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AI시대, ESG의 숨은 변수… 지역사회 관계가 사업 성패 가른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동안 ESG는 기업 내부의 목표와 성과를 중심으로 설명돼 왔다. 탄소중립 선언, 재생에너지 전환 계획, 공급망 관리 체계 등의 항목이 ESG 활동을 보여주는 지표로 활용됐다.
그러나 AI 인프라 확장이 본격화되면서 논의의 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AI에 대한 논의는 주로 소프트웨어와 알고리즘, 데이터 처리 능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실제 물리적인 사업 환경 하에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은 전력과 물, 도로와 송전망을 통해 움직인다. 기술은 디지털 영역에서 작동하지만, 그 기반은 지역 사회의 인프라와 자원에 의존한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AI 산업이 커질수록 지역사회 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이 부각되고 있다.
AI 인프라 확장, 기술보다 먼저 마주하는 지역사회
2025년 2분기 미국의 데이터센터 사업 반대 단체 및 서명운동 숫자/Data Center Watch
최근 미국에서는 지역사회 반발이 AI 인프라 확장의 가장 큰 변수로 떠올랐다. 비영리 연구기관 데이터 센터 워치(Data Center Watch)에 따르면, 2024년 1분기부터 2025년 1분기까지 지역사회 반발로 인해 지연 혹은 취소된 데이터센터 사업의 규모는 무려 640억달러(91조 3300억원)에 달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흐름이 더욱 가파라졌다. 2025년 2분기에만 980억달러(약 139조원)에 달하는 사업이 지연되거나 취소됐다. 기술적 타당성이나 자본 조달 능력과는 별개로, 지역사회의 수용성이 사업 계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AI 산업의 병목이 기술 부문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러한 흐름은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둘러싼 논쟁 또한 지역사회 문제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시설은 용인에 들어서지만, 이를 위한 전력과 용수는 다른 곳에서 끌어와야한다. 즉, 산업시설로 인한 혜택과 자원사용으로 인한 부담이 각기 다른 곳으로 분산되는 구조다. 결국, 사업설계 차원에서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지역사회와의 갈등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최근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과 데이터 센터 사업자들은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사업의 중대 이슈로 규정하고, 사업 설계 단계에서부터 지역사회 관계를 고려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는 올해 초 ‘지역사회 우선 AI인프라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단순히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아니라, 데이터센터를 건설·운영하는 전 과정을 지역사회 관점에서 재정의하겠다는 의미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먼저 AI 인프라가 전력과 물을 대량으로 소비하며, 최근 여러 지역에서 전기요금 상승과 노후 전력망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지역사회는 일자리와 세수 확대를 환영하지만, 그 대가로 전기요금 인상이나 물 부족을 감수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짚었다. AI가 가져올 미래의 이익”을 강조하기 전에, 현재 지역민이 느끼는 부담과 우려를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전력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데이터센터 확장으로 인한 전력 인프라 비용을 주민에게 전가하지 않겠다고 명확히 밝혔다. 이를 위해 전기요금 체계를 승인하는 주 정부 위원회와 협력해 자사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력 비용과 인프라 확충 비용을 충분히 반영한 요금을 적용받겠다고 했다. 송전선이나 변전소 확충이 필요할 경우에는 직접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핵심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데이터센터의 존재 이유를 ‘기술 혁신’으로 설득하기보다, 지역사회가 비용과 리스크를 떠안지 않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운영 원칙’으로서 보여줬다는 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AI 산업은 사회적 편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공공이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밝히며, 지역사회와의 장기적 관계 구축을 통해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지역사회 투자, CSR이 아닌 사업 리스크 관리의 문제
美에너지부는, AI인프라 운영에 대한 권고안을 통해 사업으로 인한 비용과 부담 분담구조를 선제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美에너지부
최근 몇 년간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경기 둔화와 비용 압박을 이유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왔다. 비용 효율성을 무엇보다 중시해온 빅테크 기업들이 갑자기 지역사회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약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AI인프라가 들어설 때마다 전력망 증설, 용수 확보, 인허가 절차를 둘러싼 지역사회 반발이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역사회가 더이상 외부 이해관계자가 아닌 사업의 핵심 리스크 요인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지역사회 갈등이 발생한 후 대응하는 방식은 일정 지연과 금융 비용 상승, 평판 리스크까지 동반한다. 반면 사업 설계 단계부터 기업이 비용을 선제적으로 부담하는 방식은 언뜻 보면 비효율적일 수 있지만,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에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에 지역사회 이슈를 대하는 빅테크 기업들의 접근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이처럼 기업이 지역사회 문제를 리스크 관리의 대상으로 정의하면서, 논의의 초점도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다. 지역사회 갈등은 추상적인 ‘주민 수용성’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자원 사용과 인프라 확충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부담을 누가 감당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이슈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미국의 지역사회 혜택협약(Community Benefits Agreement∙CBA)이다. CBA는 대형 인프라 사업자가 지역사회와 체결하는 공식 협약으로, 고용·교육·환경관리·인프라 투자 등 사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기업이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조건을 이행할 것인지를 계약의 형태로 명시하는 것이다. 갈등을 사후적으로 완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업 설계 단계에서부터 비용과 편익의 배분 구조를 공식화하는 절차라고 볼 수 있다.
CBA는 1990년대부터 존재해왔지만, 주로 부동산 개발 부문에서 활용되어왔다. 이에 미국 에너지부는 대규모 에너지 프로젝트나 데이터센터 사업에서도 이러한 제도를 활용해 사업으로 인한 비용과 부담 분담구조를 선제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美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은 어떻게 지역 인프라에 투자할까
애리조나 Project Blue 데이터센터의 건설 부지/Project Blue
그러나 계약과 원칙만으로 갈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비용 분담 구조를 설계하는 것과 실제로 지역 인프라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렇다면 해외의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은 어떤 방식으로 지역 인프라에 투자하고 있을까?
미국 애리조나주의 프로젝트 블루(Project Blue)사례를 통해 이에 대한 접근방식을 엿볼 수 있다.
프로젝트 블루 사업의 경우, 대규모 데이터센터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용수 사용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해당 사업의 소재지인 애리조나는 사막지대로, 물은 가장 민감한 자원이다. 때문에 단순히 경제적 편익이 크다”는 논리로는 지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에 사업자와 지자체는 물 사용을 줄이겠다는 선언에 그치지 않고, 재이용수 인프라를 민간 자금으로 확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폐수 재처리 시설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산업용수 공급을 별도로 확보하는 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완공 이후 해당 인프라는 공공이 소유·운영하는 방식으로 계획됐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두 가지다. 첫째, 기업이 단순히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의 물 인프라 자체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둘째, 해당 인프라가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역사회에 남도록 구조를 설계했다는 점이다. 즉, 갈등을 줄이기 위해 단기적 비용을 지불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인프라 자산을 확충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이는 지역사회 투자가 사회공헌사업과는 다른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부와 같은 전통적 사회공헌은 지역 이미지 개선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전력망·용수·도로와 같은 물리적 인프라 갈등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반면 프로젝트 블루 사례는 사업으로 인해 부담이 증가하는 영역에 직접 투자함으로써 갈등의 원인을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방식은 IFC나 세계은행이 강조하는 ‘사업에 대한 지역사회 영향관리’기준과도 맞닿아 있다. 이들은 단순히 이해관계자 의견을 청취하는 것을 넘어, 프로젝트로 인해 발생하는 수자원 접근성, 공공인프라 부담, 취약계층에 대한 부정적 영향 등을 식별하고 이에 대한 관리·완화 조치를 사업 설계 안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한다. 프로젝트 블루는 이러한 관리 조치를 지역 인프라 투자라는 형태로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AI 시대, ESG의 무게중심은 지역사회로
이러한 흐름이 보여주는 변화는 분명하다. 과거에는 대규모 산업 시설이 지역에 들어설 때, 주로 경제적 파급효과를 중심으로 논리가 전개됐다. 이제는 출발점이 달라지고 있다. 전력요금, 물 사용, 생활환경 변화처럼 주민이 체감하는 요인이 먼저 언급되고, 그 부담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사업 전개의 핵심요소가 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더 많이 소통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비용과 책임의 구조를 어떻게 설정하느냐, 정보 공개의 시점을 언제로 두느냐, 지역사회의 우려를 의사결정 과정 안에 어떻게 반영하느냐 같은 질문이 사업 설계 단계에서부터 포함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이 홍보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사업 모델의 일부로 편입되는 흐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AI 시대의 ESG 무게 중심이 달라지고 있다. 기업 내부의 목표와 성과를 관리하는 것을 넘어, 지역사회와의 관계가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이해관계자와의 신뢰 강화라는 지속가능성의 전제조건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임팩트온 송선우 리서치 센터장
임팩트온 송선우 리서치센터장은 분석 기사를 통해 ESG 공시, 프레임워크, 트렌드 등 글로벌 ESG 주요 현안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네이버의 ‘E커머스 ESG전략 사내 세미나’, SK경영경제연구소의 ‘탄소중립 사례연구’ 등 ESG 관련 리서치와 국제 표준 분석 등의 연구작업도 함께 참여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학교에서 지속가능경영과 재생에너지 분야를 공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