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실장은 왜 재생에너지 전환의 근간 흔드는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산업이 당장 전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15년 이상 걸리는 신규 원전 건설이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가 2030년 약 945TWh로 ‘두 배’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으므로 이는 기술적으로도, 정책적으로도 상식에 가까운 판단이다. 전력 수요와 공급 수단의 시간축이 맞지 않아서 지금부터 3~7년이 고비인 전력 수요에, 2038년쯤 가동될 원전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현실을 한참 벗어난 처방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러한 대통령의 합리적 인식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이 청와대 정책실장의 입에서 공개적으로 나왔다. 김용범 실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AI와 반도체 산업을 위해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이는 대통령 발언과 비교해 볼 때, 국가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둘러싼 중대한 불일치이다. 단순한 의견 차이라고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1월 16일자 한겨레 지면 촬영
경직성 전원인 원전은 미래 에너지 아냐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발언이 이재명 정부의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전환 정책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점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원전을 기저전원으로 복권시키는 논리는 이미 수차례 검증에서 한계를 드러낸 바 있다. 전력 시스템의 안정성은 발전원 하나로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계통 운영 능력,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관리, 분산전원, 그리고 유연한 시장 설계 등등의 다양한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밤에 태양광이 멈춘다는 사실을 들어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말하는 것은, 태양광의 설계와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를 대비하는 전력시스템이 함께 설계되기 때문이다.
AI와 반도체 산업이 요구하는 전력은 ‘많은 전기’가 아니라 ‘질 좋은 전기’다. 급변하는 부하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지역 인근에서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탄소 규제와 글로벌 공급망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출력 조정이 느리고, 대규모 송전망에 의존하며, 사고 시 계통 충격이 큰 경직성 전원인 원전은 이러한 요구와 구조적으로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정책실장 입에서 나오는 순간, 관료조직과 산업계는 이를 ‘진짜 정책 신호’로 받아들알 수밖에 없다.
정책은 말이 아니라 신호로 작동한다. 대통령이 아무리 재생에너지와 분산전원을 강조해도, 정책실장이 언론을 통해 정반대 메시지를 내보내면 현장은 혼란에 빠진다. 공무원은 가장 안전한 선택, 즉 기존 기득권의 논리를 따르는 보고서를 쓰게 되고, 산업계는 원전 중심의 투자가 다시 가능하다는 기대를 갖게 된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 확대, 계통 유연화, 저장 기술 투자는 뒷전으로 밀리고, 에너지 전환은 말뿐인 구호로 전락한다. 그야말로 대통령의 재생에너지 중심 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뒤흔드는 발언인 것이다.
월성3발전소 신월성 1호기 2호기 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 홈페이지
정책실장은 원전 특성 제대로 이해하고 있기나 한가
에너지 정책은 기술 정책이기 이전에 정치의 문제다. 기득권의 저항이 거셀수록 정부 핵심 인사들의 메시지는 더욱 일관되고 분명해야 한다. 특히 정책실장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현장에서 구현하는 자리이지, 이를 공개적으로 흔드는 자리가 아니다. 원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가겠다는 국가 전략을 사실상 부정하는 발언은, 정책적 실수의 차원을 넘어 국정 운영에 심각한 위험 요소가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아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전력 수요에 맞는 해법을 찾고, 동시에 10년 뒤를 대비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그 해법은 원전이 아니라, 재생에너지와 저장, 분산전원, 그리고 기업의 책임 있는 전력 조달을 결합한 새로운 시스템이다. 세계는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전환은 불편한 개혁이다. 그러나 불편하다고 해서 방향을 흐리면, 그 대가는 결국 국민과 미래 산업이 치르게 된다. 재생 중심 정책의 근본을 흔드는 발언의 해악이 결코 작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위험한 신호를 바로잡는 용기와, 국민만 바라보고 가는 일관된 개혁 의지다. 이 관점에서 대통령은 정책실장을 정책의 전면에서 물러나게 해야 한다. 정책은 조정·메시지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와 실행의 문제이며, 이를 비전문적 조정기구가 단지 대통령 측근이라는 이유로 근본을 뒤흔드는 순간 정책은 혼선을 빚는다. 전환은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중심으로 일관되게 설계·집행되어야 하며, 대통령실은 시대의 흐름에 맞는 방향과 원칙을 명확히 제시하고 실행 부서가 흔들림 없이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