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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죽은 비핵화’ 만지면서 시간 허비할 때 아니다

‘죽은 비핵화’ 만지면서 시간 허비할 때 아니다
[뉴스]
만약 김정은이 워싱턴과의 전략적 화해를 포기하고 베이징·모스크바와 더욱 밀착해 간다면, 우리는 북한(조선) 핵 문제가 여전히 우리를 위협하는 21세기를 살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북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해커 박사가 2023년 그의 저서 『핵의 변곡점』에 남긴 경고입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 예언은 정확히 현실이 됐습니다. 세 개의 사건이 겹친 하루. 6월 8일 지난 6월 8일, 한반도의 운명을 가늠할 세 가지 사건이 하루에 한꺼번에 터졌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7년 만에 평양을 국빈 방문했습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조선의 핵탄두 보유량을 전년보다 10기 늘어난 약 60기로 추산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조선 핵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밝혔습니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묵직한 하루였습니다.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의 회담이 지난 8일 금수산 영빈관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2026.6.9 연합뉴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수치는 조선의 핵이 이미 통제 범위를 벗어나 불가역적 단계에 들어섰음을 말해줍니다. 시 주석의 평양 방문은 조·중·러 연대를 세계 앞에 공개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그 발표문 어디에도 ‘비핵화’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전략적 인내’라는 허명이 내민 청구서 이 파국은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조선은 핵무기 다섯 개 분량의 플루토늄만 가졌고, 미사일 역량도 초보적이었습니다. ‘전략적 인내’라는 허명 아래 무위의 8년을 보낸 끝에, 조선은 핵무기 25개 분량의 핵물질과 검증된 미사일 전력을 갖춘 나라가 됐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조선은 헌법 개정으로 통일 조항을 지우고 대한민국을 ‘타국’으로 못 박는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했습니다. 80년 체제 경쟁과 통일 지향의 시대를 스스로 닫아버린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국제 제재망마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이어 중국도 한미일 연대 견제를 위해 조선의 핵 보유를 사실상 묵인하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중국의 국경 통상구 전면 재개통은 유엔 제재를 형해화하는 공공연한 행위입니다. 조선은 이제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서 큰 제약 없이 국제무대를 누빌 수 있는 강력한 정치·경제적 뒷배를 얻었습니다. 대통령은 현실을 봤는데, 관료들은 딴 길 기웃?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 발언은 주목할 만했습니다. 즉각적 비핵화라는 허상에 매달리기보다 조선 핵의 존재를 냉정히 인정하고, 핵물질 추가 생산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고도화를 막는 ‘동결’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취지였습니다. 실현 불가능한 선 비핵화 집착 대신 확전을 막고 상황을 관리하겠다는, 타당한 방향 전환입니다. 그런데 불과 이틀 만에 이 구상이 뒤집혔습니다. 6월 10일 발표된 한-유럽연합(EU)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하고 조선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상 핵보유국으로 결코 인정될 수 없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대통령의 말이 귓전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외교문서는 정반대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EU이사회 본부에서 열린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즐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의 공동언론발표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6.11 대통령의 자주적 노선에 제동을 걸고 한국 외교를 다시 맹목적 대미 추종으로 끌고 가려는 외교·안보 관료들의 관성이 작동한 것이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선도 이 모순을 즉각 간파하고 이재명 정권을 위장 간판을 내팽개쳤다”라며 격하게 비난했습니다. 조선의 비난은 차치하더라도, 중견국 외교의 힘은 일관성에서 나옵니다. 이번 엇박자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가려야 합니다. 두 개의 낡은 환상 ‘비핵화 입구론’ ‘자체 핵무장론’ 한국 사회엔 여전히 냉혹한 현실을 외면한 채 두 가지 낡은 환상을 붙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는 ‘비핵화 입구론’입니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라는 실패한 구호에 얽매여 비핵화 없이는 대화도 교류도 없다”라는 구호를 신조처럼 되뇝니다. 중국을 움직여 조선의 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는 미망도 여기서 나옵니다. 이 숭미주의적 완고함이 오히려 한국의 안보를 더 위태롭게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자체 핵무장론’입니다. 무역과 수출로 먹고사는 대한민국이 핵을 개발한다면, 감당할 수 없는 국제 제재로 경제가 파탄 나고 동북아에 핵 도미노를 촉발하는 재앙을 부를 것입니다. 이 역시 현실적 선택지가 될 수 없습니다. ‘차가운 평화’를 향한 담대한 현실주의 지금은 ‘비핵화가 먼저냐, 교류가 먼저냐’를 두고 철 지난 선문답을 할 때가 아닙니다. 30년에 걸친 거듭된 실패 끝에 조선은 결국 핵을 가진 나라가 됐습니다. 이 뼈아픈 현실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핵 국가 조선’이라는 전제 아래 국가 생존을 위한 새판을 짜는 것입니다. 전작권을 빨리 환수해 자주 국방력을 키우고, 조선의 핵 위협 아래서도 우발적 충돌을 막는 ‘차가운 평화(Cold Peace)’ 체제를 설계하고 구축해야 합니다. 미국의 핵우산과 한미동맹은 이 구조 안에서 유용한 보완재로 활용하면 됩니다. 자주국방·실용 동맹·열린 대화, 이 세 축이 맞물릴 때 비로소 정교한 안보의 퍼즐이 완성됩니다. 한국 사회는 지금 안으로는 지방선거 후폭풍과 당권 경쟁으로, 밖으로는 미국-이란 전쟁의 여파로 달아올라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긴 눈으로 보면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질문은 하나입니다. 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핵 국가 조선과 어떻게 공존하며,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한반도를 만들 것인가.’ 대결 주의의 낡은 환상과 맹목적 동맹 추종에서 깨어나, 실용주의적 평화라는 시대의 소명 앞에서 좌우·노소 갈릴 것 없이 함께 머리를 맞댈 때입니다. 이재명 정권은 특히 명심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숭미주의의 늪으로 다시 빠져들 것이냐 자주적 현실주의로 돌파할 것이냐’를 가르는 변곡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오태규 전 한겨레 논설실장 ohtak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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