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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을 공무원 취급…비판 용납 않는 러시아 정부
[사회혁신]
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인문사회대 교수 2014년 러시아에서 ‘리바이어던(Leviathan)’이라는 영화가 공개되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개봉했다 기보다는 세상에 나왔다 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공개 직후 전국 영화관에서 상영이 전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2014년 무렵의 러시아는 아직 정부가 예술을 지금처럼 심하게 검열하던 시절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이미 그때부터 정부의 눈밖에 나 있었다. 심각한 사회 문제나 민감한 도덕적 이슈 등 러시아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던 그는 이번에도 정부가 껄끄러워할 만한 주제를 꺼내 들었다. 평범한 시민이 거대한 권력에 맞서다 결국 무기력하게 패배하고 마는 줄거리의 이 영화는 지방의 빈곤, 만연한 폭음, 가정 폭력, 권력의 부정부패 등 러시아 사회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영화 리바이어던 포스터 러시아의 영화는 예술인가, 국가 위신을 위한 것인가 당시 러시아에서는 이 영화를 둘러싸고 아주 흥미로운 사회적 논쟁이 벌어졌다. 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한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에 관한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답했다. 영화감독은 예술인이 아니다. 국가 예산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일 뿐이며 국가의 돈을 받았으면 국가에 유리한 영화를 찍는 것이 상식이다.” 이에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즉각 맞받아쳤다. 그 돈은 당신들의 돈이 아니다. 평범한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낸 혈세다. 전 국민의 세금으로 권력에 취한 소수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야말로 비상식”이라며 국민의 돈으로 만든 영화를 평가하는 것은 오직 국민의 몫”이라고 잘라 말했다. 2010년대 중반에 권력과 예술 간의 이러한 공개적인 충돌은 큰 이목을 끌며 예술의 역할에 관한 뜨거운 논쟁을 촉발했다. 일부 사람들은 ‘리바이어던’ 같은 영화가 국가의 이미지를 훼손하기 때문에 정부의 상영금지 조치가 합당하다고 주장한 반면에 예술은 반드시 자유로워야 한다고 반박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정부가 집행하는 예산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갑론을박도 치열했다. 그러나 세금 개념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 사이에서는 소련 시절을 연상하게 하는 대변인의 발언이 오히려 더 큰 공감을 얻기도 했다. 12년이 흐른 지금 똑같은 상황이 다시금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당사자인 감독과 대통령실 대변인도 그대로다. 그 동안 긴 시간이 흘렀고 러시아 국내 상황도 많이 변했지만 권력과 예술의 갈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니, 배로 더 심화되었다. 칸 영화제 수상 감독과 대통령실 대변인 간 치열한 설전 2026년 5월에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신작 미노타우로스 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 10년 만에 새로운 작품으로 돌아온 감독은 시상식 무대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며 푸틴 대통령과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푸틴을 향해 명분도 끝도 보이지 않는 학살과 같은 이 전쟁을 하루빨리 끝내 달라고 촉구했다. 이어 전쟁 발발 후 러시아를 떠난 수많은 예술가와 시민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며 우크라이나인들 역시 빨리 평안을 되찾고 평화 속에서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간절한 소망을 내비쳤다. 러시아 국영 언론들은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대상 수상 소식에 철저히 침묵했다. 언론이 감독의 공개적인 도발에 대해 묻지도 않았음에도 대통령실 대변인은 자진해서 입을 열었다. 그는 감독에 관한 소식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생각이 없다면서 러시아를 떠나 적의 편에 선 감독은 러시아를 비판하거나 대통령과 국민을 향해 뭐라고 할 자격이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공개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맞습니다. 나에게는 아무런 말을 할 권리가 없죠. 러시아에 사는 1억 3000만 명의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당신들이 단 한 번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적 없듯이 나의 목소리 또한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지요.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의미도 없이 전쟁을 일으킨 당신들이 지금 당장 이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러시아라는 이름의 열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가 막다른 길에서 대체 어떤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영화감독과 대통령실 대변인 사이의 이 공개적인 설전이 러시아에서 화제가 된 이유를 이해하려면 러시아의 역사를 아주 조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예술의 권력 견제는 러시아의 오래된 역사 러시아에서 예술은 언제나 권력을 견제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19세기 제정 시대 황제를 비판하고 사회 개혁을 촉구하는 운동을 주도한 것은 문인들이었고 20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 예술은 단지 세상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권력 비판, 사회적 과제 제시, 국가 정체성 모색 등 막대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권력이 일반 국민을 탄압할 때는 순응하더라도 예술인을 탄압하기 시작하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 현상은 외국인들의 눈에 신기하게 비치는 러시아만의 독특한 역사적 특징이다. 구소련 시절 가장 혹독한 탄압을 받았던 이들 역시 작가들이었다. 스탈린 시대 수용소 굴라그 를 전 세계에 알린 솔제니친은 국가에 의해 추방당했다가 소련 해체 후 옐친의 도움으로 조국에 금의환향한 바 있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푸틴을 가장 강력하게 비판해 온 작가 보리스 아쿠닌은 런던에서 이민 생활을 하고 있으며 즈비아긴체프 감독 역시 러시아를 떠난 지 오래다. 러시아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은 바로 예술가라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다. 그래서 이번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발언은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극장 개봉작에 대한 치밀한 검열, 정부의 언론 장악, 야권 매체의 전면 폐간, 금서 조치의 부활 등은 현재 러시아가 처한 참담한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벨랴코프 일리야 수원대 교수 abnormal.ily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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