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판결 백서 의 간행을 제안한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국가는 그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해방 이후 64년, 반민특위가 해체된 지 60년이 지나도록 친일 부역의 역사는 공식 기록으로 정리된 적이 없었다. 연구자와 시민이 십수 년을 모아온 힘으로 사전은 완성되었고, 그것은 국가 기억을 대신하는 시민 기억이 되었다.
사법의 역사 앞에서 우리는 지금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조봉암은 1959년 사법 살인을 당했고, 2011년에야 무죄를 돌려받았다.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인은 대법원 선고 18시간 만에 처형되어 훗날 무죄 판결을 받았다. 긴급조치 위반자들, 광주민주화운동 참가자들, 이름 없는 노동자들에게 쏟아진 유죄 판결들은 하나하나 뒤집혔다. 그러나 그 판결들을 기록한 백서는 없다. 그 판결들을 내린 법관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공식 기록되지 않았다. 잘못을 뒤집은 재심 법정에서도,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문에서도, 국가가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급한 영수증 어디에도 그 이름들은 없다.
국가와 사법부는 스스로 그 일을 하지 않는다. 역사가 이미 증명했다. 그렇다면 시민이 먼저 나서야 한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 연합뉴스
독일 - 도구는 있었으나 칼날은 무뎠다
1947년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시대 법관과 검사 16명이 재판을 받았다. 법복을 입은 자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는 원칙을 국제법 차원에서 처음 확립한 재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미군이 주도한 외부의 심판이었다. 독일 스스로의 청산은 달랐다.
전후 독일은 형법에 법왜곡죄를 명문화했다. 법관이 고의로 법을 왜곡한 경우 최고 5년의 자유형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나치 사법의 반성에서 나온 제도적 안전장치였다. 그런데 이 조항은 정작 나치 법관들에게는 단 한 번도 적용되지 않았다. 법원의 논리는 이러했다. 나치적 확신에 기해 판결했다면 법왜곡의 고의가 없다. 법정형이 징역형인 범죄에 사형을 선고한 것조차 신념의 문제로 면죄한 것이다. 더 충격적인 것이 있다. 동독 판사는 같은 법으로 처벌하면서, 나치 법관은 독립된 법관 으로서 면책했다. 적의 판사에게는 칼을 들고, 자국 판사에게는 방패를 들었다.
기록의 공백도 심각했다. 1990년부터 2016년까지 독일의 오판 사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연구는 2020년에야 처음 나왔다. 오판이 적어서가 아니라, 기록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청산은 했으나 끝을 보지 못했다
1944년 해방 이후 프랑스는 비시 정권 부역자 청산에 착수했다. 약 30만 건이 조사됐고 수천 명이 유죄 선고를 받았다. 사법부에 대해서는 별도의 중앙숙청위원회를 설치해, 전체 판사의 약 10%를 제재하고 33명을 형사처벌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모순이 있었다. 살아남은 판사 거의 전원이 비시 정권에 충성 맹세를 한 전력이 있었다. 단 한 명만이 서명을 거부했다. 청산을 집행해야 할 사람들 자신이 청산 대상과 같은 전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1951년과 1953년 두 차례 사면법이 통과되면서 청산은 흐지부지 끝났다. 2024년 파기원 명예 재판장이 한림원 강연에서 비로소 인정했다. 비시 점령기에 사법부가 담당했던 역할에 대해 오랫동안 침묵이 지배했다. 해방으로부터 80년이 지난 후의 고백이었다.
영국- 시민의 30년 캠페인이 제도를 만들었다
1970년대 영국에서는 IRA 테러 수사 과정에서 대형 오심이 잇따랐다. 버밍엄 6인, 길퍼드 4인 사건이 대표적이다. 강압 자백과 증거 조작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16년씩 복역했다. 이 사건들이 드러나자 시민단체 정의 (JUSTICE)가 독립적 재심사 기구의 필요성을 수십 년간 주장했다. 의회 캠페인, 피해자 지원, 학술 연구가 30년 넘게 이어진 끝에 1997년 형사사건 재심위원회(CCRC)가 문을 열었다. 정부가 위에서 만들어준 것이 아니었다. 시민의 요구가 아래에서 제도를 밀어올린 것이었다.
미국 - 기록이 개혁을 이끌었다
1) 이노센스 프로젝트의 탄생
1992년, 뉴욕 카도조 법대의 변호사 두 명이 작은 클리닉을 열었다. DNA 기술이 무죄를 증명할 수 있다면, 이미 감옥에 있는 사람들의 오판도 뒤집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이노센스 프로젝트다. 시작은 보잘것 없었다. 그러나 이 조직은 개별 사건을 구제하면서 동시에 모든 사례를 데이터로 쌓아갔다. 오판의 원인을 분석하고, 패턴을 찾고, 제도 개혁을 요구했다. 현재까지 250건 이상의 무죄를 확정지었고, 미국 형사사법 개혁의 핵심 동력이 됐다.
2) 국가 무죄선고 기록소(National Registry of Exonerations)
필자가 구상하는 백서와 가장 가까운 외국 선례는 이것이다. 2012년 미시간대, 미시간주립대, UC어바인이 공동으로 만든 이 데이터베이스는 1989년 이후 미국의 모든 무죄선고 사례를 집대성했다. 2025년 기준 3698건의 사례가 등록됐다. 사건명, 판결 법관, 오판 원인, 손실된 수감 연수, 인종 분포까지 모든 것이 공개 데이터베이스에 담겨 있다. 누구나 검색하고, 분석하고, 인용할 수 있다. 경찰의 조직적 비위로 집단 무죄 처리된 사건만을 담은 별도 데이터베이스도 운영된다.
이 기록소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명확한 철학이 있었다. 공동 창설자 새뮤얼 그로스 교수는 말했다. 이 사건들은 우리가 모르는 훨씬 더 많은 비극들을 가리키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기록은 보이는 것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다.
비교의 교훈 - 무엇이 청산을 막았는가
네 나라의 경험을 가로질러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독일은 법왜곡죄라는 형사 도구가 있었다. 뉘른베르크라는 선례가 있었다. 그러나 나치 법관은 한 명도 처벌받지 않았다. 법관이 법관을 심판하는 구조에서, 칼은 아군에게 향하지 않았다.
프랑스는 에퓌라시옹이라는 청산 기구가 있었다. 전체 판사의 10%가 제재를 받았다. 그러나 청산 집행자들 자신이 비시 정권에 충성 맹세를 한 전력이 있었고, 결국 사면법으로 흐지부지됐다.
영국은 시민단체의 30년 캠페인 끝에 독립 재심 기구가 생겼다. 그러나 그 기구도 최근 자기 실수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은 독립적 시민 기구와 학술 기관이 협력해 기록을 쌓고, 그 기록이 개혁의 증거가 됐다.
세 나라의 공식 청산이 공통적으로 실패한 이유는 하나다. 청산을 집행해야 할 사람들이 청산 대상과 같은 집단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법관이 법관을 심판하고, 검사가 검사를 수사하고, 사법부가 사법부의 역사를 기록할 때, 그 기록은 언제나 자신에게 유리하게 편집된다.
미국의 경험이 다른 것은, 청산의 주체가 시민과 학술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기록을 만드는 사람들이 기록 대상과 이해관계가 없었다. 그래서 그 기록은 살아남았고, 개혁의 무기가 됐다.
친일인명사전이 해낸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다. 국가가 아닌, 이해관계 없는 시민과 연구자들이 독립적으로 기록을 만들었다. 법원도 검찰도 정부도 아닌 사람들이 이름을 적어냈다. 그래서 그 기록은 반박될 수 없었다.
백서가 해야 할 일
첫째, 사실의 기록이다. 이미 공식 확인된 오심들부터 시작할 수 있다. 재심 무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과거사위원회 진실 규명 결과 — 국가가 이미 잘못을 인정한 사건들이 있다. 인혁당, 조봉암, 긴급조치 피해자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약촌오거리 사건, 삼례 나라슈퍼 사건. 이름을 기다리는 판결들은 이미 그곳에 있다.
사건별로 정리해야 할 것은 세 가지다. 어떤 판결이 어떤 맥락에서 내려졌는지, 누가 그 판결을 내렸는지, 이후 어떻게 뒤집혔는지. 미국 국가 무죄선고 기록소처럼, 오판에 기여한 원인- 강압 수사, 증거 조작, 권력의 개입, 법리 왜곡- 을 유형화해야 한다.
둘째, 구조의 분석이다. 개별 오심을 고립된 사고로 보면 안 된다. 일제 사법의 DNA가 어떻게 독재 권력의 도구로 재활용되었는지, 민주화 이후에는 어떻게 자본 권력과 유착했는지, 패턴과 계보를 드러내야 한다. 독일에서 2020년에야 처음 나온 오판 연구가 기록 부재가 문제였다 고 결론 내린 것처럼, 한국도 구조를 분석할 기록이 없다면 같은 오판이 반복된다.
셋째, 공개 원칙이다. 친일인명사전이 이름을 공개함으로써 역사적 경각심을 만들어냈듯, 백서도 무죄 확정된 사건의 판결 법관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이것은 낙인이 아니라 기억이다. 독일이 나치 법관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결과, 그들 다수는 전후에도 법복을 입고 계속 판결을 내렸다. 기억되지 않는 불의는 반복된다.
시민 편찬기구의 설계
편찬의 주체는 특정 정파나 정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오랜 세월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며 신뢰를 쌓아왔듯, 백서도 독립적 시민 연구기구의 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구성: 법학자, 법조인, 역사학자, 피해자 가족, 시민운동가로 편찬위원회를 구성한다. 특정 정당과의 거리 두기를 명문화한다.
재정: 크라우드펀딩과 시민 구독으로 재정 독립성을 확보한다. 친일인명사전도 시민 모금으로 완성됐다.
형식: 인쇄 백서와 온라인 공개 데이터베이스를 병행한다. 미국 국가 무죄 선고 기록소처럼 누구나 검색하고 인용할 수 있도록 한다.
갱신: 일회성 간행이 아니라 연속 갱신 구조로 만든다. 매년 새로운 재심 무죄와 위헌 결정을 추가 등재한다.
영국 CCRC의 역사가 보여주듯, 이 백서는 장기적으로 법적 권한을 가진 독립적 사법 재심사 기구 - 한국판 CCRC - 로 발전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에, 기록이 먼저다. 제도는 기억 위에서만 지속된다.
보복이 아니라 백신이다
친일인명사전이 간행될 때 거센 반발이 있었다. 명예훼손 소송도 잇따랐다. 이미 지난 일 이라는 항변이 나왔다. 그러나 사전은 버텼고, 시간이 그 정당성을 증명했다.
『잘못된 판결 백서』도 같은 도전을 받을 것이다. 사법부의 권위를 훼손한다 는 반론,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 는 우려가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경험을 보라. 법왜곡죄라는 제도가 있어도, 자기 성찰 없는 사법부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경험을 보라. 공식 청산 기구를 만들어도, 청산 집행자가 청산 대상과 같은 편이면 칼날은 무뎌진다. 영국의 경험을 보라. 독립 재심 기구도, 시민의 끊임없는 압력이 없으면 제 기능을 잃는다.
잘못을 기록하지 않는 기관은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이것은 인류가 수십 년에 걸쳐, 여러 나라에서 반복 확인해온 진실이다. 백서는 사법부를 공격하는 도구가 아니다. 사법부가 다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경계를 세우는 일이다. 보복이 아니라 백신이다.
영혼의 농지개혁 을 향하여
1949년 조봉암의 농지개혁은 땅의 주인인 농민에게 토지를 돌려주었다. 지주 계급이 독점하던 생산수단을 해방한 그 개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농지개혁을 해야 한다. 사법이라는 권력을 법조 엘리트에게서 주권자 국민에게 돌려주는 영혼의 농지개혁 이다. 그 개혁은 국회에서 특별법을 만들기 이전에, 시민이 먼저 역사를 정리하는 데서 시작한다.
독일은 뉘른베르크를 가졌고 법왜곡죄를 가졌다. 그러나 기록하는 시민이 없었을 때, 나치 법관들은 전후에도 판결을 내렸다. 프랑스는 에퓌라시옹을 가졌다. 그러나 사면법 앞에서 청산은 멈추었다. 영국은 30년 캠페인 끝에 독립 기구를 얻었다. 그 캠페인의 출발은 피해자의 기록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도 기록 없이 청산은 없었다. 제도 없이 기억이 사라졌고, 기억 없이 제도는 공허해졌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시민의 힘으로 이룬 나라가, 사법의 역사 앞에서는 왜 이토록 오래 침묵해왔는가. 그 침묵을 깨는 것이 우리 세대의 몫이다.
시작은 오늘 할 수 있다. 이름들은 이미 그곳에 있다. 인혁당 8인을 사형에 처한 판사들의 이름. 조봉암에게 간첩 낙인을 찍은 법관의 이름. 강기훈에게 유서대필 유죄를 선고한 판사의 이름. 긴급조치 위반자들을 감옥에 보낸 법관들의 이름.
그 이름들은 역사의 기록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역사의 빚은 커진다.
『잘못된 판결 백서』의 간행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