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에서 유방으로 …대통령의 인사정책 바뀌어야 [뉴스] 정권이 출범한 지 어느덧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초기 1년간의 지지세가 최근 선거를 거치며 눈에 띄게 퇴색된 것은 현 집권 세력을 향한 민심의 엄중한 경고이자 심판이다. 국민이 보낸 이 신호의 중심에는 정부의 인사 스타일에 대한 피로감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최근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의 국무총리 지명 논란은 이 정권이 가진 인사 철학의 한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태권 브이 의 함정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공직 사회를 만화영화 속 로보트 태권브이에 비유하곤 했다. 시스템이라는 하드웨어는 갖춰져 있으니, 조종석에 유능한 지휘관이 앉아 드라이브를 걸면 관료 조직은 손발이 되어 움직여야 한다는 논리다. 최근 국무회의에서도 지휘관이 빨간색이면 관료 조직은 발끝까지 빨간색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며 탑다운 방식의 실행력을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바로 이 태권브이 사고가 임기 2년 차의 발목을 잡는 독이 되고 있다.
권력심리학자 대처 켈트너는 20년의 실험 연구에서 권력의 역설 을 발견했다. 공감이 권력을 만들었지만, 권력을 가지면 공감이 감소한다. 권력자는 점점 자기 관점에 고착되고 타인의 시각을 잃는다. 이것이 권력의 생물학적 함정이다. 태권브이식 사고는 이 함정을 제도로 설계한 것과 다름없다. 조종사 혼자만 생각하고 로봇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구조. 그러나 로봇은 생각하지 않을수록 조종사도 더 좁아진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5.26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항우의 실패, 유방의 성공
항우는 천하에 적수가 없는 압도적인 실행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스스로 조종석에 앉아 군대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하는 데는 당해낼 자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결정을 자신의 능력에만 의존했고, 참모를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로만 여겼다.
권력의 원리가 말한다. 위임을 나눌수록 권력은 커진다. 항우는 이 원리를 몰랐다. 그래서 졌다.
반면 유방은 달랐다. 스스로의 재능은 부족할지언정, 장량의 전략을 듣고 소하에게 후방 관리를 맡기며 한신의 용병술을 수용했다. 유방은 한 가지를 알았다. 자신이 직접 하는 것보다 더 잘하는 사람에게 위임할 때 권력이 커진다는 것. 천하를 얻은 것은 항우의 독주가 아니라 유방의 분산된 위임이었다.
그리고 유방이 위임할 수 있었던 것은 인재의 능력만이 아니라 그들의 공공적 가치를 신뢰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유능한 자가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는 자에게 위임했다. 관중이 말했다. 권력을 나눌수록 커진다. 그러나 그 나눔은 방향이 같아야 한다.
군자불기(君子不器)의 리더십
공자는 말했다. 군자불기(君子不器). 군자는 한정된 그릇이 아니다. 국무총리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어떤 역할도 할 수 있는 자리다. 토지와 주거의 공공성, 부의 재분배, 국토 균형발전, 민주주의적 가치처럼 시장 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사회적 공공재를 수호하고 부처 간 이해관계를 민주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거대 플랫폼 기업을 이끌며 공익적 감수성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는 인물을 국정 2인자에 앉힌 것은 인사를 지나치게 기능적·도구적으로만 접근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릇 하나를 채우려다 방향을 잃은 것이다.
군자불기의 리더십은 단순히 능력 있는 인재를 찾는 것이 아니다. 능력과 공공적 가치를 동시에 가진 인재를 찾는 것이다. 뿌리는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 가치라는 뿌리, 그 뿌리 위에서 어떤 역할도 할 수 있는 것이 군자불기다.
위임의 철학이 필요하다
권력의 크기는 위임의 크기에 비례한다. 이것이 권력의 가장 근본적인 원리다.
지금 이 정권의 위임이 작아지고 있다. 왜인가. 인사가 위임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공공적 가치를 공유하는 인사,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인사, 다양한 층위의 민심을 대표하는 인사가 아니라 기능적 유능함을 기준으로 인사를 하면 — 위임의 원천이 좁아진다. 위임의 원천이 좁아지면 권력도 좁아진다.
참모는 권력자와 하위조직 사이에 있다. 참모의 역할은 번역이다. 대통령의 언어와 시민의 언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것. 지금 이 정권에 가장 필요한 인사는 이 번역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기술적 유능함이 아니라 공감의 번역자.
갈린스키는 말했다. 권력은 방향을 바꾸지 않고 속도만 높이는 가속기다. 방향이 옳으면 더 빠르게 선해지고, 방향이 틀리면 더 빠르게 나빠진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인사가 방향을 결정한다.
선거가 보낸 신호
민심이 천심이다. 맹자의 이 말이 지금 이 순간 울린다.
이번 선거가 던진 경고는 명확하다. 위임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 권력의 크기는 위임의 크기에 비례한다. 위임이 작아지면 권력도 작아진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위임이 없으면 실행되지 않는다.
항우는 자신이 가장 강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졌다. 유방은 자신이 가장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겼다. 권력자가 스스로를 태권브이의 조종사로 규정하는 순간, 그는 이미 항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대통령의 인사정책은 태권브이의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공적 가치와 개혁적 비전을 가진 인재를, 다양한 층위의 민심을 대표하는 인재를, 그리고 시민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인재를 찾아야 한다.
관중이 환공을 패자로 만든 것은 환공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관중이라는 참모가 환공의 판단을 보완하고 견제했기 때문이었다. 환공의 권력이 커진 것은 위임이 커졌기 때문이었다.
조종사 한 명의 독주가 아닌, 위임을 나누는 공공성의 리더십으로 나침반을 바꿀 때다.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시민기자 leewys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