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본에도 155밀리 포탄 우크라 우회 지원 요청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19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드니프로의 한 아파트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미국 정보당국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군사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올해 말 러시아에 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24.04.19.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미국은 한국만이 아니라 일본에도 자국을 우회해서 우크라이나에 155밀리(㎜) 포탄을 공급하는 간접적인 지원에 나서 줄 것을 요청했으며, 일본은 이에 응하기 위해 자국산 무기수출을 제한하는 ‘방위장비 이전(移轉) 3원칙’의 운용지침을 개정했다고 <아사히신문>이 5일 보도했다.
한국 일본에 같은 시기 155밀리 포탄 요청?
이 신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미국은 복수의 비공식 통로를 통해 일본 내의 생산라인에서 155밀리 포탄을 제조해 미국에 수출해 달라는 요청을 일본 쪽에 해 왔다고 일본정부 관계자들이 밝혔다. 그러나 일본 내의 155밀리 포탄 제조는 영국 기업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 라이센스 생산품이어서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의 운용지침를 개정하지 않는 한 수출이 불가능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 여당은 2023년 4월에 시작된 운용지침 재검토 논의에서 수출금지 해제를 검토했다. 그러나 그해 7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돼 참석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일본에게 군시지원을 따로 요청하지 않아 155밀리 포탄의 우크라이나 간접 지원 논의가 수그러들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미국이 이처럼 우회 수출 형식을 통해 155밀리 포탄을 우크라이나 공급해 주도록 일본에 요청한 것은, 한국에 대해 유사한 내용의 155밀리 포탄 공급을 요청한 것과 같은 시기일 가능성이 높다.
2023년 4월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유출된 미국 기밀문서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한국 국가안보실을 도청했고, 도청 내용 중에 한국정부가 미국의 요청으로 155밀리 포탄 33만 발을 폴란드를 우회해 지원하는 방안 등을 논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일본이 방위장비 이전 3원칙 운용지침 개정 검토를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일본정부는 그 전에 미국으로부터 155밀리 포탄 지원 요청을 받았을 것이고, 유출된 기밀문서 내용으로 보건대 한국정부도 그 전에, 아마도 일본과 같은 시기에 그런 요청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해 12월 4일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을 거친 간접 지원을 통해 “한국이 모든 유럽 국가를 합친 것보다 우크라이나에 더 많은 포탄을 공급했다”고 보도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4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설리번 보좌관은 사거리 300km의 신형 에이태큼스(ATACMS) 지대지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2024.04.25. 로이터 연합뉴스
일본, 지대공 요격 미사일 패트리어트 우회 지원
미국은 그 뒤 미국 라이센스로 일본에서 생산하고 있는 지대공 요격 미사일 패트리어트를 수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정부는 2023년 12월 운용지침을 개정해 라이센스 제공국에 대한 자국산 무기 수출금지를 해제하는 동시에 자위대가 보유한 패트리어트를 미국에 수출하기로 결정했다. 미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의 중요한 방공 미사일 비축에 공헌할 것”이라며 일본정부의 조치를 환영했다.
무기수출 규제 없애 방산 수출국가가 된 일본
155밀리 포탄도 그때의 운용지침 개정으로 라이센스 제공국인 영국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영국의 요청이 있을 경우 제3국으로도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영국의 요청 형식을 통해 일본산 155밀리 포탄을 미국을 거쳐 우크라이나로 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정비된 것이다. 일본 방위성 고위관리는 자위대도 탄약 부족 상태로 “지금으로선 패트리어트의 미국 수출만으로도 빠듯한 상태”라며 155밀리 포탄 지원은 부인했으나, 한국산 155밀리 포탄의 우크라이나 우회 지원 사실이 미국 기밀문서 유출로 드러날 때까지 당사자들 외에 아무도 몰랐듯이, 그 진위 여부를 알 순 없다.
일본은 패전 뒤 “정부 행위로 두 번 다시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을 “일본국민의 결의”로 헌법에서 못박았다. 이는 군사력 증강이나 무기수출을 억제, 금지하는 지침과 같은 것이지만,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의 운용지침 개정으로 일본은 이제 수요가 있고 일본이 거기에 응할 능력과 의도만 있다면 세계 어디든지 무기를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일본은 아베 신조 정권과 그것을 계승한 기시다 후미오 정권 들어서 (전쟁에 대한) ‘억지력’을 높인다는 이유로 국회 심의도 거치지 않고 오히려 그 방침에 역행하는 쪽으로 내달리고 있다.
미국이 요구한 일본의 재무장과 무기수출
일본의 이런 변화는 미국의 탈‘평화헌법’ 요구와 맞물려 있다. 2차 대전 뒤 일본에 ‘평화헌법’을 강제했던 미국은 중국대륙의 공산화와 6.25전쟁으로 냉전이 본격화하면서 일본의 재무장과 평화헌법 개정을 일본 우익 집권세력(자민당)에게 요구하는 ‘역 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기시다 정권이 지난 해 12월 이른바 안보 3문건 개정으로 선제적인 ‘적 기지 공격능력’ 보유를 정당화하고 ‘무기수출 3원칙’도 형해화해 본격적인 무기수출 국가로 변신할 수 있게 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만,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미국 하원의장이 17일(현지시간)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취재진에 발언하고 있다. 존슨 의장은 같은 공화당 내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크라이나를 위한 추가 안보 예산안 처리를 추진중이다. 2024.04.18. EPA 연합뉴스
전세 좌우하는 포와 포탄, 러시아가 5~10배로 압도
3년째 계속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전・진지전화하면서 첨단무기보다 포와 포탄 등의 재래식 무기(로테크 low tech 무기)가 여전히 전세를 좌우하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로테크 무기의 생산과 배치, 사용 등의 ‘물량’공세에서 미국 등 서방은 지금 러시아에 압도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직접 개입하는 대신 200만 발 이상의 155밀리 포탄과 이것을 날려 보내는 198문의 포를 제공하겠다고 했으나, 한국전쟁 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제공해 온 미국과 유럽은 심각한 포탄 부족에 직면하고 있다. 지난 해 여름 반격에 나선 우크라이나의 총공세가 러시아의 참호들을 돌파하지 못해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한 뒤 최근 6개월간 포탄 부족이 더 심해졌다.
지난 달 10일 크리스토퍼 카볼리 미국의 유럽군사령관이자 나토의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은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5배나 되는 포탄을 쏘고 있다. 몇 주 내에 10 대 1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안 승인을 계속 거부하고 있던 공화당에 대한 하소연과 경고의 뜻도 담았을 것이다.
미국 육군은 지금 월 3만 발의 155밀리 포탄을 제조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의 월 1만 4천 발에서 2배 이상 늘었다. 올 여름까지는 월 6만 발, 내년 말까지는 월 10만 발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한국전쟁 때 포탄공장으로 개조한 제너럴 다이내믹스 소유의 19세기 건축 벽돌공장 시설 등을 월 2만 4천 발의 155밀리 포탄 생산공장으로 개축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내년 말이나 2026년에야 완성된다. 텍사스 주에 새 포탄 제조공장과 포탄에 폭약을 채워넣는 공장도 짓고 있다.
2023년 5월 18일 러시아 국방부 언론 서비스가 공개한 영상. 러시아 152mm 자주포가 우크라이나 진지를 향해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키예프의 예비군과 군수품을 고갈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여러 곳을 공격했다. 2023.5.18. AP, 연합뉴스
155밀리 포탄 생산 러 연간 300만 발, 서방 120만 발
하지만 미국이 이런 포탄 증산 목표를 달성해도 러시아의 월 생산량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는 무기 부족분을 이란과 북한 등에서 조달해 보충하는 한편 자국 내 생산도 대폭 늘리고 있다.
CNN은 지난 3월 나토의 기밀정보 등을 토대로 러시아가 매월 약 25만 발, 연간 약 300만 발을 생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비해 미국과 유럽의 생산능력을 모두 합쳐도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수 있는 포탄은 연간 약 120만 발 정도다.
영국 왕립방위안전보장연구소(RUSI)의 선인명구원 잭 워틀링의 분석에 따르면, 20203년 여름의 포탄 사용량은 우크라이나군 반격 시기에는 러시아군보다 훨씬 많은 하루 최대 7천 발을 쏘았으나, 겨울에 2천 발로 줄었다. 그 공세 뒤 거꾸로 태세를 재정비한 러시아군은 지금 하루 1만 발을 쏘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는 우크라이나가 수세적 방어전을 계속하려면 월 7만 5천~9만 발, 대규모 공세에 나서려면 월 20만~25만 발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유럽의 연간 최대생산량 120만 발로는 감당할 수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지난 1월 1일 모스크바 외곽의 노보-오가료보 관저에서 군인들과 건배하고 있다. 2024.1.1. AP 연합뉴스
그 목표마저도 미국 내의 복잡한 정치사정으로 순조롭게 달성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1월 대선에서 바이든과 박빙 승부를 펼칠 가능성이 높은 도널드 트럼프와 공화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추가지원에 반대하고 있다.
미군은 이스라엘과 한국에 배치한 155밀리 포탄 일부를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돌리고 있다고 미국 매체들은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 이후 가자지구 공격을 계속해 온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지원에 집착하면서 전력이 분산되고 있다.
공화당의 얘산안 처리 거부로 그런 재고 보충 예산과 새 무기 조달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지난 달 말까지 약 4개월간 그런 식의 포탄 조달길마저 막혔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군은 2월에 동부지방의 전략 요충지 아우디이우카에서 철수하는 등 더욱 더 수세로 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