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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엔 문제 안고, 베이징엔 관계 트러 가는 정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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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 첫 장면은 권력의 본질을 보여준다. 코를레오네의 집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이 문턱을 넘는 이유는 다분히 계산적이다. 누군가는 보호를 원하고 누군가는 보험을 원한다. 다툼이 생겼을 때 앙갚음을 해 줄 힘, 혹시 모르는 상황에서 자기 몫의 손실을 줄여 줄 능력을 기대하며 찾아오는 것이다. 대부의 집은 문제해결의 장소요 두려움의 공간이다. 겉으로는 행복한 잔칫집 같지만 실은 모두가 음흉한 계산서를 품고 들어가는 곳이다. 손님 북적이는 베이징, 두려움 속 흥정의 공간 워싱턴 지금의 워싱턴이 바로 코를레오네의 집이다. 최근 유럽 정상들이 미국을 찾은 이유는 관계 증진을 위함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 제재와 에너지, 나토와 방위비 같은 구체적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침공해 대통령을 체포하는가 하면 그린란드의 소유권을 두고 군사력을 동원할 의사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며 끝내 이란을 때려 세계 전체를 온통 뒤흔들고 있다. 모두가 찾지만 반가워서가 아니라 안 하면 영 찝찝하고 뒷덜미가 서늘해 찾는 집이 지금 미국이다.   5월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만난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 2026. 5. 14 AP=연합 반면 베이징은 다른 종류의 집이다. 강희제 시절 청의 궁정은 ‘세상의 중심’과 같은 활기로 가득 찼었다. 조공은 사라졌지만 지금 베이징 역시 세계 각국의 흔쾌한 방문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닮았다. 유럽 정상들이 중국을 찾는 이유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거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스페인의 산체스 총리는 4년 연속 중국을 찾고 있고, 영국의 스타머는 8년 만의 방중에 기업 대표단을 대동했으며, 독일의 메르츠도 관계 리셋과 시장 접근을 위해 베이징에 갔다. 미국 방문이 위기 조정형이라면 중국 방문은 관계 관리형이다. 미국의 최근 전략문서는 중국을 유일한 경쟁상대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NSS)은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상호주의와 공정성의 관점에서 전면적으로 재조명하고, 동맹과 파트너를 결집해 공급망과 산업경쟁력 차원에서 중국을 압박하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이어 국방전략(NDS)은 국토방어 다음의 최우선 과제로 중국 억지를 제시하고, 인도태평양에서 동맹국의 비용 분담을 더욱 강하게 요구했다. 미국의 대중 전략은 무역, 기술, 군사, 동맹을 모두 엮어 전면전을 펼치는 모습이다. 자기 마음대로 상황을 주무르기 위해 판을 다시 짜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를 조조로 만들려는 중국의 만만디 외교 중국은 조급하게 돌파하는 대신 느린 포위 작전을 펼치고 있다. 베이징은 트럼프의 조급증을 역으로 활용해 자신을 개방된 세계 무역의 수호자로 다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유럽연합, 걸프, 환태평양 지역과의 거래를 넓히고, 스무 건 안팎의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면서 미국의 봉쇄를 정면으로 깨는 대신 미국의 봉쇄가 점점 덜 먹히는 환경을 만들려는 것이다. 미국이 소란을 피울수록 중국은 상대적으로 안정과 거래의 언어를 구사하려 한다. 상대의 급한 마음을 이용해 상황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미국이 이란을 때리는 과정에서 아태지역에서의 안보 공백이 훤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당장 대만으로 돌진하지 않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의 중국은 힘이나 결단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자기편이라고 보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다. 4월 10일 시진핑 주석이 베이징에서 대만 국민당 총재 청리윈을 만난 장면은 상징적이다. 늘 해오던 대로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은 이어갔지만 중국은 ‘평화’와 ‘교류’를 말하는 야당 지도자를 접견실로 불러들였다. 중국은 지금 국제여론의 흐름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계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굳이 대만 침공으로 판을 깨며 세계의 반감을 한꺼번에 뒤집어쓸 이유가 없다. 왕이 외교부장의 평양행도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4월 9-10일 왕이는 최선희 외무상과 회담하고 김정은도 만났다. 표면상으로는 조중우호조약 65주년, 전략적 소통, 고위급 교류 복원이다. 그러나 속내는 복합적이다. 팬데믹과 조러 밀착으로 느슨해진 조중관계를 다시 죄고 평양을 모스크바 일변도의 궤도에서 조금이라도 다시 끌어당기려는 뜻이 읽힌다. 미국과 장기 경쟁을 벌이는 중국으로선 조선을 완전히 러시아 변수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 조중관계를 복원하는 일은 미국 쇠퇴 이후의 질서를 준비하는 주변 정리 작업이기도 하다.   김정은 조선 국무위원장이 지난 10일 평양을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접견한 뒤 작별포옹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2026.4.11 유럽 정상들이 중국을 찾는 목적도 이 흐름 안에서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베이징으로 달려가는 것은 중국에 굴복한다는 뜻이 아니다. 미중 대결 구도에서 중국에 자신들의 미래를 걸겠다는 의미도 아니다. 유럽이 중국에서 확인하고 싶은 것은 시장이고 공급망이고 희토류고 외교적 호의다. 한마디로 안보는 여전히 미국에 기대지만 경제와 외교의 공간은 중국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넓혀 보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중국은 강희제의 궁정처럼 보인다. 세계가 중국과 관계를 맺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아서 드나드는 장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5월 13-15일 트럼프의 중국행 역시 전 세계적으로 공신력과 신뢰를 상실한 미국이 살 궁리를 위해 중국에 머리를 조아리는 형국이다. 적벽에서 참패한 조조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종속도 줄타기도 아닌 전략적 자율성으로 세계로 열린 서울 여기서 한국의 선택이 중요하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국익을 중심에 놓고 주체성을 지키는 것이다. 미국은 당분간 우리의 안보 보험일 수 있다. 그러나 보험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도구다. 더군다나 현재의 미국은 동맹을 수탈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한미동맹은 한국 국익을 지키는 수단으로만 써야 한다. 미국의 모든 전략에 자동 편승하는 것은 종속이다. 중국과는 더 밀착해야 하지만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다. 관계 복원은 최대한 밀어붙여야 하지만 종속은 피해야 한다. 경제, 공급망, 문화, 관광, 산업 협력의 채널은 넓게 열수록 좋다. 동시에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한다는 낡은 구도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필요한 것은 전략적 자율성이다. 우리의 운명을 강요받지 않겠다는 의지요, 우리가 갈 길을 우리가 선택하겠다는 결기다. 안보협력의 축은 미국에 두더라도 경제의 공간은 중국만이 아니라 아세안, 인도, 유럽, 중동, 남미로 넓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남의 집 문턱만 넘는 나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각국이 서울에 와 기술, 공급망, 방산, 에너지, 한반도 문제를 논의하게 만들어야 한다. 한국이 추구해야 할 것은 선택지를 설계하는 나라요 타국이 끊임없이 드나드는 국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3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최 국빈 방한 환영 오찬에서 답사하고 있다. 2026.4.3. 연합뉴스 이경렬 전 대사 지금 세계는 두 개의 집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무시하면 다칠 수 있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친해두면 얻을 것이 생길 것 같은 집이다. 한국의 과제는 그 둘 중 하나의 머슴이 되는 데 있지 않다. 미국과는 손실을 막는 외교를 하고, 중국과는 이익을 키우는 외교를 하며, 그 사이에서 우리의 외교지평을 넓히는 데 우리의 행동지침이 있다. 워싱턴에는 문제를 들고 가되 휘둘리지 말고, 베이징에는 관계를 들고 가되 기대에 포획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 한국 외교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현실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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