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할머니와 박유하, 누가 역사의 피해자인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주진오 역사학자·상명대 명예교수
지난 9월 29일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제39회 ‘책의 날’ 특별공로상 수상자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와 출판사 ‘뿌리와이파리’ 정종주 대표를 선정했습니다.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 출판과 관련해 11년간 법정다툼을 벌여왔고, 해당 출판금지 가처분이 해제되는 과정을 통해 한국에서의 학문과 출판의 자유를 지키는 데 헌신했다”는 이유였어요.
곧바로 ‘정의기억연대’ 등에서 반발하는 성명서가 발표되었습니다. 법리적 해석으로 인해 현실의 법정에서는 최종 무죄를 받았다 해도, 있는 역사를 부정하고 피해자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것까지 무죄일 수는 없다. 박유하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역사정의를 왜곡하고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아 논란을 일으킨 것이 ‘공로’인가?”라는 요지였지요.
결국 출판협은 10월 1일 이를 취소했습니다. 수상자 선정 과정에서 일제 식민지배를 겪은 국민들의 고통스러운 역사와 위안부 할머니들, 또 그 아픔에 동감하여 치유하기 위해 활동하고 성원해온 많은 분들의 아픔과 분노를 깊게 헤아리지 못했다”며, 일단락되었어요. 그러나 학문·표현의 자유와 피해자의 명예라는 이슈를 재점화했습니다.
박유하 교수의 문제의 저작 ‘제국의 위안부’
선정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진보 출판인과 박유하의 공생관계
그런데 선정 과정에서 과연 윤철호 출판협 회장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바로 그가 대표로 있는 에서 2000년에 박 교수의 『누가 일본을 왜곡하는가』라는 책을 발행했어요. 당시에는 일본에서 돌아와 아직 한국 사회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이 책은 한국의 반일정서에 도전하는 논쟁적 내용이었지요.
1961년생으로 서울대 철학과를 나온 윤 대표는 1983년 학생 시절 시위에 참가하여 구속된 이후, 1989년 인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되기까지 총 세 차례나 수감되었습니다. 당시 그를 비롯한 구속자들이 법정에서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공개 선언한 것이 화제가 되었어요. 이들의 법정 진술은 1990년 에서 발간된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에 담겼습니다.
『제국의 위안부』 출판이 사회주의적 실천이라고?
1991년에 출소한 윤 대표는 합법적인 사회운동을 하기 위해 월간지 에 들어갔어요. 진보적 지식인 400여명이 뜻을 모은 과 합쳐 1993년에 이 되었고 이때부터 대표직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 11월호를 마지막으로 월간지를 휴간하고 1999년부터 단행본 출판 위주로 회사를 재편하였지요.
그해 출간한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가 열풍을 일으키면서 국내외 4백만 부 돌파의 판매 진기록을 세우면서 경영 안정화를 이루었습니다. 진보적 성향의 출판인들이 참여하는 한국출판인회의 제9대 회장을 거쳐, 2017년 2월에 출판계의 가장 큰 조직인 대한출판문화협회 제49대 회장에 당선되었고 3선에 성공해 한국 출판계의 핵심인물이 되었어요.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정종주 대표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에서 기자, 사회평론 편집주간으로 활동하다가 2002년 독립해서 ‘뿌리와이파리’를 운영 중입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하다 흘러흘러 출판을 하게 됐죠. 이 일도 운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혁명이라고까지 말하면 쑥스럽지만, 여하튼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보려고 시작한 것”이라고 스스로 밝혔어요.
그러니까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던 출판인들이 박 교수에 공감하여 꾸준하게 책을 출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출판협의 회장으로서 이번에 박 교수와 정 대표에게 특별공로상을 주겠다고 했던 것이지요. 과연 박 교수의 저작들을 출판하는 것이 사회주의적 실천이며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 보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박유하의 잘못된 ‘정대협’ 조준과 색깔론
박 교수는 줄기차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을 비난해 왔는데요. 『제국의 위안부』가 비판의 대상이 된 이유를 할머니가 아니라 ‘정대협’을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정대협’이 ‘단체 명예훼손’으로 해석하여 고발을 검토했고, 실질적으로 해당 운동 관계자들이 법적 대응을 주도했다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사실과 다른 억측입니다.
1990년 11월, 전국 37개 여성단체가 연합해 결성한 ‘정대협’과 대한불교조계종이 운영하는 ‘나눔의집’은 활동 목표와 성격, 운영체계 측면에서 뚜렷한 차이점이 있지요. ‘정대협’은 국제적 사과 운동과 역사 정의 실현에 초점을 맞춘 정치·사회운동 단체, ‘나눔의집’은 피해 생존자들을 위한 복지·생활지원 기관 성격이 강합니다.
한편 ‘정의기억재단’은 2016년에 위안부 피해자 역사사업 및 기림사업 확대를 위해 분리 설립된 재단인데요. 2018년 7월 11일, 조직운영 효율화를 이유로 ‘정대협’과 통합하였고 새로운 단체명을 ‘정의기억연대(정의연)’로 변경하며 재출범 했습니다. 그런데 ‘정대협’도 ‘정의연’도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팩트이지요.
박 교수가 윤미향과 ‘정의연’ 등에 의해서 입에 재갈이 물려 있었다”고 주장한 것은 사실이 아닌 것입니다. 고발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눔의 집’에서 기거하는 피해자들이었고 검찰이 이를 받아들여 기소를 한 것이었어요. 그럼에도 박 교수는 의도적으로 ‘정의연’을 악마화해 왔고 언론도 제대로 구별하지 않고 써 왔습니다.
더구나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에 대한 마녀사냥에 가담하는 자세를 보였어요. 지원단체의 가장 큰 문제는 공금횡령이 아니다 … 북한이 일본에 배상을 받아낼 좋은 재료로 삼은 게 모든 문제의 배경이다”라는 것입니다. 이같이 자신과 입장이 다른 세력에 대해서는 색깔론까지 덧씌우면서 무슨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운운한다는 말인지요.
일본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까지 받은 박유하 교수
박 교수는 1957년생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떠나 1년간의 일본어 공부 끝에 게이오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들어간 세대에게, 학부를 일본으로 간다는 것은 들어본 적도 없었고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와세다 대학에서 일본 문학으로 석사를 마치고 귀국하여 1995년에 세종대 일어일문학과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박유하 교수
2003년에 「일본근대문학과 내셔널 아이덴티티」라는 제목으로 와세다 대학에서 학술박사를 받았어요. 그러니까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 그의 학문과 가치관을 형성한 것은 전적으로 일본이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어에 능통하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일본사회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요.
유신과 군부독재 시절 한국의 젊은이들이 겪었던 고통과 투쟁과는 무관한 삶을 살았습니다. 정대협의 많은 활동가들이 자신의 젊음을 희생해 가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고 힘들게 후원금을 모금하며, 세계를 다니며 공감대를 이끌어 낼 때 그가 한 역할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이 가장 일본을 잘 안다며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지요.
‘반성 촉구하는 것’과 ‘불필요한 문제 만들지 말자’ 간의 인식 차
저는 20년 전에 에서 박유하 교수와 대담을 했습니다. 당시 고려대 한승조 교수의 망언으로 물의가 빚어졌을 때였는데요, 한 교수는 일본의 극우언론과 인터뷰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배는 오히려 매우 다행스런 일로,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축복해야 하며 일본인에게 감사해야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알려져서 파문이 일었습니다.
당시 일관되게 한일관계가 어려운 이유를 한국의 민족주의 정서에서 찾는 그와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었어요. 오늘날의 일본을 보면 박 교수의 주장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와 보수세력들은 역사수정주의를 넘어 역사부정론을 공공연히 주장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잦아든 것이 현실이니까요. 이런 부탁을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일본을 잘 알고 오래 연구해 온 분들이 정작 해주어야 할 작업은, 한국인들에게 일본 사회의 정확한 모습을 알리는 것과 동시에 일본인들에게 한국인들의 정서를 전달해 주고 반성을 촉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 사회의 대응 가운데서 가장 극단적인 사례를 들어, 한국이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주장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2005년 박유하 교수와 필자가 ‘한겨레’ 대담을 위해 찍었던 사진
『제국의 위안부』는 학술서적 아닌 2차 저작물
사실 이 책은 학술서적이라기보다는 비평서에 가깝습니다. 직접 1차사료를 찾아내고 분석한 결과물이 아니라 ‘정대협’과 연구자들이 발간했던 자료집을 선별적으로 뽑아낸 2차 저작물이지요. 게다가 소설을 비롯한 문학작품도 널리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 과감하게 일반화한 내용입니다.
역사학계에서는 2013년에 이 책이 나왔을 때 별다른 대응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지요. 자의적인 자료 해석과 인용, 근거 없는 가정에서 출발한 과도한 주장, 논리 비약, 무엇보다 한 단락, 심지어 한 문장 안에서 상호모순되는 서술들이 책 곳곳에 있었습니다. 이 책의 밑바닥은 금방 드러나 곧 잊혀질 것이라 생각했다”는 강성현 교수의 글대로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을 중심으로 저명한 정치인, 학자, 언론인, 문화예술인들이 소송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어요. 국내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 참여한 분들 가운데에는 학문과 사상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서명하신 분들도 많았어요. 책의 내용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전제한 분들도 있었습니다.
역사 왜곡 저술이 학문과 표현의 자유 문제로 변질
당시 그 책을 비판했던 학자들도 거의 모두 사법처리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어요. 얼마든지 학문적 비판으로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내 258명, 해외 122명 모두 380명의 학자 및 활동가들이 냈던 성명서도 그런 맥락이었어요. 가장 우려했던 것은 본질을 떠나 학문과 표현의 자유로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제국의 위안부』가 사실 관계, 논점의 이해, 논거의 제시, 서술의 균형, 논리의 일관성 등 여러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책이라고 봅니다. 기존의 연구 성과와 국제사회의 법적 상식에 의해 확인된 것처럼,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핵심은 일본이라는 국가의 책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위안부』는 책임의 주체가 ‘업자’라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법적인 쟁점들에 대한 이해의 수준은 매우 낮은 데 반해 주장의 수위는 지나치게 높습니다. 충분한 논거의 제시 없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제국에 대한 ‘애국’을 위해 군인과 ‘동지’적인 관계에 있었다고 규정하는 것은, ‘피해의 구제’를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아픔을 주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제국의 위안부』가 충분한 학문적 뒷받침 없는 서술로 피해자들에게 아픔을 주는 책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의 지식사회가 ‘다양성’을 전면에 내세워 『제국의 위안부』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접하면서, 과연 그러한 평가가 엄밀한 학문적 검토를 거친 것인지 커다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울러 2015년에 역사학연구회 등 일본의 16개 역사학 단체는 역사학자 1만 3800명이 참여한 성명서에서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뿐 아니라 동원된 여성들이 인권을 유린당한 성노예 상태에 놓여있었던 것을 분명히 한다”고 했어요. 성매매 계약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배후에는 식민지배 등의 불평등·불공정 구조가 존재했다”고 밝혔습니다.
학문적 토론 가로막고 상대에 대한 매도와 억지로 일관
박 교수는 학문적 토론의 자리를 만들려 해도,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박이 토론의 목적이라면 소송과 기소가 취하되도록 노력해 달라”고 합니다. 그래야만 제가 재판에서 해방된 상태에서 더 밀도 있고 충실한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러분과 ‘같은’ 지평에서 토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라고 요구해서 무산시키기도 했어요.
박 교수는 늘 ‘나의 책은 문제 있는 책’이라는 암시를 흘려 대중을 호도했던 지식인들의 비판이야말로 나에 대한 기소를 유발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가담자다. 그래서 ‘고발/기소에는 반대하지만, 책 내용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을 나는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로 일관했습니다. 학문적 비판도 토론도 거부하는 것이지요.
나아가서 소녀로 대변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 동원한 자료가 연령 계산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면, 자료를 인용, 제시하면서 그 자료가 끝낸 계산을 다시 반복하는 작업은 연구자의 의무가 아니다. 따라서 사용한 자료의 계산이 틀렸다고 해서 그것을 나의 ‘오류’로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고 맞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학자의 자세란 말인가요.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도 책을 편견으로 읽었거나 안 읽은 것”, 또는 ‘오독’했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스스로 충돌하는 논리를 함께 서술함으로써, 오독을 유도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텐데 말이죠. 그 밖에도 학문적으로 비판하는 메이지가쿠인 대학의 정영환 교수에게도 나에게 적대적인 것은 ‘조선적’이라 북한과 가까워서 그렇다 는 막말을 쏟아냅니다.
정영환 교수
정 교수는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를 통해, 이 책이 일본 내 우익만이 아니라 좌파와 자유주의자에게도 환영받는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진단하는데요. 1990년대 이래 일본사회 지적 퇴락 의 종착점을 보는 거 같다”며 조금만 살펴봐도 객관성이 결여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도 비판이 없는 것은 일본사회 전반으로 퍼진 은근한 우경화 의 영향”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는 이어서 이 책이 일본 언론계에서 이토록 폭넓게 예찬 받은 것은 박유하 씨가 일본사회의 지식인의 욕망을 민감하게 감지하여 전전의 대일본제국의 책임 부정과 전후사의 수정이라는 두 가지 역사수정주의에 호소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러한 의미에서 제국의 위안부 현상이라는 것은 일본의 지식인, 언론계의 문제인 것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일본어판에는 한국어판에 없는 주장이나 뉘앙스를 달리한 내용이 등장하고 있으며, 또 양국 관계가 정체된 책임이 전후 일본의 보상과 사죄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국 측에 있다고 적는 등 일본인의 입맛에 맞도록 가필했다고 밝혔습니다. 정 교수가 자신의 실체를 가장 정확하게 지적하다 보니 박 교수가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지요.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가? 박 교수의 도착된 인식
물론 연구자가 자신의 저서로 말미암아 민형사상의 피고가 된다는 것은 충분히 피해의식을 가질 수 있으며, 거의 10년 가까이 재판이 진행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위한 헌신’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었던 피해와 이 책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를 ‘2015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던 과 2014년 6월에 가진 인터뷰에서 저 역시 온라인상에서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듣고, 그래서 잘 때 가위에 눌린다. 이번 사건으로 깊이 상처받았고, 가장 피해가 컸던 게 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어요. 이 대목에서 앞에 언급했던 성명서의 일부 내용을 불러오겠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 국가기관의 관여 아래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연행된 여성들에게 ‘성노예’를 강요한, 극히 반인도적이고 추악한 범죄행위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 그 범죄행위로 인해 참으로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커다란 아픔을 견디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합니다.
그 범죄행위에 대해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법적 상식입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65년에 해결되었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지친 노구를 이끌고 전 세계를 돌며 ‘정의로운 해결’을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엄중한 사실들을 도외시한 연구는 결코 학문적일 수 없다고 믿습니다.”
『제국의 위안부』가 배제시킨 타자, 즉 일본제국주의의 희생자들이 우리 사회 학문과 언론 출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자들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제국의 위안부’로 호칭되어 지식의 폭력에 희생된 피해자들을, 되려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가해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를 추천합니다.
책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와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반일 담론 비판할 때는 꼭 일본 비판도 함께” 일본 지식인의 당부
일본의 탈민족주의 지식인들은 바로 일본의 식민지배의 책임을 묻고 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바라고 있어요. 그런데 그 논리를 한국 사회에 가지고 들어와 오히려 일본의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고 그에 맞서는 한국의 대응을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박유하 교수입니다. 결과는 누구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일까요?
양현아 서울대 교수는 박 교수가 ‘위안부’ 문제를 제국의 틀에서 볼 뿐 식민지 틀에서 보지 않고 있다. 당시 조선의 여성이 처해 있었던 식민지라는 구조를 삭제한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국민국가의 패러다임을 극복하자는 트랜스 내셔널리즘을 주장하지만, 제국의 관점에서 일본을 바라볼 뿐,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앞으로 박 교수가 한국 지식인이 한국의 반일 담론을 비판할 때는 반드시 일본에 대한 비판도 잊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재료로 이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가장 두렵다”라는 일본 지식인의 말에 귀기울여 주기 바랍니다. 재판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왔으니 좀더 열린 자세를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