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도 논쟁도 공동체성의 유지가 전제”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퀴즈에 ‘문서의 신’으로 출연
글쓰기는 조직 생활의 필살기입니다. 화이트칼라의 경우 쓰고 말하는 게 업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페이퍼 작업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더 중요하고 비중이 큰 일을 맡게 되죠.”
비즈니스 글쓰기 전문 강사인 백승권 커뮤니케이션컨설팅앤클리닉 대표는 보고서, 제안서, 이메일, 보도자료 등을 잘 쓰면 조직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좋은 기회를 더 많이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의 성공 자체가 상당 부분 글쓰기 능력에 달렸다고 할 수 있어요. 토익 점수 같은 스펙, 전문적 능력은 입사할 때만 중요해요. 특히 신입 직원의 경우 상사의 말귀를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죠. 커뮤니케이션을 잘해야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있고, 업무 수행의 과정 자체가 보고서와 연관돼 있죠.”
백 대표는 페이퍼를 안 쓰는 일은 해당 조직에서 주변부적인 일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 마디로 루틴한 단순 작업이죠. 페이퍼를 쓸 땐 여러 사람의 능력을 동원하는 과정을 거쳐 시너지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기자 출신이다. 미디어오늘 방송팀장을 지낸 후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대통령 보고서와 메시지 작성을 담당했다. 연간 200회 이상 글쓰기 강의를 하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 일에 집중하느라 연간 100회로 강의 횟수를 줄였다. 유퀴즈온더블록에 ‘문서의 신’으로 출연한 일이 있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백승권 커뮤니케이션컨설팅앤클리닉 대표.
-평소 글쓰기 강의 때 강조하는 게 뭡니까?
독자, 읽는 사람 중심으로 쓰는 겁니다. 사실 이런 고객 마인드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의 기본 원칙이죠. 글쓰기는 보통 독자와 ‘정보의 비대칭’ 상황에서 하게 됩니다. 쓰는 사람이 그 글을 읽는 독자보다 해당 주제에 관한 정보의 우위에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정보의 양이나 표현의 수위를 잘 정해야 하는데 자칫 공급자로서 자기중심적인 결정을 하기가 쉬워요.”
그는 말하기의 경우 듣는 상대가 앞에 있어 표정, 제스처 등을 상대에게 맞추게 됨으로써 고객 중심의 대화를 하기가 더 쉽다고 덧붙였다. 무언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글쓰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름의 영업비밀을 공개해 주시죠.
비즈니스 글쓰기는 내가 속한 조직에서 다른 구성원들과 어떤 사실을 공유하는 게 목적입니다. 그런 만큼 재능이나 창의성보다 공유의 스킬이 더 중요하죠. 좋은 훈련법은 칼럼, 에세이 같은 짧은 글을 요약해 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핵심을 파악하고, 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구성을 익힐 수 있죠. 구성은 어떤 내용을 어떤 순서로 전달하느냐의 문제인데 이런 구성 능력이 어휘력, 문장력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전형적인 구성법이 서론-본론-결론, 기승전결 아닙니까?
서론, 본론, 결론의 전략이 다 다릅니다. 기사의 리드에 해당하는 서론은 후킹(Hooking), 사례 제시, 인용 등으로 시작할 수 있죠. 이런 전략을 많이 알수록 내용에 맞는 구성의 전략을 구사하고 더 풍부하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전략을, 남의 잘 쓴 글을 요약하는 과정을 통해 익힐 수 있죠.”
-기사 작성을 포함해 비즈니스 글쓰기는 훈련으로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보나요?
예, 실용 글쓰기, 업무 글쓰기는 전달하려는 내용을 독자에게 정확히 효율적으로 전하는 게 목적이에요. 보고서, 제안서, 보도자료, 이메일 같은 것들이죠. 이런 글쓰기는 나름의 법칙이랄까 매뉴얼이 있습니다. 저도 대학 때까지는 문학을 했는데, 문학은 달라요. 특히 프로의 문학 세계에 뛰어드는 건 재능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비즈니스 글로서 이메일을 강조하시는데 이메일을 쓰는 요령은 뭔가요?
이메일은 흔히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보내지만 동시에 일종의 편지입니다. 공적 성격과 사적인 성격을 함께 띠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받는 사람과의 라포(rapport)를 형성하는 정서적 터치가 필요합니다. 수신자가 본래 아는 사람이라면 안부를 물어볼 수 있죠. 예를 들어 첫머리에 ‘따님의 결혼을 다시 한번 축하 드립니다’라고 쓰는 거죠. 모르는 사람의 경우 날씨나 건강에 관한 인사를 건넬 수 있습니다. ‘강추위가 며칠째 계속되는데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앞 부분에 이런 사사로운 이야기를 두어 줄 쓰면 용건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집니다. 수용도를 높이는 지혜로운 전략이죠.”
-SNS 글쓰기는 어떻게 해야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나요?
저도 인플루언서는 아닙니다만, 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의 SNS에서 글에 달린 ‘좋아요’ 개수가 1000이 넘는 사람들은 뚜렷한 고유의 캐릭터가 살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캐릭터의 팬이 되는 거죠. 다른 하나는 읽는 사람에게 어떤 유용함을 제공하는 겁니다. 재미있거나 유익해야죠. 자기 분야에서 놀라운 인사이트를 주는 사람도 있어요. 사진과 글 배치의 오묘한 조합도 읽게 만드는 전략이 될 수 있죠. 특히 글의 도입부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하는 후킹이 효과적인 전략이에요. 스타이거나 빼어난 미남·미녀가 아니라면 전략적인 글쓰기를 해야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에게 지식, 경험, 통찰 등 유용함을 줘야 한다는 게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라고 말했다.
-AI 시대 글쓰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자계산기가 과학과 수학의 역사를 바꿔놓았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자는 연산을 하는 데 더 이상 에너지를 쓰지 않죠. AI는 글쓰기 세계의 전자계산기 같은 존재라고 봐요. 과거엔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사람이 인류의 10%도 안 됐을 거예요. 지금은 누구나 AI를 활용해 장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죠. 글쓰기의 디폴트가 달라진 겁니다. 그럼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나 프로의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이 전제 위에서 새로운 글을 써야 합니다. 고유한 생각을 담아 자신만의 문체와 표현으로 하는 글쓰기, 자기만의 ‘지문’이 있는 글을 써야죠.”
-글쓰기에 AI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나요?
자신의 고유한 문체를 지키려 AI를 쓰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역시 존중받아야 할 자세죠. 저는 AI를 많이 활용하고, AI 덕에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됐죠. 그러나 인용을 할 땐 할루시네이션(AI가 거짓이거나 맥락과 관련 없는 내용을 생성하는 현상) 가능성에 유의해야 합니다. 검색 엔진으로 교차 검증하지 않으면 망신을 당할 수도 있어요.”
-요즘 한국인의 글쓰기에 대해 아쉬운 점은 뭡니까?
비판도 논쟁도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 유지라는 대전제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글에도 금도가 있어요. 그런데 현실에서는 공동체성을 파괴하는 글이 참 많고, 또 그런 글들이 인기가 많아요.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진영 논리에 치우치거나 한쪽의 시각으로 재단을 하는 거죠. 심지어 돋보이거나 스스로를 부각하려 상대방을 악마화합니다. 화염병을 던지면 불꽃이 이는데 말을 화염병처럼 던지는 거죠.”
-자유 같은 말의 오염도 심각합니다.
민주, 애국 같은 말, 태극기 같은 상징도 오염됐죠. 내란에 대한 사법적·역사적 단죄가 이루어지는 한편 내란 청산이 우리 사회의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이 한 차원 높아지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의 문해력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합니까?
저는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성세대보다 더 높아요. 문제는 한자어인데, 국한문 혼용 신문을 보고 자란 기성세대와 달리 한자어인 단어의 뜻을 모르거나 오해하다 보니 문해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듣습니다. 한자가 퇴출된 만큼 자연스런 일이죠. 반면 영어 단어에 대한 감수성은 기성세대보다 뛰어나요. 그보다 MZ세대가 관계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건 좀 걱정됩니다. 직장 생활도 커뮤니티 활동도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잖아요. 똑같은 말글도 관계 속에서 맥락을 읽어야 하는데 이런 능력은 젊은 세대가 많이 떨어지는 거 같아요.”
-대표를 맡고 있는 회사 커뮤니케이션컨설팅앤클리닉이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컨설팅도 하는데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애로를 겪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합니까?
역지사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려다 보면 자기 세계에 빠지는 경향이 있는데 입장을 바꿔 수용자 관점에서 이 이야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생각해 보면 길이 보입니다.”
-언론 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 기자를 오래 하셨는데 요즘 언론을 어떻게 보나요?
나름의 진영적 포지션에 따라 보도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봅니다. 불편부당은 불가능해요. 다만 보도의 수준은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당파성이 아니라 실력이 문제라는 거예요. 견강부회를 할 게 아니라 진영이 추구하는 가치를 양질의 콘텐츠와 보편적인 논리로 옹호해야죠. 무어보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성을 해치는 언론이 되면 안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