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 몫 온전히 하려면 [사회혁신] 2026년 6월 29일, 대통령이 두 재벌총수에게 차례로 허리를 90도로 접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투자규모에 얼마나 감격하고 고마웠으면 국민을 대신해 그렇게 허리를 굽혔겠는가. 그 마음은 충분히 헤아려진다. 그 장면을 보며 나는 두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우선 가슴이 벅찼다. 4755조 원의 국내 투자와 700만 명의 고용유발이라는 숫자 앞에서, 반도체·AI·로봇산업의 최전선에서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향해 첫 삽을 뜬 날이라는 감격스런 마음이었다. 다른 하나는, 굳이 이름 붙이자면, 노파심이었다. 이 벅찬 성취의 서사가 대통령이 스스로 약속하고 이미 상당 부분 밀어붙여 온 어려운 숙제, 즉 재벌지배구조 개혁과 노사정 대타협의 자리를 밀어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이 두 감정 사이에서, 나는 정통 주류 경제학 바깥에서 자본과 국가를 오래 사유해 온 세 사람을 떠올렸다. 미국의 진보적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이탈리아 출신의 UCL(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경제학교수 마리아나 마추카토, 브라질 출신의 사회이론가 로베르토 웅거가 그들이다. 샌더스는 권력과 분배를, 마추카토는 국가의 자세와 위험–보상의 비대칭을, 웅거는 생산의 제도적 형태 그 자체를 묻는다. 층위는 다르지만 세 사람은 하나의 질문에 이른다. 국민이 땅과 물과 전기를 대주는데, 국민이 돌려받는 것은 무엇인가? 이 글은 그 질문을 다시 붙들되, 이번에는 그들의 질문과 조언을 한국의 현실에 정직하게 대질시켜 보려는 시도다. 세 사람의 진단과 처방은 경청할만한지,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은 무엇인지를 따져본다.
이재명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열린 메가프로젝트 민관합동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7.6. 연합뉴스
반대편의 진실부터 인정하자
비판이 정당하려면 상대의 가장 강한 논리부터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첫째, 국가 지원은 시혜가 아니라 물리적 전제 조건이었다. 서남권 팹 하나에만 전력 6.3GW, 용수 65만 톤이 적기에 들어가야 한다. 이것은 정부가 인심 써서 얹어준 선물이 아니라, 팹이 존재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런 인프라 투자와 신속 인허가, 규제완화 약속이 없다면 천문학적 투자의 상당 부분은 애초에 성립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정부가 뭘 그렇게 대단한 걸 내줬다고 시비를 거느냐는 반문에는 실체가 있다. 국가는 필수 파트너였다.
둘째, 자본이동성은 허구가 아니다. 한국은 거대 내수시장과 기축통화를 쥔 미국이 아니다. 미국 반도체법과 대만·일본이 팹 유치를 두고 겨루는 국면에서, 조건을 과하게 걸면 더 나은 조건의 해외로 나갈 수도 있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될 위험이 실재한다. 셋째, 집중은 어느 정도 기술적 숙명이다. 수십조 단위의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최첨단 팹은 TSMC·엔비디아·인텔에서 보듯 소수로 수렴한다. 초격차를 벌리려면 어느 정도의 집중은 불가피하다는 정부 논리는 빈말이 아니다.
넷째, 그리고 가장 무겁게, 국민이 이 프로젝트를 지지한다. 국민 다수가 합의 이행을 바라는 지금, 정부더러 지금이라도 여러 조건을 붙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자칫 초를 치는 몽니로 읽힌다. 이 정치적 현실을 무시한 요구는 아무리 정교해도 공허하다. 이 네 가지를 인정하고 나면, 세 경세가의 처방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국민이 돌려받는 것이 적지 않다. 최대 700만 명 고용유발, 사업이 무르익으면 들어올 막대한 세수, 그리고 ‘초격차’ 국가경쟁력 자체가 이미 국민 몫의 보상이다. 그러니 일자리와 세금을 이만큼 안기는데 뭘 더 바라느냐는 반문에는 실체가 있다. 다만 이 보상은 온전하지 않다. 새는 곳이 다섯 군데나 있기 때문이다. 자동화가 일자리를 대체하고(노동 대체), 폭발한 잉여가 소수에 쏠리며(분배 악화), 데이터센터의 전력·용수 부담이 국민 요금으로 전가되고(부정적 외부효과), 팹이 고립된 전위 생산기지로 격리되며(경제력 집중), 무엇을 나눴는지 확인할 길이 닫혀 있다(감시수단 결핍). 세 경세가의 진단은 바로 이런 문제지점들을 비춘다. 최소한의 상호주의는 국민 몫의 보상이 이렇게 나쁜 효과들로 상쇄되지 않도록 막는 데 필수적이다.
대통령은 이미 개혁의 절반을 해냈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나는 이재명 대통령을 재벌에 포획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상법을 세 차례나 개정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넓히고, 독립이사 비율과 감사위원 분리선출을 확대하고, 자사주 의무소각을 못 박은 것은 지난 수십 년간 누구도 관철하지 못한 성과다. 의무공개매수를 하반기 최우선 과제로 재천명했고, 상속세 일반 인하 요구는 분명히 거절했으며, 가업상속공제의 편법 활용은 오히려 단속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것은 재벌 앞에 무릎 꿇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바로 그래서 이 글의 제안은 노선의 회군이 아니라 자기 프로젝트의 완주다. 가장 어려운 초반 작업, 즉 주주환원과 이사회 개혁을 이미 해낸 대통령에게 남은 것은, 그 개혁의 마지막 축인 상호주의와 터널링 차단을 투자 성취의 열기 속에서 놓치지 않는 것뿐이다. 걱정은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라 성취의 휘광이 개혁은 이제 끝났다는 착시를 만들 수 있다는 데 있다. 가장 쉬운 국면은 지났고, 지금은 가장 어려운 국면(터널링 차단·상호주의·전위 개방)이 남았기 때문이다.
세 사람의 문제의식과 접근방법
버니 샌더스의 문제의식은 인공지능 등 빅테크 기업의 권력집중과 분배독점이다. 공적 자원을 최상위 자본에 조건 없이 몰아주면, 그 소수는 시장을 넘어 정치까지 좌우하는 과두제로 굳어진다. 그래서 처방은 지원에 반드시 대가를 못 박는 것이다. 일자리의 질과 해고 제한, 지역편익 협약을 구속력 있게 걸고, 노동자가 이사를 뽑는 공동결정제와 종업원지주제(ESOP)로 지배구조를 민주화하며, 해고·저임금 위의 자사주 매입을 금지하고, 자동화 이득을 전환기금으로 노동과 나누는 것이 그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2026.6.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다만 이런 정책처방은 거대 내수시장과 기축통화를 쥔 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용이하지만 지금 우리의 투자합의에 통째로 얹으면, 그것은 곧바로 자본유출 우려를 부른다. 방향은 옳지만 그대로 이식하면 징벌로 읽히기 쉽다. 특히 샌더스는 금년 들어 연매출 2억불 이상 빅테크 기업은 지분 50%를 국부펀드에 강제 양도하고 국부펀드는 그 운영수익으로 연1천 달러를 국민 기본소득으로 지급하자는 법안과 환경 및 지역사회 보호와 사회적 부작용 차단을 위해 신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건설을 일시중단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우리나라에는 샌더스와 같이 담대하게 목소리를 내는 정치인이 아무도 없다.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기업가형 국가』에서 국가의 자세와 위험–보상의 비대칭에 초점을 맞춘다. 진단은 이렇다. 인터넷·GPS·핵심 신약이 다 공적 투자에서 비롯됐듯, 국가는 시장의 뒤치다꺼리 꾼이 아니라 가장 앞선 위험 감수자다. 그런데 위험은 사회화되고 보상은 사유화된다. 서남권 팹에 전력·용수·용지를 대주는 것은 전형적인 국가의 위험 제거(de-risking)인데, 그 상방 이익은 온전히 사기업이 가져간다. 그의 처방은 응징이 아니라 공생적 공동 투자다. 국가가 위험을 함께 진만큼 지분·로열티·국부펀드로 상방을 회수해 다음 미션에 재투자하고, 어떤 사회 문제를 풀 것인지, 즉 지향과 미션을 지원의 조건으로 못 박자는 것.
국가는 공동 창조자이자 위험 감수자인데, 왜 청구서만 떠안고 지분도 방향도 조건도 갖지 않는가라는 그의 반문은 자본을 쫓아내는 대신 자본의 조건을 바꾸는 쪽에 가깝다. 국가가 이미 위험을 지고 있으니 방향과 보상도 함께 갖자는 제안이라 자본유출 우려에 가장 잘 답한다. 다만 지분·로열티 환수조차 관치·국유화 논란을 부를 수 있어, 한국에서는 의결권 없는 우선주나 로열티형으로 순화되어야 겨우 논의 테이블에 오를 수 있다.
『지식경제』를 쓴 로베르토 웅거는 생산의 제도적 형태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진단이 셋 중 가장 깊다. 반도체·AI·로봇 같은 지식경제의 최전선은 경제 전체로 퍼지지 못하고 소수의 ‘고립된 전위(insular vanguard)’에 격리되며, 그 격리가 선진 부문과 후진 대중경제의 이중구조를 낳는다. 지수는 오르는데 체감 시장은 차가운 상장시장 내부의 극단적 쏠림이 바로 그 징후다. 두 재벌의 4,755조 투자는 초생산성의 섬을 더 높이 쌓음으로써 그 병을 치료하기보다 강화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처방은 분배를 넘어 생산의 문 자체를 여는 데 있다. 팹·데이터센터·인공지능을 공유 유틸리티로 개방하고 심층 기술이전을 의무화하며, 소유권을 여러 이해당사자에게 나누고(소유권의 분해), 교육혁명과 심화된 민주주의로 다수를 최전선으로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다만 이 프로그램은 셋 중 가장 급진적이라, 개방·분해가 지나치면 역시 자본유출 우려를 부르고, 제도적 상상력이 구체적 설계로 번역되지 않으면 수사에 그친다는 오랜 비판을 스스로 안고 있다.
요컨대, 세 경세가는 이번 메가 프로젝트 투자합의가 놓친 다섯 층위, 즉 노동 대체, 잉여 분배, 외부효과의 사회화, 경제력 집중, 감시 여론의 소진 문제를 선명하게 비춰준다. 나는 그들의 특징적인 진단은 취하되, 정책처방은 한국의 국가 역량과 경제 실정에 맞춰 주체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살아남는 하나의 핵심
모든 단서를 걷어내도 지워지지 않는 통찰이 하나 있다. 민간기업의 투자는 사회적 책임의 이행이 아니다. 투자는 기업이 자기 이윤을 위해 하는 행위이고, 사회적 책임은 그 위에 조건으로 얹혀야 할 별개의 것이다. 3대 메가 프로젝트 국민보고회의 서사는 천문학적 투자약속 그 자체가 국가적 헌신이라며 두 범주를 잠시 포갰다. 그 순간 정부는 대가로 받아낼 사회적 조건은 아직 비어 있는 채로 공적 자원을 내주는 쪽이 되었다.
그런데 범주가 뒤섞였다고 해서, 이미 축배를 든 합의문에 뒤늦게 온갖 조건을 소급해 못 박는 것은 답이 아니다. 그것은 또 다른 범주 오류, 즉 축하의 자리를 개혁의 집행 도구로 오인하는 것이 된다. 옳은 처방은 앞으로 두 트랙을 분리해 운용하는 것이다. 첫 번째 트랙은 인프라 제공이다. 전력·용수·용지·인허가라는 공적 투입에는 그 투입에 직접 결부된 좁고 정당한 조건만 건다. 이것은 새로운 요구가 아니라 계약의 완성으로 봐야한다. 두 번째 트랙은 지배구조 개혁과 노사정 대타협이다. 지금의 3% 지배와 직간접 터널링, 편법 상속 같은 구조적 문제는 투자 합의조건으로 걸지 말고 자기 궤도와 시간표 위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 트랙의 구분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투자는 사이클이 꺾이면 재조정되지만, 자기대리·쌍방대리 특권과 3% 지배구조는 사이클과 무관하게 남기 때문이다. 지금의 풍요는 반도체 초호황이 만든 것이고, 초호황은 반드시 꺾인다. 횡재이익 공유 등 사이클에 얹힌 조건보다 사이클과 무관한 구조개혁(입증책임 전환, 이해관계자 의결권 배제, 의무공개매수)이 더 오래간다. 경계할 것은 일회성 투자 약속으로 지배구조 개혁을 대신했다는 착시다.
지금이라도 붙일 수 있는 최소한
그렇다면 대중적 지지를 거스르지 않고, 자본을 겁주지 않으면서, 또한 정부가 뒤통수를 친다는 비난도 사지 않고 지금이라도 얹을 수 있는 최소 조건은 무엇인가. 나는 세 경세가가 내놓은 급진적 처방의 목록 전체, 즉 노동이사제 전면화, 자동화 부담금, 종업원 소유, 지분 환수, 소유권 분해 등을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고 본다. 대신 다음 네 가지를 첫 번째 트랙에 결부된 최소 상호주의로 좁혀 제안한다. 공통점은 셋이다. 승자의 성장을 막지 않고, 오히려 생태계를 키우며, 투자자도 수긍할 만하다는 것.
첫째, 외부효과 차단(가장 덜 논쟁적이고 가장 시급하다).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용수 부담과 그로 인한 요금 인상이 일반 소비자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별도 요금체계와 계통 보강비용 분담을 인허가 조건에 결합한다. 이것은 재벌을 겨눈 조건이라기보다 국민을 비용 전가로부터 보호하는 장치다. 정치적으로 방어하기 가장 쉽고, 기업도 자기 인프라 비용을 지는 것을 부당하다 여기지 않는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둘째, 전위의 부분 개방(웅거의 가벼운 버전). 정부 인프라를 받은 팹과 데이터센터가 캐파의 일정 몫(연산능력·미세공정 시간의 일부, 비민감 데이터)를 중소기업·스타트업·대학에 공정 접근가격으로 여는 ‘개방 캐파 쿼터’를 지원 조건으로 붙인다. 데이터센터 구축은 국가AI 클라우드 바우처와 결합한다. 이것은 승자에 대한 과세가 아니라 생태계 확장으로 프레이밍된다. 인재 풀과 공급망이 깊어지는 것은 두 재벌의 장기 이익이기도 하다. 영업비밀 충돌은 개방 대상을 비핵심·범용 캐파로 한정하고 독립기구가 접근가격·보안을 관리하면 해소된다.
셋째, 분배 투명성 보고(가장 값싼 조건). 일자리의 질, 지역 편익, 협력사 거래조건을 정기 공시하도록 의무화한다. 정부가 구체적인 기준과 내용을 정해주고 의무화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반드시 그 기준과 내용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기업이 늘 염두에 두게 만든다. 이것이 사회적 점검의 최소한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다.
넷째, 정의로운 전환 계획의 제출(부담금이 아니라 설계 의무). 지원받는 프로젝트에 재배치·재교육 목표를 담은 전환 계획 제출을 의무화한다. 자동화 부담금 같은 무거운 재원 조치는 뒤로 미루더라도, 노동 대체에 대한 설계의 공백만은 지금 메운다.
이 넷은 세 경세가의 원리를 다 담되, 투자를 위축시키는 항목(지분 강제 환수, 노동이사제 전면화, 자동화 부담금)은 트랙 2로 넘긴다. 그리고 트랙 2의 무거운 개혁들은 반드시 지원 규모에 비례하는 계단식으로, 유예기간과 함께, 응징이 아니라 공동 투자라는 협상 프레임 안에서 다뤄야 한다. 이것이 전부 아니면 전무를 피하는 길이다.
덧붙이면, 이 네 조건은 규제이기 이전에 점검표다. 앞으로 10년, 발표액이 계획대로 집행되는지, 전위의 낙수가 실제로 공급망으로 번지는지, 노동시장이 U자로 갈라지는지, 지역 거점이 새 격차를 낳지는 않는지를 정부가 스스로 추적할 수 있는 계기판이 된다. 투자합의는 서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집행과 후속효과로 완성되는데, 지금 이 조건들이 바로 그 후속 점검의 지표가 된다. 그리고 이 방향은 대통령이 내건 기본사회·포용적 성장의 언어와 그대로 겹친다. 요금 전가를 막고, 최전선의 문을 열고, 전환을 미리 설계하는 일은 낯선 의제가 아니라, 대통령 자신의 약속을 최첨단 산업이라는 무대 위에서 이행하는 일이다.
정부가 서남권에 800조원, 충청권에 81조원을 투자하는 등 3대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밝힌 29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모습.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 에서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충청권에 81조원을 투자해 패키징 거점으로 육성한다고 밝혔다.. 2026.6.29. 연합뉴스
대타협은 눈높이를 낮춰야 현실이 된다
세 경세가의 처방이 결국 누가 잉여를 어떻게 나눌지로 수렴하는 만큼, 자연히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오래된 그릇이 떠오른다. 실은 이번 3대 메가 프로젝트야말로 새 시대 대타협의 무대가 될 수 있었다. 1998년의 대타협이 외환위기 속 결핍의 분담 문제를 다뤘다면, 지금은 나눌 파이가 큰 풍요의 분배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거래의 여지가 넓다. 자본을 테이블로 부를 지렛대도 분명하다. 재벌이 가장 지키고 싶어 하는 편법 상속·터널링 특권을 개혁 의제로 정면에 올리고, 그들이 원하는 배임죄 완화·상속세 합리화·인프라 지원을 지배구조 개선과 하나씩 짝지어 교환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두 재벌총수에게 90도 인사를 건넨 지난 6.29. 국민보고회 사진에서 노동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여기서도 정직해야 한다. 이 시대는 대타협을 요구하는 동시에 방해한다. 자동화가 노동의 교섭력을 잠식하고, 노동은 원하청·플랫폼·비정규직으로 파편화됐으며, 무엇보다 민주노총이 경사노위 밖에 있다. 가장 전투적인 최대 노총이 테이블에 없는 대타협은 태생적으로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종합적인 노사정 대타협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것은 이상에 가깝다. 더 현실적인 넛지는 눈높이를 낮춰서 경사노위 단일 창구에 의존하지 말고 산업별·지역별·의제별로 모듈화된 합의를 축적하는 데 있다. 상생형 지역일자리(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투자연계 지역협약의 그릇으로 삼아, 3대 메가 프로젝트의 지역 거점을 재벌의 독무대가 아니라 노사정 협약의 무대로 전환한다. 대타협이라는 완성태가 아니라 작은 상호적 거래들의 축적으로 접근하는 편이 이 시대의 이중성에도 맞지 않나 싶다.
90도 절 다음에 필요한 것
정부가 갑자기 어깨에 힘을 주거나 축배를 엎을 필요는 없다. 자본을 겁줄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훨씬 소박하다. 이미 내주기로 한 인프라에, 투자자조차 수긍할 만한 최소한의 상호주의를 덧대어 대체불가 대한민국을 위한 ‘뉴딜’을 완성하고 지배구조 개혁의 가능성, 즉 입증책임 전환, 이해관계자 의결권 배제, 의무공개매수 등의 가능성을 닫지 않고 자기 궤도 위에 남겨 두는 정도라면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업 투자계획 발표 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2026.6.29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세 경세가가 상기시켜준 질문은 유효하다. 국민이 땅과 물과 전기를 대주는데 국민이 돌려받는 것은 무엇인가? 그 답이 반드시 재벌에 대한 응징일 필요는 없다. 외부효과를 국민에게 떠넘기지 않는 것, 최전선의 문을 조금 여는 것, 무엇을 나눴는지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면 된다. 이 정도의 조용하고 비례적인 상호주의만으로도 우리는 ‘초격차 대한민국’이 ‘초격차 삼성·SK’로, ‘대체불가 대한민국’이 ‘대체불가 삼성·SK 왕국’으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나는 이 글에서 3대 메가 프로젝트에 대한 ‘묻지 마’ 찬가와 근본주의적 비판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내려고 노력했다. 지난 6.29.의 3대 메가 프로젝트 투자합의는 재벌이 국민영웅이 된 날이 아니라 국민의 몫이 온전한지를 대통령이 국민을 대신해 묻기 시작한 날이었다는 해설자막이 한 줄 더 붙어야 대체불가 대한민국의 ‘위대한 뉴딜’로 완성될 수 있다. 두 총수에게 90도로 감사를 표한 바로 그 마음 그대로 대통령이 국민의 몫이 온전한지를 묻는다면, 그날은 두 재벌의 날이 아니라 대통령의 날로, 그리고 초격차가 삼성·SK의 섬으로 남지 않고 온 국민경제로 스며든 첫날로 기억될 것이다.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kwaknh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