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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데이] 누구나 다채롭게 상상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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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그림을 그릴 수 없다’.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공유되는 흔한 통념이다. 그런데 여기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가 들면, 가계 사정이 넉넉치 않으면 문화예술은 후순위로 밀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시선도 있다. 앞선 질문에 지치지 않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쩔 수 없다’라는 말 대신 ‘그럼 이건 어때?’라고 되묻는 사람들, 문화예술이 선명한 일상을 위해 꼭 필요한 상상력이라고 믿는 어나더데이의 이야기를 담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글>한 번의 좌절이 두 번째 좌절로 이어지지 않도록어나더데이(대표 김지은)는 시각 장애인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향기나는 물감, ‘비프터 페인트’를 개발한 기업이다. 이 밖에도 100여 개가 넘는 문화체험 키트를 만들어 취약계층, 다문화 가정, 노년층을 위한 다양한 취미 생활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기에 앞서,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지기 쉬운 기존의 현실을 변화시켜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비프터 페인트 관련 미팅을 진행하고 있는 김지은 대표의 모습 ©임팩트스퀘어 김지은 대표는 “제가 나고 자란 동네는 부산 안에서도 취약계층 및 고령, 장애인 비율이 높은 동네였다”며, “또한 어린 시절 할머니, 중증의 지적 장애가 있는 고모와 함께 생활을 했다 보니 일상 속에서 누군가는 쉽게, 취미로 접하는 문화예술이 누군가에는 높은 허들이 되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체감할 수 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김지은 대표 본인 역시 ‘문화예술은 곧 사치’라고 여겨지는 상황을 마주하며 성장했고, 사회인이 되고 나서야 문화예술 혹은 취미를 탐구할 수 있는 경험 대한 갈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문화예술이라는 범주에서 재능기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말씀드린 것처럼 고모가 중증의 지적장애를 가지고 계신데 우연찮게 문화예술 콘텐츠를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시게 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프로그램을 마치고 고모가 가져오신 결과물은 가족으로서 보기에는 처참한 수준이었어요. 고모가 사용하시기에는 부적절한 난이도, 프로세스의 프로그램이었던거죠. 어쩌면 그냥 넘길 수도 있는 한 번의 경험일 수 있지만 저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는 가족들은 비참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체험 콘텐츠는 늘 너무나 열악하고, 아쉬운 마음에 ‘이거라도 해보자’ 하고 경험하게 될 많은 아이들, 장애인들은 문화적 상상력을 키우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김지은 대표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별 것 아니라고 치부될 수 있는 문화예술 체험이 누군가에게는 좌절이 될 수도, 그것이 또 다른 경험을 스스로 제한해버리는 두 번째 좌절의 매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상상하고 도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미션이 생겨나고 난 뒤, 김지은 대표는 무상으로 문화체험 교육을 제공하며 여러 기관을 누볐다. 저소득 및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 노인, 장애인이라는 대상이 가진 페인포인트를 분석해서 각각의 상황과 니즈에 맞는 체험 프로그램을 직접 기획하기도 했다.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이 돌아와서 기쁜 것도 잠시, 새로운 한계에 부딪혔다. 김지은 대표 혼자서 커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범주를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어나더데이가 생겨나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문화체험 키트’라는 솔루션이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향기나는 물감으로 열어낸 새로운 가능성문화접근성이 가장 낮은 사람들이 누굴까 생각해보니 단번에 시각 장애인이 떠올랐다. 이들은 대체로 생존을 위한 교육 및 지원을 최우선적으로 받게 되는데, 2021년 문화예술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여러 고객군을 세분화하는 과정에서 김지은 대표는 시각장애인 관련 기관에서는 한 번도 키트 구매가 없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길로 500여 명의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서베이를 진행했다. ‘딱 한 가지를 배우거나 직접 해볼 수 있다면 무엇을 해보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에 돌아온 답변 중 가장 많은 답변은 메이크업과 그림 그리기였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 지, 혹은 나는 내가 바라보고 싶은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것이다. “저희 유튜브에도 올라가 있는 영상이 하나 있는데, 시각 장애인 한 분을 모셔서 실제로 비프터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보는 순간이 있었어요. 그 분은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고 난 뒤 대뜸 ‘어떻게 보이느냐’는 질문을 하셨어요. 그래서 보이는 대로 설명을 해드렸죠. 중간에 까만 블랙홀 같은 것이 있고 그 사이에 핵이 있다. 저희가 보기엔 우주의 별 같은데 표현하신 게 맞느냐고 여쭤보았죠. 그런데 비슷하지만 다르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 분은 본인이 처음 시각 장애를 얻었을 때 느낀 감정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하셨어요. 그걸 가장 비슷한 향기로 그린 것이었는데 검정색 물감이었던 거죠. 그 이후에도 두 개의 작품을 더 그리셨는데, 다소 방어적이었던 처음과 달리 ‘내가 느낀 걸 또 표현해 볼테니 다시 맞춰보라’는 요청을 주셨어요. 소통하며 함께 그림을 그리다가 마지막에는 도움을 요청하시더라고요. 시각 장애인이 되기 전,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바다의 모습이 있는데 그걸 같이 그릴 수 있게 색깔 찾는 것을 도와달라는 말씀이었어요. 그 전까지는 혼자서 다 그리셨는데 마지막 작품은 함께 그렸습니다. 그때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벅차올라 연신 교육장 안팎을 드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작은 변화가 정말 눈 앞에 있었던 것 같아 눈물이 많이 났어요.” 참여자가 그린 첫 번째 작품과 마지막 작품 ©임팩트스퀘어 혹시 시각 장애를 가진 분들이 키트를 사용하시는 데에 어려움은 없는지 물었다. 김지은 대표는 “시각 장애인 분들은 기민하게 현장을 파악하는데 능숙하신 분들”이라며 “길쭉한 것이 붓이고, 끝에는 솔이 있고 앞에는 사각 캔버스가 있으며 물감은 향을 맡아서 사용하시면 된다 정도로 말씀드리면 혼자서도 곧잘 하신다”고 말했다. 만약 시작 장애를 얻은지 얼마 안 된 분들일 경우, 제품을 좀 더 편리하게 사용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구조화된 캔버스를 제공해보고자 신규 제품 개발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비프터페인트 패키지 사진. 사용 직전에 아로마 용액과 물감을 섞어 사용하는 구조로, 어나더데이가 개발했다. ©어나더데이 지금의 일상 너머의 ‘어나더데이’를 꿈꾸며어나더데이의 주 고객층인 장애인 분들을 만날 때면 늘 듣는 말이 있다. ‘사는 것이 어제, 오늘, 내일 모두 똑같다’는 말이다. 김지은 대표는 바로 지금의 하루, 순간을 바꿔보고 싶은 마음에 창업을 했다. 어나더데이라는 사명에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또 다른 즐거운 날’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는 “물론 검색하시는 분들이 어려움을 겪어서 고민이 조금 있다”며 웃었다. 그러다 보니 아마 더 많은 분들을 만나기 위해 조만간 새로운 이름으로 고객들을 만나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름이 무엇이든 목표는 하나다. 망하지 않는 것이다”라며 “저희와 유사한 취미키트를 만들어 창업하신 분들은 대체로 3년을 못 버티셨는데 지금껏 꿋꿋이 버티고 있는 것은 어나더데이가 거의 유일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망하면 문화예술로 생생한 일상을 만들어나가고 싶은 분들은 선택지가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어나더데이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아로마 물감 외에도 인지, 감각, 신체 발달을 위한 여러가지 키트를 보유하고 있다. 친환경적인 메시지와 만들기를 결합한 닥종이 및 석고 화분부터 감각을 발달시킬 수 있는 조향 클래스 등 범주는 매우 다양하다. 혹시 대상은 명확하지만 진행하고 싶은 프로그램에 대해 고민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키트가 있는지도 물었다. 김지은 대표는 “대상 그리고 진행하고 싶은 횟수와 규모만 전달해주시면 나머지는 어나더데이가 다 고민하겠다”며 “6세 아이부터 70세 노인까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각각의 난이도 구현이 가능하고, 장애 여부에 따라서도 맞춤형 기획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편마비가 있는 분들이 대상일 경우, 준비물을 적절히 거치해두고 한 손만으로도 결과물을 만들 수 있도록 모든 구성을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제공하는 기관의 구성원이 적어 운영에 어려움이 생길 것이 우려되는 경우, 추가적인 재료나 사전 교육이 필요치 않게끔 모든 가이드와 재료를 제공한다. 때론 키트를 뜯어서 체험을 진행한 뒤, 남은 재료를 적절히 분류해 버릴 수 있는 쓰레기 봉투를 같이 준비해서 보내기도 한다. 프로그램을 기획, 운영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프로그램을 제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로 말이다. 진정성, 그리고 경쟁력을 모두 갖춘 김지은 대표는 요새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해 참여한 ‘CES 2023’에서 아로마 물감에 대한 시장 반응이 매우 폭발적이었고, 그 결과 300만 달러 규모의 수출 업무 협약을 맺는 성과를 일궈냈다. 또한 인터뷰 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에서 매년 개최하는 시각 장애인 보고기구 전시회에도 참여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한 조만간 몽골에서의 해외 교육서비스 제공도 앞두고 있다고 했는데, 이는 해외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어나더데이의 솔루션을 제공, 성장가능성을 가늠해보고자 기획한 신규 프로젝트여서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꿈이 너무나 많아요. 장애인, 취약계층 아이들이 언제든 찾아와서 문화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전용 공간도 만들고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딱 30년만 하고 그 이후엔 어나더데이 키트말고도 너무나 많은 문화예술 체험 솔루션이 생겨서 저희가 필요 없어지는 순간을 꿈꾸기도 해요. 뭐가 됐든 지금 당장은 지치지 말고 계속 가보자고 서로 격려하며 동료들과 계속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조금씩 ‘기분 좋은 어나더데이’를 계속 만들어갈테니 지켜봐주세요.” 작년 연말에는 비프터 페인트를 활용해 만든 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어나더데이 글, 사진 : 임팩트스퀘어 김소선 매니저 *ISQ 인사이트 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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