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오신 날도 살았던 시기도 다른 부처님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희용 문화비평가·언론인
도솔천에 살던 호명보살은 현세의 부처로 태어나기 위해 북인도 카필라바스투 왕비 마야부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석가(샤카)족 왕국인 카필라투스는 오늘날 네팔 타라이 지방이다. 이때 마야부인은 상아 여섯 개를 지닌 흰 코끼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태몽을 꿨다. 코끼리는 힘과 지혜를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인데, 수만 마리 중 하나꼴로 나타난다는 흰 코끼리는 희소성 때문에 더욱 추앙받는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의 대웅전 벽화. 왼쪽은 마야부인이 태몽을 꾸는 장면을 묘사한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이고 오른쪽은 룸비니동산에서 싯다르타가 탄생하는 모습을 담은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이다. (이희용 촬영)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난 ‘천상천하 유아독존’ 부처님
마야부인은 친정에서 출산하기 위해 고향인 데바다하로 가다가 룸비니동산에서 무우수(無憂樹) 가지를 잡고 서서 산통도 느끼지 않은 채 오른쪽 옆구리로 아이를 낳았다. 그가 훗날 석가모니가 되는 고타마 싯다르타다. 고타마는 성이고 싯다르타는 ‘모든 일이 뜻대로 이뤄진다’는 의미다. 인도에서는 브라만(성직자)은 입, 크샤트리아(귀족)는 옆구리, 바이샤(평민)는 다리, 수드라(노예)는 발바닥에서 태어난다고 믿었다. 혹자는 이 설화를 두고 마야부인이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다가 출혈이 심해 7일 만에 숨졌다고 주장한다.
네팔 카트만두 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각 ‘싯다르타 태자의 탄생’. 마야부인이 무우수 가지를 잡고 선 채로 출산하는 장면을 돋을새김으로 묘사했다. (조계종 제공)
싯다르타는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뒤 오른손으로는 하늘, 왼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 하늘 위와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도다. 온 세상이 고통 속에 빠져 있으니 내 마땅히 이를 편안케 하리라”란 뜻이다.
걸을 때마다 발자국에서는 연꽃이 피어났으며, 용 아홉 마리가 감로수를 뿜어 싯다르타를 씻어주었다. 이때부터 연꽃은 코끼리와 함께 불교의 상징이 됐으며, 부처님오신날에 양손 검지로 하늘과 땅을 각각 가리키는 아기 부처를 목욕시키는 관불식(灌佛式)을 치르는 풍습이 나왔다.
불기 2568년 부처님오신날인 2024년 5월 15일 조계사에서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오른쪽)과 원로회의 의장 자광 스님이 아기 부처를 목욕시키는 관불(灌佛) 의식을 치르고 있다. (조계종 제공)
석탄일·불탄절 등 어감 안 좋아 대신 정한 부처님오신날
5월 24일은 불기 2570년 부처님오신날이다. 1975년 공휴일로 지정될 당시의 정식 명칭은 석가탄신일이었다. 30년 앞서 공휴일이 된 크리스마스의 공식 명칭(기독탄신일)과 비슷하게 정한 것이었다. 크리스마스를 흔히 성탄절(聖誕節)로 줄여 부르는 것처럼 석가탄신일도 석탄절(釋誕節)이나 석탄일로 약칭하다 보니 석탄(石炭) 기념일로 오해하는 사례가 잦았다. 불탄절(佛誕節)이라고도 했으나 ‘불에 탄 사찰’이란 놀림을 받았다.
1975년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제정을 기념해 서울 아차산 영화사에 세운 비석. 전면에 한자 전서체로 ‘釋誕日公休制定紀念碑(석탄일공휴제정기념비) 라고 새겼고, 맨 위에는 탄생불을 조각해놓았다. (조계종 제공)
불교계에서는 석가는 샤카라는 고대 인도의 특정 민족 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어서 적절치 않고 부처님오신날이 한글화 추세에도 맞다”며 명칭 변경을 요청했다. 정부는 글자 수가 많은 데다가 존칭이 들어가 다른 종교인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며 수용하지 않다가 2018년부터 공식적으로 바꿨다. ‘초파일(初八日)’은 ‘음력 초순의 팔일’을 뜻하는 말로 4월을 앞에 붙이지 않아도 통상 부처님오신날을 지칭한다. ‘ㄹ’ 받침이 탈락한 것은 ‘유월(六月)’이나 ‘시월(十月)’처럼 발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활음조 현상이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조계사를 비롯한 전국 사찰에서는 일제히 봉축법요식을 올린다. 그러나 네팔, 스리랑카, 몽골 등 이주민 스님이 운영하는 사찰에서는 1주일 뒤인 31일 별도의 석가탄신일 기념 행사를 또 치른다. 우리나라와 중국·대만·홍콩 등 동아시아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이 음력 4월 8일이지만 태국·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스리랑카 등 대부분의 동남아시아·남아시아 국가에서는 음력 4월 15일이다.
충남 아산시 음봉면 신정리 마하위하라사원 법당에서 스리랑카 출신의 담마끼띠 스님이 석가모니불을 향해 합장 배례하고 있다. 이곳은 남방불교 전통에 따라 음력 4월 15일인 5월 31일 봉축 법요식을 올릴 예정이다. (이희용 촬영)
인도력으로 둘째 달인 베삭(Vesak)월 보름에 석가모니 탄생을 기리는 전통에 따른 것으로, 이날을 베삭데이(Vesakday)라고 부른다. 네팔은 네팔력으로 1월 15일에 봉축행사를 열고, 메이지유신 때 설이나 단오 등 모든 음력 명절을 양력으로 바꾼 일본은 양력 4월 8일에 ‘하나마쓰리(花祭)’를 열어 불단에 꽃을 바친다.
1956년 11월 네팔 카트만두에서 열린 WFB(세계불교도우의회) 제4차 총회에서는 양력 5월 15일을 석가탄신일로 통일하기로 했으나 무산됐다. 1998년 스리랑카 콜롬보 총회에서는 양력 5월 중 보름달이 뜬 날로 바꿨다가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유엔본부는 콜롬보 총회 결의대로 양력 5월에 드는 음력 15일을 부처님오신날로 기념하는데, 대부분 음력 4월 15일과 일치한다.
남방불기 보다 483년 앞선 북방불기
불기(佛紀)도 오랫동안 논란이었다. 대부분 역사학자는 아소카왕 석주(石柱)와 사서 기록을 토대로 석가모니 생몰 연도를 기원전 566~486년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460~380년이라는 학설도 있다. 불기를 따지는 기준은 역사적 고증 연도와 다르다. 서력기원(西曆紀元·서기)도 예수 탄생이 기준인데도 실제로는 기원전 6~4년에 태어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남방(상좌부)불교는 석가모니 생존 시기를 기원전 624~544년으로 보는 데 비해 북방(대승)불교는 1027~948년으로 잡고 있다. 400년가량 차이가 날 뿐 아니라 기간도 다르다. 남방불기는 석가모니 입멸(入滅)을 기준으로 삼는 반면 북방불기는 탄생한 해가 원년이어서 남방불기보다 483년 앞선다.
우리나라는 북방불기를 써오다가 1956년 WFB 총회에서 남방불기에 맞춰 그해를 불기 2500년으로 정하자 1966년부터 WFB 결정을 따르고 있다. 이전에 세워진 강원도 고성 건봉사의 돌솟대와 양양 낙산사의 재건기념비, 경기도 수원 봉녕사의 삼층석탑 등에는 북방불기 연도가 새겨져 있다. 올해는 북방불기로 3053년이다.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 세워진 돌솟대에는 불기 2995년이라고 새겨져 있다. 서기로 환산하면 1928년이다. (조계종 제공)
부처님 열반 시기에 따라 달라지는 말법 시대
서기나 불기는 인간이 정한 것이고 역사적으로 정확하지도 않다. 그러나 종말 사상이나 미래에 대한 예언 등과 결합해 첨예한 논쟁을 불러오는가 하면 때로는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한다. 미국 침례회 설교자 윌리엄 밀러가 예수 재림을 1844년 10월 22일로 예언했다가 빗나간 이른바 ‘대실망 사건’과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 등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일으킨 1992년 10월 28일 휴거 소동이 대표적이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열반 이후를 정법(正法)·상법(像法)·말법(末法) 시대로 구분한다. 부처님 가르침이 초기 정법 시대에는 제대로 받아들여지다가 차차 희미해져 인륜과 도덕이 타락하는 말법 시대가 끝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이다. 시대별 기간은 각각 500년, 1000년, 1만 년으로 보는 게 일반적인데, 시작점이 정확하지 않아 여러 주장이 난무한다.
말법 사상은 미래불의 출현을 고대하는 미륵 신앙과 관계가 깊다. 20세기 이후로는 증산 계통의 신흥종교에서 더 적극적으로 수용해 포교에 활용하고 있다. 이곳의 지도자들은 북방불기설을 믿고 있으며 정법·상법·말법 시대를 1000년씩으로 본다. 이미 불기 3000년이 지났으니 말법 시대도 지나고 후천개벽(後天開闢)을 맞이하는 끝자락에 와 있다는 것이다.
등 하나 바치고 성불한 가난한 여인 난타
석가 세존이 사위국에 머물 때 국왕과 귀족 등 많은 사람이 각기 신분과 부에 걸맞게 음식, 등, 꽃, 향 따위를 석가모니에게 바쳤다. 가난한 여인 난타는 온종일 구걸해 얻은 동전 두 닢으로 작은 등과 기름을 사서 세존이 지나가는 길에 불을 밝히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밤이 깊어가고 세찬 바람이 불어 사람들이 밝힌 등이 하나둘씩 꺼지는데도 난타의 등은 꺼질 줄 몰랐다. 이를 본 세존이 이 여인은 등불 공양의 공덕으로 성불(成佛)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빈자일등(貧者一燈)의 고사성어가 유래됐으며 연등회(燃燈會)의 뿌리가 됐다.
연등회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9세기 통일신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는 경문왕과 진성여왕이 각각 866년과 890년 정월 보름에 황룡사로 행차해 연등을 보았다고 적어놓았다. 불교를 국교로 삼던 고려 때는 연등회가 국가적 행사였으며 숭유억불(崇儒抑佛)을 국시로 내세운 조선에서도 민간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제등 행렬이 서울 종로의 밤거리를 수놓고 있다. 2026.5.16. 연합뉴스
이 전통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대에도 이어지다가 1975년 공휴일 제정과 함께 규모가 확대되고 행사도 다채로워졌다. 처음에는 연등회의 하이라이트인 제등(提燈) 행렬을 부처님오신날 밤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펼치다가 1990년대부터는 사찰마다 자체 행사를 마련하느라 바로 전 주 토요일로 바꾸고 출발지도 동대문운동장, 동국대, 동대문(흥인지문) 등지로 옮겼다.
연등회는 2012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으며, 외국에서도 보러 몰려오는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5월 16일 제등 행렬에는 로봇 스님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 동대문 앞에서 출발한 제등 행렬의 맨 앞에 로봇 스님들이 걸어가고 있고 바로 뒤에 연꽃등을 든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진우 조계종 총무원장,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따르고 있다. 2026.5.16. 연합뉴스
사찰 1년 수입 절반 차지하기도 하는 초파일 연등달기
각 사찰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이 1년 중 가장 큰 명절이자 대목이다. 불교계는 부처님오신날과 함께 출가절(음력 2월 8일), 성도절(成道節·음력 12월 8일), 열반절(음력 2월 15일)을 4대 명절로 기념하고 있으나 그냥 넘기기 일쑤다. 성탄절과 함께 부활절도 중요시하는 기독교와 비교된다.
불자들은 기독교에 견주어 정기적으로 절을 찾는 횟수는 적은 대신 1년에 한 번 초파일 때 등을 다는 것은 가급적 챙기려고 한다. 절에 등값을 내면 이름, 주소(직함), 발원문을 적은 꼬리표를 등에 걸어주는 방식이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서울 조계사 직원이 신도들의 발원이 담긴 이름표를 대웅전 앞마당 연등에 달고 있다. 2026.5.19. 강기석 촬영
절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지만 초파일 등값이 1년 수입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말도 있다. 조계종에서는 절마다 분담금을 책정하기 위해 총무원에서 파견된 직원이 연등에 달린 이름표 개수를 세어 절의 재정 규모를 추산할 정도다.
그런데 등값은 자리와 크기에 따라 다르다. 보통 대웅전 안에는 20만 원, 다른 법당 안에는 10만 원, 바깥에는 3만 원에서 5만 원 하는 식이다. 호화롭게 장식한 장엄등은 50만 원이나 100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절 규모에 따라 가격이 더 올라가기도 한다.
보통 법당 안은 연꽃 모양의 연등(蓮燈)으로 천장을 장식하고 바깥에는 만월등이나 팔각등을 단다. 법당 안 가장 좋은 자리의 등은 해당 지역 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 같은 유력 인사들의 차지다. 절에서 먼저 이름표를 달아놓고 등값을 나중에 청구하는 사례도 많다.
참사 유족, 난민, 장애인을 맨 앞자리에 앉히자
빈자일등의 고사와는 사뭇 다른 세태다. 부처님의 탄생을 기뻐하고 평등과 자비의 가르침이 온 세상에 퍼지기를 기원하는 봉축 행사의 취지와도 어긋난다. 비록 적은 돈을 내더라도 소외계층이나 빈곤가정 등 사회적 배려 대상자들의 이름과 그들의 소망이 적힌 등을 가장 돋보이는 자리에 걸어주는 것은 어떨까.
조계사에서 열리는 봉축 법요식에도 맨 앞자리를 장관, 국회의원, 시장, 각 종교 지도자 등으로 채울 게 아니라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유족, 해고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난민, 장애인 등을 초대해 앉히고 가장 먼저 부처님께 헌화하고 절하도록 배려하면 부처님오신날 풍경이 한층 포근해지지 않을까 싶다.
서울 조계사 앞 우정국로에 마련된 전통문화마당에서 외국인들이 등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연등회 제공)
이희용 줌렌즈 hoprav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