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이 시점 꼭 필요한가… 국민은 근본적 질문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기수어용(器受於用)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무엇을 담고 어떻게 쓰이느냐가 그릇의 참된 의미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이 질문은 오래된 은유이지만 정치와 인사를 이야기할 때만큼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정 운영은 선언이나 의지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사람을 통해 구현되고, 그 사람의 한계와 태도만큼만 작동한다. 그래서 인사는 정책 이전의 정책이며, 국정 철학의 가장 노골적인 표현이다.
오늘(19일)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이재명 정부 인사에 붉은 신호등이 켜졌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단순히 야당의 반대 때문만은 아니다. 자료 제출을 둘러싼 갈등, 여론조사에서 확인되는 부적합 의견의 확산, 그리고 청문회 파행 가능성까지 겹치며 이번 인사는 이미 정상적인 검증 절차의 궤도를 벗어나고 있다. 문제는 그런데도 정부가 이 신호를 ‘정치 공세’라는 말로 가볍게 넘기려 하는 데 있다.
이혜훈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의 성격은 복합적이다. 일부 의혹은 사실관계의 확인을 요하고, 일부는 공직 후보자로서의 판단과 태도를 묻는 문제다. 재산 형성과 관련한 의문, 부동산 및 청약 과정의 논란, 반복된 교통법규 위반 기록, 보좌진 관련 문제 제기 등은 각각 따로 놓고 보면 해명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사안들이 동시에 제기되고, 그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납득되지 못할 때, 문제는 개인 차원을 넘어선다. 국민은 더 이상 위법이냐 아니냐”만 묻지 않는다. 이 인사가 지금 이 자리에 적합한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동한다.
더 심각한 대목은 자료 제출 문제다. 인사청문회는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 검증의 장이다. 그런데 후보자 측이 핵심 자료 제출에 소극적이거나 제한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청문회가 검증이 아닌 공방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급기야 야당 일각에서는 청문회를 열 가치조차 없다”며 보이콧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청문회 자체가 흔들리는 일은 그 자체로 비정상이다. 후보자 개인의 방어 전략 차원이 아니라, 정부의 인사 검증 시스템이 처음부터 제대로 작동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온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가 지난 8일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에 도착 후 차에서 내려 인사를 하고 있다.
여론의 흐름도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수준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자가 부적합하다는 응답이 적합 의견을 앞서는 결과가 나타났고, 이런 경향은 정치 성향에 국한되지 않고 확산되고 있다. 단순한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공직 후보자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신호다. 정부가 아무리 청문회를 통해 충분히 설명하면 된다”고 말하더라도 이미 형성된 의구심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인사 강행은 정치적 부담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인사는 늘 정치적이다. 그러나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모든 비판을 정치 공세로 치부하는 순간, 인사는 위험해진다. 권력은 자신이 보고 싶은 신호만 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지지층의 방어 논리, 내부의 결속, 개혁이라는 명분은 그 유혹을 더욱 강화한다. 하지만 정치는 결국 중간 지대의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인사 논란이 반복될수록,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점점 냉소로 이동한다.
이재명 정부는 스스로를 ‘유능한 정부’로 규정해 왔다. 유능함의 기준은 무엇인가. 결단의 속도인가, 저항을 뚫고 나가는 힘인가. 아니면 불편한 신호 앞에서 멈춰설 줄 아는 절제인가. 진정한 유능함은 후자에 가깝다. 경고등이 켜졌을 때, 그것을 무시하지 않고 점검하는 능력, 그리고 필요하다면 선택을 수정할 수 있는 용기야말로 국정 역량의 핵심이다.
이번 인사 논란은 단순히 이혜훈 후보자 개인의 거취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의 인사 기준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준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묻는 사건이다. 과거 정부들 역시 인사 실패로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그때마다 등장한 공통된 변명은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이라는 안이함이었다. 그러나 인사에 대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정책에 대한 평가까지 잠식하며 정부 전반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KBS뉴스 화면 갈무리
정치는 상징의 세계다. 한 사람의 임명은 그 자체로 메시지다. 그 메시지가 문제가 있어도 밀어붙인다”로 읽히는 순간, 정부는 스스로 통제 불능의 이미지를 덧씌우게 된다. 반대로 논란을 인정하고, 검증의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며, 필요하다면 한 발 물러서는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방어 논리가 아니다. 불법은 없다”, 청문회에서 소명하면 된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법적 무죄가 아니라 정치적 책임이다. 공직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신뢰를 전제로 한 자리다. 그 신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임명 자체가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된다.
19일 청문회는 그래서 중요하다. 오늘의 결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뒤의 선택이다. 정부는 이 과정을 통해 인사 시스템을 점검하고, 기준을 재확인할 것인가. 아니면 또 하나의 논란을 감수한 채 ‘버티기’의 정치로 나아갈 것인가. 전자의 길은 어렵고 시간이 걸리지만, 후자의 길은 빠르되 대가가 크다.
정치는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마음은 강요로 얻어지지 않는다. 설명과 설득, 그리고 책임 있는 태도를 통해서만 형성된다. 이혜훈 후보자 인사를 둘러싼 논란은 이재명 정부에 주어진 하나의 시험이다. 이 시험은 특정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넘어, 정부가 스스로 설정한 원칙을 지킬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다른 형태로 바뀐다. 우리는 어떤 정부를 보고 싶은가. 경고를 무시하고 속도를 택하는 정부인가, 아니면 잠시 멈춰 방향을 점검하는 정부인가. 선택은 결국 권력의 몫이지만, 그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국민이다. 역사는 언제나 그 평가를 남겨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