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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바로가기 : 아빠 사랑해 ? 이상민 판결과 이태원 유가족의 슬픔

아빠 사랑해 ? 이상민 판결과 이태원 유가족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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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이태원 참사 엿새째인 3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조문하고 있다. 2022.11.3. 연합뉴스 법원은 윤석열 정권 ‘12.3 쿠데타’의 핵심 공범인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는 검찰이 구형했던 형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찬탈하고 독재와 학살을 불러오려 했던 내란죄의 엄중함에 비추어 볼 때,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상민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었다. 그는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하기 직전 집무실로 호출한 ‘핵심 6인’ 중 한 명이었다. 경찰 조직과 국가 치안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는 내란 수행 과정에서 시민들의 저항을 억누르고 국가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는 핵심 기관이다. 그 수장이 내란의 중심에 있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상민은 쿠데타에 반대한 흔적을 찾기 어려웠으며, 지난해 초 재판 과정에서는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에 대한 깊은 공감을 드러내며 미안해하기까지 했다. 대통령의 고심이 크셨을 수밖에 없겠구나, 그 말씀을 듣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 그 고심을 당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그렇게까지 고민을 못한 게 상당히 죄송했다.   관련 기사 화면 갈무리 이 발언은 내란 성공에 더 헌신하지 못한 하수인의 아쉬움을 보여줬다. 실제로 이상민은 윤석열의 내란을 돕기 위해 헌신했다. 그는 소방청장에게 연락해 , , , 등 정권 비판적인 언론사에 대한 단전·단수를 지시했다. 이는 언론의 입을 틀어막아 정보를 통제하고 쿠데타를 성공시키려던 시도였다. 이 지시가 실행되지 못한 것은 이상민이 도중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밤새 국회와 거리를 지키며 맨몸으로 총칼을 막아선 위대한 시민들 때문이다. 그가 대통령 접견실에서 상의 안주머니 속에서 내란 문건을 꺼내 읽는 모습은 영상 증거로도 명백히 남았다. 이는 그가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의 공모자였음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더욱 기가 막힌 사실은 재판 과정에서 이상민 측이 내놓은 변명이다. 이상민과 그의 변호사는 이태원 참사를 경험했기에 계엄 선포 이후 걱정이 앞서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안전 점검을 했다 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159명의 생명이 스러져 갈 때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던 자가 내란 범죄를 덮고 빠져나가기 위한 핑계로 비극적 참사를 들먹인 것이다. 이는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고 유가족들의 가슴에 다시 한번 못을 박는 파렴치한 행태였다. 윤석열 정권과 이상민은 이태원 참사 이후 단 한 번도 진심 어린 반성과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극우 정치인과 유튜버들을 앞세워 유가족들의 입을 막고 그들을 죽도록 괴롭히도록 방조했다. 만약 이번 내란이 성공했다면, 저들이 참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어떻게 짓밟았을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진실을 외치는 유가족들 역시 내란군의 체포와 수거 대상 명단에 올랐을지 모른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대한민국의 ‘법조 카르텔’이 판사 출신인 이상민 같은 이른바 ‘신성가족’ 일원에게 유독 너그러웠던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23년, 민주당 주도의 국회는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물어 이상민 장관에 대한 탄핵안을 의결했다. 그러나 당시에도 헌법재판소는 이를 기각하며 그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당시 유가족들은 무너져가는 마음을 부여잡고 헌법재판관들에게 이 땅에 소망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라는 절절한 호소가 담긴 탄원서를 수차례 제출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답은 차갑고도 분명했다. ‘우리가 살려주고 싶은 것은 이태원에서 죽어간 159명의 생명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와 이상민 행안부 장관과 이 국가의 통치 질서’라고 말이다. 이태원 희생자인 신예진 님의 아버지 신정섭 님은 그날의 참담함을 자신의 저서 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7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이상민 탄핵 이 기각되었다.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탄핵 심판을 방청하러 간 아내를 데리러 헌법재판소로 달려갔다. 우는 아내의 어깨를 잡고 무작정 걸었다. 우리는 갈 곳도, 가고픈 곳도 없었다. 땅으로 꺼지고 싶었고 하늘로 올라가고 싶었다. 이 나라에서는 우리가 밟을 땅이 하나도 없었다.   신정섭 특별한 날은 특별히 아프다   이상민에게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진 이번 선고를 보며, 유가족들은 다시금 그때와 같은 참담함을 느낄 것이다. 그나마 7년 형이라도 확정된 것을 보며 쓰린 마음을 억지로 달래고 있을 이들의 모습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심지어 이상민이 이태원 참사 당일 보여준 무능과 직무 유기에 대한 수사나 처벌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속에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들이 보내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점점이 박혀 있다. 신정섭 님은 딸이 남긴 휴대폰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매일 아침 그 휴대폰 알람 소리에 의지해 하루를 시작한다. 애진이 휴대폰의 알람이 이제는 나를 깨운다. 일어나라고, 사는 게 힘들면 그저 하루씩만 살아내라고 애진이가 속삭이는 것 같다. 부부는 딸을 생각하며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고통 속에서도 함께 울지 못한다. 우리는 함께 울지 않는다. 둘 다 무너지면 안 되니까. 서로의 슬픔이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릴까 봐 각자의 방에서 숨죽여 우는 이들의 삶을 생각하면, 이번 재판 과정에서 이상민 가족들이 보여준 모습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다. 이상민의 자녀로 보이는 가족들은 선고와 구형이 이루어질 때마다 법정이 떠나가라 외쳤다. 아빠, 사랑해! 이상민은 그런 가족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물론 자녀로서 나이 든 아버지가 수감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플 수는 있다. 더욱이 이상민은 자녀들에게 수많은 ‘찬스’를 안겨준 참으로 고마운 ‘아빠’였다.    관련 방송 화면 갈무리 인사청문회 당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상민은 20대였던 아들과 딸이 서울 강남구의 고가 아파트를 매입할 수 있도록 5억 원을 증여하고 3억 원을 대출 보증해 주었다. 이상민은 자신이 몸담고 있던 로펌에서 자녀가 인턴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이번 내란 수사 과정에서는 그의 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액의 현금 돈다발까지 발견되었다. 이런 이상민이 그 자녀들에게 ‘고맙고 사랑스러운 부모’인 것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그 ‘사랑’을 소중히 여겼다면, 이번 재판을 지켜보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의 마음이 어떨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어야 한다. 염치가 있었다면 조용히 눈물을 훔쳤어야 했다. 오로지 자기들만의 비뚤어진 사랑은 누군가에게는 폭력 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는 절망 속에서도 슬픔을 나누며 더 크고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문하는 시민과 나는 서로 말없이 고개 숙이며 인사만 나누었지만 서로의 몸에서 촉수가 뻗어 나와 손을 맞잡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숨을 쉴 수 있었다. 신정섭 님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시민들에게 노란 리본과 보라색 리본을 나누어주던 밤을 회상한다. 지성 아빠가 이태원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한 리본을 무료로 나눠 드립니다 라고 외치면 아내는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리본을 무료로 나눠 드립니다 라고 외치며 화답했다. ···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 아내는 싱긋 웃고는 오늘 밤이 참 좋았어 라고 말하고는 다음에 또 가자며 내 손을 잡았다.     12·3 비상계엄 당시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를 전달하는 등 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뒤 이석하고 있다. 이 전 장관은 징역 7년형을 선고 받았다. 2026.2.12. 연합뉴스 슬픔이 슬픔을 만나고, 고통이 고통을 알아볼 때 인간은 비로소 죽음 같은 절망을 딛고 일어선다. 다른 이의 슬픔에 손을 내밀 때, 내 슬픔의 크기는 그대로여도 고통은 견딜 수 있을 만큼 줄어든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나의 슬픔을 누군가에게 꺼내놓을 수 있게 된다. 꺼낸 슬픔은 다른 슬픔과 만나 더 큰 슬픔이 된다. 희한하게도 슬픔이 커지는데 고통은 줄어든다. 나만의 슬픔이 아니라 우리의 슬픔이 되기 때문이다. 신정섭 님은 먼저 떠난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삶의 새로운 의미를 다짐한다. 어떻게 해야 너와 함께 살 수 있을지 생각한단다. 너의 의미를 빚어가는 삶이라면 네 몸은 비록 세상에 없지만 너는 기억으로, 의미로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우리가 받은 공감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어. 가슴에만 머물지 않고 발로 걸으며 연대하는 삶을 찾고 있어.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잖아. 이 다짐은 말로만 끝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윤석열의 쿠데타 선포 직후에 목숨을 걸고 국회 앞으로 달려갔을 뿐 아니라, 부당하게 탄압받는 노동자와 소수자, 그리고 집단학살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집회 현장까지 어디든 달려가 손을 잡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다시는 국가 권력에 의해 짓밟히지 않고, 이 땅에서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다가올 항소심에서 이상민에게 명확하고 타당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외면했던 159명의 죽음, 이태원 참사의 책임에 대한 수사와 처벌 또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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