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민주당의 자동문 아니다…표심이 가리키는 것 [뉴스] 6·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4일 서울시청으로 들어가기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6.6.4 연합뉴스
선거일 저녁, 정원오 후보 캠프 분위기는 승리에 가까웠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정 후보는 51.4퍼센트, 오세훈 후보는 46.0퍼센트였다. 오차범위 밖의 우세였다. 캠프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터졌고, 사람들은 벌써 바뀐 서울을 이야기했다.
개표가 진행되면서 표정이 달라졌다. 강남구가 열리자 숫자가 흔들렸고, 서초구도 다르지 않았다. 유권자가 많은 송파구는 투표용지 부족 논란까지 겹쳐 가장 늦게까지 애를 태웠다. 마지막 상자들이 열렸을 때, 흐름은 이미 오 후보 쪽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최종 집계는 오 후보 49.22퍼센트, 정 후보 48.07퍼센트. 격차는 1.15퍼센트포인트, 표로는 6만 259표였다.
전국적으로는 민주당의 우세가 뚜렷했다. 그러나 서울은 달랐다. 다른 지역에서 거둔 승리를 모두 합쳐도, 수도를 내준 자리는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서울은 숫자 이상의 상징을 가진 도시다. 그 패배를 한 지역의 일로만 접어 두기 어려운 이유다.
조건은 민주당 편이었다. GTX-A 삼성역 철근 누락과 철거 중이던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는 현직 시장에게 짐이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배출한 정당이고, 비상계엄이 남긴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출구조사까지 정 후보를 가리켰다. 그런데도 졌다. 이쯤 되면 후보 한 사람의 실패로 돌리고 넘어가기 어렵다. 민주당의 서울 독법과 수도 전략이 낡았다는 신호다.
국민의힘은 도덕적으로 심판받아 마땅한 정당이었다.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윤석열 정치가 남긴 책임은 가볍지 않다. 그러나 선거는 도덕의 법정이 아니다. 시민은 죄인을 벌하면서, 같은 손으로 관리자를 고른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와 누구에게 서울을 맡길 것인가”는 닮았지만 다른 질문이다. 민주당은 앞의 질문에 또렷이 답했다. 정작 뒤의 질문 앞에서 말이 흐려졌다.
정치가 도덕성의 순위표대로 움직였다면, 1980년 미국 대선도 달랐을 것이다. 지미 카터는 ‘착한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과 이란 인질 사태, 국가적 무력감이 겹친 그해, 유권자가 더 무겁게 물은 것은 선량함이 아니라 위기를 다룰 능력이었다. 카터의 통치를 그렇게 단순하게 줄일 수야 없다. 다만 선거의 순간, 시민은 늘 두 가지를 함께 묻는다. 누가 더 옳은가. 그리고 누가 해낼 수 있는가.
여기서 정치철학에서의 오래 묵은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옳은 원칙을 말할 줄 안다고 좋은 정치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프로네시스, 곧 실천적 지혜라 부른 것은 복잡한 현실에서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미룰지 가늠하는 힘이었다. 원칙 없는 영민함은 약삭빠름에 그치고, 실행되지 못한 옳음은 아직 통치가 아니다. 서울 유권자가 던진 물음도 거기 있었다. 민주당이 더 옳으냐가 아니라, 그 옳음을 이 도시에서 해낼 수 있느냐.
서울의 패배도 그 물음 위에 있다. 국민의힘의 도덕적 결격은 분명 민주당의 기회였다. 그러나 기회가 곧 위임은 아니다. 상대의 잘못을 증명하는 일과, 내가 맡을 만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끝내 다른 일이었다. 민주당은 그 사이를 메우지 못했다.
이 패배를 운 나쁜 사고라 부르고 싶을 것이다. 출구조사가 그렇게 앞섰는데, 하는 미련도 남는다. 그러나 서울의 선거사에서 이 장면은 처음이 아니다. 2010년을 보라. 한명숙 후보는 25개 구 가운데 다수에서 앞서고도, 강남 3구에서 밀려 오세훈 후보에게 0.6퍼센트포인트 차로 졌다. 그때 이긴 사람도 오세훈이었다.
16년이 흘렀어도 서울의 셈법은 그대로다. 이번에도 정 후보가 25개 자치구 중 15곳에서 앞섰다. 그런데 오 후보가 나머지 10곳에서 벌린 표차가 전부를 뒤집었다. 몇 곳에서 이겼느냐가 아니라, 어디서 얼마나 크게 졌느냐가 승부를 갈랐다.
그 한가운데 강남구가 있었다. 오 후보 65.98퍼센트, 정 후보 31.92퍼센트. 두 사람의 강남구 표차는 9만 9598표였다. 서울 전체 표차 5만3460표보다 크다. 강남 한 곳의 격차만으로 서울 전체 승부가 설명된다는 뜻이다. 서울의 셈법은 이토록 차갑다. 여러 구에서 쌓은 표도 한 지역의 큰 격차 앞에서 금세 지워진다. 민주당은 16년 전의 교훈을 끝내 자기 전략으로 만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강남을 버릴 수는 없다. 이기기 어려운 땅인 것과, 손 놓아도 되는 땅인 것은 다르다. 시장 선거에서도 대선에서도 강남 3구를 꼭 이길 필요는 없다. 다만 거기서 너무 크게 지면, 다른 데서 다 이기고도 서울에서 진다. 이번이 그 증명이다.
정작 다시 물어야 할 것은 유권자를 보는 눈이다. 시민을 도덕적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정치는 오래가지 못한다. 유권자는 늘 완전히 합리적이지도, 완전히 도덕적이지도 않다. 모순되고, 자기 이익에 민감하고, 불안에 흔들린다. 민주주의는 바로 그런 시민을 전제로 선다. 정치가 할 일은 그들을 꾸짖는 게 아니라, 그 불안과 이해관계를 공적 언어로 옮기는 일이다.
지역별 득표 분석을 보면 이번 선거는 2010년 지방선거와 아주 닮았다.
강남을 향한 말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곳을 부자들의 단일한 요새로만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 안에는 1주택자와 재건축을 기다리는 주민, 고령의 자산 보유자, 전문직과 자영업자, 학부모와 세입자가 함께 산다. 이해도 다르고 불안의 종류도 다르다. 자산가를 비판하는 언어만으로는 이 지역의 표심을 움직이기 어렵다. 강남을 설득하려면 도덕적 비난보다 행정의 언어가 먼저 나와야 한다. 재건축을 어떻게 관리할지, 세금과 주거 불안을 어떻게 조정할지, 노후 인프라와 안전을 어떻게 다룰지 말해야 한다.
한강벨트에서도 승부가 갈렸다. 오 후보는 용산·동작·광진·영등포·강동 등 한강벨트 주요 지역에서 정 후보를 앞섰다. 한강 조망, 직주근접, 정비사업, 교육과 교통 여건에 민감한 동네들이다. 서울 중산층의 욕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곳의 유권자는 개발을 원하면서도 투기는 싫어하고, 집값 상승을 기대하면서도 세금과 대출 이자를 걱정한다. 진보적 가치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생활 안정 앞에서는 조용히 계산기를 꺼낸다. 모순이 아니라 그냥 생활이다. 이들을 추상적인 중도층이라 부르며 안심해서는 안 된다. 주거와 교통, 교육과 재건축, 안전과 세금의 언어로 다시 설득해야 한다.
청년으로 가면 문제는 더 깊다. 처음에는 20대 남성의 이탈이 눈에 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기준, 서울 20대 이하 남성의 75.3퍼센트가 오세훈 후보를 택했다. 그러나 숫자를 더 들여다보면 문제는 그보다 넓다. 오 후보는 서울 20대 이하에서 56.8퍼센트, 30대에서 59.7퍼센트를 얻었다. 30대 여성에서도 53.6퍼센트를 기록했다. 심층출구조사에서 서울 20대와 30대의 국민의힘 투표 비율이 대구보다 높게 나온 것도 이 변화를 가볍게 넘길 수 없게 만든다. 20대 이하 여성에서는 정 후보가 앞섰지만, 30대로 넘어가면 여성 표심도 오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 물론 후보 개인을 둘러싼 논란이 3040 여성 표심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흐름을 설명하기에는 서울 2030의 주거와 자산 불안이 너무 크게 드러났다. 민주당이 마주한 것은 단순한 ‘이대남’ 문제가 아니다. 서울 2030의 생활 불안과 자산 불안이 정치적 방향을 바꾸는 현상이다.
물론 소수자 혐오와 타협할 수는 없다. 보편적 인권의 의제를 물리는 방식으로 청년 남성에게 다가가려 한다면, 그것은 해결이 아니라 또 다른 퇴행이다. 그러나 병역과 취업, 주거와 공정성, 연애와 결혼의 비용, 고립과 미래 상실감은 현실의 불안이다. 사회에서 고립될수록 청년은 극단의 언어에 더 쉽게 이끌린다.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청년 유권자의 불안을 이해하는 공약을 만드는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혐오의 언어를 정치적으로 승인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혐오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나 불안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병역이 그 시험대다. 의무로 바친 시간을 사회가 어떻게 갚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길은 군가산점이 아니다. 그 제도는 여성과 장애인에게 불리하게 작동한다는 이유로 1999년 위헌 판단을 받았고, 그 길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대신 복무를 사회가 눈에 보이게 존중하고, 봉급과 처우로 실질을 보상하며, 사회 진출에서 경력으로 인정하는 길이 있다. 미국의 군 복무자 예우 사례처럼 공항과 철도, 공공시설에서 작은 우선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할 수 있다. 정부가 민간 항공사와 협의해 우선 체크인이나 우선 탑승 같은 예우를 마련하는 식이다. 거창한 보상이 아니라, 사회가 나라에 바친 그 귀중한 개인의 시간을 매번 기억한다는 신호에 가깝다. 누구의 몫도 빼앗지 않으면서 의무에 진 빚을 갚는 방식이다.
공식 개표는 지역별 표차를 보여준다. 출구조사는 세대와 성별의 균열을 보여준다. 두 자료를 겹쳐 보면 민주당의 패배는 더 선명해진다. 지역적으로는 강남벨트의 손실 관리에 실패했고, 인구집단으로는 서울 2030의 생활 불안과 자산 불안을 충분히 읽지 못했다. 단순한 선거운동의 실패가 아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연합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경고다.
서울은 묘한 도시다. 시장 선거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투표함이고, 총선에서는 마흔여덟 개 지역구의 집합이며, 대선에서는 수도권 민심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러니 민주당의 서울 전략은 4년마다 꺼내 쓰는 임시 처방일 수 없다. 시장 선거에서 서울은 하나의 투표함으로 움직인다. 강남벨트에서 손실을 줄이지 못하면 다른 지역의 승리도 쉽게 지워진다. 총선의 서울은 훨씬 잘게 쪼개진다. 지역구마다 생활 의제가 다르고, 후보의 평판이 결과를 좌우한다. 대선에서 서울은 다시 전국 민심의 신호등이 된다. 부동산 안정, 경제 신뢰, 국정 운영 능력 같은 큰 질문이 앞에 놓인다. 선거마다 방식은 달라도 결국 묻는 것은 같다. 민주당이 서울을 아느냐는 것이다.
조란 맘다니 미국 뉴욕 시장이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프로농구(NBA) 챔피언결정전 기간 어린이의 취침 시간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참관하는 어린이가 부서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다소 장난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된 서명식에는 뉴욕의 어린이들이 참석해 맘다니 시장의 서명 장면을 지켜보며 환호했다. 3일부터 시작된 챔피언 결정전은 매 경기 미 동부시간 기준으로 오후 8시 30분에 시작돼 밤늦게까지 이어진다. 맘다니 엑스(X 옛 트위터) 갈무리
요즘 민주당 안팎에서 뉴욕의 조란 맘다니 이야기가 들린다. 생활비 위기를 선명한 구호로 압축하고, 풀뿌리 조직으로 낡은 정당 정치에 균열을 낸 인물로 거론된다. 민주당이 여기서 볼 것은 이념의 이름표가 아니라 방식이다. 생활비 문제를 시민이 바로 알아듣는 말로 바꾸고, 젊은 유권자를 선거의 관객이 아니라 참여자로 끌어들인 솜씨다.
물론 서울은 뉴욕이 아니고, 뉴욕의 구호를 그대로 가져와 무료”와 동결”을 외친다고 서울 유권자가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러면 전략이라기보다 흉내에 가까워진다. 서울에서는 무료보다 비용의 예측 가능성이, 동결보다 불안을 줄이는 설계가 먼저 설득력을 얻는다. 필요한 것은 구호의 수입이 아니라, 서울의 생활 조건에 맞게 다시 짜는 일이다.
그러려면 후보를 기르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해외의 진보정당과 시민정치 조직이 보여주는 공통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후보 발굴을 선거 직전 이벤트가 아니라 연중 조직사업으로 하는 것이다. 젊은 후보를 지방선거와 하위 선거부터 키우는 미국의 런 포 섬싱 , 지역 조직을 통해 후보를 발굴하고 훈련하는 워킹 패밀리스 파티 , 지방의원 후보 교육을 제도화한 영국의 노동·협동당 모델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스타는 갑자기 나타나지 않는다. 정당이 평소에 보지 않던 곳을 오래 들여다볼 때 보인다.
민주당, 아니면 서울시당에라도 상시 작동하는 인재발굴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구의원과 시의원, 구청장만 볼 일이 아니다. 주거운동가, 도시계획 연구자, 교통·안전 전문가, 청년 노동 현장의 활동가, 돌봄과 기후 의제를 오래 다뤄온 사람들을 정치의 문 안으로 불러들여야 한다. 그다음에는 훈련이 따라야 한다. 이름만 그럴듯한 리더십 교육으로는 부족하다. 재건축과 전월세, 교통과 통근, 도시안전과 자치재정, 돌봄과 청년 고립, 데이터 선거와 갈등 조정이 서울 생활정치의 실제 과목이어야 한다.
공천 방식도 바꿔야 한다. 누군가의 낙점이나 지도부의 계산, 순간적인 인지도만으로 서울을 맡길 사람을 정하는 습관과 결별해야 한다. 지역별 공개 정책토론, 시민추천, 예비후보 검증보고서, 청년·여성·전문가 후보군의 장기 육성이 필요하다. 당이 후보를 고르는 데서 멈추지 말고, 서울이 후보를 미리 시험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누가 있느냐”를 묻는 정당에서, 평소에 사람을 키우는 정당으로 바뀔 수 있다.
이번 선거 결과를 볼 때,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자리의 이동이다. 뼈아픈 패배지만 그걸 시발점으로 삼아 심판하는 정당에서, 맡길 만한 정당, 일 잘하는 유능한 정당으로 가야 한다. 도덕적 우위는 정당성의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통치의 위임장은 시민의 불안을 다룰 능력을 보일 때 비로소 손에 쥐어진다.
서울이 자동으로 열리는 문이라고 믿는 순간, 문은 닫힌다. 다시 이기려면 그 도시를 훈계하기 전에 먼저 읽어야 한다. 강남의 표 차이와 출구조사의 세대·성별 균열은 그 오래된 사실을 다시 확인시켰을 뿐이다.정승호 시민기자 jeong.seungho@hoasen.edu.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