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기업 무너뜨린 전쟁영웅 제레미아 오키프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미국 미시시피주 장례식장 사장 제레미아 조지프 오키프 3세(Jeremiah Joseph O Keefe III, 1923-2016). 2차대전 영웅이었던 그는 1995년 캐나다 거대기업을 상대로 5억 달러(약 6500억 원)의 배상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소송이 아니었다. 지역공동체를 지키려는 한 사람의 전쟁이었다.
오키프, 2011년.(위키피디아)
대공황으로 집 잃고 전쟁영웅으로
1923년 미시시피에서 태어난 오키프는 대공황으로 집을 잃었다. 하지만 1941년 진주만 공습 후 해군에 지원했고, 1943년 해병대 전투기 조종사가 됐다. 1945년 4월 오키나와 상공에서 단 하루 만에 일본 특공기 5대를 격추하며 에이스 칭호를 얻었다. 일주일 후 2대를 더 격추해 총 7대를 기록했다. 해군 십자훈장을 받았고, 2015년 93세에 명예 의회 금메달까지 받았다.
전쟁이 끝난 후 1953년 아버지로부터 1860년대부터 내려온 장례식장을 물려받았다. 1957년 경쟁사를 인수해 브래드퍼드-오키프 장례식장 을 설립했고, 1958년에는 장례보험회사를 창립했다. 그런데 오키프는 단순한 사업가가 아니었다. 1960~1964년 미시시피 주의회 의원으로 활동했고, 1973~1981년 빌록시 시장을 두 차례 연임했다.
시장 재직 중 쿠클럭스클랜(KKK)이 차별적 행진 허가를 신청하자 단칼에 거부했다. 살해 위협과 집 앞마당에 불타는 십자가가 세워졌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대학 시절엔 유대인과 흑인을 받지 않는 모임을 거부하기도 했다. 그 시절 미국 남부에서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1945년 4월 22일 하루에 오키나와 전투에서 에이스 기록을 세운 VMF-323 데스 래틀러스 비행대 소속 미 해병대 조종사 3명이 같은 달 해병대 지휘관 두 명의 격려를 받고 있다. 왼쪽부터 액스텔 소령, 제1해병사단 의무장교 밴더그리프트, 전술항공군 의무장교 멀케이, 도로 소령, 오키프 중위. (위키피디아)
거대 로웬 그룹과의 대결
1990년 캐나다 로웬 그룹(The Loewen Group)이 미국에 진출했다. 창립자 레이먼드 로웬(Raymond L. Loewen)은 1940년 캐나다에서 메노나이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1962년 신학 학위를 받았다. 아버지가 1931년 설립한 장례식장을 물려받았는데, 1980년대부터 전국을 돌며 작은 장례식장들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엔 1115개 장례식장을 소유한 세계 2위 기업이 됐다.
문제는 로웬의 경영 방식이었다. 작은 장례식장을 인수한 뒤 가격을 급격히 올리고 지역 업체를 몰아냈다. 오키프가 16년간 계약을 맺던 장례식장도 로웬에 인수됐는데, 로웬은 계약을 무시하고 자사 보험만 팔았다.
1991년 오키프가 소송을 제기하자 로웬은 합의를 제안했다. 서로 장례식장과 보험회사를 교환하자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합의 후 로웬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자산 가치를 속이고 정보를 숨기고 뒤에서 거래를 무산시키려 했다. 오키프는 다시 소송을 제기했고, 이번엔 독점금지법 위반까지 추가했다.
재판 직전 로웬은 전직 대법원 판사, 상원의원 등 쟁쟁한 흑인 변호사들을 고용했다. 배심원 대부분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오키프는 플로리다의 윌리 게리(Willie Edward Gary, 1947- ) 변호사를 영입했다. 1947년 조지아주 소작농 아들로 태어나 11남매 중 하나였던 게리는 1974년 플로리다주 최초 흑인 로펌을 설립했고, 거인 잡는 사냥꾼 이란 별명으로 대기업 상대 소송에서 150건 이상 100만 달러 이상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 개시 직전 오키프는 400만 달러에 합의하자고 제안했다. 로웬은 거절했다. 그러나 이건 최악의 판단이었다.
1945년 해병대 제복을 입은 오키프.(위키피디아)
법정의 역전극
1995년 9월부터 8주간 재판이 계속됐다. 게리 변호사는 로웬의 호화 요트(7900만 달러, 약 1000억 원)를 부각시키고, 외국 기업이 미국 남부를 짓밟는다는 프레임을 씌웠다. 오키프의 전쟁영웅 이력도 강조했다. 이 사람은 1945년 오키나와에서 조국을 지켰고, 지금도 미시시피를 지키고 있다 는 식이었다.
결정타는 로웬이 흑인교회와 맺은 계약이었다. 백인고객 계약엔 시신방부 처리와 조문서비스가 포함됐는데, 흑인교회 계약엔 그런 게 없었다.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 배심원들은 경악했다.
1995년 11월 1일, 배심원단은 로웬에게 5억 달러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당시 미국 역사상 개인 대 기업소송 중 최고액이었다. 더 황당한 건 그 다음이었다. 미시시피 대법원은 항소하려면 6억 2500만 달러 보증금을 7일 내에 내라고 했다. 로웬은 1996년 1억 7500만 달러(약 2270억 원)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소송액 500만 달러의 35배였다.
로웬 그룹은 1999년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2006년 경쟁사에 8억 5600만 달러에 인수됐다. 1990년대 중반 43억 달러 가치를 인정받던 회사가 20분의 1 가격에 팔린 셈이다.
빌록시에 있는 오르-오키프 미술관 부지.(위키피디아)
한국에 던지는 질문
미시시피 작은 장례식장 주인의 승리가 지금 한국에 무슨 의미일까?
첫째, 지역경제의 가치다. 오키프는 1860년대부터 내려온 가업을 지키려 했다. 로웬은 전국을 돌며 작은 장례식장들을 집어삼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동네 가게를 몰아내고, 플랫폼 기업이 지역 상권을 파괴한다. 편의성과 효율만 따지다 보면 공동체는 사라진다.
둘째, 법의 평등이다. 미국 남부 흑인 배심원들이 백인 장례업자 편을 들고 외국 대기업에 징벌적 배상금을 때렸다. 한국에서 가능할까? 삼성이나 현대를 상대로 동네가게가 소송을 걸면 이길 수 있을까? 한국 법원에선 경제논리 , 고용 안정 , 국익 같은 단어들이 재벌에게 면죄부가 된다.
셋째, 독점 규제다. 로웬은 여러 주에서 독점 행위로 소송을 당했다. 미국은 반독점법을 엄격히 적용한다. 한국은? 네이버, 카카오, 쿠팡이 시장을 장악하지만 실효성 있는 규제는 없다. 혁신 이란 이름으로 독과점이 정당화된다.
넷째, 기업윤리다. 로웬이 흑인교회에 차별조건을 제시한 건 명백한 차별이었다. 배심원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한국기업들은? 비정규직 차별, 협력업체 갑질, 하청업체 단가 후려치기가 일상이다. 그런데도 경쟁력 으로 정당화된다.
다섯째, 개인의 신념이다. 오키프는 대학 시절 인종차별 모임을 거부했고, 시장으로서 KKK를 막았고, 93세까지 신념을 지켰다. 한국에서 대기업이나 권력에 맞서는 건 사회적 자살이다. 오키프 같은 사람은 이상한 사람 , 융통성 없는 사람 으로 낙인찍힌다.
오키프.(Jeremiah Joseph O Keefe III |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
우리는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오키프는 1945년 오키나와에서 목숨을 걸고 조국을 지켰고, 1995년 법정에서 전 재산을 걸고 공동체를 지켰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돈이나 명예를 위해 하는 게 아니다. 내 직업과 사람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도 오키프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재벌에 맞서는 중소기업인, 권력에 맞서는 언론인, 불의에 맞서는 시민.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을 지지하는 사회.
로웬이 파산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오키프의 장례식장은 여전히 미시시피에서 영업 중이다. 6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작은 사람이 이기는 세상, 지역이 살아남는 세상,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세상. 그게 우리가 꿈꾸는 사회 아닐까?
오키프는 에버그린 묘지에 잠들어 있지만 그의 질문은 여전히 살아 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
1943년의 오키프.(Jeremiah Joseph Jerry” O Keefe III (1923-2016) - Find a Grave Mem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