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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임진강, 기다림이 흐르는 곳

임진강, 기다림이 흐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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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에서 바라보는 임진강은 늘 조용하다. 아니, 그렇게 보인다. 분단 이후 수십 년 사람의 오고 감은 끊겼지만, 물의 오고 감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북녘 산지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고, 파주의 들녘에 이르러 방향을 틀어 동에서 서로 흐른다. 통일대교 아래 장단반도에서 휘돌아 한강을 만나고, 다시 서해로 나아가는 긴 여정이다.   바다의 흔적을 드러내는 임진강 기수역의 기러기들.  2017. 06.09 전선희 촬영. 시민언론 민들레 북에서 떠내려온 나뭇가지와 씨앗, 때로는 낯선 물건에 묻은 이름 모를 흙의 냄새까지, 강은 매번 새로운 소식을 품고 내려온다.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누구도 막지 못한 교류다. 그래서 이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경계’라는 말이 점점 흐릿해진다. 철조망은 강둑 위에 서 있지만, 강 위에는 서지 못한다. 물 위에 선을 긋는 일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진강은 그렇게 경계이면서 동시에 경계를 무너뜨리는 존재로 남는다. 임진강의 또 다른 얼굴은 하루 두 번 바다를 들이는 데서 드러낸다. 밀물과 썰물이 강 안쪽 깊숙이 스며드는 기수역.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불안정한 환경에서 오히려 생명은 더 풍부해진다. 염분의 농도가 시시각각 변하는 물길을 따라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가 함께 드나들고, 갯벌과 습지에는 수많은 생명이 자리를 잡는다. 강이면서 바다이고, 바다이면서 강인 이 중층의 세계는 어느 하나의 질서로 설명되지 않는다.   임진강 기수역에서 재두루미 한 쌍과 오리들이 먹이 활동을 하고 있다. 2023. 01. 14 전선희 촬영. 시민언론 민들레  철새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먹이가 풍부하고, 물과 땅의 경계가 완만하게 이어지는 이 기수역은, 생명들에게 넉넉한 쉼터이자 먹이터다. 물고기들이 오르내리는 길 위로 새들은 계절을 따라 내려앉고 다시 떠난다. 인간이 그어놓은 선과 무관하게, 야생의 존재들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간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강의 표정도 달라진다. 특히 겨울의 임진강은 얼어붙은 듯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아래로는 여전히 물이 흐른다. 밀물이 밀고 올라왔다 썰물이 쓸고 나가면, 두꺼운 얼음은 깨지며 비명을 남기고 갯벌 섞인 거대한 얼음덩이로 흩어진다. 부빙과 모래톱 사이에서 새들은 모여 자고, 쉬고, 먹고, 먹히며 치열한 겨울을 건넌다. 임진강은 새들만 품고 흐르는 강이 아니다. 인간에게도 오랫동안 생계를 잇게 한 물길이었다. 적어도 한국전쟁 이전까지는 그랬다. 전쟁 이후, 민통선의 겨울은 유난히 길고 가난했다. 1960년대 초, 파주 운천리의 한 주민이 언 강변으로 땔감을 구하러 나갔다가 미군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얼음이 채 녹지 않은 강가, 마른 갈대와 나뭇가지 사이에서 벌어진 그 짧은 순간은 오래 남았다. 이 사건은 훗날 주한 미군의 법적 지위와 책임을 규정하는 한미 SOFA(주둔군 지위) 협정 논의의 한 배경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임진강 기수역에서 먹이 경쟁을 하는 독수리와 흰꼬리수리들. 2023. 01. 18 전선희 촬영. 시만언론 민들레  그러나 제도의 언어로는 다 담기지 않는 것이 있다. 강가에는 한 사람이 멈춘 자리와 그 자리를 기억하는 시간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임진강은 그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흘렀지만, 그 물결 위에는 설명되지 않는 침묵이 오래 머문다. 파주에서 임진강이 동서로 방향을 바꾸는 순간은 특히 상징적이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오던 흐름이 옆으로 몸을 틀어 새로운 길을 만든다.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변주다. 흐름은 끊어지지 않고, 다만 방향을 바꿀 뿐이다. 마침내 임진강은 한강과 만난다. 서로 다른 이름의 강이 만나 더 큰물이 되는 지점에서 경계는 사라진다. 이름도, 출발도, 지나온 시간도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의 바다를 향해 함께 흘러간다.    그래서 임진강을 바라보는 일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선다. 그것은 기억을 마주하는 일이자, 동시에 미래를 상상하는 일이다. 멈추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언젠가는 현실의 경계 또한 흐릿해질 거라는 희망 말이다.  임진강은 오늘도 북에서 남으로, 그리고 동에서 서로 흐른다. 그리고 하루 두 번 바다를 불러들였다가 다시 돌려보내며,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은 채 흘러간다. 그 흐름 속에서 문득 생각하게 된다. 경계란 멈춤이 아니라, 서로를 스며들게 하는 또 하나의 방식일지 모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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