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의 ESG적 생각】GRESB가 주목받는 이유에 대하여 [교육] GRESB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GRESB(Global Real Estate Sustainability Benchmark·글로벌 실물자산 지속가능성 벤치마크)는 부동산 실물 자산과 운용사를 대상으로 환경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더불어 이해관계자와의 관계까지 종합하여 입체적으로 평가한다.
GRESB는 부동산 부문에 초점을 맞춘 형태로 2009년에 출범했다. 현재는 인프라를 포함한 실물 자산을 다루는 형태로 커버리지가 확대됐다. 평가는 경영ㆍ관리(Management)가 30% 비중이고, 기축의 경우 성과(Performance)가, 신축 및 대수선의 경우 개발(Development)이 각각 70% 비중을 차지한다. 상대평가 체계이며, 매년 상위 20%가 최고 등급의 영예를 안게 된다.
자산뿐 아니라 운용사의 ESG 정책까지 다각도로 평가
특히 경영ㆍ관리 부분에서는 정책, 리더십, 보고체계, 이해관계자 관여(Stakeholder Engagement), 리스크 관리 등을 체크한다. 자산의 친환경성뿐 아니라 회사의 ESG 정책과 경영 투명성 등까지 다각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최근 GRESB 평가 결과가 공개되면서, 국내 주요 부동산 자산운용사들의 GRESB 결과가 연이어 기사화되기도 했다. 마스턴투자운용도 GRESB 최고 등급인 ‘5스타(Five-Star)’를 획득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마스턴투자운용의 GRESB 평가 대상 자산인 ‘디타워 돈의문’은 서울시 종로구에 소재한 프라임급 오피스다. 아시아 지역 비상장 오피스 중 평가 점수 전체 5위를 기록했다. 디타워 돈의문은 GRESB뿐 아니라 글로벌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인 LEED(Leadership in Energy and Environmental Design) O+M(Building Operations and Maintenance) 부문에서도 최고 등급인 ‘플래티넘(Platinum)’을 획득한 바 있다. LEED는 미국 그린빌딩협회(USGBC, US Green Building Council)가 개발한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활용되는 친환경 건축물 인증제도 중 하나이다.
GRESB 참여 증가세…친환경 건물이 가져다주는 비용 절감 효과
GRESB에 참여하는 글로벌 기업과 자산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2년만 해도 2019년에 비해 3년 만에 참여 자산이 2배나 증가했다. 국내 기업의 참여도 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그렇다면 GRESB와 같은 친환경 건축물 평가는 왜 주목받고 있는 것일까?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눠 그 배경을 살펴볼 수 있겠다. 첫 번째는 비용 절감이다. 친환경 건물이라고 하면 자재나 공법 때문에 비용이 더 많이 소요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한데 중장기적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은 꽤 흥미로운 대목이다.
건물을 탈탄소화하면 8000억 달러에서 1조 9000억 달러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고효율 난방, 환기 및 냉방 시스템, 단열 개선, LED 조명 등을 통해 유틸리티 비용을 낮출 수도 있다. 탈탄소화 흐름은 환경 보호 측면의 의무일 뿐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기회요인이 될 수 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 내 LEED 인증 건물의 비용 절감 수치를 살펴보자. 에너지 절감액 12억 달러, 물 절감액 1억 4950만 달러, 유지보수 절감액 7억 1520만 달러, 폐기물 절감액 5420만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녹색 건물이 돈을 아껴줄 수 있다는 증좌다.
‘부동산업계의 아마존’이 내놓은 분석, 기후 취약 주택의 가치는 하락한다는 것
두 번째는 친환경 인증 혹은 평가를 통한 자산 가치의 향상이다. ‘부동산업계의 아마존’이라고 불리는 미국 최대 온라인 부동산 판매 업체 질로(Zillow)는 최근 주택 소유자의 팔 할 이상이 새집을 구할 때 기후 위험을 고려한다고 분석했다. 실지로 일부 지역에서는 홍수, 산불, 허리케인, 가뭄의 발생 빈도가 증가하면서 기후에 취약한(climate-vulnerable) 주택의 가치는 하락하고, 기후에 탄력적인(climate-resilient) 주택의 가치는 상승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환경에 대한 중요성이 점증하는 시장 환경에서, 임차인은 어떤 빌딩에 입주할지 보다 신중하게 고려하게 된다. 이들이 몇 개의 층을 한 번에 쓸 수 있는 우량 임차인(Key Tenant)일 수도 있다. 권위 있는 친환경 인증 혹은 평가를 받은 빌딩은 임대차 시장에서 상대적인 경쟁 우위를 갖추고 임대료를 더 높게 책정하거나, 추후 자산의 매각 가격을 더 높일 수 있는 원동력을 가질 수 있다.
GRESB 점수가 1% 증가하면,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의 ROA(총자산이익률)가 1.3%, ROE(자기자본이익률)가 3.4% 증가한다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GRESB 점수가 10포인트 높아지면 펀드(유럽 사모 부동산펀드)의 연간 수익률이 34베이시스포인트(bp, 1bp=0.01%p) 높아졌다는 분석도 눈길을 끈다.
존스랑라살(JLL)의 ‘2022 미래 업무환경 설문조사(Future of Work Survey)’에 따르면, 조직의 70% 이상이 선도적인 지속가능성을 보이거나 친환경 인증을 받은 건물을 임대할 경우 프리미엄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바 있다. 22%는 미래형 시제가 아닌,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근로 환경을 둘러싼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건물에 탄소세가 부과되는 뉴욕, 그리고 앞으로의 정책 방향
세 번째는 현지 정책 및 규정 준수를 통한 이점 확보다. 미국 뉴욕시의 사례를 보자. 뉴욕시에 따르면, 2021년 건물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의 양(약 3600만 톤)은 차량에서 나온 양(약 1200만 톤)의 약 3배에 달한다. 내년부터 뉴욕시는 지방법 97조(Local Law 97)에 따라 일정 기준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건물에 벌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친환경 건축물 인증 및 평가와 거리가 먼 노후 자산(혹은 그런 자산을 관리하는 기업)은 이런 정책 도입에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건물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이 뉴욕만의 단일 사례는 아닐 터이다. 건물의 탄소 저감을 유도하는 것은 세계 각지에서 도시 행정의 공통된 정책적 지향점이 될 공산이 크다. GRESB 평가를 거친 건물은 이런 정책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 외에도 펀드 설정의 용이성, 차입 조달 비용 인하, 이후 매각의 용이성 등도 GRESB 평가의 장점으로 추가로 거론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은 피터 템플턴(Peter Templeton) 미국 그린빌딩협회 회장을 만나 ‘서울형 LEED’를 구축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광역지자체 차원에서도 친환경 건축물 인증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개별 건물을 넘어 도시 관점에서도 ESG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 김민석 팀장은
김민석 팀장(listen-listen@nate.com)은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인 마스턴투자운용에 재직 중이다. 브랜드전략팀 팀장과 ESG LAB의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경영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행정학·정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필명으로 몇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역임했고,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외부전문가 자문위원, 경기도사회적경제원 외부 전문위원, 서울에너지공사 시민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