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K-정신 의 근원을 묻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무더위가 쉬이 물러가지 않던 8월의 끝자락에 의미 있는 전시 하나를 만날 수 있었다. 바로 지난 8월 20일부터 9월 1일까지 갤러리 인덱스에서 열렸던 전시 다. 하나아트컴퍼니와 천도교중앙총부가 공동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으로 열렸던 이번 전시는 현재의 시대 상황에서 더욱 의미를 갖는 전시였다고 하겠다. 불법 계엄으로 시작된 혼란의 시기를 지나 드디어 지난 6월 새 정부가 들어섰고, 한편으로는 대통령까지도 K-컬처를 통한 문화강국의 비전을 제시할 만큼 K-컬처가 세계적인 각광을 받는 K- 의 시대다. 마침 올해가 광복 80주년이자 한일 수교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여 그 의미가 배가 하였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하듯 이번 전시는 K-정신 의 근원을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지난날 동학혁명으로부터 출발하여 촛불의 계보를 잇는 최근의 키세스 시위대에 이르기까지 위기의 순간마다 극복의 동력으로 함께 했던 존재는 국민이었다. 굴곡의 역사 속에서 이 사회의 구성원인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우리’가 되어 오늘날 K- 의 발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전시는 바로 이 우리 의 힘이 어디서부터 비롯되었고,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고정수 작가의 조각 작품들.
이런 기획 의도는 참여 작가의 구성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원로조각가 고정수에서부터 공병, 김봉준, 김서경, 김운성, 김화순, 류연복, 박성완, 박영균, 유진숙, 이구영, 이윤엽, 이하, 임채욱, 전진경, 사회 1세대 그래피티 작가 LEODAV 까지 다양한 장르와 세대의 작가 16명을 비롯하여 재일조선인 작가 장루미의 작품이 함께했다. 회화, 판화, 조각, 사진, 스텐실 등 표현의 언어와 방식은 각기 다를지라도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한 관심과 연대 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갖는 작가들이다. 이 중에서 눈길을 끌었던 작가의 몇몇 작품을 살펴보고자 한다.
전시장 입구에서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았던 작품 는 현장 미술을 지속해온 박영균의 작품으로 촛불혁명 등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공간인 광화문을 담은 작품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혁명의 열기와 흥분을 작품에서 찾기는 힘들다. 작품은 춥고 어두운 겨울을 보여주듯 전체적으로 푸른 색조를 띠고 있고, 캔버스 중앙에는 어떤 부당한 권력에도 흔들리지 않고 맞서겠다는 듯 캔버스 1/3에 달하는 크기의 북악산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북악산 너머 구름 사이로 이어지는 산맥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끝에 이르러 제목처럼 곱게 빛나고 있는 이른 아침의 햇살과 그 아래로 작게 보이는 백두산 천지를 발견하게 된다. 고난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보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가 읽히는 작품이다.
박영균 작가의 아침의 햇빛이 빛나는 곱고 아름다운 나라 .
판화가 이윤엽의 세 작품 역시 눈길을 끌었던 작품들이다. 이윤엽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통해서 우리가 일상에서 겪게 되는 감정이나 생각을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어법으로 표현했다. 는 작가가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미루나무를 그린 작품이다. 작품에서 바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캔버스 중앙의 상/하단부의 끝에 닿을 만큼 길게 그려진 덩그러니 서 있는 미루나무다. 하지만 곧 나무를 안고 있는 작은 사람을 발견하면서 제목의 의문이 풀리게 되고 또한 미루나무가 작가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다. 은 작가가 어느 날 출근 시간 신도림역에서 우연히 사람들 속에 서 있던 경험을 그린 작품이다. 캔버스를 가득 채운 비슷비슷한 표정의 얼굴에서 출근 시간 혼잡한 지하철역에서의 피로함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평소 출근할 일이 없는 작가에게 이 경험은 신나는 일이었을 터. 개별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익명의 군중 속에서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윤엽 작가의 출근하는 사람들 .
삶의 흔적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는 박성완은 현재 작가 자신에게 가장 치열한 삶인 ‘육아 전쟁’을 중심으로 주변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다. 일상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포착한 스냅사진 모음을 보는 듯 작품들은 사진과는 또 다른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선적인 표현보다는 면을 위주로 한 붓 자국이 선명한 투박한 표현은 따뜻한 색감을 잘 살려내고 있다. 구도나 인물표현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마음과 애정 어린 시선이 반영된 작품 하나하나에서 그 깊이를 발견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박성완 작가의 그림들.
이번 전시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보여줬던 작품은 재일조선인 화가 장루미의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본 미야자키에서 태어나 동경 조선대학교 미술과를 졸업한 장루미는 조선학교 미술교원으로 퇴직한 이후 2022년부터 전업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구림회’(丘林會) 등 재일조선인 미술가 단체의 일원으로 다수의 단체전 참가 등 활발한 활동과 더불어, 신극미술협회 신인상 등 여러 차례 수상으로 주목받은 화가이기도 하다. 널리 한반도에서 사랑받는 꽃이기도 한 목련을 그린 은 작가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 희망과 포부를 안고 사회에 나섰던 마음과 2022년 전업 화가로서 새 출발에 대한 결심과 미래에 대한 기대와 신심을 표현한 작품이다.
백목련은 꽃봉오리가 피려고 할 때 끝이 북녘을 향한다고 해서 북향화 라고도 불리는 꽃이다. 족자 형태로 맑은 푸른빛 하늘을 배경으로 꽃봉오리를 피어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백목련은 꽃봉오리들이 모두 위를 향하고 있어, 마치 조국(북)에 대한 그리움과 애정을 담은 듯 보이는 작품이다.
전시장의 공간 구성에 있어 박영균의 작품 속 북악산으로 전시가 시작했다면, 전시장의 가장 뒤쪽 공간에서는 사진으로 동양화적 산수를 담아낸다는 평가를 받는 사진작가 임채욱의 대형작품인 을 만날 수 있었다. 임채욱은 한지에 사진을 프린팅하는 방식으로 한지 특유의 질감을 통해 먹의 농담과 깊이를 표현했다. 동학혁명 최후 항쟁지였던 대둔산에서 5.18 광주민주화투쟁을 바라본 무등산까지 첩첩산중의 능선 속에 민중의 함성을 시각적인 은유로 녹여냈다.
바로 건너편에는 판화가 류연복의 작품 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늘과 땅의 위치를 위아래로 바꾸고, 모실 시자를 좌우로 뒤바꿔 동학사상을 단명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기록물인 ‘동학무장포고문 영인본’(천도교중앙총부 소장)을 함께 전시하여 그 의미를 더했다.
해월 최시형의 얼굴 등 동학과 관련된 작품들.
이 외에도 우리 삶의 공간 속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이름 없는 풀과 꽃들을 작품화한 이구영의 작품 그룹이나, 역시 씨앗에서 움트는 생명력을 조각으로 표현한 김운성의 와 작은 꽃무리로 표현한 전진경의 , 혹은 공병의 등 작지만 그 자체로 생명력을 보여주고 세상을 구성하는 존재들에 주목하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특별한 한 사람이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연대 정신을 보여주었던 시민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이다.
자연의 만물이 그러하듯, 우리의 일상 또한 종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힘의 근원과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했던 이번 전시는 미래에 우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라는 또 다른 질문을 제시하고 있다.
전시명: / 일시: 2025.08.20.~ 2025. 09.01 / 장소: 갤러리 인덱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