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윤석열 막으려면 개헌 필요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해 겨울 우리는 무엇을 위해 서울 여의도 광장을 밝혔던가? 티스토리 블로그 문다무비 갈무리
국민이 참여한 제6공화국 헌법
현재 대한민국 국민은 제6공화국 헌법(제9차 개헌) 체제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1987년 6월 10일 민주화 항쟁의 결과물이다. 이 헌법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행정부 수반을 국민이 직접 뽑도록 헌법을 바꾸었다.
헌정 사상 최초로 여야 지도자들이 대등한 입장에서 헌법을 만들었다. 눈여겨 볼 것이 있다. 새로운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때 있었던 깡패 동원, 비상계엄 선포, 정치활동 금지, 언론 통제 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헌법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국민이 헌법의 주체가 됐다는 점이다. 거리에 쏟아져 나온 수많은 국민들이 전두환 정권의 호헌 조치를 무너뜨렸던 것이다.
괴물 윤석열을 뱃속에 품은 헌법
대통령 윤석열은 2024년 12월 3일 밤 10시를 넘겨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다행히 국민과 국회의 힘으로 계엄은 철회됐다. 각종 특검과 재판을 통해서 죄상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그럼에도 윤석열과 그 일당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내용이 있다. 대통령의 계엄권 행사는 헌법에 보장된 것이라는 점이다. 말 그 자체로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제6공화국 헌법에는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제76조)과 계엄선포권(제77조)이 있기 때문이다.
제6공화국 헌법은 불과 5주 만에 만들어졌다. 그 결과 유신헌법이나 제5공화국 헌법에 있던 독소조항이 그대로 들어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대통령 긴급명령권과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꼽을 수 있다. 이 권한의 발동 요건인 내우, 외환, 천재, 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 경제상의 위기 ,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안녕 질서 라는 표현은 유신헌법에 담긴 그것과 거의 같다.
계엄선포권도 마찬가지다.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 라는 문구, 비상계엄이 발동하면 영장제도, 언론 · 출판 ·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도 유신헌법 이후 거의 동일한 구조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어장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긴급명령권을 발동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보고하여 승인을 얻어야 하며, 승인을 얻지 못하면 효력을 상실한다고 현행 헌법이 규정하고 있다.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는 통제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현행 헌법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발동 요건 판단 주체가 대통령(대통령은 신이 아니다. 불안전한 인간이다)이라는 점, 발동과 국회 승인 혹은 해제 요구 사이에 인권유린 등 초헌법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실제로 대통령 윤석열은 구조적인 문제점을 비집고 들어가 국회를 봉쇄하고 기본권을 제한하려 했다. 계엄군과 경찰이 물리적으로 국회 문을 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권이 무력화될 수 있음을 우리 눈으로 확인했다.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괴물 윤석열 은 언제든지 나올 수 있다. 개헌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개헌을 두려워하는 이유
대통령 계엄선포권, 긴급명령권 말고도 개헌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 라는 표현은 유신헌법 이후 한 글자도 바뀌지 않았다. 헌법 제110조 군사법원 제도도 마찬가지다. 유신시대 긴급조치 위반자들을 처벌하고자 만든 제도가 버젓이 살아 있다. 민간인이 군사법원에서 재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1987년 10월에 국회를 통과하고 이듬해 2월에 공표된 제6공화국 헌법은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시대적 소명을 다했으면 고치고 바꿀 수 있는 게 헌법이다. 하지만 일부 대한민국 국민들은 개헌에 불편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역대 개헌 대부분은 대통령의 권력 연장 혹은 영구 집권의 수단으로 악용되었기 때문이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발췌 개헌과 사사오입 개헌, 대통령 박정희의 3선개헌과 유신헌법이 그러했다. 이를 경험한 세대들에게 개헌은 분명 경계의 대상이다.
위대한 타협
개헌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상대방이 개헌 이야기를 꺼내면 덮어놓고 의심한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본다. 이유가 있다. 개헌에는 정치, 경제 집단 사이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특히 개헌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는 국회의원들은 어떤 집단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미국 헌법 제정 과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연방의회가 1787년 5월 25일부터 9월 17일까지 필라델피아의 펜실베이니아주 의사당에서 열렸다. 여기 모인 대표들은 연방헌법 제정 작업에 들어갔다. 연방헌법 제정 과정에 인구가 많은 주와 적은 주 대표들 사이에서 격렬한 대립이 있었다. 버지니아주 대표 에드먼드 랜돌프가 버지니아 안 을 냈다. 이 안에는 연방의회는 양원제로 하며, 상원과 하원은 인구 비례로 의석을 배분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버지니아 안 이 관철되면 버지니아, 메사추세츠처럼 인구가 많은 지역이 연방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당연했다. 인구가 적은 주의 대표들은 눈에 쌍심지를 켰다.
연방의회는 제헌헌법 제정은커녕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이러자 정치적 대타협이 이뤄졌다. 제헌헌법 제정 작업이 교착상태가 지속되자 코네티컷주 대표였던 로서 셔면과 올리버 엘스위스가 절충안을 내놓았다. 연방 하원은 인구가 많은 주의 요구를 받아들여 인구 비례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고, 상원은 인구가 적은 주의 요구를 받아들여 각 주에 2명씩 뽑도록 하는 안이었다.
7월 16일 연방의회에 참석한 대표들은 이 안을 두고 투표에 들어갔다. 표결에서 5대4로 간신히 통과됐지만, 연방의회에 참석한 대표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미국사에서는 이를 두고 코네티컷 타협 또는 위대한 타협 이라고 부른다.
제7공화국의 문을 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현행 헌법이 시대적 소명을 다했음을 절감했다. 열린 마음으로 개헌에 나설 때가 온 것이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가장 앞장 서야 한다. 한국의 정치인들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처럼 못할 것이 없다. 두려워 말고 주저하지 말고 국민만 보면서 개헌을 추진해 나가면 된다.
1~2년 안에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훗날 역사가들은 이를 분명하게 평가할 것이다. 그때 역사가들이 위대한 타협 이라고 쓸 수 있도록 국민도,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도, 법조인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제 제7공화국을 열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