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민주당, 국민 판단 직접 묻는 대만 서 배워라 [뉴스] 지방선거가 끝났다. 결과만 놓고 보면 민주당의 승리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마냥 승리라고 말하기 어렵다. 가장 상징적인 서울을 내주었고, 심판해야 할 세력을 심판하지도 못했다. 압도적 의석을 가진 정당이 기대만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국 정치적 경고로 읽어야 한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국민이 한 정당에 큰 권한을 몰아줄 때는 단순히 맡겨보자 는 뜻만 담겨 있지 않다. 그 위임에는 분명한 청구서가 따라붙는다. 무엇을 바꾸라고 그 권한을 주었는가, 어떤 기득권을 흔들라고 절대다수의 힘을 쥐여주었는가. 바로 그 질문 앞에서 지금 민주당은 선뜻 답하지 못하고 있다.
개혁이라는 말은 쉽지만, 실제 개혁은 언제나 고통을 수반한다. 말 그대로 가죽을 벗기는 아픔이 따를 수밖에 없다. 기존 구조를 손대는 일은 반드시 저항을 부르고, 그 저항을 감수할 의지가 없으면 개혁은 구호로만 남는다. 절대다수란 바로 그 고통을 감당하라고 국민이 준 정치적 권한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그 힘을 과연 어디에 쓰고 있는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총괄상임선대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26.6.4. 연합뉴스
독식만 탐하고, 개혁은 뒷전이다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책임을 명확히 물어야 할 사안에서 기대만큼 단호하지 못했고, 납득하기 어려운 공천은 스스로의 명분을 훼손했다. 개혁을 말하면서도 정작 기득권적 관행과 단절하지 못하는 인사를 반복해 왔다면, 유권자가 느끼는 실망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이다.
더 큰 문제는 권력을 다루는 방식이다. 큰 개혁은 집권세력만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내부 저항을 넘어설 만큼의 사회적 동력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시민사회와 외부 개혁세력을 포괄하지 않으면 안된다. 엔진만으로는 이륙할 수 없다. 날개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연대보다는 통제, 확장보다는 독점에 익숙해 보인다. 물론 정당정치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것이 개혁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보존의 방식으로 굳어질 때다.
독식은 쉽다. 그러나 개혁은 어렵다. 어려운 길은 피하면서도 개혁의 언어만 계속 앞세운다면, 국민은 결국 무능보다 위선을 먼저 감지한다.
역사는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큰 힘을 얻은 권력이 실패하는 이유는 대개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힘을 어디에 어떻게 배분할지 끝내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 30이 느끼는 것은 단순한 실망이 아니다
오늘의 청년층이 민주당에 유독 냉정한 이유를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 적지 않은 2030은 국민의힘도 싫지만 민주당도 믿기 어렵다 고 말한다. 이를 단순한 변덕이나 반정치 정서로 해석한다면 본질을 놓친다. 이들은 현실에서 두 번 좌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좌절은 자산 격차다.
열심히 일해도 따라잡기 어려운 집값과 생활비 앞에서 많은 청년은 출발선 자체가 무너졌다고 느낀다.
두 번째 좌절은 배신감이다. 바로 그 구조를 바꾸겠다고 약속한 세력이 정작 권력을 쥔 뒤에도 근본을 건드리지 못할 때, 실망은 더 깊어진다. 무능은 분노를 부르지만, 위선은 등을 돌리게 만든다.
이번 서울 표심을 두고 이념이 아니라 자산이 갈랐다 는 분석이 나왔다. 곧 민주당이 끝내 손대지 못한 바로 그 부동산 문제가, 가장 상징적인 승부처에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의 부동산 문제는 단순한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오랜 시간 이어진 정책과 금융 관행은 국민 다수를 사실상 부동산 상승의 이해관계 속으로 편입시켜 왔다. 집값이 오르면 자산이 늘고, 그 자산이 다시 대출 여력을 키우며, 대출 확대가 다시 가격 상승을 자극하는 구조가 반복되어 왔다. 그 과정에서 가장 늦게 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층이 가장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
근본개혁은 금융에 있다
따라서 부동산 문제를 진지하게 풀려면 공급 확대나 세율 조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금융 구조 자체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나아가야 한다. 민주당의 한계도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가장 큰 이해충돌과 저항이 예상되는 지점, 곧 금융과 부동산의 결합 구조 앞에서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대만의 경험은 한 번쯤 참고할 가치가 있다. 한국과 대만은 모두 수출 중심의 개방경제이며, 외부 충격에 민감한 산업 구조를 가진 나라들이다. 그럼에도 최근 여러 지표에서 대만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는 배경에는 산업 경쟁력뿐 아니라 자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를 관리해 온 금융 구조의 차이도 작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만은 주택·상업용 건물 대출을 전체 예금 및 금융채 발행액의 30% 이내로 묶어, 부동산으로 과도하게 자금이 몰리는 것을 일찍부터 억제해 왔다. 그 결과 부실채권 비율을 0.1% 수준으로 유지하며 실물 산업으로의 자금 순환을 유도해 왔다.
반면 한국은 오랫동안 부동산 담보대출 중심의 신용 확대에 의존해 왔다. 그 결과 제조업과 기술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도, 금융과 자산시장의 왜곡이 경제 전반의 활력을 잠식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공공금융의 관점이다. 대만토지은행 사례가 시사하듯, 토지와 부동산을 둘러싼 금융 기능을 어디까지 공공의 통제와 책임 아래 둘 것인가는 단순한 은행 경영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체가 함께 만든 인프라와 신용 질서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누가 가져가야 하는가의 문제다. 한국은 오랫동안 사실상 국가 신용에 기대어 형성된 금융 이익의 상당 부분을 민간 금융기관이 흡수하는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부동산불패신화의 근본구조다. 이제는 정면으로 논의해야 한다.
토지 평가체계 역시 마찬가지다. 투기로 형성된 시장가격을 객관적 가치처럼 공인하고, 금융기관은 그 평가를 바탕으로 다시 대출을 늘리는 방식이 반복된다면, 가격과 신용은 서로를 끌어올리는 순환 속에 갇힐 수밖에 없다. 공공 인프라와 공동체가 함께 만들어낸 가치가 사적 자산으로만 축적되는 구조를 방치한다면, 세대 간 불평등은 더 심화될 것이다.
이런 개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금융권의 반발도 클 것이고, 행정적으로도 복잡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절대다수의 정치가 필요하다. 쉽고 인기 있는 과제만 처리하라고 국민이 권한을 몰아준 것은 아니다. 2023년의 금융권을 겨냥한 횡재세 는 말만 꺼내 놓고 왜 잠재웠나?
2020년 도쿄 올림피게 ‘차이니스 타이베이’가 아닌 ‘대만’으로 참가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대만의 국민투표가 24일 시행됐다. 2018.11.24. [타이베이 EPA=연합뉴스]
대만이 보여주는 민치의 길
길을 잃은 정당이 다시 방향을 찾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할 수 있다. 국민에게 더 직접 묻는 것이다. 여기서도 대만의 경험은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된다.
대만은 탈원전과 원전 재가동 문제처럼 사회적 갈등이 큰 사안을 국민투표라는 절차로 풀어 왔다. 물론 국민투표가 언제나 최선의 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정책을 단순한 찬반으로 환원할 위험도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국가의 장기 방향을 좌우하는 중대한 사안에 대해, 주권자 국민의 직접 판단을 제도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왜 우리는 못하는가.
국민발안 제도 완화와 직접민주주의 확대 역시 마찬가지다. 대만은 제도적 문턱을 낮추면서 시민 참여의 통로를 넓혀 왔다. 반면 한국은 촛불과 대규모 시민행동을 거쳤음에도, 정작 시민이 상시적으로 정책 형성과 입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제도는 여전히 빈약하다. 청원이 많아도 국회가 외면하고 있다. 그 구조로는 대의제라는 대리운전권력의 피로를 줄이기 어렵다.
사법 영역에서도 참고할 대목이 있다. 대만의 국민법관제는 사법 판단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시민의 상식과 사회적 책임을 일부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다. 한국에서도 사법 불신이 반복되는 상황이라면, 사법개혁은 검사 수사권 조정이나 법원 인사 논쟁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시민의 사법 참여로 가야 한다. 대만뿐 아니라 일본, 미국, 유럽 모두가 하고 있다. 왜 이런 근본개혁에 눈을 감고 있나.
오드리 탕이 상징하는 디지털 민주주의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디지털 기술을 단순한 행정 효율화 수단이 아니라 시민 참여의 기반으로 활용하려는 실험은, 민주주의를 몇 년에 한 번 표를 던지는 절차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사회적 시스템으로 보게 한다.
시민은 공동설계자
시민은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 설계자로 보아야 한다. 이게 올바른 길이다. 운전대를 잡았다고 해서 차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언제나 주권자인 국민이다. 지금 민주당이 놓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정권 운영의 기술보다, 권력을 왜 부여받았는지에 대한 초심 말이다.
필요한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독점의 습관에서 벗어나 외부 개혁세력과 시민사회의 동력을 더 넓게 포괄해야 한다.
둘째, 금융과 부동산이라는 구조적 문제에 실제로 칼을 대야 한다. 부동산 중심 신용창조의 고리를 완화하고, 토지 평가체계를 손보고, 공공이 회수해야 할 금융 이익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정권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기 어려운 중대 사안은 국민발안, 국민투표, 시민의회 같은 제도를 통해 주권자에게 더 직접 물어야 한다.
언론이 이러한 구조 문제를 충분히 다루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언론의 신뢰도는 국제적으로 최하위권을 맴돌아 왔다. 민주당 역시 불신받는 언론 환경에 기대어, 구조개혁이라는 어려운 의제를 회피하는 알리바이로 삼아온 것은 아닌가.
오히려 청년층은 이미 그 본질을 빠르게 감지하고 있다. 무엇이 단순한 실수이고, 무엇이 반복된 회피인지 구분하고 있다. 오늘 한국 정치가 직면한 위기는 단지 어느 한 정당의 지지율 문제가 아니다. 약속한 개혁을 실행하지 못하는 정치 전반의 신뢰 위기다.
그래서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더 화려한 수사가 아니다. 더 아픈 개혁을 감당하겠다는 실천의 증명이다. 길을 잃었다면, 대만 같은 바깥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 같다. 주인에게, 다시 묻는 일이다.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leewy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