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통령-연준의장 첫 정면 충돌…시장 큰 혼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연준 청사 건물 개보수와 관련해 소환장을 발부했다. 연준 의장인 파월이 대상인데 행정부가 중앙은행의 장에게 기소 위협을 가한 건 사상 최초다. 트럼프의 숱한 금리 인하 압박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던 파월도 급기야 트럼프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대통령과 연준의장이 정면 충돌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가운데 역대 연준의장들은 파월을 대상으로 하는 수사를 행정부의 중앙은행 통화정책에 대한 통제 방법으로 규정하며 강력비판하고 나섰다. 글로벌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준의 독립성을 근저에서부터 위협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행태에 시장은 사상 최고의 금값으로 반응 중이다. 일각에서는 70년대식의 인플레이션 홍수가 도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사상 최초로 기소위협에 시달리는 파월 연준 의장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1일(현지시간) 공개한 영상에서 연준이 지난 9일 법무부로부터 대배심 소환장과 형사 기소 위협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번 법적 조치는 파월 의장이 지난해 6월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한 청사 개보수 관련 증언과 연관돼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산을 크게 초과한 이 공사를 금리 인하 요구를 거부하는 파월 의장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또한 지난해 여름 연준 청사 개보수 현장을 직접 찾아 파월 의장과 공사 비용 문제를 두고 즉석에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며칠 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나는 파월이 연준 건물 개보수를 관리하면서 보인 끔찍하고 극도로 무능한 모습 때문에 파월에 대한 대규모 소송을 진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압박한 바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수사는 독립성을 지켜온 연준을 자기 뜻에 굴복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 중 가장 공격적인 조치라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NBC 방송에서 이 수사에 대해 질문 받자 나는 그것에 대해 모른다. 하지만 그(파월)는 연준 일을 잘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고 건물을 짓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연준 청사 개보수는 2022년 시작돼 2027년 마무리될 예정이다. 비용이 예산 대비 7억 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연준 청사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통령 작심 비판한 파월 의장, 트럼프의 강공이 오히려 악수될 수도
파월 의장은 정면 돌파 의지를 피력했다.
파월 연준 의장은 11일(현지시간) 공개한 영상에서 연준 청사 개보수에 대한 지난해 6월 나의 의회 증언과 관련해 법무부로부터 대배심 소환장과 형사 기소 위협을 지난 9일 받았다”고 밝히며 이 전례 없는 행위는 행정부의 위협과 지속적인 압박이라는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파월 의장은 이번 새로운 위협은 지난해 6월 나의 증언이나 청사 개보수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 의회의 감독 역할에 관한 문제도 아니다”며 이것은 구실”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형사 기소 위협은 연준이 대통령의 선호를 따르기보다 공공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방향에 따라 금리를 결정해 왔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트럼프를 직격했다.
이어 이 문제는 연준이 증거와 경제 여건에 근거해 계속해서 금리를 결정할 수 있느냐, 아니면 통화정책이 정치적 압박이나 위협에 의해 좌우되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공적 임무는 때로는 위협에 강력하게 맞서야 한다”며 나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확인한 미국민을 위한 나의 임무를 계속할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파월 의장의 임기는 오는 5월 종료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차기 연준 의장 지명자를 이달 중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후임에는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강공이 오히려 예기치 못한 패착이 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파월 의장에 대한 미국 법무부의 형사 기소 추진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아 파월 의장이 오는 5월 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도 임기가 2028년 1월까지인 연준 이사직에는 계속 남을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한 것이다. 그동안은 파월 의장이 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연준을 떠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파월 의장은 이번 수사와 기소를 트럼프의 통화정책 장악 시도로 보고 연준 이사회를 사수해야 한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12월 10일 워싱턴 D.C.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본부에서 열린 연방 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틀간의 회의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5.12.10. 로이터 연합뉴스
통화정책 독립성 수호 위해 파월 엄호에 나선 역대 연준의장들
한편 미국의 전직 연준 의장을 비롯한 명망 있는 경제학자들이 연방 법무부가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의 형사기소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중앙은행 독립성을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12일(현지시간) 발표한 성명에서 연준의 독립성과 그 독립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의회가 연준의 목표로 설정한 안정된 물가, 최대 고용, 적정한 장기 금리의 달성을 포함한 경제 성과에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이들은 이번 수사를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공격으로 규정하고서 이건 제도가 취약한 신흥시장에서나 통화정책을 입안하는 방식이며 인플레이션과 더 넓게는 경제 기능에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수반한다”면서 법치주의가 우리 경제 성공의 토대이자 가장 강력한 힘인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성명에는 벤 버냉키, 앨런 그린스펀,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과 재러드 번스틴, 제이슨 퍼먼, 글렌 허버드, 그레고리 맨큐, 크리스티나 로머 전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티머시 가이트너, 제이컵 루, 헨리 폴슨, 로버트 루빈 전 재무부 장관,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국제경제학 교수 등 13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로널드 레이건, 조지 H.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등 역대 공화당과 민주당 정권에서 재직했다.
트럼프 무리수에 금값은 사상 최고치 찍어
파월 의장이 의회 위증 혐의로 형사기소에 직면했다는 소식에 12일(현지시간) 국제 금값이 급등세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2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미 동부시간 오전 10시 46분 전 거래일 대비 3.1% 오른 온스당 4638.2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고치 기록을 경신했다.
3월 인도분 은(銀) 선물 가격도 이날 오전 장중 전 거래일 대비 8.2% 급등한 온스당 85.84달러로 사상 최고치 기록을 뛰어넘었다.
파월 의장에 대한 형사기소 가능성이 연준의 독립성 및 통화정책 신뢰성에 대한 가할 것이란 우려가 금·은 가격을 밀어 올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 여파로 연준의 독립성이 약화되고 과도한 금리 인하로 이어질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 상승으로 장기금리가 오르고 달러화 투자자금이 이탈하는 이른바 ‘셀 아메리카’ 혹은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debasement trade)가 가속할 것을 우려한다.
실제로 국제 금값은 이런 우려를 반영, 파죽지세로 상승세를 지속하며 작년 말 사상 최초로 온스당 4500달러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파월 의장을 상대로 해임 위협과 함께 금리 압박 수위를 높였던 지난해 4월에도 국제 금값이 급등하고 뉴욕증시가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출렁인 바 있다. 국제 금값은 그 이후로도 연준 독립성 훼손에 대한 우려로 상승세를 지속해왔다.
골드바.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70년대식 대인플레이션 시대가 닥칠 것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을 좌지우지하려는 시도가 자국 경제를 위험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백악관이 미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연준에 금리 인하를 압박할 경우 1970년대 벌어졌던 ‘ 대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 사태를 다시 겪게 될 것이라는 경제 전문가들의 경고를 모아 보도했다.
아타칸 바키스탄 베렌버그 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연준이 심각한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통화 초(超)완화 정책을 추구한다면, 1970년대 벌어졌던 최악의 위험 시나리오와 닮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1970년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아서 번스 전 연준 의장을 압박해 통화 완화 정책을 추진했고, 그 결과 미국은 대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제 충격을 경험했다.
1970년대 중반 당시 석유파동과 연준의 완화 정책, 미정부의 대규모 재정적자 등이 겹치면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10%를 넘어선 바 있다.
물가가 고공 행진하게 되면 미국 국민에게 돌아가는 위험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깃 차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는 금리를 너무 빠르게 내리면 물가가 엄청나게 튀어 오를 실질적인 위험이 있다”며 저소득층에게 타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제이슨 퍼먼 하버드 이코노미스트도 미국이 위험한 순간에 직면했다”며 중앙은행장을 정치적 겁박이나 통화정책 결정에 대한 처벌 의도로 기소 또는 기소 위협을 한 국가는 아르헨티나, 러시아, 튀르키예, 베네수엘라, 짐바브웨”라고 꼬집었다.
짐바브웨, 아르헨티나 등은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대표 국가들이다.
전문가들이 이 문제가 미국에만 그치지 않고 글로벌 경제·금융 시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봤다.
차다 교수는 전 세계에 달러 표시 자산이 얼마나 많은지 잊으면 안 된다”며 우리가 달러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에 두지 못한다면 이 같은 자산 가격도 함께 오르게 되고, 우리는 궁핍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바키스탄 이코노미스트는 만약 연준이 데이터가 아니라 정치적 압력에 의해 움직인다면 외국인 투자자들도 미국 국채에서 돈을 빼고 새로운 안전 자산을 찾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리 인하를 압박하다 못해 급기야 형사 소추라는 극약까지 꺼내든 트럼프의 초강수가 최악의 악수가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형국이다.
8월 2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인도 특산품 시장에 인도에서 수입된 제품들이 진열되어 판매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인도의 러시아산 석유 구매로 인해 부과된 25% 관세를 기존 25% 관세에 추가했다. 이로써 의류, 보석, 신발, 스포츠용품, 가구, 화학제품 등 인도에서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한 총 관세는 최대 50%까지 높아진다. 이 관세는 8월 27일부터 발효됐다. 2025.8.28.EPA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