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북·미 정상회담 통해 평화의 꽃 피워내야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반도 정세가 유례없는 대전환의 격랑 속에 놓여 있다. 북한은 최근 제9차 당대회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남북 관계를 ‘동족’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이자 ‘교전국 관계’로 공식 규정하며, 수십 년간 이어온 민족·통일 담론을 완전히 폐기했다. 이러한 북한의 대남 단절 선언은 단순히 수사적 위협을 넘어 남북 군사분계선(MDL)의 국경선화와 헌법 개정으로 이어지며 한반도의 평화구조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처럼 냉랭한 대남 태도와 달리, 북한은 미국을 향해 ‘조건부 대화’라는 투트랙 전략을 구사하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전략적 기회를 엿보고 있다. 특히 이란전쟁 등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북한은 자신의 몸값을 높이며 미국과의 직접 담판을 통해 제재 완화와 체제 안전보장을 끌어내려 한다. 이러한 복합적인 위기 국면에서 우리 정부는 기존의 관성을 뛰어넘는 정교하고 담대한 국가전략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이끌어낼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미·중 정상이 한반도 평화공존 지지하도록 외교 역량 집중
다가오는 2026년 5월 14일과 15일, 베이징에서 개최 예정인 미·중 정상회담은 한반도 정세의 향방을 결정지을 중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이번 회담은 양국 간의 전략경쟁을 조율하는 자리를 넘어, 한반도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한 국제적 합의를 도출하도록 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회담의 공동성명에 한반도 평화공존이 바람직하며, 남북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지지한다”는 문구가 포함될 수 있도록 외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0일 부산 김해 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대화하고 있다. 2025.10.30 연합뉴스
중국의 경우, 일찍이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 ‘한반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라는 한반도 처리 3원칙을 견지해 왔다. 중국은 우크라이나나 중동과 달리 동북아시아에서의 대규모 군사충돌이 자국의 경제 발전과 전략적 안정에 치명적임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한반도 비핵화’에 대해서는 북한 입장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미·중이 한반도의 현상유지와 평화공존에 합의하는 것에 대해 중국은 비교적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반도 문제를 강대국 대결의 종속변수가 아닌 안정의 시험대로 활용하려는 전략적 판단에 기초한다.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더욱 정교한 논리가 필요하다. 현재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이라는 두 개의 전선에서 막대한 전략적 자산과 재정적 비용을 소모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에 동북아에서의 추가적인 긴장 고조가 ‘전략적 과잉 확산’을 초래할 수 있음을 역설해야 한다. 즉, 한반도를 ‘관리 가능한 평화지대’로 설정함으로써 미국의 부담을 덜고, 중동의 비극과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미·중이 최소한의 공통 분모를 확인하여 외교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실용적 접근법을 제시하여 공동성명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트럼프 ‘러브콜’과 쌍중단으로 평화 구조 수립의 이정표 세워야
중동의 전운이 전 세계로 확산될지 모르는 엄중한 국제정세 속에서도 북·미 대화의 불씨를 살리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금년 1월과 3월 김민석 국무총리는 두 차례의 방미를 통해 밴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하고 한반도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는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며, 북·미 간의 직접 소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며 미국의 피스메이커 역할을 강조했다. 김 총리는 특히 북측의 안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고위급 차원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함을 역설하며 한미 공조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이러한 노력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이 엑스(X)를 통해 파격적인 메시지를 발신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마두로나 하메네이는 친구가 아니었지만, 김정은은 나의 친구다. 친구는 서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식의 메시지는 베네수엘라 사태와 이란전쟁 여파로 위축된 북한 지도부에 강력한 체제 안전보장의 신호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상징적 ‘러브콜’은 북한이 대화의 테이블로 복귀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함과 동시에, 경색된 북·미 관계의 물꼬를 트는 결정적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피스메이커로 치켜세우면서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트럼프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 나서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은 지난 2019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만나는 장면. (Public Domain)
이러한 정치적 수사는 ‘쌍중단의 현대적 부활’이라는 실질적 조치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북·미 정상회동이 성사될 경우,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에 상응하여 대규모 주한미군 군사연습을 중단하고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중지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특히 한반도에 전개되는 전략자산의 성격이 공격용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 운용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방어 및 평화유지용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북한이 느끼는 공포를 실질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이러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이야말로 한반도 평화구조 수립의 이정표가 된다.
북의 교전국가 주장을 치환하는 ‘평화공존의 특수관계론’
우리의 대북 정책은 국익의 관점에서 철저히 이원화되어야 한다. 통일과 완전한 비핵화는 포기할 수 없는 ‘장기 국익’이지만, 이를 위해 당장의 평화를 희생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현재의 고도화된 핵 위협 국면에서는 ‘평화공존’과 ‘핵 위협 감소’를 ‘중단기 국익’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비핵화라는 최종목표는 견지하되, 당장 한반도 구성원들의 생존을 담보할 수 있도록 핵 동결과 사찰 재개를 통해 핵 위협의 실질적인 관리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토대 위에 ‘평화공존의 특수관계론’을 북측에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이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 주장에 대한 적극적 응전이다. 국제법적으로는 상호 실체를 인정하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유지하여 규범적 안정을 꾀하되, 내부적으로는 민족공동체라는 역사적·문화적 특수성을 보전하며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고도의 유연한 체제를 의미한다. 서로를 파괴해야 할 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민족공동체 내의 이웃으로 재정의하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또한 북한의 교전국가 주장을 ‘평화체제 구축’ 담론으로 치환하여,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남북기본협정’ 체결을 추진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문서상의 합의를 넘어 남북 간의 적대적 행위를 규범적으로 통제하고 무력 불사용을 명문화하는 법적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대결의 시대를 끝내고 평화공존의 새로운 규범을 제도화함으로써,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복귀할 수 있는 경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우리의 제안이 북한의 체제 인정 욕구를 자극하고, 미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국제적 대세’임을 강조하여 북한이 대화에 나오는 것이 국익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한반도 평화는 북한이 ‘군사대결의 경제빈국’에서 벗어나 ‘평화공존의 개발도상국’의 길로 가도록 하는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북핵 문제의 진전과 평화체제 구축이 병행되는 포괄적 접근을 통해, 한반도를 대륙과 해양을 잇는 평화의 가교로 복원해야 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공존은 단순히 전쟁의 부재를 넘어, 남북이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며 공동의 번영을 모색하는 새로운 국가 표준이 되어야 한다.
차가운 평화 넘어 공존의 큰 길로 가는 담대한 발걸음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적 환경은 지극히 척박하다. 미·중 양국의 협력을 통해 평화공존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쥐구멍’만큼이나 좁은 가능성을 뚫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북한의 극심한 적대 태도를 뚫고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것은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것만큼이나 더 어려운 과정이다. 국제사회의 시선은 이미 중동과 유럽의 참혹한 전장으로 쏠려 있고, 이재명 정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도 전면전을 간신히 억제하고 있는 ‘차가운 평화(Cold Peace)’ 상태다. 차가운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일 뿐 아니라, 언젠가 올 ‘따뜻한 평화(Warm Peace)’를 위해 얼음 밑에서 물길을 내는 작업이다. 따라서 이 차가운 평화가 걷잡을 수 없는 ‘열전(Hot War)’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외교 안보의 최우선 과제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격적인 평화 메시지, 미·중 정상회담의 평화 지지 선언, 그리고 실질적인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들은 이 위태로운 평화를 유지하고 공고히 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들이다.
조성렬 경남대학교 초빙교수
쥐구멍과 바늘구멍 같은 희박한 가능성 속에서 평화의 실마리를 찾아내고, 이를 거대한 화해의 물결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길을 멈추지 않을 때, 척박한 분단의 대지 위에서도 평화의 꽃은 반드시 피어날 것이다. 그 꽃은 단순히 우리 세대의 안위를 넘어, 대결과 증오의 시대를 끝내고 공존과 번영의 시대를 물려줄 가장 위대한 유산이 된다. 차가운 평화를 넘어 지속가능한 공존의 큰 길로 나아가는 그 담대한 발걸음을 이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