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과 스타벅스, 퇴행을 이겨낸 민주시민의 분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진행된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정 회장은 5·18민주화운동 영령과 유가족,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깊은 상처를 드렸다 며 그룹을 대표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고 밝혔다. 사진은 19일 서울 시내의 한 스타벅스 매장 앞. 2026.5.19 연합뉴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피로 쓰인 역사 위에 서 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이 그러했고, 거슬러 올라가면 1948년 제주 4·3 사건과 여순 항쟁이라는 뼈아픈 상흔이 존재한다. 세대를 이어온 시민들의 투쟁과 촛불혁명은 한국 사회의 민주적 가치를 진화시켰지만,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태들은 역사의 단죄와 기억의 보존이 얼마나 엄중한 과제인지를 다시금 일깨우고 있다.
하필 5·18 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일에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코리아(SCK컴퍼니)가 진행한 부적절한 마케팅 프로모션은 국민적 공분과 함께 대기업의 역사 인식 부재를 드러내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5월 18일, 광주의 아픔에 탱크 를 들이밀다
사건의 발단은 스타벅스코리아가 모바일 어플리케이션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텀블러 할인 행사의 홍보 문구였다. 스타벅스는 탱크 라는 명칭의 제품군을 판매하는 과정에 5월 18일 당일을 탱크데이 로 명명했다.
1980년 5월 신군부의 전차와 총칼에 스러져간 광주 시민들의 비극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조합이었다. 더욱이 해당 홍보 페이지의 좌측에는 책상에 탁! 이라는 문구가 병기되어 있었다. 이는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치안본부가 발표했던 거짓 해명(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을 그대로 연상시키는 표현이었다. 80년대 민주화운동 전체를 조롱하고 폄훼하려는 의도가 아니고서는 결코 성립될 수 없는 조합이라는 비판이 즉각적으로 쏟아진 이유다.
여론의 분노는 들불처럼 번졌다. 분노한 시민들은 스타벅스 텀블러를 직접 찌그러트린 사진을 X(옛 트위터) 등 SNS에 올리며 다시는 사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불매 릴레이를 이어갔다. 한 시민은 텀블러를 훼손한 사진을 올린 후 채널A 기자가 취재를 요청하자 채널A는 안 된다 며 단호하게 거절하는 일화를 공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스타벅스 측은 탱크텀블러데이 , 작업 중 딱~ 등으로 문구를 급히 수정했으나, 이는 도리어 과오를 자인하는 꼴이 되어 불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대학생의 외침으로 시작되어 전방위적 파장으로
이번 사태는 박태훈 진보당 전국대학생위원회 준비위원장의 날카로운 문제 제기로 아주 빠른 시간에 공론화되었다. 박태훈 위원장은 SNS를 통해 스타벅스의 5월 18일 탱크데이 , 기획자가 이 날의 역사적 의미와 혐오의 맥락을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면서도 감행했다면 공모 라며 강하게 질타했다.
이어 이 기업의 최대주주가 정용진이 이끄는 신세계라는 사실은 이 사건이 실수로 보이지 않게 만든다 고 지적하며 과거 정 회장의 멸공 논란과 윤석열의 계엄 이후 행보를 꼬집었다. 학살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의 의무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윤리이며, 그 윤리를 마케팅 소재로 소비하는 순간 기업은 역사 왜곡의 공범이 된다 는 그의 외침은 시민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정치권의 비판도 즉각적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일 오후 SNS에 역사적인 광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광주 희생자들과 시민들의 피어린 투쟁을 모독하는 5·18 탱크데이 이벤트라니,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런 짓을 저질렀을까 라고 되물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공동체와 기본적 인권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이런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 며 마땅히 상응하는 도덕적, 행정적, 법적, 정치적 책임이 주어져야 한다고 강하게 언급했다.
광주전남추모연대 역시 천박한 역사인식으로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며 사죄를 촉구했다. 외신들 또한 한국의 고통스러운 현대사적 기억과 비극을 상업적인 마케팅으로 악의적으로 조롱한 이번 사태를 주요 뉴스로 비중 있게 보도하며 국제적인 논란으로 비화시켰다.
사태가 수습 불가능한 수준으로 확산되고 그룹 전체에 역풍이 불자, 스타벅스코리아 본사는 행사를 즉시 중단하고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공지했다.
그럼에도 공분이 잦아들지 않자 당일 저녁 손정현 스타벅스코리아 대표는 5·18 영령과 박종철 열사 유가족, 광주 시민에게 머리 숙여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는 내용의 2차 사과문을 배포했다. 하지만 파문이 지속되자 결국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은 당일 오후 손정현 대표에게 즉각적인 해임을 통보하며 일벌백계의 초강수를 두었다.
스타벅스코리아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진행한 ‘탱크데이’ 프로모션으로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SNS에서는 스타벅스 컵을 깨거나 텀블러를 파손하는 등의 영상이 확산하고 있다. X 갈무리
반복되는 역사적 퇴행, 그리고 극우화의 본질
시민들이 이번 사태에 이토록 강하게 분노한 배경에는 현대사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민주주의의 위기 에 대한 자성과 성찰이 자리잡고 있다. 5·18의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국민들은 최근 12·3 불법 비상계엄 등 헌정 질서를 뒤흔드는 내란성 사건들을 목도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역사학계와 시민사회는 이러한 극우화의 뿌리가 5·18 이전 제주 4·3 사건과 여순 항쟁에서부터 이어진 국가폭력의 용인, 그리고 그에 대한 철저한 단죄 실패에 있다고 짚는다.
과거 민주 정부들이 화해와 상생 이라는 명목 하에 전두환·노태우 등 내란 세력을 너무 쉽게 사면하고 자성의 기회를 주었던 것이 결과적으로 독이 되었다는 지적이다. 관용이 사치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시민들은 이제 섣부른 타협과 용서는 극우 세력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줄 뿐 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민주시민들은 박근혜 탄핵 이후 너무 빨리 저들에게 기회를 주며, 자연스럽게 극우에서 멀어질 것이라 착각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2021년 새해 벽두 이낙연 당시 민주당 대표의 사면 타령에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사면을 거론했던 과거(박근혜는 문재인 정부가 사면, 이명박은 윤석열 정부가 사면했음)를 뼈아프게 되돌아본다.
그 와중에 극우 세력들은 몸을 낮추고 와신상담하며 재기를 노렸고, 교묘한 선동을 위해 물밑에서 종교 세력과 결탁해 움직였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국 동안 전 세계가 한국의 대응을 모범사례로 칭찬할 때, 극우들은 종교의 힘을 빌려 백신 후유증이나 예배 금지 등을 공격하며 문재인 정부 악마화를 시도했다.
팬데믹이 끝난 후에는 일상으로 돌아온 시민들을 향해 백신 무용론과 백신 음모론을 퍼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질병을 막고자 최선을 다했던 방역 정책조차 과잉 대응이었다는 프레임을 씌우며 대중을 세뇌해 왔다.
관용의 종말, 단호한 단죄와 성숙한 민주시민 의식
대한민국의 민주시민들은 쓰라린 역사적 경험을 통해 학습하며 진화해 왔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겪어낸 토대 위에서 권토중래하여 박근혜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시민 혁명을 이루어냈고, 결국 이명박까지 감옥에 보냈듯 오늘날의 국민들은 역사의 퇴행을 좌시하지 않는 더 높은 수준의 의식을 체화하고 있다.
민주시민들의 민주의식이 극우 세력보다 더욱 높았기 때문에 우리는 탄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며, 이제는 더 이상 극우화가 심각해지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함을 알고 실천하고 있다.
이번 스타벅스 불매운동과 신속한 대표이사 경질은 퇴행하는 세력이나 기업에 대해 시민사회가 직접 강력한 금융 치료와 사회적 처벌을 내릴 수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다. 극우화는 대화로 풀릴 문제가 아니며, 강력한 처벌과 제재로만 막아낼 수 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쉽게 사면했기 때문에 극우의 대를 끊지 못했고, 대수장(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 같은 단체가 전두환과 노태우의 공범이었던 내란범들을 옹호하며 활동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에서 결코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다시금 얻었다. 피로 이룩한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향후 더 심각한 극우화를 막아내기 위해서는, 섣부른 화해와 용서 대신 명확한 책임 규명과 엄격한 법적·경제적 응징이 선행되어야 한다.
민주시민들의 분노가 살아있는 한, 역사를 조롱하는 거대 자본과 퇴행적 세력이 대한민국에 발 붙일 수 없을 것이다.한요나 시민기자 hanyon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