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무지 · 위선의 장막 걷고 정당선거로 뽑자 [교육] 대한민국의 교육감 선거는 민주주의와 교육자치의 축제라기보다 유권자들의 눈을 가린 채 진행되는 어둠 속의 술래잡기에 가깝다. 수조 원의 예산과 아이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교육 수장을 뽑는 중차대한 선거임에도 유권자들은 후보가 누구인지,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도 모른 채 투표장에 간다. 이른바 ‘깜깜이 선거’다. 인지도가 깡패라는 자조 섞인 말처럼 평생 교단에서 헌신한 훌륭한 교육자는 명함도 내밀기 어려운 반면 교육현장을 잘 몰라도 이름이 난 대학교수나 정치인 출신이 당선되기 쉬운 기형적인 구조다.
왜곡된 현실과 불편한 진실: 비공식 경선 과 정보의 진공 상태
깜깜이 선거의 비극은 본선 이전의 불투명한 경선 과정에서부터 잉태된다. 현재 각 진영의 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 혹은 각 진영의 본선후보 경선과정은 법적 근거가 없고 정당과 시민단체의 공식관여와 재정지원이 금지된 상태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유권자의 1%도 안 되는 극소수 고관여층과 특정 이익단체의 입김이 결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는다. 경선결과에 대한 불복소란과 독자출마도 적지 않다. 그나마 과거에는 교육전문가인 교원노조와 교원단체들의 영향력이 컸으나 지금은 학교에서 일하는 소수직역노조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며 전체 시민의 의사가 왜곡될 위험이 더 커졌다.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진공 상태다. 정당이나 단체의 선거 개입이 금지되기 때문에 유권자는 교육감 후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다. 교육감 후보들은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성향이 비슷한 시도지사 후보 측과 이심전심으로 연계하며 무당적 선거에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혼탁상을 연출한다. 본선에 올라온 유력 후보들은 특정 정당이 아니라 이념 성향이 유사한 여러 정당 및 시민단체들의 대표선수 자격을 획득한다. 한마디로 무당적 교육감 선거의 실상은 정당선거보다도 한층 더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혼탁한 진영선거다.
서울시교육감 보궐선거일인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기상업고등학교에 마련된 개표소에서 개표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4.10.16 연합뉴스
러닝메이트제, 왜 답이 아닌가
일각에서는 시도지사와 교육감을 동일 티켓으로 묶는 러닝메이트제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교육자치를 행정자치에 종속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 교육감 후보가 시도지사 후보의 지명직이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하여 교육의 자주성이 훼손될 뿐 아니라 책임정치도 실종된다. 교육정책이 엉망이어도 시도지사의 인기가 좋으면 거기 편승해서 교육감이 당선되는 반면 교육정책이 좋아도 시도지사의 인기가 없으면 교육감도 떨어지는 도매금 선거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시도지사와 교육감을 각각 독자적인 정당선거로 뽑으면 교육과 행정이 대등한 독립변수가 될 뿐 아니라 유권자가 교육감에 대해 직접 책임을 물을 수 있어서 좋다.
정당공천제와 정당선거제가 해법이다
나는 교육감 선거의 근본적 해법으로 교육감 후보의 당적 보유와 정당 공천, 예비선거(프라이머리)를 제안한다. 핵심은 교육감 선거의 틀을 정당선거로 일대 전환하는 데 있다. 정당선거가 되면 정당이 사활을 걸고 달려들기 때문에 유권자의 관심이 획기적으로 높아진다. 정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후보를 치열하게 검증할 것이고 언론은 이를 중계하게 마련이다. 유권자가 후보 개인을 몰라도 소속 정당을 알면 평준화냐 수월성이냐, 학생인권이냐 교권이냐와 같은 교육 철학을 예측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정당 공천을 거칠 때 가능해지는 책임정치의 모습이다.
교육전문성 요건과 현장전문가 보호
정당공천제가 교육감 선거를 정치꾼들의 놀이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현행법상 요구되는 ‘교육경력 3년 이상’ 요건이 반드시 유지되거나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다. 교육은 비전문가의 실험이나 연습 대상이 아니다. 교육전문경력 3년 요건은 기득권 보호가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정당의 색깔을 입히되 그 바탕은 반드시 교육전문가여야 한다는 원칙은 타협할 수 없다. 시민들과 당원들에게도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현장교사 출신이 경선과정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지역TV 정책토론회를 여러 차례 의무화하고 최소한 1회는 일정한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당별로 예비후보가 여럿이면 당연히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당이 특정인을 전략 공천하거나 현직교육감을 단수 공천하는 것은 금지하는 것이 맞다. 지금처럼 정당별로 경선을 치르는 것도 무방하지만 기왕이면 이번 교육감 선거부터 미국식 오픈 프라이머리를 실험적으로 도입하여 정당의 당원뿐 아니라 일반 학부모와 시민이 참여 가능한 국민완전경선 형태를 법제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조직 표에 의한 줄 세우기를 막고 교육감 후보가 당심을 넘어 민심을 바라보게 유도할 수 있다.
교육감 후보의 당적, 유권자의 알 권리다
교육감 후보의 정당 가입과 당적 보유는 문제가 없는 것을 넘어 필수적이다. 당적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정치성향이나 지지정당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후보의 가치관과 네트워크를 가장 압축적으로 알려주는 핵심정보가 당적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교육감 후보의 당적 보유를 금지하는 것은 유권자에게 가장 중요한 정보의 하나를 숨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식품을 살 때도 성분 표시를 의무화하는데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질 교육감을 뽑으면서 이념적, 정치적 성향을 숨기는 것은 유권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교육감을 직선하는 이상 교육감 후보의 정당 가입과 당적 보유는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돕는 데 필요한 권장사항이지 지금처럼 금지사항이 돼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선거를 앞두고 1년 이상 당적이 없어야만 교육감 후보자격이 있다고 규정해온 현행법은 과도한 기본권 침해로 개정되어야한다. 교육감 선거 출마를 위해 처음부터 또는 탈당해서 무당적 요건을 갖추더라도 출마자의 정치성향과 지지정당이 사라지진 않는다. 유권자의 입장에서도 이념적, 정치적 성향이 불분명하고 합목적성과 효율성만 따지는 중간관리자급 후보를 반기지는 않을 것이다. 대조적으로 교육감 후보에게 당적 보유와 정당 공천을 허용하면 정당은 선거 승리를 위해 조직과 역량을 총동원해서 정책과 인물의 검증 및 홍보에 돌입하게 돼있다. 깜깜이 선거와 묻지마 투표를 줄이는 데 이보다 더 실효적인 방법은 없다.
교육감의 당적 보유, 정무직의 본질이다
선거로 뽑힌 교육감 역시 당적을 가져서는 안 될 이유가 없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명분으로 교육감에게 교사와 똑같은 수준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것은 거대한 강박이자 착각이다. 교사는 신분이 보장되는 경력직 공무원이기에 엄격한 중립이 요구되지만, 교육감은 주기적 선거를 통해 임기 내내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무직 공무원이다. 대통령이나 시도지사에게 행정의 중립성을 이유로 탈당을 요구하지 않듯, 교육감에게만 이를 요구하는 것은 억지다.
헌법이 규정한 교육의 정치중립성은 수업시간과 교육활동 중에 교사의 정치적 이념과 견해를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지 말라는 뜻이지 교육예산을 배분하고 교육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최고위 교육 행정가를 식물인간으로 만들라는 뜻이 아니다. 정책적 선택은 그 자체로 고도의 정치적 행위다. 본질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하라고 선거로 정무직을 뽑아놓고 정치색을 빼라고 요구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옹’ 하라는 것일 뿐 설득력이 없다.
일각에서는 정당 공천제가 교육감을 정당의 거수기로 전락시키고 교육현장을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을 것이라 우려한다. 그러나 이는 기우다. 첫째, 독자적으로 선출된 교육감은 당내에서 교육의 본질과 가치를 대변하는 가장 강력한 목소리가 될 수 있다. 임명직 장관과 달리 직선 교육감의 권위로 당의 부당한 간섭을 막아낼 힘이 생긴다. 둘째, 정당이 개입한다고 해서 교육이 흔들리는 게 아니다. 오히려 교육정책 실패의 책임을 정당에 묻게 됨으로써 정당은 선거승리를 위해 이념과잉보다 실사구시 정책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정당정치는 교육을 망치는 게 아니라 책임을 명확하게 지움으로써 갈등을 조정하고 혼란을 제어한다.
요컨대 시도교육감을 모든 시민의 직선으로 뽑는 이상 논리적 귀결은 정당선거로 치러서 후보 시절은 물론이고 당선 이후에도 당적을 유지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정당이 후보를 공천해서 정당선거로 치러야만 깜깜이 선거, 그것도 비공식적인 진영선거를 극복할 수 있다. 교육감이 당적을 유지해야만 정책 실패 시 소속정당에 연대책임을 묻고 공식적인 당정협의를 통해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광역 주민의 직선 정무직을 무당적 선거로 치러야 정치중립성이 보장된다는 단견과 위선의 장막을 걷어내야 투명한 책임정치가 가능해진다.
교원 정치기본권보다 정당선거 전환이 우선이다
교원의 정치기본권이 전면 보장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겠지만, 그것이 교육감 선거의 정당선거 변경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은 아니다. 정당선거의 핵심은 교육감 후보의 정당공천과 교육감 선거의 정당주도에 있기 때문이다. 교육감 선거를 정당선거로 바꾸면 교사의 근무시간과 교육활동 바깥의 정치기본권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교육감 선거를 정당선거로 하면서도 교육감 잠재후보군인 교사집단의 정치기본권을 꽁꽁 묶어놓는 불합리가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설령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 회복을 위한 입법이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지더라도 교육감 선거제도는 ‘지금 당장’ 정당선거로 바꿀 수 있고, 반드시 바꿔야 한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교육감 선거를 정당선거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깜깜이 선거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다. 정당이 공식적으로 경선과 본선을 주도하면 시민과 언론의 관심이 쏠리고 인물과 정책에 대한 검증이 시도지사 선거만큼이나 치열해진다. 지금의 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정치중립성에 대한 단견에서 비롯된 무당적 선거로 설계돼 실제로는 정당선거보다 더 혼탁한 진영선거로 치러지는 모습을 보인다. 교육감 선거를 깜깜이 선거와 묻지마 투표로 몰아온 무당적 선거에서 벗어나 정당이 책임지는 투명한 정책선거로 바꿔야한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교육감 선거와 교육 자치를 살리고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앞당기는 가장 현실적이고 빠른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