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잠수함이 필요하지 않은 수많은 이유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최근 APEC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재처리·농축·핵잠용 연료 공급을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핵잠 건조를 지난달 29일 승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반도에서 ‘핵추진 잠수함’이 다시 국방 이슈로 부상했다. 대만해협 위기, 미·중 패권 경쟁, 북핵 고도화 속에 한국도 독자 전략자산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전략·기술·정치 현실을 외면한 ‘환상’에 가깝다. 지금은 왜 핵잠이 필요하지 않은가”에 집중해야 할 전략적 자존감이 필요한 때다.
통제할 수 없는 전략자산 집착 말고 우리가 잘하는 것 집중해야
핵잠수함은 원자로로 추진돼 수개월 잠항과 고속 항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해역의 환경을 고려하면 이 장점은 매우 제한적이다. 우리 해군의 214급 AIP(공기불요추진) 잠수함은 디젤과 연료전지를 결합한 구조로 정숙성과 은밀성이 뛰어나다. 실제로 2005년 미 해군 훈련에서 스웨덴의 Gotland급 AIP 잠수함이 항모전단에 탐지되지 않고 ‘격침 판정’까지 접근한 사례가 있다. 한반도처럼 수심이 얕고 연안 장애물이 많은 해역에서는 고속보다 장시간 잠항과 저소음이 더 중요하다. 이 점에서 AIP 잠수함이야말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자산이다.
괌에 입항한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 [미국 태평양함대사령부 트위터] 연합뉴스
핵잠수함은 6천 톤급 대형 함정으로, 핵연료 교체·폐기물 처리·안전관리 인프라가 필수다. 문제는 한국이 핵연료를 자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미 123협정과 NPT 체제 하에서 고농축우라늄(HEU) 생산과 군사용 수입은 금지되어 있다. 결국 핵잠의 연료 공급·정비·작전 승인권이 미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는 자주적 전략자산이 아니라 미국의 통제 하에 운용되는 플랫폼이 될 위험이 크다. 게다가 인구 밀도와 원전 밀도가 높은 한국에서 핵추진 함정을 정박·정비하는 것은 한반도 주변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이며 환경적·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한국이 집중해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핵잠의 허상을 좇기보다, AIP 기반 비핵 잠수함 기술의 고도화에 투자해야 한다. 장보고-III와 배치-II·III 사업은 우리 군사력 증강뿐 아니라 수출도 가능하여 조선산업의 고부가가치 방산시장 진출 기반이다. AIP 잠수함은 핵잠을 보유할 수 없거나 정치적으로 제한된 국가들에게 현실적 대안이며, 수출 시장과 상업성이 훨씬 크다. 한국은 세계적 조선기술력을 바탕으로 장거리 작전·정찰·무장 능력을 갖춘 전략 잠수함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는 군사력뿐 아니라 수출과 일자리 창출을 결합한 실용적인 전략산업이 될 수 있다.
핵잠 건조 ‘승인’의 진실 – 종속된 투자 구조
트럼프의 ‘핵잠 건조 승인’은 실질적 기술 이전이 아니라 미국 내 건조 및 통제 모델 조건이다. 한국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해도 Part 810 규제로, 원자로와 핵연료는 웨스팅하우스가 공급하고, 한국인의 기술 접근은 엄격히 제한된다. 투자는 한국이 해도 기술의 소유권을 분명히 하는 미국 법이 그렇게 되어 있다. 그동안 한국이 개발한 소형원자로는 검증을 앞두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필라델피아에 잠수함 제작에 필요한 시설을 새로 지어가면서 잠수함 건조작업을 수행해야 하고, 수시로 필요한 핵연료 교체·정비는 미국에서 수행되며, 고농축 사용후핵연료는 전부 회수할 것이다. 수명이 다 되어도 보안상 해체는 미국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그 때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한국에 요구할 것이다.
잠항 시에도 미군 감독관이 보안키를 들고 함께 탑승·감시할 것이며 이 경우 모든 운항은 통제되며, 운항 중 모든 군사정보는 미국에 실시간으로 넘어갈 것이다. 결국 우리는 자주적 운용권 없는 투자자에 불과할 것이며 군사시설이라 이익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 구조는 천문학적인 투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산’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미국에 ‘종속’만 심화시킨다. 이 경우 군사적인 자주권을 확보하려는 원래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이렇게 초래된 결과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22일 경남 거제 한화오션에서 열린 장영실함(장보고-Ⅲ, Batch-Ⅱ 1번 함) 진수식에서 강동길 해군참모총장, 김희철 한화오션 대표, 변광용 거제시장 등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3600t급 장영실함은 수중작전 지속 일수가 기존함보다 향상됐고, 세계 최고 수준의 디젤 잠수함이다. 2025.10.22 연합뉴스
훌륭한 무기 아니라 자주적으로 통제 가능한 무기를
한국은 이미 초계기·AIP 잠수함·위성정보·수중드론 연합 감시체계를 통해 SLBM 탐지와 대응 능력을 확보했다. 이 잠수함은 기동성이 좋아서 수심이 얕고 복잡한 한반도 해역에서의 실질적 억제력이 충분할 뿐더러 미군에게 취약한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 핵잠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부분적으로는 전략적 우위에 설 수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미국에게 철저히 통제되면서 한반도 주변의 긴장만 고조시키는 핵잠과 같은 외형적 무기가 아니라, 전략적 자율성과 기술주권을 강화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우리는 세계가 사정하며 기술을 사가는 AIP 강국으로, 자주적인 방산산업의 길을 가야 한다. 훌륭한 무기를 갖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주적으로 통제가능한 무기여야 한다. 한국의 전략은 주변국과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우리가 통제할 수도 없는 ‘핵잠 보유’가 아니라 실용적으로 산업화도 추구하면서 ‘전략적 자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