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구조 열심이었던 30대 상인 왜 세상 등졌나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송기춘 위원장과 위원들이 5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참사 현장 골목에서 희생자 추모를 하고 있다. 2026.1.5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태원 참사 당시 피해자 구조에 열심이었던 30대 남성이 삶의 끈을 놓아버린 사연이 알려져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있다. 당사자는 참사 당일 현장에서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구조와 수습에 함께 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또 유가족들이나 부상자들, 현장 구조와 수습에 앞장섰던 공무원들은 국가 트라우마 센터 등을 통한 지원 매뉴얼이 비교적 작동하고 있지만 안타까운 상황에 팔을 걷어붙이고 구조에 나섰던 상인들과 시민들은 국가의 심리 방역 체계에서 소외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 포천경찰서는 29일 낮 11시 57분쯤 포천시 선단동 왕방산 일대 산등성이에서 숨진 30대 남성 A씨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앞서 서울 구로경찰서는 지난 25일 고인의 가족으로부터 실종 신고를 받았다. A씨는 지난 20일 자택을 나선 후 행방불명 상태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마지막으로 고인의 행적이 포착된 왕방산 입구의 폐쇄회로(CC)TV 등 A씨 동선을 확인하면서 수색을 진행했다.
전날 오후 4시부터는 구리서와 포천서 간 공조 수색도 이어졌다. 경찰은 이날 오전 7시부터 경찰 기동대 30명과 소방 인력 20명 등 모두 50여명을 현장에 투입했고 인근 초등학교 주변 숲을 약 5시간 동안 수색해 A씨를 발견했다. 경찰은 현장 정밀 감식을 통해 정확한 사망 경위를 규명하는 한편, 부검 여부 등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이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은 해밀턴 호텔 근처에서 상점을 운영하던 고인은 참사 이후 트라우마와 우울 증세를 호소해 왔으며, 실종 직전에는 평소와 다른 우울감과 불안 증세를 보였다고 가족이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좁은 골목길에서 발생한 믿기지 않는 압사 사고를 바로 눈앞에서 목격했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도 인파에 깔려 의식을 잃어가는 피해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구조 활동에 직접 뛰어들어 구급대원들과 함께 쓰러진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심폐소생술(CPR)을 돕는 등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이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깊은 죄책감, 이른바 생존자 증후군(Survivor s Guilt) 에 시달렸다. 눈앞에서 수많은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충격은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중증 우울증으로 이어졌다. 밤마다 그날의 비명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일상생활을 온전히 영위하기 힘들 정도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이태원 상권이 급격히 침체되면서 A씨는 가게를 운영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임대료와 인건비, 대출 이자 상환 등에 고정적으로 나가는 지출을 감당하지 못한 그는 빚을 내 빚을 갚는 악순환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용산구청 차원에서 이태원 상인들을 위한 금융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됐으나 까다로운 대출 조건이나 지원 액수 한정 때문에 고인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태원 참사 당일, 소방대원들이 현장 주변 도로에서 구조 노력을 다하고 있다. 나무위키 갈무리
A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참사 당시 선뜻 구조 활동에 힘을 보탰던 시민들과 상인들이 국가의 심리 방역 체계에서 소외돼 있다는 지적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국가 트라우마 센터 등을 통해 지원 매뉴얼이 작동하는 공무원이나 유가족, 부상자와 달리, 구조를 돕거나 현장을 수습했던 상인이나 목격자들은 스스로 나서 피해를 증명하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한 관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생계에 매달려야 하는 형편에 장기적인 심리 치료나 정신과적 돌봄을 받지 못한 채 홀로 고통을 감내해 오고 앞으로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상인이나 목격자들을 PTSD 고위험군으로 선제 분류해 지역사회 보건소 및 민간 센터와 연계된 밀착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종 소식이 알려진 뒤 온라인에는 그날 누구보다 용감하게 구조를 도왔던 분인데, 홀로 아픔을 견디게 해서 너무 미안하다 , 제발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서 함께 어려움을 이겨냈으면 좋겠다 는 반응들이 올라와 무사히 돌아올 것을 기원했지만 그는 세상을 등졌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 전화 ☎ 109 또는 자살예방 SNS상담 마들랜 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핼러윈 인파 대비 안돼 159명 사망, 195명 다쳐
이태원 참사는 2022년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대형 압사 사고다. 당시 이태원에는 핼러윈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으며, 해밀턴 호텔 앞 좁은 골목길로 인파가 떠밀려 넘어지면서 159명이 사망하고 195명이 다쳤다. 이 사고는 2003년 192명이 사망했던 대구 지하철 참사와 2014년 304명이 희생된 세월호 침몰 사고에 이어 다시 한 번 많은 인명이 희생된 참사였다. 특히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로는 502명이 사망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두 번째로 큰 인명 피해를 남겼다.
외국 압사 사고와 비교해 봐도 1989년 97명이 사망한 영국 힐스버러 참사나 2022년 132명이 숨진 인도네시아 칸주루한 스타디움 참사보다 사망자가 많았고 21세기 전 세계에서 발생한 군중 압사 사고 중에도 피해 규모가 아홉 번째로 컸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청문회 의혹에 대한 검경 합동수사팀의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2026.3.26.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제공
더디기만 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참사 후 3년 6개월이 흘렀지만,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들은 갑갑할 정도로 진전되지 않고 있다. 유가족들은 지난달 26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과 추가 수사가 필요한 과제들을 제시하고, 검경 합동수사팀의 철저한 수사를 요청했다. 유족은 같은 달 12일과 이튿날 열린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드러난 참사 초기 대응 실패 과정과 의혹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또 출범 8개월이 된 검경 합동수사팀이 제대로 된 수사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유가족들은 청문회 과정에 드러난 의혹으로 112 구조신고 묵살과 허위 출동 기록, 구청 당직자의 전단지 제거 동원, 시신 분산 이송의 경위, 허위 보도자료 작성, 소방의 골든타임 오판과 현장 지휘 실패 등을 들었다.
유가족들은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 지시로 검경 합동수사팀이 꾸려진 만큼,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과 과제를 해소하기 위한 수사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청문회에서 확인된 사실을 기초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희영 용산구청장, 최성범 용산소방서장, 송은영 전 이태원역장 등에 대한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경찰은 왜 112신고를 처리하지 않았는지, 경비기동대 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수사해야 된다 면서 행정안전부 관계자들이 재난 상황에서 컨트롤 타워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수사해야 한다 고 했다. 아울러 재난 당시 용산구청 당직실 인원들이 박희영 구청장 지시로 전단지를 제거한 경위와, 용산소방서 관계자들의 구조 실패에 대해서도 재수사가 필요하다 며 송은영 전 이태원역장은 참사 당시 무정차 요청에도 무정차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실제 역내 질서유지를 이유로 무정차 요청에 응할 수 없었는지 여부 등과 함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한 재수사도 필요하다 고 말했다.
유가족협의회 송해진 운영위원장은 저희 유가족들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아이는 왜 죽어야 했는가 그 죽음 앞에서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라는 질문을 붙들고 살았다 면서 그런데 청문회장에서 이 모든 것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은 사람이 없었다 고 비판했다. 김광호 전 청장은 청문회장에서 증인 선서를 거부했고, 증인으로 불렀던 전직 대통령 윤석열은 재판 준비 등을 이유로 청문회장에 나타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