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전담특별재판부, 이렇게 만들자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내란범죄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고 헌법질서를 파괴한 국헌문란 범죄다. 현행법상 내란과 외환 등 헌정질서 파괴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새로운 죄상이 드러나면 언제라도 처벌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역사적 범죄를 단죄하는 재판부는 단순히 법전의 문구를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법 기술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헌법의 수호자이자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막중한 역사적 책무를 짊어져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재판부 구성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한다. 과연 현직 판사들 중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뽑힌 재판부가 그 엄청난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호명한 ‘재판의 거인’들을 법대 위에 세워야 할 것인가?
11월 15일 조희대 탄핵, 특별재판부 설치 촉구 서울 촛불행동 집중의 날 거리행진. 사진=한현실
현직법관 무작위추첨제의 장단점
나는 애당초 위헌시비를 피하기 위해 전국의 지방법원 형사부 부장판사 중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1심 3인 특별대등재판부를 구성하고 2심은 전국의 고등법원 형사부 재판장 중에서 같은 방식으로 5인 특별대등재판부를 구성하자고 제안할 참이었다. 이렇게 하면 민주당 법안이 예정한 추천위라는 중간선발기구가 불필요해질 뿐 아니라 그 구성을 둘러싼 이견과 힘겨루기가 일거에 사라지는 이점이 있었다. 또한 대법원장의 자의적 임명이나 정치권의 입맛에 맞는 코드 인사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도 이 방안이 절차적 공정성을 담보하는 가장 안전한 길의 하나이자 위헌시비를 일으키지 않는 방안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란 심판’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이 방식에는 심각한 한계가 있다. 기계적인 무작위 추첨은 민주적 정당성의 부재를 낳는다. 뺑뺑이 로 뽑힌 판사는 운이 좋아서 혹은 나빠서 그 자리에 앉았을 뿐 국민의 위임을 받았다는 묵직한 사명감을 갖기 어렵다. 자칫 관료화된 사법부의 분위기에 젖어, 전례 답습이나 동료 법관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소극적인 판결로 도피할 위험이 없지 않다. 내란범죄 심판을 일반 교통사고나 살인사건 재판처럼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역사적 심판에는 무난한 관리자가 아니라 결단하는 재판관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
대안은 국민추천과 무작위추첨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딜레마를 풀기 위해 새롭게 구상한 방안은 시민 1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은 법조 경력 15년 이상의 재야 고수(전직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저명한 법학교수나 덕망 있는 변호사 등)를 재판부의 핵심으로 투입하는 방식이다. 하이브리드 방식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요건을 갖춘 국민추천인사만으로는 1심 3인, 2심 5인의 대등재판부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아서 무작위 추첨제도 일부 병행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피할 뿐더러 현직법관의 위상도 존중함으로써 포퓰리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도 바람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민추천방식과 무작위추첨방식의 하이브리드 방식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1심은 1인 이상, 2심은 2인 이상을 반드시 유자격 현직법관 중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2배수를 선발해서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추천위는 무작위 추첨인사를 대법원장에게 추천하는 형식적 역할만 한다. 국민추천후보의 경우 다르다. 추천위는 국민추천후보의 적격성을 심사하고 그 가운데 몇을 추천할지 결정한다.
1심 대등재판부(3인)의 경우 추천위가 국민추천후보를 2인 혹은 4인을 추천하고 대법원장은 반드시 그중 1인 혹은 2인을 임명하되 1인은 재판장으로 임명한다. 심급이 올라가는 2심 5인 대등재판부의 경우 추천위는 4인 혹은 6인의 국민추천후보를 추천하고 대법원장은 그중 반드시 2인 이상을 임명하되 1인에게는 역시 재판장을 맡긴다. 즉, 재판의 주도권을 관료 법관이 아닌 국민이 소환한 법률가에게 쥐어주는 것이다. 추천위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대법원장에게 2배수로 추천할 국민추천인사의 구체적 수를 정하는 데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13일 국회 법사위 대법원 국정 감사장에서 눈을 감은 채 입을 꾹 닫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왜 국민추천인사가 재판장을 맡아야하는가
이러한 하이브리드 방식은 무작위 추첨제와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압도적인 비교우위를 가진다.
첫째, 민주적 정당성의 확보다. 국민이 직접 서명하여 추천한 재판관은 사법부 내부의 인사 고과나 승진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직 헌법과 역사, 그리고 자신을 추천해 준 국민만을 바라보며 재판할 수 있다. 이는 사법부 독립의 진정한 의미인 외부압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넘어 사법 관료주의로부터의 독립까지 가능하게 한다.
둘째, 재판의 권위와 무게감의 차이다. 현직 부장판사 3인의 대등합의부의 판결문과 산전수전 다 겪은 전직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당대 최고의 석학이나 인권변호사가 재판장으로 앉아 있는 하이브리드 3인(1심)이나 5인(2심) 대등특별재판부의 판결문이 갖는 무게는 천지 차이다. 피고인인 내란세력조차 재야의 고수들로 구성된 재판부 앞에서는 법리적 꼼수나 재판 지연 전술을 함부로 쓰지 못할 것이다. 또한 3심 대법원도 항소심 판결을 함부로 뒤집거나 무력화하지 못할 것이다.
셋째, ‘제 식구 감싸기’의 원천 봉쇄다. 무작위 추첨으로 현직 판사들로만 특별재판부를 채울 경우 법조계 특유의 온정주의나 선후배 문화가 작동할 우려가 있다. 그러나 외부에서 수혈된, 그것도 국민의 지지를 업은 외부 인사가 재판장이 되어 재판을 지휘한다면, 법원 내부의 카르텔은 무력화된다.
물론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특정 정치세력이 조직적으로 서명 운동을 벌여 편향된 인사를 추천할 포퓰리즘 위험이 있다. 하지만 추천위원회가 1차적인 자격심사 기능을 수행하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이중 장치를 두기 때문에 자질 미달의 선동가가 법대에 앉는 불상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주권자가 세운 법정만이 헌법을 지킬 수 있다
내란은 주권자에 대한 반역이다. 따라서 그 심판의 권능은 주권자로부터 나와야 한다. 기존의 법원인사 시스템이나 기계적인 추첨에만 의존하는 것은 헌법파괴세력을 단죄하는 칼자루를 또다시 관료 조직에 맡기는 안일한 태도다.
최소한 1만 명의 시민이 서명하여 이 사람이라면 우리의 헌법을 맡길 수 있다”고 추천한 국민추천 재판관. 그가 재판장이 되어 내란의 죄를 묻는 장면이야말로 대한민국 헌정사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법치주의의 승리가 될 것이다.
1심보다 2심에서 국민추천 몫을 더 늘려 국민의 의지를 더 강력하게 반영하도록 설계한 이유는 오판 가능성을 줄이고 역사적 정의를 확정 짓는 내란사법의 클라이맥스를 국민과 함께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행정적으로 깔끔한 재판부가 아니라 헌법적으로 정당한 재판부다. 국민추천과 무작위추첨의 하이브리드 5인 대등재판부야말로 그 정답에 가장 가깝다고 자부한다.
지귀연 부장판사가 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차 공판에서 취재진들의 퇴장을 명령하고 있다. 2025.4.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민주당 수정안, 철회해야 한다
오늘(16일) 민주당은 지난 3일 국회법사위를 통과한 내란전담재판부설치법안의 수정안을 발표했다. 위헌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현재 진행 중인 1심에도 적용하겠다는 무리수를 빼고 향후 2심에만 적용하되 논란 많은 추천위원회도 완전 삭제하고 대법원장이 직접 2심 재판부를 구성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조희대가 물러나지 않는 이상 조희대의 손에 항소심 내란전담재판부를 맡길 수밖에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수정안이다. 조희대의 직접 책임성 강화에 무슨 노림수와 속셈이 숨어 있을지 모르겠으나 이럴 거라면 굳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만들 이유가 없다. 우스꽝스럽다.
내가 보기엔 민주당이 너무 쫄았다 . 위헌시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1심 적용 부분만 내려놓으면 됐다. 내란사건의 역사적 중대성을 감안해서 민주적 정당성과 전문성의 무게를 더 갖춘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서 집중, 신속 처리하라는 내란사법 특별법을 국회가 못 만들 이유가 없다. 내란재판의 중대성과 무게감을 감안해서 1심은 3인 대등재판부, 2심은 5인 대등재판부로 운영하라는 것이 위헌적 발상일 수 없다.
법관자격을 넘치게 갖춘 재야의 고수와 거인을 일정한 국민추천절차를 거쳐 대법원장이 내란전담 특별재판관으로 특별 임명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더 큰 민주적 정당성과 전문성을 갖춘 법관유자격자를 대법원장이 단발성 내란전담 재판관으로 특별 채용하는 것이 위헌일 수 없다. 물론 일정한 요건을 갖춘 현직법관 중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2배수를 선발해서 그중에서 대법원장이 내란전담재판관을 임명하는 것도 위헌일 수 없다. 아무데나 갖다 붙인다고 위헌이 되는 게 아니다.
다만 내란전담 특별재판부 설치법은 윤석열 내란일당에만 적용될 단발성 법률로 설계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럴 경우 처분적 법률의 성격 때문에 위헌시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지난 1년간 느릿느릿 물러터지게 진행된 내란사법의 교훈 중 하나는 앞으로도 모든 내란범죄는 민주적 정당성을 더 크게 갖춘 권위 있는 특별재판부가 집중 심리해서 최대한 신속하게 치죄해야 합당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두터운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이 수정안을 다시 수정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