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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한완상 박사 책들을 따라 걸으면 삶의 지평 보인다

한완상 박사 책들을 따라 걸으면 삶의 지평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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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완상 박사 (나무위키) 한완상 박사의 삶은 한 개인의 이력이라기보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아픈 질문들을 통과해 온 사유의 여정이다. 그는 학자였고, 행정가였으며, 신앙인이었고, 동시에 사회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비판적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역할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심은 분명하다. 그는 언제나 인간의 존엄이 훼손되는 자리에서 사유했고, 그 사유를 책이라는 형태로 남겼다. 그의 책들을 따라가면, 그것은 단순한 저작 목록이 아니라 한 인간이 어떻게 시대와 씨름하며 자기 길을 만들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정신의 지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한완상 박사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그 경험은 단순한 독서의 축적이 아니라, 한 사상가의 삶의 궤적을 따라 걷는 일이었다.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문장의 힘이었다. 학자이자 사회비평가의 글이라면 흔히 떠올리는 무겁고 딱딱한 문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글은 대단히 문학적이고 세련되어 있으며, 불필요한 말이 없다. 문장은 짧고 정확하며, 비유는 절제되어 있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한 문장을 읽고 나면 그 문장이 정확히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독자는 길을 잃지 않는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의 글이 결코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다루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 권력과 종교의 결탁, 신앙의 왜곡, 인간 존엄의 파괴 같은 무거운 문제들을 정면으로 다룬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독자를 지치게 하지 않는다. 어려운 개념을 과시하지 않고, 학문적 권위를 앞세우지도 않는다. 그는 복잡한 생각을 쉬운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 쉬움은 단순화가 아니라 오랜 사유가 숙성된 결과다. 문체의 특징은 그의 삶과 분리될 수 없다. 한완상은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 군사독재와 급속한 산업화, 민주화와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거의 모든 굴곡을 몸으로 겪은 세대다. 그는 이 격변의 시대를 관망하지 않았다. 사회학자로서 그는 구조를 분석했지만, 그 분석은 결코 차가운 통계나 추상적 이론에 머물지 않았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이 구조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어떻게 상처 입는가”에 있었다. 산업화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때, 그는 그 이면에서 파괴되는 공동체와 소외되는 인간을 보았다. 그의 초기 저작들에는 이미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체제에 대한 깊은 윤리적 문제의식이 스며 있다.   2015년 2월 10일 좁은길교회 한완상 박사 초청 강연회 를 마치고. 박철 시민기자 그의 사유는 자연스럽게 신앙의 문제로 확장된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적 열정의 분출이 아니라 사회에서 책임을 묻는 신앙의 질문이었다. 한완상에게 기독교는 개인의 내면적 위로나 사후 구원의 보증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급진적인 요청이었다. 그는 예수를 믿는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집요하게 물었다. 이 질문은 그의 거의 모든 책을 관통하는 중심축이다. 예수 없는 예수 교회 에서 그는 한국 교회가 예수를 말하면서도 정작 예수의 삶과 길은 지워버렸다고 진단한다. 교회는 예수를 숭배의 대상으로 높여 놓았지만, 그 결과 예수가 살았던 방식, 선택했던 자리, 함께했던 사람들은 신앙의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것이다. 성장과 성공, 권력과 축복의 언어가 교회를 지배하는 동안, 가난한 자와 함께했던 예수, 불의한 권력에 맞섰던 예수는 불편한 존재가 되었고, 마침내 교회 안에서 침묵하게 되었다. 이 책은 교회를 향한 고발이면서 동시에 신앙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다. 한완상의 글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그가 이론을 나열하기보다 장면을 제시하고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그는 설명하기보다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글은 읽히는 동시에 생각하게 만든다. 독자는 그의 문장을 따라가다 어느 순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것은 문장의 기교가 아니라, 오랜 사유가 언어로 응축된 결과다. 바보 예수 는 그의 예수 이해를 가장 도발적인 언어로 드러낸 책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의 선택은 늘 손해였고, 비효율적이었으며, 위험했다. 힘을 가질 수 있었음에도 권력을 거부했고, 승리할 수 있었음에도 패배의 길을 택했다. 한완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수를 ‘바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바보 됨은 어리석음이 아니라, 인간을 파괴하는 계산법을 거부한 급진적 자유의 표현이다. 바보 예수 (삼인)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여러 번 멈춰 서게 되었다. 그의 문장은 독자를 몰아붙이지 않는다. 하지만 수굿이 물러설 수 없는 질문을 남긴다. 우리의 신앙은 과연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우리는 예수를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예수를 이용하고 있는가. 그의 글에는 분노가 있지만 독설은 없고, 비판은 날카롭지만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다. 그가 겨냥하는 것은 개인의 악의가 아니라 구조의 왜곡이며, 신앙의 타락이지 신앙인의 존재 자체가 아니다. 이런 태도는 그의 문장을 더욱 신뢰하게 만든다. 한국 교회여, 낮은 곳에 서라 에서 그는 신앙을 공동체 윤리의 문제로 확장한다. 교회는 위에서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아래에서 함께 고통받는 공동체여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단순한 도덕적 권고가 아니다. 그것은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교회가 사회적 약자 위에 군림하는 순간, 이미 복음은 사라졌다는 그의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예수, 숯불에 생선을 굽다 (동연) 예수, 숯불에 생선을 굽다 에 이르면 그의 예수 이해는 더욱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언어로 드러난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을 위해 숯불에 생선을 굽는 장면은 한완상이 평생 붙들어 온 신앙의 본질을 상징한다. 예수는 위에서 명령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친 이들의 허기를 먼저 알아보고 밥을 차려주는 존재다. 신앙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바로 그런 장면에서 실현된다는 것이 일관된 그의 메시지다. 한완상 박사의 저작 세계는 흔히 ‘예수 이해’와 ‘교회 비판’으로 요약되지만, 그것은 그의 사유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그의 책들을 폭넓게 읽다 보면 그는 언제나 특정 주제에 갇히지 않고 시대의 요청에 따라 질문을 확장해 온 사상가였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사회학자 한완상, 신앙인 한완상, 공적 지식인 한완상은 서로 분리된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질문을 서로 다른 장르로 풀어낸 동일한 인물이다. 그의 사회비평 저작들 가운데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 (계열의 책들)은 한완상의 사유가 출발한 지점을 보여준다. 이 책들에서 그는 한국 사회를 단순한 발전 서사가 아니라, 성장의 그늘 속에 누적된 불평등과 억압의 구조로 분석한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이념적 선동이나 분노의 언어로 흐르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차분하게 묻는다. 이 사회는 누구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 누가 침묵을 강요당하는가. 이런 질문들은 훗날 그의 신앙적 저작들에서 반복되는 누가 배제되는가”라는 질문의 사회학적 기원이라 할 수 있다.   민중과 지식인 (정우사) 민중과 지식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이 책에서 한완상은 지식인이 민중을 ‘계몽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이미 자신의 역할을 배반했다고 지적한다. 지식인은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배우고 함께 책임지는 존재여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지금 읽어도 전혀 낡지 않다. 특히 이 책에서 드러나는 그의 태도는 겸손하다. 그는 지식의 우월성을 주장하지 않고, 오히려 지식이 권력이 될 때 발생하는 위험을 경계한다. 이 관점은 훗날 그가 교회와 신앙을 비판할 때 사용한 잣대와 정확히 겹친다. 권력과 인간 , 한국 사회와 인간 존엄  같은 책들에서는 한완상의 윤리적 문제의식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는 권력을 단순히 정치 영역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권력은 일상 속 관계, 조직, 제도, 심지어 종교 안에서도 작동한다고 본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동일하다. 권력은 인간을 살리는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는가, 아니면 인간을 도구로 만들고 있는가. 이 질문은 그가 교육 행정가로 일할 때나 신앙 비평가로 글을 쓸 때나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교육 문제를 다룬 그의 저작들도 중요하다. 인간을 위한 교육 , 교육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같은 책들에서 그는 경쟁과 효율 중심의 교육이 어떻게 인간을 서열화하고, 삶의 존엄을 훼손하는지를 지적한다. 그는 교육을 출세의 사다리가 아니라 인간이 자기 삶의 의미를 발견하도록 돕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이런 교육관은 단순한 이상론이 아니라, 그의 사회 인식과 신앙 이해가 결합된 결과다.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체제에 대한 그의 일관된 거부가 교육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또 하나 주목할 책은 그의 에세이적 글들이 담긴 저작들이다. 이 책들에서 그는 학자나 비평가의 얼굴을 잠시 내려놓고, 한 인간으로서 시대를 살아온 감각을 담담히 기록한다. 이 글들에는 거창한 주장보다 삶의 장면들이 많다. 그러나 바로 그 소소한 장면들 속에서 그의 사유는 더욱 또렷해진다. 그는 일상의 언어로 말할 때조차 결코 가볍지 않으며, 침묵 속에서도 질문을 놓지 않는다. 이처럼 한완상의 저작들을 두루 살펴보면, 그의 사유는 단절이 아니라 확장의 연속이었다. 사회학에서 출발한 질문은 신앙으로 이어졌고, 신앙의 성찰은 다시 교육과 권력, 공동체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그가 쓴 책들은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이 흐른다. 인간은 존엄한가, 그리고 우리는 그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언제나 단순했다. 인간을 목적 그 자체로 대하라는 것, 그리고 그 원칙을 신앙이든 사회든 교육이든 예외 없이 적용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책들은 특정 분야의 전문서이기 이전에 삶의 태도를 제안하는 글들이다. 한완상의 저작들을 다시 읽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점검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한완상 마지막 고언 예수의 길을 가라 (신앙과 지성사) 한완상 박사의 삶이 특별한 이유는 말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민주화 이전에도, 이후에도, 늘 같은 질문을 던졌다. 인간은 존엄한가, 사회는 인간을 살리고 있는가, 신앙은 약자를 향하고 있는가. 그의 사유는 냉소로 흐르지 않았고, 그의 신앙은 도피로 변질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문장은 설득하려 들지 않아도 설득력이 있고, 감동을 강요하지 않아도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는다. 오늘 한국 사회는 다시 양극화와 혐오, 종교의 정치화라는 위기에 서 있다. 이 시대에 한완상의 책들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의 거울이다. 그의 글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한완상 박사가 살아온 길은 완성된 답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점검하며 걸어온 과정이었다. 그의 삶의 지평은 우리에게 하나의 요청을 남긴다. 최근 그는 예수의 길을 가라 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예수를 해석하거나 규정하기에 앞서 그가 걸었던 길을 먼저 삶으로 따라 걸어보라는 조용한 요청이다. 말로 신앙을 증명하기보다 선택과 태도로 신앙을 묻는 책이다. 그 길은 쉽지 않다. 세상의 속도와 어긋나 있고 성공의 기준과도 잘 맞지 않는다. 눈에 띄는 성취나 빠른 보상을 약속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해받지 못하는 시간과 고독을 동반하는 길이다. 그러나 그는 그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길만이 인간을 경쟁의 대상이나 동원의 자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 길은 승리의 논리가 아니라 책임의 윤리를, 확신의 언어가 아니라 돌봄의 태도를 요구한다. 그의 삶과 책들은 이 사실을 웅변하지 않는다. 다만 소란 없이, 그러나 물러섬 없이 예수를 말하기 전에 예수처럼 살 수 있는지, 지금 이 자리에서 그 길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우리 각자에게 묻고 있다. 한완상 박사 출판기념회 한완상 고언 예수의 길을 가라 1. 일시 : 2026년 2월 5일(목) 오후 2시 2. 장소 : 기독 교회관 조에홀(종로5가역) 3. 주최 : 사)한국기독교민주화운동 4. 주관 : 신앙과 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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