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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가 커지고 있다…영국 지방선거가 던지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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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영국 지방선거 결과는 단순히 한 나라의 지방행정을 좌우하는 결과를 넘어, 전 지구적 진보 진영에 우울한 경고를 전해주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지점은 나이젤 패라지가 이끄는 극우 인종주의 정당인 개혁당(Reform UK)이 무려 1450여 석을 확보하며 폭발적으로 성장해 전체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약진을 넘어선, 기존 영국 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지각 변동이다. 그 뒤를 이어 집권 여당인 노동당이 매우 많은 의석을 잃으며 1000여 석을 얻는 데 그쳤고, 보수당과 중도 성향의 자유민주당은 각각 800여 석을 차지하며 공동 3위권으로 밀려났다. 녹색당은 550여 석을 확보했다. 전체 득표율을 대략적으로 계산해 보아도 개혁당의 지지세는 압도적인 1위였다. 뒤이어 보수당, 노동당, 자유민주당, 녹색당 순으로 나타난 지지 분포는 영국 유권자들이 기존 주류 양당에서 얼마나 멀어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과반 의석을 넘어서 해당 지방의회의 주도권을 완전히 쥐게 된 자치단체의 규모를 봐도 개혁당이 얻은 성과는 무시하기 어렵다. 영국 정치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보수·노동 양당제의 균열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그 균열의 틈을 메운 것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가치로 내건 세력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를 동력으로 삼는 극우 세력이었다.     8일 연설하면서 술잔을 들어올리는 패라지 대표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번 선거 결과를 낳은 핵심적인 요인은 무엇보다 집권 노동당의 실패에 있다. 불과 2년 전, 보수당의 실정을 딛고 집권에 성공했던 노동당이 이토록 빠르게 민심을 잃은 이유는 명확하다. 국내적으로는 긴축 정책을 고수하며 주거와 생활비 위기 등을 해결하지 못했고,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함께 손잡고 이스라엘의 가자 집단학살을 도와 온 행보가 지지자 대거 이탈을 낳았다. 이것은 노동당 총리 키어 스타머가 추구한 노선의 완전한 실패라고 규정할 수밖에 없다. 스타머는 취임 이후 기존 지도부였던 제러미 코빈의 좌파적 노선을 그 흔적까지 지우는 데 열을 올렸다. 그는 코빈 체제에서 강조했던 공공 서비스의 국유화, 부유세 강화, 반전 평화주의를 비현실적 인 것으로 몰아내며 사실상 다시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 노선으로 돌아갔다. 자본의 논리에 영합하고 시장 만능주의를 적당히 수선해서 쓰려는 이 시도는 노동당의 정체성을 희석시켰고, 결과적으로 노동당을 보수당과 별로 구분할 수 없는 기득권 정당 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스타머의 전략은 거대한 자충수가 되었다. 아무리 노동당에 실망했더라도 유권자들이 다시 보수당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자만은 빗나간 계산이 됐다. 노동당이 진보적 색채를 버리고 우클릭을 감행하는 동안, 놀라운 반사이익을 얻은 것은 보수당이나 자민당보다는 오히려 선명한 증오를 내세운 개혁당이었다. 주류 정당들이 중도층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릴 때, 극우 세력은 대중의 불안을 먹잇감 삼아 가장 자극적인 언어로 비어있는 공간을 장악했다. 최근에 개혁당은 권력에 다가가면서 세련된 용어로 좀 분칠을 하고는 있지만, 그 본질은 명확한 인종주의적 극우 정당이다. 이들의 대표적 정책과 공약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이민자 대량 추방과 격리 수용, 무슬림과 트랜스젠더 혐오, 기후 위기 부정, 유럽인권조약 탈퇴, 그리고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정책이 그들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광풍은 영국이 아직도 10년 전 브렉시트(Brexit)가 낳은 인종주의의 덫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당시 브렉시트를 낳았던 사회적 양극화, 공공 서비스의 후퇴, 삶의 불안정, 미래에 대한 근원적인 불안감을 보수당뿐 아니라 노동당도 지난 10년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긴축 정책과 불평등을 방치하며 대중의 분노를 키웠다.     영국 지방선거 결과 - 출처: X 그 결과 인종주의적 반동을 그럴듯한 해결책인 것처럼 제시한 개혁당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반면 노동당과 보수당이라는 주류 양당은 거듭된 실패와 몰락을 겪고 있으며, 이것은 다시 양당제의 해체와 사실상 다당제의 정착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에서는 이러한 정치적 분화가 지역주의(민족주의)적 양상으로 나타난다.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런던 중앙 정부의 무능에 맞서 자치와 독립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웨일스에서 성장하고 있는 플라이드 컴리 역시 중앙 정부와는 상반된 정책적 대안을 주장해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 중앙 집권적인 양당 정치가 대중의 구체적인 삶을 돌보지 못할 때, 정치는 파편화되고 민족주의(지역주의)나 혐오를 기반으로 한 원심력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 우울한 선거 결과 속에서 그나마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새롭게 혁신하고 있는 녹색당이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득표율과 의석수에서는 4~5위에 그쳤지만, 녹색당이 보여준 급속한 성장세는 영국에서 진보 정치의 남아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녹색당은 최근 지도부를 전격 교체하고 기존의 온건한 환경주의를 넘어선 생태 포퓰리즘(Eco-populism) 노선을 채택했다. 이는 기후 위기를 단순히 환경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모순과 연결된 생존의 문제로 규정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그 결과 1년 만에 당원이 7만여 명에서 23만여 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것은 현재 노동당의 당원 규모를 넘어서고 있는 수준인데, 노동당의 우클릭과 긴축 정책에 절망한 지지자들의 상당수가 녹색당으로 이동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녹색당은 개혁당의 반이민 인종주의나 소수자 혐오, 그리고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지지하는 친이스라엘 정책과 가장 앞장서 맞서 싸우는 정당으로 스스로 위치를 분명히 하면서, 노동당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반면 노동당은 개혁당의 혐오 정치를 막아낼 수 있는 힘을 보여주기는커녕, 오히려 팔레스타인 연대를 외치는 녹색당을 반유대주의 라고 공격했다.     잭 폴란스키 녹색당 대표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노동당이 극우 세력의 마녀사냥에 동조하며 진보적 가치를 훼손한 행태는 결국 더 큰 패배를 자초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씁쓸한 지점은 전통적 급진 좌파들의 추락이다. 노동당에서 축출되거나 분리해 나온 제러미 코빈과 노동당 밖의 여러 급진 좌파 세력이 힘을 모아 당신의 당 (Your Party)을 창당했던 초기에는 많은 이들의 커다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내부 분열과 분파적인 주도권 다툼 속에서 1년도 안 돼 그 시도는 참담한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게 이번 선거를 통해 드러났다. 이번 선거에서 당신의 당 은 영국 전역의 수많은 지역 중에서 극히 일부 지역에 겨우 20여 명의 후보를 내는 것에 그쳤고, 득표율과 성과는 유의미하게 잡히지도 않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녹색당이 거의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내며 조직력을 과시한 것과 비교하면 더욱 안타까운 성적표다. 이는 아무리 듣기에만 급진적인 구호를 내세운다 할지라도, 이를 뒷받침할 조직력과 재정적 능력, 그리고 내부의 단결이 없다면 대중 정당으로서 기능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서로 다투느라 힘을 모으지 못하는 상황에서 말의 선명함만을 경쟁하는 정치는 대중에게 실질적 대안이 되지 못했다. 따라서 일부 진보 논평가들이 녹색당의 성장만을 강조하며 영국 지방선거에서 좌파가 희망을 보여줬다 고 평가하는 것은, 전체적인 극우의 득세와 좌파 조직들의 분열과 위기를 외면한 설득력 없는 정신 승리 에 가까워 보인다. 현재의 흐름대로라면 2029년 총선에서 개혁당이 승리하여 영국판 트럼프 정권을 탄생시키는 비극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녹색당과 노동당 안팎의 진보 세력, 그리고 영국의 노동운동이 무거운 성찰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정치적 변화들은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보수당의 실정과 실패 속에서 정권을 잡은 노동당이 집권 단 2년 만에 다시 민심의 냉혹한 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이재명 정부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던져준다.    2024년 7월 영국 총선에서 승리한 영국 노동당 대표 키어 스타머가 선거에 앞서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공약 발표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가 지난 윤석열 정권이 남겨놓은 수많은 구조적 문제들을 과감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그 실망으로 인한 공백을 더 극우 반동적인 세력이 차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대중은 무능한 중도보다 차라리 자극적인 극우의 목소리에 매료되기 쉽다. 따라서 이재명 정부는 적당한 타협이나 현상 유지를 넘어서서 저성장, 실업,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실질적인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의 패권주의에 매달리고 이스라엘의 만행에 침묵하는 외교 정책에서 벗어나 평화와 인권에 기반한 독자적 목소리를 내야 하며,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낡은 에너지 정책에서 탈피하려는 과감한 시도도 계속해야 한다. 기득권의 눈치를 보며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적당히 유지하거나 사회적 양극화를 방치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민주당 왼쪽에서 활동하는 진보 좌파 정당과 사회운동 세력들 역시 영국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단순히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가 기득권이고 대안이 아니라는 양비론적인 태도만으로는 대중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분명히 국민의힘과 윤 어게인 극우 집단은 한국 정치에서 최우선적으로 저지되어야 할 세력이다. 진보 세력은 이 지점을 분명히 하면서, 누가 극우를 실질적으로 막아내며 한국 사회의 절박한 과제들을 더 잘 해결할 수 있는지 실력으로 입증하는 경쟁을 해야 한다. 단순히 민주당을 비판하고 더 선명하며 급진적인 주장만을 쏟아내면 자연스럽게 대안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오래된 착각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여전히 작은 세력들이 서로 주도권 다툼과 선명성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가능한 폭넓은 연대와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 조직력과 실질적인 힘을 가지고, 대중의 삶 속에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정치 집단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영국의 우울한 선거 결과는 묻고 있다. 우리는 실제로 세상을 바꾸고 괴물 을 막아낼 실력을 키우며 준비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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