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솜 연구 코로나 백신에 기여 그레고리아디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리포솜을 백신에 응용하는 기술을 창안한 그리스계 영국 생화학자 그레고리 그레고리아디스. 브라이트 앤드 호브 뉴스 갈무리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리스계 영국인 그레고리 그레고리아디스는 약물 표적화를 위해 리포솜(liposome)이란 입자를 사용한 개척자이며 코로나 백신 개발의 기초를 마련한 생화학자라고 일간 텔레그래프가 20일 전했다. ( 리포좀 이라고 흔히들 표기하는데 규범 표기는 ‘리포솜’이다)
그레고리아디스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영국 브라이튼의 한 요양원에서 눈을 감았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나 50년 넘게 영국에 거주했던 고인은 캐나다 여권도 소지하고 있었다. 유족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그의 과학적 업적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면서 고인이 인류에 큰 유산을 남긴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이어 우리에게 그는 매우 가족적인 사람이었고, 친절하며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많은 삶에 영향을 미쳤다 고 덧붙였다.
1960년대 케임브리지 근처 바브라함에 위치한 동물생리학 연구소에서 일하던 알렉 뱅햄이 지방 막 같은 물질의 속이 빈 미세한 구체로, 물 속에서 자발적으로 형성되는 리포솜을 처음 발견했다. 원래는 방가솜(Banghasome)으로 알려졌으나 곧 리포솜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수천 편의 과학 논문과 특허가 잇따랐다. 피부 크림과 화장품부터 치즈, 어류 사료, 조산아 생명을 구하는 화합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적용됐다.
인체 안에는 영양분과 노폐물을 운반하는 작은 지방 거품 패키지가 있다. 그레고리아디스는 A형 간염과 인플루엔자 백신 같은 약물과 백신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리포솜을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처음에는 브렌다 라이먼과 함께 일했고, 나중에는 앤서니 앨리슨과 함께 그는 리포솜을 약물 전달에 사용하는 동물과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했다.
그레고리아디스는 2021년 PA 통신 인터뷰를 통해 나는 1971년에 이 일을 시작했다 면서 우리는 리포솜을 이용해 백신을 포획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결과를 확인하기로 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리포솜에 백신을 투여함으로써 항체 반응이 훨씬 강해진다는 것이었다 고 말했다. 그는 리포솜이 백신을 강화하는 면역학적 보조제 로도 작용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약학대학원(옛 런던 약학대학)의 명예 교수이자 런던 대학 이학 박사인 그레고리디아스의 연구는 1971년과 1974년에 각각 획기적인 논문으로 발표돼 국제적으로도 큰 관심을 끌었다. 리포솜 기술과 지질 나노입자가 약물 전달 시스템의 금본위 로 채택되는 데 기여했다. 응용 분야로는 암, 당뇨병, 그리고 결함 있는 효소가 세포의 노폐물 분해를 방해하는 희귀 유전성 대사 질환 치료 등이다.
무엇보다 이 기술은 코로나19 감염병과의 싸움에 사용된 백신 개발에 기둥 역할을 했다. 이 백신들은 합성 메신저 RNA(mRNA)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사스-코브-2(Sars-Cov-2)라는 바이러스에 대한 보호 항체 반응을 유도하는 유전 물질이다. 하지만 mRNA는 매우 연약해 몸에 직접 주입하면 파괴된다. 이 때문에 지질 나노입자들이 mRNA를 감싸게 백신을 만든다. 이 나노입자는 보조제 역할도 해 신체의 면역 반응을 강화한다.
그레고리아디스는 자신의 연구가 백신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매우 만족스럽다 고 PA 통신에 털어놓았다. 과학자들은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50년 전 런던에서 내가 처음 수행한 연구에서 백신 기술이 기원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그레고리아디스는 1934년 2월 27일 아테네에서 크리스토스 그레고리아디스와 아티나(본명 사켈라리우)를 부모로 태어났다. 그는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나치가 그리스를 점령하던 시기를 견뎌냈다. 이 잔혹한 시련을 2014년 소설 아직도 매미는 노래하네 (Still the Cicadas Sing)에 담았다.
아테네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66년 캐나다 맥길 대학에서 생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68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뉴욕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에서 2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한 후, 런던의 로열 프리 병원 의과대학에서 비슷한 역할을 맡았다. 이 의대에서 리포솜을 백신 기술에 응용하는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1972년부터 1993년까지 영국 의학연구위원회의 선임 과학자로, 1990년부터 2001년까지 런던 대학 약학부 약물 전달 연구센터 교수 겸 책임자로 근무했다. 1997년 리포솜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리폭센(현재 제네틱 바이오사이언스)을 설립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약학대학에서 분사한 회사로 그는 2015년까지 연구 책임자로 일했다.
후즈 후 에 따르면, 그레고리아디스는 고대 아테네의 역사와 철학, 정치,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유족으로는 1968년 결혼한 부인 수전 바이런-브라운과 아들, 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