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섹, 2030 탄소 감축 목표 제동… AI·에너지안보가 발목”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AI 확산과 에너지안보 위기가 맞물리면서 글로벌 투자기관의 넷제로 경로가 현실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Temasek)의 딜한 필레이 최고경영자(CEO)는 18일 ‘에코스페리티 위크(Ecosperity Week 2026)’ 개막 만찬 연설에서 현재 조건과 탄소 감축이 어려운 고배출 업종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의 특성을 감안하면 2030년 중간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테마섹의 2030년 목표는 투자 포트폴리오의 순배출량을 2010년 2200만 톤에서 1100만 톤으로 절반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항공과 발전 부문의 배출 부담, AI 데이터센터 전력수요 증가, 지정학 리스크가 겹치면서 기존 감축 경로의 속도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딜한 필레이 산드라세가라 테마섹 최고경영자(CEO)가 ‘에코스페리티 위크(Ecosperity Week 2026)’ 개막 만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테마섹
AI 전력수요 급증…2030 감축 경로 흔들
필레이 CEO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이 더 복잡하고 불확실한 단계에 들어섰다 고 진단했다. 그는 중동 지역의 최근 사태가 화석연료 공급망의 취약성을 다시 드러냈고, 에너지안보와 전력 가격 안정성이 각국 정책의 중심으로 돌아온 복합 위기 국면 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생성형 AI는 새로운 최대 변수로 지목됐다. 필레이 CEO는 AI는 전례 없는 속도로 경제와 사회를 재편하고 있으며, 컴퓨팅 파워에 대한 요구로 인해 전력 수요 급증을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장기적으로 에너지 시스템 최적화와 산업 효율 개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단기적으로는 현재와 중기적인 전력 수요를 재생에너지원만으로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이미 까다로운 에너지 전환에 복잡성을 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터센터의 확장 속도는 이러한 전력 위기 우려를 뒷받침한다. 테마섹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가동 중인 데이터센터는 약 4000개, 건설 중인 곳은 3000개에 달한다. 현재 미국 전체 전력 수요의 4% 수준인 데이터센터 소비 전력은 신규 증설에 밀려 향후 10년 내 3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제시됐다. 데이터센터 증설이 신재생에너지 공급 속도를 앞지르면서 자본 시장의 탄소 감축 경로를 뒤흔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테마섹의 배출 부담은 항공과 발전에 집중돼 있다. 스트레이츠타임스에 따르면 테마섹 포트폴리오 배출량의 80% 이상은 싱가포르항공, 셈코프 인더스트리, 올람그룹, PSA인터내셔널, ST텔레미디어 등 5개 기업에서 발생했다. 이 가운데 싱가포르항공이 43%, 셈코프가 22%를 차지했다.
항공 부문은 지속가능항공유(SAF)가 핵심 대안으로 꼽히지만 상용화 속도가 더디다. 필레이 CEO는 현재 SAF는 전 세계 항공유 공급의 1% 미만에 그치고 있으며, 기존 항공유보다 2~5배 비싸다”고 밝혔다. 이어 항공 부문의 탈탄소화를 위해서는 비용 부담 분담, 금융, 규제, 인프라, 공급 및 구매계약(Off-take)을 아우르는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발전 부문도 단기간에 화석연료를 퇴출하긴 어렵다는 현실론도 제기됐다. 필레이 CEO는 테마섹 자회사 셈코프가 호주의 화석연료 발전 기업을 인수한 사례를 언급하며, 전환기 전력망 안정성을 위해 기존 열원 발전의 역할이 당분간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에너지 전환은 자산을 무조건 빠르게 폐쇄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안보와 가격 안정성을 유지하며 책임 있게 대체해 나가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선형 넷제로는 어렵다 …속도 조절 나선 테마섹
테마섹은 2030년 탄소 감축 목표 자체를 공식 철회하거나 수정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이다. 필레이 CEO는 우리가 2030년까지 달성하기로 서약한 목표는 여전히 우리의 야망에 부합하는 중요한 방향 지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표의 선언적 의미는 남겨두되, 실무적인 이행 속도는 현실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넷제로를 향한 이행 경로는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균형하고, 대립적이며, 비선형적(Non-linear)일 것”이라며 현재의 감축 속도는 지정학, 자본비용, 기술 상용화 수준, 에너지 수요 증가라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간 목표 달성은 어려워졌지만 테마섹은 자체적인 기후 투자 기조를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테마섹의 2025회계연도 기준 지속가능한 삶(Sustainable Living) 관련 투자 포트폴리오 가치는 460억싱가포르달러(약 54조원)로 집계됐다. 테마섹은 재생에너지, 전기화, 기후기술, 산업 탈탄소, 에너지 회복력 분야에 자본을 계속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기관 내부의 통제 시스템도 강화한다. 테마섹은 자사의 신규 투자 및 운영 의사결정 과정에서 톤당 65달러(약 10만원)의 내부 탄소가격을 적용하고 있으며, 오는 2030년까지 이를 톤당 100달러(약 15만원)로 높이는 목표를 두고 있다. 이와 함께 보상 체계도 지속가능성 목표와 연계했다.
필레이 CEO는 결국 전환을 지속하는 것은 단순한 경로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인 약속이며, 길이 더 험난해지더라도 끝까지 이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Resolve to follow through)”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