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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약보다 호흡, 치료보다 걸음이 나를 더 깊이 살게 했다

약보다 호흡, 치료보다 걸음이 나를 더 깊이 살게 했다
[사람들]
2026년 3월 신불산 배내골 캠핑 중의 박철 시민기자. 잠자고 밥먹는 시간 외에는 주로 산길이나 들길을 걷는다.  1. 걷기는 어떻게 치유가 되는가 걷기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행위이면서도, 가장 깊은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움직임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걷기를 배우고, 삶의 대부분을 걸으며 보낸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이 행위가 언제, 어떻게 치유의 통로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걷기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존재를 회복시키는 과정이며, 몸과 마음을 다시 연결하는 통로이다. 사람은 고통을 경험할 때 정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몸이 아플 때는 누워 있고 싶고, 마음이 아플 때는 세상과의 접촉을 끊고 싶어진다. 그러나 멈춤이 길어질수록 내면은 더욱 굳어지고, 생각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며, 감정은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걷기는 이러한 정체를 부드럽게 흔든다. 강제로 끌어내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이때 치유는 시작된다. 걸음을 내딛는 순간, 인간은 현재의 감각 속으로 돌아온다. 발이 땅에 닿는 감각, 무게 중심이 이동하는 느낌, 호흡이 일정한 리듬을 찾는 과정이 몸 전체를 다시 깨운다. 생각이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미래에 매달려 있을 때, 몸은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걷는 동안에는 몸과 시간이 일치한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현재를 구성하고, 그 현재가 이어지면서 시간의 연속성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감각의 회복은 마음의 균형에도 영향을 준다. 상처를 입은 마음은 특정한 기억에 고착되기 쉽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같은 감정을 되풀이하며 스스로를 소모한다. 걷기는 이 반복의 구조를 완만하게 풀어낸다. 리듬을 따라 움직이는 동안 생각은 직선이 아니라 파동처럼 변한다. 또한 걷기는 호흡을 바꾼다. 인간의 감정은 호흡과 깊은 관련이 있다. 불안할 때 호흡은 짧아지고, 분노할 때 거칠어지며, 슬픔 속에서는 무거워진다. 걷는 동안 호흡은 자연스럽게 일정한 리듬을 찾는다. 발걸음과 호흡이 맞물리면서 몸 전체가 안정된 흐름을 형성한다. 이 안정감은 신경계를 이완시키고, 과도하게 긴장된 상태를 완화한다. 결국 마음의 동요는 점차 잦아들고, 내면에는 잔잔한 공간이 생겨난다. 걷기의 치유적 힘은 자연과의 접촉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인간은 본래 자연의 일부이지만, 현대의 삶은 그 연결을 약화시켜 왔다. 콘크리트와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우리는 감각의 많은 부분을 사용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러나 길 위에 나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바람의 방향, 빛의 변화, 나무의 흔들림, 땅의 질감이 몸으로 전달된다. 이때 인간은 자신이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체감하게 된다. 자연은 말을 하지 않지만, 존재 자체로 위로를 건넨다. 그것은 설명도, 설득도 아니다. 그저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인간을 받아들인다. 걷는 사람은 그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내려놓는 방법을 배운다.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세계는 여전히 넓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으며, 자신은 그 흐름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감각이 회복된다. 걷기는 또한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 실패에 대한 자책,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자신을 몰아붙인다. 그러나 걷는 동안에는 그러한 기준이 희미해진다. 한 걸음이면 충분하고, 그 다음 걸음이 이어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성취의 척도가 사라진 자리에서, 존재 자체가 인정받는 경험이 이루어진다.   2025년 11월 신불산 산행. 박철 시민기자 이 경험은 자기 수용으로 이어진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걷는 동안에는 특별한 노력이 없어도 그 상태에 가까워진다. 몸이 느린 날에는 느린 걸음으로, 힘이 남아 있는 날에는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움직이면 된다. 이 유연함은 자신을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감각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과의 갈등을 조금씩 내려놓게 된다. 걷기는 기억을 다루는 방식도 변화시킨다. 멈춰 있을 때 기억은 종종 고통스러운 장면으로 고정된다. 그러나 걸을 때는 기억이 흐른다. 어떤 기억은 선명해지고, 어떤 기억은 흐릿해지며, 어떤 기억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는 더 이상 현재를 지배하지 못하게 된다. 과거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면서 현재의 삶을 압도하는 힘은 약해진다. 또한 걷기는 관계의 회복과도 연결된다. 혼자 걷는 시간은 자신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걷는 동안 떠오르는 사람들, 지나간 대화들,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새로운 빛 속에서 해석된다. 때로는 용서가 가능해지고, 때로는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깨달음은 관계를 더 건강한 방향으로 이끈다. 걷기의 또 다른 특징은 지속성이다. 한 번의 경험으로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복되는 걸음은 변화를 축적한다. 하루의 걸음, 일주일의 걸음, 계절을 건너는 걸음이 쌓이면서 몸과 마음은 서서히 달라진다. 이 변화는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전보다 덜 흔들리고, 덜 지치며,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결국 걷기가 치유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을 다시 흐르게 하기 때문이다. 멈춰 있던 감정이 움직이고, 굳어 있던 사고가 풀리며, 닫혀 있던 감각이 열리는 과정이 걸음 속에서 이루어진다. 치유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해결책이 아니라, 내부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연속이다. 걷기는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사람은 걷는 동안 스스로를 다시 만난다. 그것은 거창한 깨달음이 아닐 수도 있다. 다만 숨이 조금 편해지고,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지며, 마음이 조금 넓어지는 경험일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작은 변화들이 모여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걷기는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조용한 동력이며, 인간을 자신에게로 되돌려 보내는 길이다. 2. 상처를 지나가는 발걸음 상처는 인간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사건이다. 그것은 특정한 순간에 발생하지만, 그 영향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된다. 어떤 상처는 분명한 원인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상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관계 속에서 남겨진 말 한마디, 기대가 무너진 경험, 혹은 자신에 대한 실망이 마음 깊은 곳에 흔적을 남긴다. 문제는 상처 그 자체보다, 그것에 붙잡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이다. 이때 발걸음은 정체된 삶을 다시 흐르게 하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상처를 마주한 사람은 종종 그 자리에서 멈춘다.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고, 같은 감정을 되풀이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이런 상태에서는 시간이 흘러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더 단단해지고, 감정은 더 깊게 뿌리내린다. 상처는 그렇게 삶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이 구조에 균열이 생긴다. 걷는다는 것은 물리적인 이동이면서 동시에 인식의 이동이다.   2019년 가을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강변에서 박철 시민기자 발이 땅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때, 시선은 자연스럽게 현재로 향한다. 땅의 감촉, 몸의 균형, 주변의 소리와 빛이 감각을 자극하며 사람을 지금 이 순간으로 끌어온다. 상처를 지나가는 발걸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무겁고 더디며, 때로는 멈추고 싶은 충동과 계속 마주하게 된다. 어떤 날은 몇 걸음조차 벅차게 느껴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무게를 견디며 한 걸음이라도 내딛는 데 있다. 걸음은 상처를 지우지 않는다. 대신 그것과 함께 움직이는 법을 익히게 한다. 고통을 제거하려 하기보다, 그것을 안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을 형성한다. 걷는 동안 사람은 자신의 내면과 마주한다. 멈춰 있을 때는 특정한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지만, 걸을 때는 생각의 흐름이 달라진다. 반복되던 장면이 다른 각도에서 보이기 시작하고, 단정적으로 내렸던 판단이 흔들린다. 분노는 서서히 힘을 잃고, 슬픔은 더 넓은 감정으로 확장된다. 어떤 감정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의 결이 변한다. 거칠었던 감정은 점차 부드러워지고, 날카로웠던 기억은 둥글어지기 시작한다. 이 변화는 억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몸이 일정한 리듬을 유지할 때, 마음 역시 그 리듬을 따라 흐른다. 이 흐름 속에서 감정은 고정된 상태를 벗어나 움직이게 된다. 감정이 움직인다는 것은 그것이 더 이상 갇혀 있지 않다는 뜻이다. 갇혀 있던 감정은 사람을 소모시키지만, 흐르는 감정은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또한 발걸음은 방향성을 만들어 낸다. 상처는 사람을 제자리에서 맴돌게 하지만, 걷기는 앞으로 나아가는 구조를 지닌다. 비록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더라도, 이동 자체가 하나의 방향이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어디에 도착하느냐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걸음은 삶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몸으로 확인하게 한다. 상처를 지나간다는 것은 그것을 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걷는 동안 상처는 점점 다른 위치로 이동한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압도하던 중심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수많은 경험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는다. 여전히 아프지만, 더 이상 전부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이 변화는 인간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한다. 걷기는 시간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하루의 걸음은 작은 변화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걸음이 쌓이면서 시간의 층이 만들어진다. 며칠, 몇 주, 몇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발걸음은 상처를 다른 형태로 바꾼다. 처음에는 날것 그대로였던 고통이 점차 해석을 얻고, 의미를 갖게 되며, 때로는 삶을 이해하는 단서로 변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자신을 다시 발견한다. 상처를 겪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다. 얼마나 약한지, 얼마나 강한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포기할 수 없는지를 알게 된다. 이 발견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자신을 이해하는 것은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2024년 11월 랑탕 트래킹. 박철 시민기자 걷는 동안 마주하는 풍경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걸어도, 그날의 빛과 공기, 자신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된다. 어떤 날은 모든 것이 무겁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가벼워진다. 이 변화는 감정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의 감정이 영원하지 않다는 깨달음은 상처를 견디는 데 큰 힘이 된다. 또한 발걸음은 몸의 감각을 통해 현실을 확인하게 한다. 상처를 지나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다. 빨리 회복하려는 마음은 오히려 또 다른 압박이 된다. 걷기는 그 압박을 내려놓게 만든다. 느리게 걸어도 괜찮고, 중간에 쉬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나 걸음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 반복은 삶의 리듬을 다시 만들어 낸다. 결국 발걸음은 삶의 연속성을 지키는 행위이다. 상처는 삶을 단절시키려 하지만, 걷기는 그 단절을 이어 붙인다. 한 걸음이 다음 걸음으로 이어지고, 그 걸음들이 모여 하루가 되고, 그 하루들이 쌓여 삶이 된다. 이 단순한 구조 속에서 인간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상처를 지나간다는 것은 완전한 회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는 것이다. 걷기는 그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한다. 고통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머물러 있지 않는 길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발걸음은 인간을 다시 삶의 흐름 속으로 이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그 상처를 지나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자신을 가두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때 비로소 사람은 알게 된다. 걸어온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그 모든 발걸음이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왔음을. 3. 나이 듦과 걷기의 의미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간의 축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몸의 변화와 함께 감각의 변화, 관계의 재편,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이동을 동반한다. 젊은 시절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점차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지나왔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이때 걷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자리 잡는다. 젊은 시절의 걷기는 대개 목적을 향해 있다. 어디에 도착하기 위해, 무엇을 이루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다. 속도는 곧 효율과 연결되고, 걸음은 목표를 위한 도구가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이 구조는 변한다. 더 이상 빠르게 도착하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걸어가느냐, 그 과정에서 무엇을 느끼고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해진다. 걷기는 결과보다 과정을 드러내는 행위로 바뀐다.   2017년 가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앞에서의 박철 시민기자 몸의 변화는 이 전환을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면 신체는 이전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근육은 쉽게 피로해지고, 균형은 미세하게 흔들리며, 작은 통증이 일상 속에 스며든다. 이때 걷기는 자신의 몸을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이 된다. 과거의 기준으로 현재를 평가하는 대신, 지금의 상태에 맞는 리듬을 찾아야 한다. 이 리듬은 타인과 비교할 수 없는, 오직 자신의 몸이 만들어내는 속도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중요한 배움을 얻는다. 자신을 밀어붙이던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보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된다. 무리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으며, 몸의 신호를 듣는 태도가 형성된다. 걷기는 이러한 태도를 몸으로 익히게 한다. 발걸음이 불편할 때 멈추고, 호흡이 가빠질 때 속도를 낮추며, 필요할 때 쉬어 가는 경험은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나이 듦 속에서 걷기는 고독과도 깊이 연결된다. 인간은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의 변화를 경험한다. 가까웠던 사람들이 멀어지기도 하고, 익숙했던 역할이 사라지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고독은 피할 수 없는 감정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나 걷기는 그 고독을 완화시키는 통로가 된다. 길 위에서는 여전히 세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변하는 풍경, 계절의 흐름이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제공한다. 이 연결감은 삶의 감각을 유지하게 만든다. 고립된 공간에 머물러 있을 때 인간은 점점 자신을 닫아버리기 쉽다. 그러나 걷는 동안에는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 접촉은 거창하지 않다.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햇빛의 온기 같은 사소한 요소들이 삶을 다시 느끼게 한다. 이러한 경험은 고독을 완전히 없애지는 않지만,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걷기는 기억과의 관계도 변화시킨다. 나이가 들수록 기억은 삶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지나온 시간들이 현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걷는 동안 떠오르는 기억들은 특정한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고, 오래 잊고 지냈던 사람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 기억들은 걸음의 리듬 속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며,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이 과정은 삶을 재해석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과거에는 실패로 여겼던 경험이 다른 관점에서 이해되기도 하고,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의미가 드러나기도 한다. 걷기는 기억을 고정된 상태에서 풀어내어, 현재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연결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보다 넓은 시야로 바라보게 된다. 또한 나이 듦 속에서 걷기는 시간의 감각을 변화시킨다. 젊은 시절에는 미래가 길게 펼쳐져 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래는 점점 짧아지고, 현재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걷기는 이 현재를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지금 이 순간을 구성하며, 그 순간들이 이어져 삶을 이룬다. 이때 걷기는 끝을 향해 가는 여정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내는 행위로 이해된다. 어디에 도달하느냐보다, 지금 이 걸음을 어떻게 내딛느냐가 중요해진다. 이 감각은 삶의 태도를 바꾼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현재의 경험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렇게 인간은 삶을 더 깊이 받아들이게 된다. 걷기는 존엄과도 연결된다. 스스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 수 있다는 감각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수록 이 감각은 더욱 소중해진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자신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마지막까지 걷기를 놓지 않으려 한다. 이 존엄은 단순한 기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여전히 삶의 주체라는 확신과 연결되어 있다. 걷는 동안 인간은 자신의 몸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 속에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 실감은 삶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힘이 된다. 나이 듦과 함께 걷기는 점점 더 사유의 시간이 된다. 빠르게 지나가던 풍경이 느린 걸음 속에서 새롭게 드러난다. 작은 꽃, 길가의 그림자, 바람의 결 같은 요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세밀한 인식은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든다. 이전에는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들이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삶을 정리하는 과정과도 맞닿아 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은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게 된다. 걷기는 이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제공한다. 반복되는 걸음 속에서 생각은 깊어지고, 삶의 방향에 대한 감각이 서서히 정리된다. 결국 나이 듦 속에서 걷기는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가 된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동시에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발걸음은 더 이상 무엇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이면서, 인간은 자신의 삶을 조용히 완성해 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걷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고,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길 위에 서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길을 자신의 방식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나이 듦과 함께 걷기는 삶을 이해하는 가장 깊은 방식 가운데 하나로 남게 된다. 나는 지난 25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걸어왔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몸이 가볍든 무겁든, 나는 늘 길 위에 서 있었다. 그렇게 쌓인 걸음들을 가만히 헤아려 보면, 지구를 몇 번이나 돌고도 남을 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 중요한 것은 그 숫자가 아니라, 매일의 발걸음 속에 스며 있던 시간과 숨, 그리고 살아 있음의 감각이다. 나는 내 몸을 하나의 병원처럼 여긴다. 두 발과 두 팔과, 오장육부는 말없이 나를 돌보는 주치의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며 걸어온 세월 속에서, 나는 건강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임을 깨달았다. 약보다 호흡이, 치료보다 걸음이 나를 더 깊이 살게 했다. 길 위에서는 생각도 맑아진다. 복잡했던 마음이 걸음의 리듬 속에서 서서히 풀리고, 엉켜 있던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찾는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걷기도 하고, 때로는 삶을 되짚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 모든 순간이 내게는 살아가는 연습이자 치유의 시간이었다. 오늘도 나는 길을 걷는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길일지라도, 그 안에서 만나는 공기와 빛은 늘 새롭다. 나는 여전히 내 몸을 믿고, 그 몸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간다. 그렇게 걷는 동안,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가장 또렷하게 느낀다.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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