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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벚꽃에 죄가 있을 리 없으니 미워할 이유도 없어

벚꽃에 죄가 있을 리 없으니 미워할 이유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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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용 문화비평가·언론인 바야흐로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다. 남녘에서부터 차례로 울긋불긋 꽃대궐을 이뤄 지역마다 축제가 펼쳐지고 봄꽃을 즐기려는 상춘객이 몰린다. 봄을 알리는 화신(花信)은 동백, 매화, 산수유, 벚꽃, 개나리, 진달래 순이다. 그 가운데서도 벚꽃은 봄꽃의 제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꽃잎이 풍성하고 소담스러운 데다 한꺼번에 확 피어났다가 일제히 지기 때문에 봄의 화려함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창원시 진해구 여좌천변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 올해 진해 군항제는 3월 27일부터 4월 5일까지 열린다. (창원시) 1200년 이상 위 아래 함께 벚꽃놀이 즐겨온 일본인들 꽃구경을 뜻하는 일본어는 ‘하나미(花見)’인데, 그 자체로 ‘벚꽃놀이’나 ‘벚꽃축제’를 일컫는다. 헤이안(平安) 시대인 812년 천황이 벚꽃축제를 즐겼다는 기록이 등장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나라 지방의 요시노산에서 5000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하나미를 열었다고 한다.   본 요시노산의 하나미(벚꽃놀이) 풍경을 담은 병풍 그림. (나무위키) 요즘도 하나미는 일본인의 봄철 세시풍속이나 다름없다. 도쿄 우에노공원, 오사카성, 교토 기요미즈테라, 후쿠오카 오호리공원 등 벚꽃 명소에 야외용 돗자리를 깔고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으며 하루종일 놀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좋은 자리를 잡으려고 이른 아침부터 쟁탈전을 벌이기도 한다. 벚꽃은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다. 경찰과 자위대 계급장 등에도 쓰이지만 법으로 정해진 국화(國花)는 아니다. 황실 문장(紋章)은 국화(菊花)이며 여권 표지에도 그려져 있다. 일본 정부의 문장은 오동나무를 형상화했다. 일설에 따르면 18세기 에도 막부의 8대 쇼군인 요시무네가 하천 범람을 막고자 벚나무를 대대적으로 강둑에 심으라고 명령해 전국에 퍼져나갔다고 한다. 벚나무는 지면에 넓게 뿌리를 내리는 특성이 있어 토사 유실을 막아준다. 벚꽃놀이는 장마철이 오기 전에 많은 사람이 모여 제방의 흙을 발로 밟아 다지는 효과도 거뒀다.   태평양전쟁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신사에 벚꽃이 활짝 피었다. (연합뉴스) 일본인들과 사뭇 달랐던 한국인들의 꽃 사랑 우리나라에서도 신라 시대부터 꽃놀이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벚꽃이 아닌 진달래였다. 삼짇날 진달래꽃을 구경하고 꽃잎으로 화전(花煎)을 부쳐 먹었다. 고려 때는 장미연(薔薇宴)이 열리기도 했다. 조선 시대에는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 ‘고향의 봄’의 노랫말처럼 진달래와 함께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사랑받았다. 여름에는 연꽃,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는 매화 등 계절별로 꽃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단연 벚꽃놀이가 으뜸이다. 서울의 송파구 석촌호수 벚꽃축제, 여의도 봄꽃축제, 은평구 불광천 벚꽃축제, 서초구 양재천 벚꽃등축제 등과 함께 경남 창원의 진해 군항제, 경북 구미의 청춘 금오천 벚꽃 페스티벌, 경북 안동 벚꽃축제, 울산의 궁거랑 벚꽃 한마당, 충북 충주시 충주호 벚꽃축제, 충남 보령 주산벚꽃축제 등 전국 100여 곳에서 벚꽃축제가 열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 벚나무를 심기 시작한 것일까.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의 64%가 산벚나무로 만들어졌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분포했다. 벚나무 껍질을 일컫는 화피(樺皮)는 활을 만드는 데 주로 쓰이며 한방 재료로도 활용됐다. 그러나 일본처럼 벚꽃을 감상했다는 문헌이나 그림 등은 전하지 않는다. 일제가 창경궁과 진해에 열심히 벚나무 심었던 까닭 도시의 강변, 도로변, 공원 등에 대규모로 벚나무를 심은 것은 일제 침략이 본격화하면서였다. 경성일보 1933년 4월 27일자 기사에 따르면 1907년 도쿄에서 3년생 벚나무 묘목 1500그루를 가져와 왜성대공원(예장동 숭의여대 자리)에 500그루를 심고 나머지를 각지에 나눠 심은 것이 최초라고 한다. 1908년과 이듬해에는 창경궁에 오사카 부근의 2년생 벚나무 묘목 300그루를 심었다. 1909년 창경궁은 동물원과 식물원을 갖춘 시민공원 창경원으로 탈바꿈했고 그 뒤로도 벚꽃이 집중적으로 식재됐다.   1927년 4월 2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창경원 밤벚꽃놀이 풍경.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일제는 1904년 2월 러일전쟁 발발 직후 강압적으로 한일의정서를 체결해 지금의 경남 창원시 진해만을 점령하고 포대를 설치했다. 이듬해 대한제국에 압력을 행사해 1906년 8월 진해만 일대를 군항(軍港)으로 예정 고시하도록 한 뒤 1909년 6월부터 측량 작업에 나섰다. 1912년 4월 청사와 부두 시설이 일부 완성되자 거제도 송진포에 주둔하던 일본 해군 방비대가 옮겨왔다. 일본은 진해의 해군부대 주변과 일본인 거주지역에 벚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었다. 1910년 2만 그루, 1913년 5만 그루, 1916년 3만 그루를 심은 기록이 있다. 토사 유출 방지와 도시 미관을 위한 것이지만 벚꽃이 일본 해군 휘장에 쓰이는 상징물이어서 더욱 열심히 심었다. 다른 도시의 일본인 거주지역과 신사(神社)에도 어김없이 벚나무가 등장했다. 신작로 주변, 제방, 근대식 공원 등에도 대대적으로 식재됐고 사직단, 장충단, 효창원 등 조선 왕조와 관련이 깊은 곳들도 기존의 재래 수종 대신 벚나무로 경관을 새로 꾸몄다. 벚꽃은 조선 거주 일본인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동시에 일본의 팽창을 상징했다. 일제와 언론 독려로 전국화된 벚꽃축제 우리나라에서 벚꽃축제가 시작된 것도 일제강점기의 일이다. 기록상 군중이 모인 첫 벚꽃놀이는 1912년 우이동에서 열렸다. 이곳 벚나무는 일제가 심은 것이 아니라 17세기 조선 효종 때 활 제조를 위해 대량 식재한 수양벚나무였다. 매일신보는 우이동 사쿠라는 앵화(櫻花)의 명승지로 경성(서울) 내외에 이름이 널리 났다”고 소개했다. 사쿠라와 앵화는 각각 벚꽃을 뜻하는 일본어와 한자어다. 그러나 우이동은 서울 도심에서 너무 멀었다. 임시 열차를 운행하고 자동차와 마차도 동원했지만 서민에게는 부담스러웠다. 대안으로 떠오른 곳이 창경원이었다. 창경원 벚꽃놀이는 1918년 시작됐다. 1924년부터는 야간에도 문을 열어 밤벚꽃놀이를 즐겼다. 1933년 4월 24일~5월 1일에는 창경원 입장객이 26만 명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   1930년대 창경원 벚꽃을 구경하는 시민들. (서울고궁박물관) 창경원 벚꽃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렸고, 식당·숙박업소·백화점·사진관 등을 묶은 연계 관광상품도 등장했다. 진해 벚꽃을 즐기러 가는 사람도 많았다. 언론사들이 앞다퉈 단체 관앵(觀櫻) 여행을 주최했고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임시 열차를 편성했다. 평양 을밀대도 이름난 벚꽃 명소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일탈 행위도 나타났다. 당시 신문을 보면 취객의 고성방가나 여성에 대한 성희롱 등을 지적하는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소설가 염상섭은 일본 문화에 열광하는 세태를 고깝게 보고 ‘식민 사쿠라’라고 꼬집었다. 점령지 과시, 외교 수단으로도 벚꽃 활용한 일본 제국주의 일제는 청일전쟁에 승리한 대가로 1895년 할양받은 대만에도 벚나무를 심고 벚꽃놀이 문화를 이식했다. 중국에도 벚나무를 심어 일본의 점령지임을 과시했다. 다롄의 룽왕탕, 칭다오 중산공원, 우한대학교 등이 벚꽃 명소로 꼽힌다. 위도가 높은 만주에는 벚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다. 동남아에도 식재를 시도했으나 기후가 맞지 않은 데다가 점령 기간이 짧아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은 벚나무를 외교 수단으로도 활용했다. 1905년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주인공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가 1909년 미국 2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일본의 오자키 유키오 도쿄 시장은 1912년 벚나무 3000그루를 선물했다. 미 대통령 부인 헬렌 태프트는 주미 일본대사 부인과 함께 워싱턴DC 포토맥 강변의 벚꽃공원에서 기념식수를 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해마다 국립벚꽃축제(National Cherry Blossom Festival)가 열린다.   미국 워싱턴DC 포토맥 강변의 벚나무가 소담스러운 꽃잎을 피웠다. 이 벚나무들은 1912년 일본 도쿄시장이 기증한 묘목이 자란 것이다. 뒤로 제퍼슨기념관이 보인다. (AFP=연합뉴스) 싸우다 주저 없이 죽어라, 사쿠라처럼…” 일제는 1930년대 이후 군국주의로 치달으면서 전사(戰死)를 미화하기 위해 봉건시대 사무라이 정신의 부활을 꾀하고 벚꽃을 상징물로 내세웠다. 주군과 명예를 위해 주저 없이 죽음을 택하는 모습이 한순간에 지는 벚꽃과 닮았다면서 젊은이들에게 전장에서 산화(散花)할 것을 독려한 것이다. 가미카제 특공대 출정식에서 대원들은 벚꽃 가지를 가슴에 꽂았고 전송객들도 벚꽃 가지를 흔들며 무운(武運)을 빌었다. 꽃은 사꾸라, 사람은 사무라이”라는 말도 즐겨 썼다. 한번 핀 꽃이라면 지는 것을 각오했다/ 멋지게 지자꾸나 나라를 위해/ (중략) 사쿠라의 수도 야스쿠니 신사/ 봄 가지에 피어 다시 만나자”란 가사의 군가도 있다.   일본 가미카제 특공대원이 벚꽃 가지를 가슴에 꽃고 있다. (위키미디어 공용) 절멸 위기 벚나무 살린 ‘왕벚나무 제주도 원산지설’ 1945년 해방을 맞자 우리나라의 벚나무들은 위기를 맞았다. 진해 해군기지와 신사 등지의 벚나무들은 밑동이 잘리거나 뿌리째 뽑히는 수난을 겪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벚꽃 관리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반전이 일어난다. 1962년 식물학자인 박만규 국립과학관장이 왕벚나무 원산지가 일본이 아닌 한국이며 제주도 한라산에 자생지가 있다는 학설을 소개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4월 17일자에 ‘벚꽃은 우리 꽃, 한라산이 원산지’란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왕벚나무 원산지가 한국이며 제주도 한라산에 자생지가 있다는 학계 통설을 소개한 박만규 국립과학원장의 글을 실은 동아일보 1962년 4월 17일자 지면. (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박 관장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나라에서 널리 서식하는 벚나무 품종은 일본에서 가져온 왕벚나무 묘목을 키운 것인데 정작 일본에는 왕벚나무 자생지가 없다. 1908년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에밀 타케 신부가 한라산 관음사 부근에서 왕벚나무 표본을 채취해 국제 학계에 소개했고, 1932년 일본 교토대의 고이즈미 겐이치 교수는 남제주군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하고 일본 왕벚나무(소메이요시노)가 제주도에서 기원했다고 발표했다.   제주도 남원읍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 (국가유산청) 박 관장 주장은 새로운 학설이 아니라 그때까지의 학계 연구 성과를 종합한 설명이었으나 벚꽃에 대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국 곳곳에서 벚나무 심기 운동이 다시 펼쳐졌다. 일본 기업과 단체, 재일동포 등의 기증도 줄을 이었다. 문교부 문화재관리국(현 국가유산청)은 제주도 남원읍 신례리와 제주시 봉개동(1964년 1월), 전남 해남 대둔산(1966년 1월) 왕벚나무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 여의도 100년 고목 벚나무는 창경궁에서 옮겨 온 것 진해시(현 창원시 진해구)와 해군은 벚나무가 사라진 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에 일본 개량종 왕벚나무를 들여와 심고 1963년부터 군항제를 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벚꽃을 좋아해 식재를 독려했다는 말도 들려왔다. 경주 대릉원 주변과 보문단지, 여의도 국회 뒷길 등의 벚꽃도 그 시절 심은 것이다. 여의도 윤중로의 벚나무 대부분은 1983년부터 창경궁 복원 공사를 벌이며 창경원에서 옮겨 심은 것이다. 여의도 종합개발은 1960년대 말에 이뤄졌는데도 이곳에 수령 100년을 넘는 고목이 많은 까닭이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 올해 여의도 봄꽃축제는 4월 3~7일 열릴 예정이다. (이희용 촬영) 반세기가 지난 뒤 그간의 논란을 무색하게 만드는 반전이 또 한 차례 일어난다. 유전체(게놈) 해독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가 아예 다른 품종이라는 연구 결과가 2014년과 2019년 발표된 것이다. 이는 현재 학계의 통설이다. 그러나 지금도 벚꽃이 필 때마다 이른바 왜색 논란과 ‘국뽕 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전국에서 자라는 벚나무는 대부분 해방 후 우리가 일본 왕벚나무 묘목을 들여와 심은 것이다. 벚꽃을 일제 잔재처럼 여길 필요도 없지만, 벚나무가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여기며 우쭐할 까닭도 없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둘레에 벚꽃이 활짝 피어 있다. 뒤로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 올해 송파구 호수벚꽃축제는 4월 3~11일 열린다. (송파구) 왜색과 국뽕 시비 넘어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야 지금도 창원시와 진해군항제 홈페이지에는 1962년 진해 왕벚나무 원산지가 일본이 아니라 제주도임을 밝혀냈다고 잘못 소개하고 있다. 2014년 어떤 노인이 여의도 윤중로의 벚나무 여섯 그루를 전기톱으로 베어냈다가 입건되는가 하면 2023년에도 한 남성이 사쿠라는 일본 꽃, 벚꽃 축제는 미친 짓”이라고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꽃놀이 문화에는 역사적 배경과 함께 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어서 알고 즐길 필요가 있다. 그러나 꽃은 죄가 없으니 미워할 까닭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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