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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외이사들 안건 건성건성, 연봉은 따박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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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서는 재벌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많다. 지배주주 이익만을 위해 일반 소액 주주들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대기업의 지배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저평가된 기업가치를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지배주주인 총수 일가의 잘못된 경영 방침이나 사익 편취를 견제해야 할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것도 한몫한다. 고액 연봉을 챙기면서도 불합리한 안건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기업 사외이사는 극히 드물다. 작년에는 대기업 사외이사들이 ‘고연봉 거수기’로 전락한 비율이 더 높아졌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주요 기업체 건물. [연합뉴스 자료사진] 기업 데이터연구소인 CEO스코어가 13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매출 기준 국내 500대 기업 가운데 지난 8일 마감 기준으로 주주총회소집공고 보고서를 제출한 181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100%인 기업은 163곳으로 90.1%에 달했다. 2022년에는 159곳으로 87.8%였다. 거수기로 전락한 대기업 사외이사가 더 늘어난 것이다. 조사 대상 기업의 전체 안건에 대한 사외이사의 찬성률은 99.3%에 달했다. 2022년에도 찬성률은 99.4%였다. 대기업 사외이사의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치다. 대기업 사외이사들은 대주주 뜻대로 건성건성 안건을 처리하면서도 거액의 보수를 꼬박꼬박 챙겼다. 특히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LG전자, 현대모비스, 삼성물산 등 5개 기업 사외이사는 1억~2억 원대 연봉을 받으며 반대한 안건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한술 더 떠 전년 대비 사외이사 1인당 평균 급여가 각각 11.5%와 9.8% 증가했다. 5대 그룹 계열사 중에 SK와 SK하이닉스 사외이사들이 유일하게 이사회 안건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SK는 장동현 대표이사와 조대식 사내이사에 대한 주식매수선택권 부여 등에 대한 안건 4개에 대해 사외이사 전원이 반대했다. 정관 일부 변경에 대한 주총 안건 상정의 건, P사 구조 개편의 건, 자회사 유상증자 참여, 자기주식 취득 신탁계약 체결 건에 대해 1명의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졌다. SK하이닉스는 그룹 최고 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운영 비용 거래(지원) 안건과 SK E&S와의 거래 안건에 대해 사외이사 전원 보류, 해외 계열사와의 거래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이 제기돼 부결됐다. 그러나 SK와 SK하이닉스 역시 안건 찬성률은 90%가 넘었다. SK가 삼성과 현대차, LG 등 다른 재벌 그룹과 조금이나마 달랐던 배경은 사외이사 선임 방식에 있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SK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전문경영인과 시민단체 관련자 등 다양한 인사를 이사회에 참여시키고 있다. 매출 기준 30대 기업 중 비상장사 등을 제외한 14개 사만을 보면 SK하이닉스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를 제외한 나머지 12개 사는 사외이사의 찬성률이 100%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기업 중 KB와 신한, 하나 등 금융지주 3곳의 사외이사 안건 찬성률도 모두 100%로 집계됐다. 전체 기업 중 지난해 사외이사의 이사회 안건 찬성률이 가장 낮은 기업은 유한양행으로 찬성률이 90.0%였다. 유한양행은 전체 140표 중 찬성 126표, 보류 13표, 기권 1건이었다. 유한양행은 다른 법인 투자에 대한 안건 2개와 지분 매각에 대한 안건의 보완과 추가 설명 요청을 사유로 보류 의견이 제시됐다. 유한양행에 이어 찬성률이 낮은 기업은 SK가 90.7%로 뒤를 이었고 한진 92.9%, 삼성중공업 92.9%, 엔씨소프트 93.7%, 네이버 94.9%, 한국전력공사 95.1%, KT 95.1%, 크래프톤 97.5% 순이었다.    자료 : CEO스코어. 2023년 주요 기업 이사회 사외이사 안건 찬성률. 최근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인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과 해외부동산 관련 대규모 손실 사태는 해당 금융회사 사외이사들이 거수기로 전락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홍콩 ELS는 올해 들어 1조 원이 넘는 손실이 확정됐다. 손실 규모가 올해만 6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부동산 투자 손실이 적지 않다. 금융회사 사외이사라면 이사회에서 위험성을 제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모두 침묵으로 일관했다. 연합뉴스는 최근 공시된 KB와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의 ‘2023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 보고서’를 분석해 봤다. 그 결과 이들 지주사 이사회에서 논의된 총 162건의 결의 안건에 사외이사가 반대표를 던진 건은 하나도 없었다. 3건의 수정·조건부 가결을 포함해 100% 이사회에서 가결됐다. 만약 이사회에서 홍콩ELS와 해외 부동산 투자 문제가 제기됐다면 투자자 손실을 줄일 수 있었고 금융회사의 신뢰도 추락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5대 금융지주 37명의 사외이사는 위험한 투자 상품에 침묵했다. 그러면서 평균 7500만 원이 넘는 연봉과 건강검진 등 복리후생 혜택을 누렸다.    자료 : CEO스코어. 2023년 이사회 사외이사의 안건 찬성률 100%인 기업 비중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사외이사가 ‘고액 연봉을 받는 거수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선임 방식에 있다. 사외이사 선임 때 지배주주 입김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고 사외이사를 ‘방탄용’으로 활용하려는 인식이 강하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사외이사가 독립성을 잃고 대주주 눈치를 보게 된다.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일반 주주가 피해를 보는 안건이 올라와도 문제를 제기하거나 반대표를 던지지 못하는 것이다. SK와 KT 등 일부 기업이 사외이사 선임 방식을 조금 개선했는데도 안건 찬성률이 낮아진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사외이사를 선임하거나 연임을 결정할 때 대주주가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만이 ‘안건 찬성률 99%’라는 비정상을 바로 잡고 저평가 된 한국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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