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대왕, 서른셋 짧은 삶으로 세계를 뒤집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원전 356년, 그리스 북쪽 변방의 작은 나라 마케도니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필리포스 2세(기원전 382년~기원전 336년), 어머니는 올림피아스(기원전 375년~기원전 316년). 아이의 이름은 알렉산더, 훗날 서양에서 대왕(the Great) 이라는 칭호를 달게 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대왕 이라는 칭호, 아무에게나 붙이는 게 아니다. 역사에서 그냥 대왕 으로 불리는 사람은 셋뿐이다. 알렉산더, 그리고 훗날의 카를(기원전 742년~814년, 서유럽을 통일한 프랑크 왕), 그리고 프리드리히(1712년~1786년, 프로이센의 왕). 셋 다 크다(Great) 는 말이 붙었는데, 셋 중 가장 짧게 살다 간 알렉산드로스가 가장 크게 세상을 뒤집어 놓았으니, 인생은 길이보다 밀도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폼페이의 파우누스 신전에 있는 알렉산더 모자이크(위키피디아)
스승이 아리스토텔레스였던 남자
알렉산더는 부모 복도 남달랐지만, 스승 복은 더했다. 아버지 필리포스 2세는 아들의 교육을 위해 당대 최고의 학자를 불러들였으니,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년~기원전 322년)다. 플라톤(기원전 428년~기원전 348년)의 제자이자, 사실상 서양철학 전체의 뼈대를 세운 인물. 요즘으로 치면 노벨상 수상자를 개인 과외 선생으로 모신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린 알렉산더에게 철학, 의학, 논리학, 수사학, 문학을 가르쳤다. 알렉산더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특히 좋아했고, 전쟁터에서도 이 책을 베개 밑에 단검과 함께 두고 잤다고 전해진다. 독서와 칼이 공존하는 베개 밑, 이 장면 하나가 그의 성격을 압축한다. 낭만적인 전사, 혹은 위험한 시인.
문제는, 이 훌륭한 교육이 알렉산더를 현명한 통치자 로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스스로가 반신반인(半神半人) 이라는 확신을 심어 줬다는 점이다.
알렉산더 대왕 조각(위키피디아)
20세에 왕이 되고, 33세에 세상을 떠나다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가 암살당한다. 알렉산더의 나이 불과 스물. 요즘이라면 대학교 2학년, 군대도 아직 안 간 나이다. 그런데 그는 즉위 직후 반란을 일으킨 그리스 도시들을 전광석화처럼 진압하고, 테베(기원전 315년 재건)를 아예 지도에서 지워버림으로써 나, 장난 아냐 를 선언했다.
기원전 334년, 마침내 동방원정을 시작한다. 목표는 페르시아제국. 당시 페르시아는 다리우스 3세(기원전 380년~기원전 330년)가 다스리던 세계최강의 대국이었다.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연합군 약 4만 명으로, 수십만 대군을 보유한 제국에 쳐들어간다는 건, 솔직히 말해 무모함과 용기의 경계선이 어디인지 모르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이겼다. 그라니코스 전투(기원전 334년), 이소스 전투(기원전 333년), 가우가멜라 전투(기원전 331년)를 연달아 승리로 장식하며 페르시아제국을 무너뜨렸다.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의 아들 로 추앙받았고,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를 함락시켰으며, 인도 서북부(현재의 파키스탄 지역)까지 진격했다.
그의 제국은 그리스 본토에서 이집트, 페르시아,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더스강 유역까지 이어졌다. 면적으로는 약 500만 제곱킬로미터. 오늘날 한반도의 23배에 달하는 땅을 10년 남짓한 원정으로 손에 넣었다.
그리고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갑자기 죽었다. 향년 32세. 사인은 아직도 논쟁 중이다. 과도한 음주 후 열병, 독살, 장티푸스 등 여러 설이 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의 죽음이 너무 갑작스러워 후계자도, 유언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강한 자에게 라는 말을 남겼다는 설도 있는데, 결국 그 말 한마디가 수십 년에 걸친 후계자 전쟁의 불씨가 됐다.
그리스 펠라의 고고학 유적지, 알렉산더 대왕의 출생지.(위키피디아)
그가 세상에 남긴 것
알렉산더의 진짜 유산은 정복 그 자체가 아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 그리스문화와 동방문화가 뒤섞이며 탄생한 헬레니즘(그리스풍 혼합문화) 이야말로 그의 진정한 유산이다.
그는 정복지마다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 알렉산드리아 를 세웠다. 그 수가 무려 20여 개. 그중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이후 수백 년간 세계지식의 중심지가 됐다.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구글 본사와 하버드 대학교를 합쳐놓은 것쯤 될까.
또한 무역로가 열렸다. 동서양의 상품과 사상이 오가기 시작했다. 훗날 로마가 이 길을 이어받았고, 실크로드의 전신이 됐다. 불교가 그리스 조각양식과 만나 간다라 미술 이라는 독특한 예술을 낳았다. 석가모니(기원전 563년~기원전 483년)의 얼굴이 그리스 신상처럼 조각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동양과 서양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눈을 마주친 순간이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인 올림피아스를 묘사한 로마 메달.(위키피디아)
그런데, 한국에서 이 이야기를 왜 꺼내야 하나?
여기서 잠깐, 알렉산드로스 이야기가 흥미롭긴 한데, 그게 지금 우리 현실과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이 있다. 꽤 많이.
첫째, 지도자의 교육 문제다.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배웠다. 단순히 전술이 아니라, 철학과 인문학과 과학을 배웠다. 그 덕에 그는 정복지를 단순히 약탈하는 대신, 현지 문화를 흡수하고 통합하려 했다. 페르시아 귀족과 결혼동맹을 맺고, 페르시아 복식을 입으며, 현지인을 관료로 등용했다. 물론 그의 부하들은 이를 못 마땅해 했지만, 그는 정복자가 피정복민을 이해해야 한다 는 원칙을 밀어붙였다.
지금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어떤 교육을 받았나. 아리스토텔레스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역사와 철학과 인문학을 진지하게 공부한 지도자가 권력의 자리에 얼마나 앉아 있는지는,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둘째, 속도와 결단의 문제다. 알렉산더는 느리게 움직인 적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직접 최전선에 나가 해결했고, 머뭇거리는 순간을 패배로 보았다. 부상을 입고도 말에 올랐다. 이를 단순히 무모함 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책임지는 리더십 이다. 윗사람이 앞에서 뛰면, 아랫사람도 따라 뛴다.
그동안의 한국정치를 보면, 윤석열처럼 결단을 미루고 책임을 회피하고, 위기가 닥치면 뒤에 숨는 지도자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이 광경을 보면 뭐라 할까.
당신들, 적군이 저기까지 왔는데 왜 회의를 하고 있소?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후계자 문제다. 알렉산더는 후계를 준비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의 제국은 그가 죽은 뒤 불과 수십 년 만에 산산조각 났다. 후계자들이 서로 싸우고 찢으면서, 그가 쌓은 것들이 무너졌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도 지속 가능한 구조 없이는 모래 위의 성이다.
한국 사회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훌륭한 지도자 한 명에 의존하는 구조, 제도보다 사람을 믿는 문화, 계승과 전수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관행, 알렉산더의 후계 실패는 23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마케도니아의 필립 2세,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위키피디아)
위대함의 그림자
물론, 알렉산더를 마냥 찬미하는 건 곤란하다. 그는 정복자였고, 그의 길에는 수많은 죽음이 따랐다. 티루스 시민 수천 명을 처형했고,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웠다(술김에 한 일이라는 설도 있다, 역사상 가장 비싼 술자리). 친구 클레이토스(기원전 375년~기원전 328년)를 술에 취해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도 했다. 그 뒤 며칠을 통곡했다지만, 클레이토스는 이미 죽었다.
위대함과 잔인함이 그 안에 함께 살고 있었다. 역사는 이 두 가지를 함께 기억한다. 우리가 역사를 읽는 이유 중 하나도 거기 있다, 인간의 빛과 그늘을 동시에 보는 것.
파우사니아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가 극장으로 향하던 중 뒤에서 덮쳐 암살했다.(위키피디아)
마지막으로
33년. 그것이 알렉산더에게 주어진 시간의 전부였다. 그 안에 그는 세계지도를 바꾸고, 문화를 뒤섞고, 수십 개의 도시를 세웠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더 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시간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위대함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칭호가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두려움 없이 나아가는 사람, 그게 바로 대왕 의 조건이다. 마케도니아 청년이 2300여 년 전에 남긴 이 교훈은, 놀랍도록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하다.
장 시몽 베르텔레미의 그림, 알렉산더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려 하고 있다. (1767,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