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메가프로젝트는 민주화-산업화 통합 시도 [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는 단순한 산업정책 발표가 아니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하나의 삼각축으로 묶어 국가의 미래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겠다는 선언이다. 반도체가 인공지능의 계산 능력을 담당하고, AI 데이터센터가 지능사회의 기반 인프라가 되며, 피지컬 AI가 로봇·제조·물류·돌봄·안전의 물리적 세계로 확장된다면, 이것은 경기부양책이나 기업투자 유치정책을 넘어선다. 그것은 인공지능 기반 산업사회로의 국가적 전환 선언이다. 이 순간 이재명 대통령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 수호를 대변하는 정치인을 넘어, 국가가 산업의 방향을 다시 조직하려는 산업주의자 대통령으로 등장한다.
이 등장은 자유무역주의가 사실상 낡은 약속이 되어버린 시대적 조건 속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한때 세계화는 값싼 곳에서 생산하고 넓은 시장에 파는 질서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지금 반도체, 배터리, 데이터, 에너지, 인공지능은 더 이상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안보이고 외교이며 공급망이고 국가주권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 경쟁, 수출통제, 산업보조금, 데이터 주권의 충돌은 시장이 스스로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런 시대에 대통령이 산업을 말한다는 것은 기업을 격려하는 일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조건을 재설계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메가프로젝트는 박정희의 중화학공업화 선언을 떠올리게 한다.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이 철강, 조선, 기계, 석유화학, 전자를 국가전략산업으로 제시했을 때, 국가는 산업을 통해 시간을 압축하려 했다. 가난한 나라가 생존하기 위해 미래를 앞당겨 끌어온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산업화는 수도권 집중과 권위주의 통치, 노동의 침묵과 민주주의의 억압 위에서 이루어졌다. 공장은 세워졌지만 시민은 말할 수 없었고, 수출은 늘었지만 지역과 노동과 교육은 동원의 대상으로 남았다. 박정희의 산업주의는 강력했으나 민주적으로 불완전한 산업주의였다.
그런데 이재명의 산업주의는 박정희 산업화를 단순히 계승하는 것이 아니다. 산업국가의 귀환이라는 점에서는 박정희 이후 가장 강한 국가산업전략이지만, 그 정치적 조건은 전혀 다르다. 박정희의 산업화가 민주주의를 억압하며 추진된 산업화였다면, 이재명의 산업화는 내란적 위기를 넘어 민주적 헌정질서를 회복한 이후 집권한 정당의 대통령이 추진하는 산업화라는 점에서 다른 역사적 성격을 가진다. 이 산업화는 권위주의적 동원이 아니라 민주적 정당성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재명 산업주의의 역사적 의의는 민주화와 산업화의 통합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2026.6.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민주적 산업주의의 명(明) 1 : 수도권 중심성을 벗어나려는 균형발전형 산업주의
한국의 산업화는 늘 지방을 필요로 했지만, 지방을 중심으로 세우지는 못했다. 지방은 항만, 발전소를 제공했고, 산업단지를 제공했으며,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러나 고급 일자리, 본사 기능, 금융, 연구개발, 문화, 교육의 상징자본은 결국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갔다. 수도권은 기회의 최종 목적지가 되었고, 지방은 기회를 생산하고도 떠나야 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 체제가 오래 지속되면서 지역은 단순히 인구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할 권리 자체를 잃어갔다. 수도권 중심 성장체제는 경제구조이면서 동시에 욕망의 구조였다.
이번 메가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구조를 해체하려 한다는 데 있다. 서남권 반도체 거점, 충청권 첨단 패키징 거점, 영남권 피지컬 AI와 데이터센터 구상은 산업입지를 수도권 바깥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이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지역은 보조금의 수혜지가 아니라 국가 성장의 생산지가 된다. 균형발전은 낙후지역을 도와주는 복지정책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성장엔진을 다핵화하는 산업전략이 된다. 이 지점에서 이재명은 지방을 동정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지역을 산업국가의 중심축으로 재배치하려는 산업주의자로 읽힌다.
민주적 산업주의의 명은 여기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산업을 국가 성장의 엔진으로 보면서도, 그 엔진을 수도권 한복판에만 두지 않으려 한다. 산업정책이 지역정책이 되고, 지역정책이 청년정책이 되며, 청년정책이 다시 교육과 정주정책으로 이어질 때, 산업주의는 낡은 개발주의를 넘어선다.
민주적 산업주의의 명 2 : 지역에서 청년의 먹거리를 만드는 산업주의
기존 혁신도시는 지역균형발전의 중요한 시도였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공공기관은 이전했으나 지역경제의 자생적 혁신 생태계가 충분히 형성되지는 못했다. 직원은 내려왔지만 가족은 수도권에 남았고, 건물은 생겼지만 도시의 생활밀도는 더디게 자랐다. 혁신도시는 행정적 이전의 성과를 냈지만, 청년의 삶 전체를 붙드는 정주 전략으로는 부족했다. 지역에 남는다는 것은 일자리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거, 교육, 문화, 의료, 교통, 관계망이 함께 있어야 가능한 삶의 선택이다.
이번 메가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산업투자와 정주여건을 함께 묶으려한다. 지역의 대학, 고등학교, 직업교육, 창업 생태계, 주거단지, 문화공간, 의료체계, 돌봄서비스가 결합될 때 청년은 지역에 머물 수 있다. 청년은 지역에서 일하고 배우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을 때 지역을 미래의 장소로 받아들인다. 먹거리란 단순히 임금이 아니라 생애전망이다. 산업주의자 이재명은 바로 이 점을 깊게 인식하고, 지역에 일자리만이 아니라 생애의 지속가능성을 심으려 한다.
청년의 지역 정주는 산업정책과 교육정책의 결합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역대학이 산업단지의 부속 훈련소로 전락해서도 안 되지만, 지역산업과 무관한 추상적 학위공장으로 남아서도 안 된다. 대학은 연구개발의 거점이 되고, 직업계고와 일반고는 지역산업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초중등학교는 지역을 떠나야 성공한다는 오래된 상상력을 바꾸어야 한다. 지역에서 세계적 수준의 배움과 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길 때, 지역은 비로소 청년에게 임시 거처가 아니라 미래의 장소가 된다.
정부가 서남권에 800조원, 충청권에 81조원을 투자하는 등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힌 29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모습.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 에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충청권에 81조원을 투자해 패키징 거점으로 육성한다고 밝혔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차세대 디스플레이 생산 거점인 아산·천안캠퍼스를 기반으로 10년간 100조원 상당의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으로 전해졌다. 2026.6.29. 연합뉴스
민주적 산업주의의 암(暗) 1: 원전건설과 전력국가의 귀환
이번 보고회에서 4000조라는 천문학적 투자금이 전면에 부각되었지만 충분히 전면화되지 않은 것이 막대한 전력 수요이다. AI 산업사회는 전기를 먹고 자라는 사회이다. 데이터센터는 거대한 전력의 심장이고, 반도체 팹은 안정적 전력과 용수를 요구하는 초정밀 산업공간이다. 피지컬 AI가 제조, 물류, 자동차, 조선, 돌봄 로봇으로 확장될수록 전력 수요는 더 커진다. 따라서 이재명의 산업주의는 필연적으로 에너지국가의 문제와 만난다. 산업을 말하면서 전력을 말하지 않는 것은 공장을 말하면서 심장을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인공지능 산업국가의 성패는 알고리즘만이 아니라 송전망과 발전소에 의존한다.
여기서 신재생에너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RE100 요구, 지역 환경의 부담, 기후위기의 압력을 고려하면 재생에너지 확대는 산업경쟁력의 조건이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만으로 단기간의 대규모 안정전력을 충족하기 어려운 현실도 냉정하게 보아야 한다. 태양광과 풍력, 저장장치와 수요관리, 분산전원과 송전망 투자가 하나의 체계로 설계되어야 하지만, 그 전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이 간극에서 원자력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막대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믹스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은 산업정책의 현실성을 갖는다.
그러나 원전은 과감하게 짓자는 결단만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안전, 핵폐기물, 지역수용성, 사고위험, 미래세대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원전이 인공지능 산업국가의 전력 기반으로 호출되는 순간, 산업의 혜택을 누리는 지역과 위험을 감당하는 지역이 달라질 가능성이 생긴다.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이 성장의 상징이 되는 동안, 발전소와 송전탑과 폐기물 저장시설은 다른 지역의 침묵 속에 배치될 수 있다. 민주적 산업주의라면 전력을 말하되 위험의 분배를 말해야 하고, 산업의 이익과 에너지의 부담 사이의 정의를 물어야 한다.
이것이 민주적 산업주의자의 암이다. 과거 산업화는 특정 지역에 환경비용을 떠넘기고 국가목표라는 이름으로 침묵을 요구했다. 이제 그런 방식은 지속될 수 없다. 전력망 건설, 발전소 입지, 재생에너지 단지, 원전 확대 여부는 공개적 데이터와 주민숙의, 보상과 참여, 장기적 안전장치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원전건설은 산업주의의 기술적 해법일 수 있지만, 민주주의의 정치적 시험대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시대의 전기는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성장의 빛을 누리고, 누가 그 그림자를 감당하는가를 묻는 민주주의의 전압이다.
민주적 산업주의의 암 2 : 교육특례와 공교육 변형 모델의 위험
지역 정주여건의 마지막 관문은 교육이다. 사람들은 일자리가 있어도 아이 교육이 불안하면 지역에 머물지 않는다. 특히 중산층 청년 부부에게 학교는 주거 선택의 핵심 조건이다. 그래서 산업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곧 교육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어야 한다. 보고회에서 좋은 초등학교, 좋은 중고등학교 건설 이야기가 반복되고, 특별법을 통해 다양한 좋은 학교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 나온 것도 이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은 지역에 사람들이 살게 하기 위해 기업만이 아니라 가족을 붙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쉬운 유혹이 시작된다. 특목고, 영재학교, 국제학교와 같은 이름은 매력적인 유인책이다. 지역에 좋은 학교를 만든다는 말은 정주여건 개선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선발과 서열의 장치로 작동하면, 산업주의는 교육공공성을 잠식한다. 지역의 우수학생을 특정 학교로 빨아들이고, 일반고를 주변화하며, 초등과 중학교 단계부터 사교육 경쟁을 자극할 수 있다. 정주를 위한 교육특례가 오히려 지역 내부의 계층분화를 심화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특례를 통한 공교육의 변형된 모델은 양면성을 가진다. 한편으로는 지역산업과 연결된 교육과정, 대학·기업·학교 연계, 직업계고 혁신, 일반고의 AI·에너지·생태 교육과정 재구성 같은 긍정적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특례라는 이름 아래 전국 공통의 공교육 기준이 느슨해지고, 선택권이라는 이름 아래 선발경쟁이 강화되며, 국제화라는 이름 아래 지역 안에 이중 교육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좋은 학교를 만든다는 말이 모두에게 좋은 학교를 뜻하지 않는 순간, 교육은 공공재가 아니라 정주 유치 상품으로 변질된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공교육 전체를 두텁게 만드는 변형 모델이다. 선발학교를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보통학교의 교육과정을 산업사회 변화와 연결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학생은 특정 기업의 예비노동자가 아니라 기술사회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시민이다. 지역교육은 지역에 묶어두는 교육이 아니라 지역에서 세계를 만나는 교육이어야 한다. AI, 에너지, 생태, 돌봄, 민주주의를 지역문제와 연결해 탐구하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이재명식 산업주의의 성패는 결국 학교에서 판가름난다.
정용주 서울천왕초교장 edcom23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