포증일 뿐이다.
동료 시민과 선거 제도를 향해 침을 뱉는 음모론자들은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던지는 조작의 의혹들은 상대방에게 가닿지 못하고, 도리어 과거 자신들이 군홧발로 짓밟고 공작으로 얼룩지게 했던 독재 정권의 잔혹사와 치부를 드러내고 말 것이다. 광기의 음모론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들의 추악했던 권력 유지 체제와의 단절이자 철저한 역사적 반성이다.김대윤 시민기자 kimdaeyun020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