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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대통령제는 왜 끊임없이 ‘파벌싸움’에 휩싸이는가

대통령제는 왜 끊임없이 ‘파벌싸움’에 휩싸이는가
[칼럼]
2026년 8월 17일에 개최될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청래 전 대표 지지파와 김민석 전 총리 지지파가 대대적으로 격돌하고 있습니다. SNS상의 비난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쪽은 ‘문조털래유’라고 비난하고, 다른 쪽은 ‘뉴박, 또는 용역, 촉법’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 ‘멸칭(蔑稱)과 조롱’이 일베에 버금갈 수준입니다. 어떤 쪽은 ‘뉴이재명’을 표방하고, 다른 쪽은 ‘코어’를 자처합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이 차기 당대표로 김민석 전 총리를 지지하는 시그널을 보낸 뒤로, 어느 순간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비난도 점입가경입니다. 사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정당하게 행사되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런데 한동안 ‘반명’은 진영 내에 용납될 수 없는 것처럼 금기시되다가, 이제는 이해할 수 없는 비난이 횡행합니다. ‘보완수사권 폐지’ 문제로 잠깐 격돌하는 듯했지만, 양측이 ‘전면 폐지’를 표명하였음에도 충돌이 잦아들지 않는 걸 보면, 그 ‘대립의 본질’은 검찰개혁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난 ‘6월 지방선거에 대한 평가 문제’도 아닙니다. 한편 ‘문조털래유’로 비난받는 쪽은 민주당 코어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크게 실망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현 정부에 그렇게 평가할 만한 결정적 실패가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과거 보수당에 부역했던 인물들에 대한 등용을 비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사생결단의 문제’로 비화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그렇다고 해도 유시민이나 김어준에 대한 공격도 너무나 지나칩니다.   KSOI 여론조사에서 이대명 대통령에 대한 국정 운영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섰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 조사는 보수성향 과표집으로 제대로된 여론을 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여권은 왜 진보성향 응답자들이  여론조사에 응하지 않는지 성찰해야 한다.  사진은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6.3 지방선거 단체장 당선자 워크숍에서 정청래 당 대표와 김민석 총리가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 2026.6.21 연합뉴스   중요한 점은 ‘지금의 파벌싸움’이 어떻게 하면 국민을 더 잘 살게 할 것인가”라는 행정적, 정책적 논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다음 당권을 누가 가지느냐, 즉 누가 민주당의 당대표가 되느냐’의 문제입니다. 나아가 ‘2028년 총선 공천권과 차기 대권의 향방에 누가 영향력을 가지느냐’의 문제입니다. 권력투쟁입니다. 이러한 권력투쟁은 민주당뿐 아니라 보수당에서도 늘 반복되었던 현상입니다. 박근혜와 김무성, 박근혜와 유승민의 갈등 그리고 윤석열과 이준석, 윤석열과 한동훈의 대립을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졸렬한 논평은 삼가야 합니다. 애초에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권력투쟁의 문제이며,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권력투쟁이 끊이지 않고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데에 문제의 핵심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서 지금 벌어지는 진흙탕 싸움에서 한 발짝 떨어져 이 권력투쟁을 거시적으로 그리고 통시적으로 관찰할 것을 조언합니다. 그러면 이 현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필요하고 부정적이며 비효율적인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의문에 다다르기를 기대합니다. ‘파벌싸움’은 왜 지저분하고 불쾌하게 느껴질까? 현대정치학의 거두인 이탈리아 정치학자 지오반니 사르토리의 (1976)는 ‘1. 파벌에서 정당으로’라는 첫 번째 주제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경멸적인 뜻을 지닌 ‘파벌’(faction)이라는 용어를 밀어내고 ‘정당’(party)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정당이 반드시 파벌도 아니고 해악도 아니며 공동선 즉 ‘공공 복리’를 훼손하는 것도 아니라는 관념을 받아들이면서부터이다. 사르토리는 바로 뒤에서 정당이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불쾌감을 주지 않는데, 파벌이라는 말은 항상 불쾌감을 준다”는 볼테르의 말을 인용합니다. 그런데 정당이라는 용어는 불쾌하지 않은데, 파벌은 왜 불쾌감을 줄까요? 위 책에서 사르토리는 더 이상 추가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정당은 자신을 정립한 ‘이념과 원칙, 그에 따른 정책’을 기준으로 다른 정당과 논쟁합니다. 그에 반하여 정당 내에서의 파벌은 그 이념과 원칙을 공유하는 탓에, ‘사람에 대한 비난과 조롱’으로 대립하기 때문에 불쾌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즉 2026년 6월 진보 진영 내에 벌어지는 각 지지자 사이의 싸움에 어떤 구체적인 정책에 관한 논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핵심입니다. 그 파벌싸움이 특정인에 대한 비난으로 점철되어 있는 탓에, 이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 국정 지지도 추이. 리얼미터의 조사 결과. 2026.6.23 연합뉴스 리얼미터의 2026년 6월 26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49.5%로 긍정 평가 46.5%를 역전한 데드크로스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율이 42%로 민주당에 대한 41% 지지율을 넘어섰습니다. 혹자는 민주당 코어가 지지를 철회했다고 하는데, 실제 상황은 코어의 보이콧과 스윙보터의 부정 평가로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스윙보터는 언제나 파벌싸움을 질색합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데드크로스가 시작되었던 기점은 조국 사태였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립을 문재인 대통령이 수습하지 못한 점, 그 와중에 자녀들의 입시 비리가 드러난 점 등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당시 정치검찰이 사태를 왜곡하여 형사처벌의 대상이라고 볼 수 없는 사항을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수사와 기소가 그렇다고 해도, 교수들 자녀의 ‘입학 특혜’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로 인해 스윙보터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던 것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그와 비교한다면, 현재의 이재명 정부에 대한 데드크로스는 사실 억울합니다. 왜냐하면 이재명 정부에게 어떤 결정적인 정책 실패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민주당의 파벌싸움에 대한 스윙보터의 부정 평가가 이재명 정부에게까지 미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파벌싸움의 주기적 반복 : 대통령이 선출되자마자 새로운 파벌싸움이 시작된다 문제는 이러한 파벌싸움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입니다. 2017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문재인 지지자들이 안희정 후보와 이재명 후보에게 ‘18원 후원금’과 모욕적인 문자폭탄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2017년 4월 3일 문재인 후보가 과의 인터뷰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들이죠. 우리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입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뒤에 문재인에게 ‘양념대군’이라는 별칭이 생겼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 이재명 경기지사를 비난한 민주당원을 제명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을 조롱하는 이재명 지지자들의 글은 왜 허용하고, 이재명에 대한 비판 글은 왜 제명하냐?’고 따지는 글로 민주당 게시판이 논란에 빠졌습니다(2021년 4월 25일자 연합뉴스 ). 2021년 당시에 이재명 경기지사를 지지하는 ‘손가혁’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조롱은 정말 거칠었습니다. 2026년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비난보다 더 높은 수위였습니다. 급기야 정말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2021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낙연 후보 캠프가 이재명 후보에 대해 ‘변호사비 대납’이라는 허위 사실을 제기했습니다. 그 여파로 정치검찰의 대북송금, 대장동, 성남FC라는 조작 수사를 초래했습니다. 이것은 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한 악마화가 민주당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대통령이 선출되기 직전, 즉 경선에서 파벌싸움이 극대화되며, 대통령이 선출된 직후, 새로운 파벌싸움이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라는 문제로 다시 새로운 파벌싸움이 시작됩니다. 정부가 실정(失政)을 한다면 모를까, 정치와 행정을 잘하고 있는데도, 새로운 권력투쟁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며, 대단히 위험한 현상입니다. 시민들의 삶을 더 낫게 바꾸는 정책을 토론하는 게 아니라, 친명, 반명, 친청, 친석 등등으로 어떤 사람을 새로운 권력자로 옹립할 것이냐”의 문제로 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싸움은 우리 정치와 사회를 퇴행시키는 지름길입니다. 이런 와중에 극우 정당이 조금씩 힘을 얻으며, 중간선거 즈음에는 완벽하게 부활하는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부가 잘하고 있는데도, 왜 권력투쟁이 시작될까요? 그 정답은 대통령의 임기가 5년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와 외교를 잘하고 행정을 잘 수행해도 임기가 한정되어 있는 탓에, ‘차기 권력을 위한 투쟁’이 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헌법을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꾸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헌법이 대통령을 당과 분리하고, 당권을 가진 자가 다음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며, 그 와중에 차기 대권주자가 등장할 수밖에 없기에 그렇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미래신안보 혁신기업 육성전략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6.26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어떻게 해도 ‘대통령의 레임덕 시계’는 막을 수 없다 흔히 미국식 대통령제를 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실체는 입니다. 지난 100년간 미국 중간선거에서 단 세 번의 예외를 빼고 모두 집권당이 패배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만성적인 여소야대’에 시달려 왔습니다. 결국 ‘여소야대 의회’로 인하여 입법의 영역에서는 ‘무기력한 대통령’이 반복되었고, ‘행정명령의 영역’에서는 누구로부터도 통제받지 않는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기묘한 모순적 제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윤석열과 김건희의 온갖 비리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본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여소야대로 인하여 의회의 동의가 필요한 영역에서 윤석열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대통령 5년, 국회의원 4년의 우리 제도는 미국식 중간선거와 마찬가지의 패턴을 보여왔습니다. 윤석열 탄핵으로 완전히 쓰러진 것처럼 보였던 국민의힘이 2028년 총선에서 기적적으로 부활하는 모습을 조만간 보게 될 것입니다. 2026년 6 ․ 3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것이 그 전초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제는 임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무리 국정운영을 잘 해도 당대표 선거를 기점으로 새로운 권력투쟁이 시작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김민석 전 총리를 공개적으로 지지하였기에, 만약 정청래가 연임하게 되면, 그 자체로 레임덕이 시작합니다. 그런데 김민석이 당대표에 선출되면, 레임덕이 지연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공식적인 2인자’가 등장한 것이고, 후계자의 탄생은 그 자체로 레임덕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새로운 차기 권력이 공식화되기에 그러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시절에 한동훈이 당대표를 맡게 되면서, 그 같은 현상을 초래했습니다. 결국 윤석열은 한동훈을 억눌렀고,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새로운 후계자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김민석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러거나 말거나 어김없이 돌아가는 ‘대통령의 레임덕 시계’는 막을 수 없습니다. 에서는 수상이 ‘국정에 실패한 때’에만 파벌싸움이 시작된다 에서는 집권당의 수상이 ‘국정운영에 실패한 때’에만 집권당의 파벌싸움이 시작됩니다. 즉 수상의 정치와 행정이 성공하고 있는 와중에는 결코 파벌싸움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수상이 당대표를 겸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우리나라가 의원내각제 국가이고 이재명 수상의 민주당 정권이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여전히 이재명 수상이 민주당 당대표를 겸임합니다. 따라서 에서는 지금의 8 ․ 17 전당대회와 같은 당대표 선거가 있을 수 없으며, 차기 권력이라는 불씨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즉 정치를 잘 하면 수상은 계속 연임하며, 당대표도 계속 연임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 사회민주당 페르 알빈 한손 수상은 1932년 1차 내각을 시작으로 1946년 4차 내각까지 14년을 집권했고, 타게 엘란데르 수상은 1946년부터 1969년까지 무려 23년을 집권했습니다. 위 시기를 어느 누구도 장기집권 혹은 독재 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위 시기는 스웨덴 민주주의의 황금기였으며, 한손과 엘란데르는 세계적인 복지국가의 표준모델 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의원내각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에, 의원내각제 국가가 계파들의 투쟁, 파벌들의 싸움으로 점철되어 있을 거라고 상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항시적으로 파벌싸움이 내재된 통치구조는 바로 대통령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불필요한 권력투쟁’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불필요한 권력투쟁’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요? 행정부 수반의 임기를 제한하지 않으면 새로운 권력투쟁의 시작을 막을 수 있고, 권력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대신에 행정부 수반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는 곧바로 권력에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합니다. 즉 정치를 잘 수행하는가, 그래서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는가에 권력의 안정성을 연결하면, 새로운 정치엘리트에 의한 권력투쟁은 종전 권력이 불신임당할 상황에서만 발동될 것입니다. 그런데 임기를 제한하지 않으면, ‘독재의 위험’이 있지 않느냐고 염려할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끊임없이 권력을 연장하려고 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최근의 윤석열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든 공화정이 독재로 타락하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제(이원정부제 포함)와 의원내각제라는 두 가지 형태의 공화정에서 독재로 타락할 수 있는 형태는 대통령제입니다. 독재가 되려면 ‘1인 행정부’라는 구조를 갖추어야만 합니다. ‘1인 행정부’란 수반(首班) 자체가 행정부인 형태로, 전형적인 사례는 군주제와 대통령제입니다. 대통령은 그 자체로 행정부인 ‘1인 행정부’로 대통령제의 각부 장관은 대통령의 권한을 분할해서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제는 대통령의 권한 남용과 전횡을 헌법적으로 이미 예정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이승만, 박정희, 나세르, 사다트 등은 처음에 임기를 연장하고, 나중에는 임기를 폐지함으로써 군주로 등극했으며, 이러한 역사는 모두 ‘대통령제의 기록’이었습니다. 따라서 합의제 행정부인 의원내각제에서는 독재체제가 불가능합니다. 독일연방기본법 제65조(책임) 연방수상은 정책 계획을 결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 각 연방장관은 이 지침 내에서 그 소관 사무를 자주적으로 그리고 자기 책임 하에서 처리한다. 연방 장관 간의 의견 차이에 관하여 연방 정부가 결정한다. 연방 수상은 연방 정부가 의결하고 연방 대통령의 재가를 얻은 직무규칙에 따라 사무를 처리한다. 독일연방기본법 제65조와 같은 규정이 있다면, 행정부 수반의 전횡을 방지하고 독재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연방 수상은 전반적인 정책 계획을 결정하고, 각부 장관은 그 지침 내에서 소관 사무를 자주적으로 자기 책임하에 처리합니다. 또한 각부 장관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기면 수상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연방 정부, 즉 내각이 합의하여 정책을 결정합니다. 의원내각제 헌법은 그 자체로 ‘통치자 1인의 독재’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행정부 수반의 권력을 한정함으로써 임기가 계속 이어지더라도 독재의 폐해를 막음과 동시에, 임기를 제한하지 않음으로써 불필요한 권력투쟁을 근절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의원내각제입니다. ‘합의제 행정부’인 의원내각제는 결코 ‘독재 또는 군주정’으로 타락할 수 없습니다. 의원내각제가 독재로 변질되려면, 히틀러(Adolf Hitler)의 총통 체제 또는 무솔리니(Benito Mussolini)의 대원수 체제와 같은 ‘1인 행정부 체제’로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런 연유로 이탈리아의 조르자 멜로니 총리나 이스라엘의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 같은 야심가들이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나 총리 직선제로 개헌하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의원내각제로 통치구조를 바꾸게 되면, 대통령제 또는 총리 직선제 등 그 명칭의 여하를 불문하고 ‘1인 행정부 체제’로 다시 헌법을 개정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문구를 명시해야 합니다. 대통령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당신의 선입견’을 의심해 보길 조언합니다 우리는 박근혜와 윤석열, 두 번의 탄핵을 거쳤습니다. 그들의 타락이 단지 탐욕으로 비롯된 것일까요? 그 비극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독재체제로 쉽게 바뀔 수밖에 없는 대통령의 제왕적 체제가 원인이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나요? 탄핵과 내란 실패로 완전히 쓰러진 것처럼 보였던 국민의힘이 6 ․ 3 지방선거로 일어서더니, 현재의 민주당 파벌싸움에 힘입어 지지율을 역전시켰습니다. 도대체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해야 ‘국민의힘’이라는 극우 정당을 정치판에서 내쫓을 수 있을까요? ‘한 달 후 또는 두 달 후’의 근시안이 아니라, ‘5년 후 혹은 10년 후의 역사’를 바라보길 권합니다. 2030년에 권영국 노동당 후보나 진보당 후보가 대선에 나오지 않고 1:1 매치가 이루어지면, 1~2% 차이로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입니다. 그리고 2032년 당대표 선거로 인한 ‘민주당의 파벌싸움’으로 다시 지지율의 데드크로스가 시작되고, 중간선거의 성격을 띠는 2032년 총선에서 드디어 극우 정당이 다수당으로 등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윤석열이 그랬던 것처럼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무기력한 대통령으로 퇴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다음 드디어 2035년에 극우 대통령이 또다시 당선될 것입니다. 미국식 대통령제의 ‘2기(期) 집권의 패턴’입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고리를 끊어내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당신이 의원내각제에 대해 부정적이라면, 의원내각제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돌이켜 보길 조언합니다. 아마도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의 한 페이지, 대학교 헌법학개론이나 정치학 개론 두 페이지 정도의 지식이 고작일 겁니다. 당신은 일본의 내각제를 혐오하는 이유로 내각제를 싫어합니다. 일본의 내각제는 지배적 정당 체제를 바꾸지 못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제만큼이나 나쁜 제도입니다. 그러나 ‘서유럽의 내각제’는 ‘일본의 내각제’와 다르며, 우리가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기회에 그 차이를 설명하겠습니다. 대통령제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당신의 선입견’을 의심해 보길 정중히 권합니다. 끊임없이 권력투쟁과 파벌싸움에 휩싸이는 대통령제, 언제든지 독재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대통령제에 대해 이제는 재고해야 할 때입니다. 이재명이라는 뛰어난 행정가가 지금까지 대한민국 정치판에 숱하게 존재했던 그런 필부(匹夫)로 격하되는 상황이 안타깝습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의원내각제 국가라면, ‘스웨덴의 페르 알빈 한손이나 타게 엘란데르처럼 이재명 수상이 12년 내각을 운영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의회가 내각을 불신임하고 총선을 다시 해서 정부를 새로 구성하면 됩니다. 수상은 권한이 제한되어 있어서 대통령처럼 애초부터 권력을 남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대통령제처럼 탄핵한 뒤에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6~7개월 기다리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가요?  김현철 변호사 parao_m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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