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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심장에다 대고 쏴요 보도연맹원 등 1800명 학살 명령

심장에다 대고 쏴요 보도연맹원 등 1800명 학살 명령
[사회혁신]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펼쳤다. 정재환(鄭在煥, 1904~1976) 항목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보고서에 기록된 대화였다. 1950년 7월 1일 새벽, 대전형무소장 김택일이 검사장 정재환에게 물었다. 감방 안에서 총성이 있으면 소요가 일어날 텐데 어떡합니까? 정재환의 대답은 이랬다. 아 바짝 심장에다 대고 쏴요. 형무소장이 다시 물었다. 영감님, 심장에다 대고 쏜다고 소리가 안 납니까? 마흔여섯 살 검사를 영감님 이라 부르던 시절이다. 옥신각신하는 대화 끝에, 최소 1800명 이상의 재소자와 보도연맹원이 학살됐다. 같은 사람이 부산에서 대학을 세웠다. 오늘날 부산의 사학 명문 동아대학교다. 학살을 명령한 손으로 캠퍼스를 지은 사람, 이것이 정재환이라는 인물의 두 얼굴이다.   정재환(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04년 경남 남해 출생, 친일검사에서 해방 후 검사로 정재환은 1904년 11월 1일 경상남도 남해에서 태어났다. 경성공립 제2고등보통학교(현 경복고)를 수료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리츠메이칸대학 법경학부를 졸업했다. 1939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해 1943년 조선총독부 부산지법 검사에 임명됐다. 창씨명은 마쓰야마 자이칸(松山在煥)이었다. 이 경력으로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랐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해방 직후, 1945년 11월 1일 부산지방재판소 검사로 곧바로 재임명됐다는 사실이다. 친일검사가 해방 후 곧바로 검사로 변신했다.   정재환(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관료적 무감각 의 표본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구조의 인물이 떠오른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분석한 악의 평범성 이다. 정재환의 대답이 충격적인 이유는 그것이 격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분노도, 망설임도 없이, 마치 행정절차를 처리하듯 심장에다 대고 쏴요 라고 답했다. 명령체계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관료의 무감각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나치독일의 행정 관료들이 유대인 학살 명령을 전달할 때 보였던 그 냉혈하고 사무적인 태도와 같다.                                       한나 아렌트(나무위키) 1949년 충남보도연맹 결성, 학살의 명단을 만들다 정재환의 반헌법 행위는 1949년 12월 27일 충남보도연맹 결성으로 시작된다. 대전지검 회의실에서 열린 결성식에서 그는 개회사를 하고 지도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좌익전향자를 관리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제로는 좌익 혐의자들의 명단을 만드는 일이었다. 자수·전향 작업을 통해 충남 전체에서 3902명이 등록됐다. 이 명단이 6개월 뒤 학살의 명부가 됐다. 1950년 7월 1일, 공산당 우두머리를 처치하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전황이 급박해지자 정재환은 대전형무소에 처단 명령을 하달했다. 미명을 기해 대규모 공습이 있으니 공산당의 우두머리, 책임자들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전문이 당직주임을 거쳐 형무소장에게 전달됐다. 형무소장이 진의를 확인하러 직접 검사장 관사를 찾아갔을 때, 정재환은 위의 그 대답을 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 이를 명확히 결론 내렸다. 대전지검 검사장 정재환은 좌익사범과 장기수에 대한 총살 명령을 하달했다.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대전형무소에서 최소 1800명이 학살됐다. 4000여 재소자 중 절반이 정치·사상범이었다. 대전 동구 낭월동(옛 산내면 골령골) 인근 지역에서 열린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공동조사단 관계자가 유해발굴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낭월동 인근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이 학살당한 후 매장된 곳으로 추정된 곳이다. 2015.2.23 연합뉴스 세계인권변호 위원장?, 학살자의 기묘한 직함 이 학살의 책임자가 1961년 세계인권변호 경상남도 본부위원장 을 맡았다는 사실은 역사의 가장 잔혹한 아이러니 중 하나다. 학살을 명령한 사람이 인권을 변호하는 자리에 앉았다. 법무부차관, 이승만의 친위쿠데타를 거들다 1952년 법무부 차관에 오른 정재환은 5·26정치파동(부산정치파동)에서 이승만(1875~1965)의 대통령직선제 개헌안 통과를 도왔다. 이승만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야당 국회의원 40여 명을 통근버스 째로 끌고 가던 그 친위쿠데타의 한복판에서, 정재환은 정권의 입장에서 개헌안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승만(나무위키) 동아대학교, 학살자가 세운 명문사학 정재환의 또 다른 얼굴은 교육자였다. 1946년 현직 검사 신분으로 동아대학을 설립해 재단법인 이사장에 취임했다. 1959년 종합대학교로 승격시키고 초대 총장이 됐다. 그러나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 학교의 운영방식도 비판한다. 정재환은 동아대를 개인의 부를 축적하는 방편으로 삼고 사학비리의 대명사로 불릴 만큼 방만하게 운영하며 사학재벌을 형성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학생들이 총장 배척운동을 벌이자, 정재환은 다른 학생들을 동원해 비판적 보도를 한 부산일보를 습격하게 했다. 대전형무소에서 1800명의 학살을 명령한 그 사람이, 부산에서 명문사학을 세우고 사학재벌로 71세까지 살았다. 1976년 11월 30일, 명예총장 신분으로 자연사했다.   4.19혁명 이후 이승만의 망명을 보도한 당시 경향신문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은 가장 유행하는 역사 교훈 중 하나다. 거대한 악행이 격정적인 광신자가 아니라 사무적인 관료에 의해 행해질 수 있다는 것. 정재환의 바짝 심장에다 대고 쏴요 라는 그 무미건조한 대답이 바로 그 교훈을 증명한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정재환을 떠올렸다. 학살을 명령하는 손과 대학을 세우는 손이 같을 수 있다는 것, 그 두 얼굴이 한 사람 안에서 모순 없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한국현대사가 우리에게 남긴 불편한 진실이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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