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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종말이 올 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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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영화평론가 시라트는 천국과 지옥을 잇는 다리이다. 건너가려는 자는 명심해야 하는데, 그 길이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롭기 때문이다. 시라트는 아랍어로 Sirāt이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을 담은 기록인 하디스에 나온다. 최후의 심판 때 모든 인간이 낙원으로 가려면 건너야 한다. 그런데 말했다시피 머리카락보다 가늘고 칼날보다 날카로운 길이다. 낙원으로 간다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지 않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을 보면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된다. 설령 시라트를 건넜다 치자, 도달한 곳이 과연 낙원인가. 그곳은 뭐가 그렇게 다른가. 천국을 간다고 해서 뭐가 좋아지는 걸까.   칼날같이 날카롭고 얇은 길 위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사건들 감독인 올리베르 라셰(Óliver Laxe)는 칸영화제가 키우는 감독이다. 칸과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는 그런 곳이다. 자신들이 직접 발굴한 감독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지속해서 육성한다. 라셰의 영화는 2016년 가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대상을 타고 2019년 이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심사위원상을 탔다. 이번 는 지난해인 2025년에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공동으로 수상했다. 영화제의 이런 부문들이 다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칸영화제라는 행사가 워낙 몸집이 커지다 보니 자신들의 ‘분신 덩어리’를 자꾸 만들어 붙인 것이다. 공식 경쟁이 다양한 영화를 소화하지 못하자 그 대안으로 비평가들이 영화제 안에 또 다른 영화제인 비평가주간을 만들었고 그것조차 새로운 신예들을 발굴하지 못하자 그 다음엔 ‘주목할 만한 시선’이란 작은 영화제를 영화제 안에 또 만든 것이다. 각각의 크고 작은 영화제는 상을 주고 받는다. 올리베르 라셰는 세 곳 모두에서 상을 탔다는 얘기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이 갖는 주목도가 높다는 얘기지만 한편으로는 칸의 오만과 편견도 어느 정도 개입돼 있다는 얘기이다. 이 작품이 칸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해서 지레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지는 말라는 얘기이다. 영화제의 모든 상은 정치적 바이어스가 개입돼 있기 때문이다. 는 칸이나 올리베르 라셰란 이름보다는 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페드로 알모도바르란 이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페인의 거장이고 영화 역사상, 지구 역사상 가장 발칙한 영화를 만드는 인물이다. 생에 대한 지적 성찰이 남다르다. 그가 라셰의 작품을 픽업해서 제작비를 모았다는 점은, 이 영화에 남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보증수표와 같은 얘기이다. 영화는 114분의 러닝타임에서 막 1시간이 지나가면서(정확하게는 64분에)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는 걸 보여준 후 충격에 충격을 거듭 주는 사건이 속수무책으로 이어진다. 가 주는 충격의 정서는 필설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저 놀랍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시라트란 단어가 떠오른다. 칼날같이 날카로운 길. 머리카락보다 얇은 길. 어찌 사람이 살아 나갈 수 있다는 말일까.   사막에서 레이브 파티 전전하는 딸을 찾아나선 아빠와 아들 영화의 서사는 한 줄이다. 로그 라인이 시놉시스의 전부이고 트리트먼트의 전부이며 어쩌면 시나리오의 전체이다. 이건 글의 영화가 아니다. 음향과 소리, 음악, 폭음 그리고 비명의 영화이다. 로그 라인은 단 한 줄이다. 루이스라는 중년의 남자(세르지 로페즈. 맞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에서 악역인 비달 대위가 그이다)가 어린 아들 에스테반(브루노 누녜스 아르호나)과 피파라는 이름의 강아지와 함께 딸을 찾아다니는 이야기이다. 딸의 이름은 마르이다.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딸은 사막의 레이브 파티를 전전하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섯 달째 소식이 없다. 이들 부자가 사막을 뒤지고 다니는 이유이다. 레이브 파티는 반복적인 기계음을 어마어마한 크기의 스피커로 틀어 대며 몸을 흔드는 음악 파티이다. 보통 테크노 음악 파티로 생각하지만, 테크노는 음악이 중요하고 레이브는 음악만큼 장소와 공간이 중요하다. 광장, 루프탑, 사막 같은 곳을 레이버들이 굳이 찾아다니는 이유이다. 어떤 공간에서 레이브 파티를 하느냐는 그들의 자유주의, 자유로운 영혼, 그러한 정치학을 대변한다. 에서 레이브 파티가 벌어지는 곳은 모로코 사막이다. 이들의 파티는 중간에 일단의 군인들에 의해 강제 해산된다. 정변이 일어났을까? 상황은 모호하다. 그것보다는 전 지구적 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인물들은 3차 대전이 일어난 거지?”라고 말한다. 레이버들이 차 안에서 듣는 라디오 뉴스, 이슬람 성지인 메카에서 대규모 기도회가 열리는 장면 등은 세상이 심상치 않음을 암시한다. 군인들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하려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레이버 중의 한 명은 트럭을 몰고 가면서 옆의 친구에게 지구의 종말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라고 말한다. 세계는 망하고 있다고, 영화는 지속해서 얘기한다.   생각할 틈도 없이 종말의 아수라장에 빠져드는 일행 루이스 부자와 레이버 5명은 군인들의 감시를 피해 사막 더 깊숙이 도망을 친다. 그들은 또 다른 사막에서 예정돼있는 레이브 파티에 가려 한다. 루이스와 에스테반도 당연히 이들을 따라나선다. 찾는 딸이 여기 없다면 거기에 있을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영화는 사막과 황무지를 횡단하는 트럭과 밴의 여정을 이어간다. 중간중간 차가 구덩이에 빠지고 물을 만나고, 서로 헤어질 뻔하다가 다시 마음을 합쳐 길을 헤쳐 나간다. 차가 길을 달리면 달릴수록 영화 속 그들이나, 영화 밖 관객이나 지금 우리는 다들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목적성을 상실했다는 자각이 문득 차오른다. 또 다른 레이브 파티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가. 거기를 향해 이들 모두가 가기는 가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곧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는 단순히 생과 사의 경계가 한순간이라는 식의 고답적인 얘기를 하는 영화가 아니다. 생과 사보다 더 무섭고 공포에 찬 일은 생과 사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참사의 일상화’이다. 돌이켜 보면 참사는 그 강도와 심각성이 점층적으로 올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세상이 문명화될수록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또는 사람이 사람에게 쳐놓은 여러 장치와 시스템이 거칠기 짝이 없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다. 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그 ‘참사의 일상화’라는 그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다들 안전하거나 다행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폭력의 순간이 여지없다는 것이며 가차 없다는 것이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생각의 순간을 갖지 못하면 사람들은 대혼란을 겪는다. 아수라장은 이런 것이다. 는 세상의 종말이 만드는 아수라장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도시 권력자가 총칼 휘두를 때 사막의 레이브가 평화 아닌가 영화가 공개된 이후 어떤 관객은 ‘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반응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는 다소 개인적인 아젠다를 그린다. 성형을 통해 젊어지려는 욕망이 얼마나 괴물 같은가를 얘기한다. 그러나 는 그보다 훨씬 깊은 심연의 얘기이다. 세상의 문제라는 거대 담론을 담고 있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때 사람들, 우리, 당신과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 실존주의적 질문을 하는 작품이다. 당신은 이런 와중에 어떤 삶의 가치를 추구할 것인가. 가치가 있다는 말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가. 가치가 없는 세상에서 가치를 잃었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말인가, 아니면 그냥 무의미한 말장난에 불과한 것인가. 는 사막의 얇은 길(영화를 보면 실제로 등장인물들이 차바퀴 자국이 남긴 얇은 길을 따라 걸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을 따라가며 사람들에게 깊은 성찰과 사색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사막을 경유하며 올로케이션으로 촬영을 감행한 프로덕션의 투지가 놀랍다. 오프닝 신에서 공연 스태프들이 사막 한가운데에 대형 스피커의 산을 쌓고 만드는 장면, 그걸 풀 쇼트로 보여주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어딘가에는 세상 한 편으로 의도적으로 밀려나 있으려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도피주의는 어쩌면, 정치적이다.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정치를 피해 정치를 반대하는 행동이다. 유럽 남부에서, 중남미의 한 가운데에서, 그리고 미국의 한 도시에서 권력자들이 사람들을 짓밟고 자신들 권력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총칼을 휘두를 때 아프리카의, 듣도 보도 못한 사막의 구석에서, 레이브 파티를 즐긴다는 것은 이상한 평화의 기시감을 준다. 전쟁하지 말고 (몸을) 흔들라. 영화 중반 레이버 여자는 ‘큰일’을 당한 루이스에게 일종의 환각용 약초를 먹게 한 후 몸을 움직이며 ‘다 털어 버리라’고 외친다. 그리고 그 여자 역시 ‘엄청난 일’을 당한다.   살아남는 게 여전히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가치 주인공 남자 루이스는 딸을 찾겠다는 개인의 일념밖에 없던 인물이다. 그에겐 레이브 파티의 음악이 똑같은 소음으로만 들리지만, 어느 순간 딸의 말을 기억해 낸다. (이 음악은)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춤을 추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다 다른 소리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루이스는 모든 걸 잃은 후에야 먼저 앞장서 걸으며 다른 사람들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의 변화’를 일으킨다. 이제 루이스는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 간다. 그래도 그 역시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살아남는 게 여전히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가치라는 것을 간신히 알아챈 표정이 된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결말에 대한 해석은 각자 보는 사람들의 몫이다. 는 영화가 여전히 새로운 무엇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진보하고 진화하고 있음을 일깨운다. 적어도 스페인계 프랑스 감독인 올리베르 라셰는 그렇다. 할리우드 영화와 특히 한국 영화로 하여금 각성하게 만든다. 지난 1월 21일 개봉했다. 당연히 흥행은 그리 잘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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