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개 협력사 실사로 드러난 공급망 관리의 공통 병목… 해법은?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 EU 배터리법,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강화된 EU 규제는 이제 하겠다 가 아니라 했다 를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최근 데이터 관리가 화두로 떠오른 이유다.
그러나 현장은 이러한 요구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실사 문항을 이해하지 못한 협력사, 증빙을 누락한 채 연락이 끊기는 협력사,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는 문의까지. 원청과 중견기업의 ESG 담당자는 소통과 반복 작업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정작 감축 전략이나 KPI 설계 같은 핵심 업무는 뒤로 밀린다.
지난 3년간 약 4000개사의 공급망 ESG 실사를 수행해온 로그블랙은 이러한 병목을 매년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한다. 공급망 실사의 병목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기업은 무엇부터 다시 설계해야 할까. 로그블랙 유원상·진성광 공동대표에게 답을 물었다.
Q. 공급망 ESG 실사가 기업에 핵심 의제 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인가.
평가 범위가 1차 협력사를 넘어 2·3차까지 확대되면서, 기업은 자신이 직접 운영하지 않는 협력사의 사업장까지 ESG 이슈 및 리스크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CSDDD처럼 공급망 전반의 위험 식별과 개선을 요구하는 규제가 늘면서, 글로벌 고객사와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정보의 범위는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기존 시스템이 이 구조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여전히 공급망 데이터 관리는 엑셀과 이메일에 의존하고 있으며, 기존 ERP에는 협력사의 영업·구매 정보만 있을 뿐 실제 ESG 데이터를 관리하는 환경·안전 담당자 정보는 없다. 설문이 엉뚱한 부서로 전달되거나, 문항을 이해하지 못한 채 형식적 응답만 이어지는 이유다. 데이터를 요청해도 품질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여기에 있다.
Q. 4000개 실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실패 패턴 은 무엇인가.
업종과 무관하게 세 가지 문제가 반복된다.
첫째, 기초 데이터가 없다. 협력사에게 1~3개년 환경 데이터를 요청하면 상당수가 전력비·수도요금 영수증만 제출한다. 온실가스 산정 경험 자체가 없는 곳도 적지 않다.
둘째, 정책과 증빙의 불일치가 광범위하다. 강제노동 금지 정책이 있다 고 답했지만, 제출된 인권헌장에서는 해당 문구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협력사 담당자들은 우리 회사에 정책이 있을 것 이라고 추정해 예 를 선택하지만, 실제 문서에는 관련 내용이 없다. 서면 실사 단계에서 예→아니오 로 대거 수정되는 이유다.
셋째, 산업별 격차가 뚜렷하다. 대형 제조·플랜트 협력사는 글로벌 OEM과의 거래 과정에서 환경·안전 실사를 오래 경험해왔고, 데이터 측정 체계나 정책 문서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 반면 물류·대리점·소규모 사업장은 전담 인력도 부족하고 측정 체계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동일한 설문을 일괄 배포하면 영세 협력사는 해당 없음 을 반복 체크하거나 증빙 없이 예 만 선택한다. 실사 오류의 상당수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로그블랙 공급망 실사 솔루션 화면. 협력사별 평가 진행 상황과 문항별 응답률을 확인할 수 있다. / 제공 = 로그블랙
Q. 이러한 문제가 매년 반복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실사를 운영하는 업무 구조 자체가 개선되지 않기 때문이다. 협력사가 제출한 데이터를 검토하고, 부족한 부분을 재요청하고, 증빙과 설문을 대조해 검증하는 과정은 사람이 매뉴얼로 처리하기에는 단계가 지나치게 많다. 엑셀·이메일 중심으로 이 흐름을 관리하면 병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여 건의 공급망 실사 프로젝트를 통해 4000여 개사의 협력사를 평가하며 확인한 결과, 공급망 실사는 데이터 취합과 검증만으로도 시스템 없이는 6개월 이상, 시스템이 있어도 3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설문 설계가 정비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업종별 문항 적용 범위, ‘해당 없음’ 조건, 필수 증빙 기준을 명확히 정의하지 않은 채 데이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기준 없이 데이터를 요청하면 협력사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고, 원청은 이를 다시 정합성 기준에 맞춰 재검증해야 한다. 이 과정이 매년 반복된다.
또한 실사–검증–개선이 하나의 흐름으로 설계돼 있지 않아 데이터가 다음 단계로 연결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위험을 식별해도 개선 과제로 이어지지 않고, 다음 해 실사에서는 또다시 처음부터 동일한 데이터를 요청하게 된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물을 것인가 라는 설계 없이 데이터 수집만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데이터를 모아도 품질이 담보되지 않고, 실사가 위험 식별이나 개선 단계로 나아가지도 못한다.
Q. 그렇다면 지금 기업이 가장 먼저 바꿔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급망 실사를 설문을 한 번 돌리는 업무 가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관리 프로세스로 재정의해야 한다.
우선, 문항 설계·증빙 기준·업종별 적용 범위를 표준화해 협력사 수준에 맞게 차등 적용해야 한다. 제조업에는 환경 데이터를, 물류업에는 안전·보건 데이터를 중심으로 묻는 식이다.
다음으로, 데이터 수집→검증→보완→현장 실사→개선 과제 부여까지 하나의 연간 사이클로 설계해야 한다. 일회성 이벤트로 운영하면 병목이 반복되고 개선이 쌓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협력사가 매년 처음부터 다시 작성하지 않도록 데이터를 재사용 가능한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 전년 데이터를 기반으로 변경 사항만 업데이트하는 방식이다.
Q. 앞으로 기업은 어떤 방식의 대응 체계를 고민해야 하나.
공급망 ESG는 엑셀이나 기존 ERP만으로는 대응이 어렵다. ERP는 본래 구매·거래 관리를 위해 설계됐다. 문항 해석, 증빙 검증, 데이터 정합성, 개선 과제 관리 같은 ESG 실사의 핵심 기능은 ERP의 설계 목적과 맞지 않는다.
공급망 실사는 실사–검증–개선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설문 데이터의 DB화, AI 자동 검증, 평가 및 실사 담당자 관리처럼 실무에 특화된 기능이 필요하다. 이런 구조를 갖추지 않으면 데이터 품질을 확보하기 어렵고, 매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전문 솔루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부에서 계속)
☞ 유원상 공동대표
KAIST에서 화학과 경영과학을 전공하고 경영공학·녹색정책 석사를 취득한 뒤, 티맥스데이터에서 ERP·AI 서비스 개발을 이끌었다. 이후 헤이브레드와 라운드인 대표를 역임하며 기업 데이터 구조 설계와 업무 프로세스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현재 로그블랙의 공급망 ESG 실사·데이터 관리 플랫폼 총괄을 맡고 있다.
☞ 진성광 공동대표
POSTECH에서 산업경영공학을 전공하고 우아한형제들·코인원·트립스토어에서 데이터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대규모 데이터 처리·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이후 LLM 기반 ESG 데이터 분석·가공 기술 개발에 집중해 왔으며, 로그블랙에서는 ESG 데이터 구조화, 문서 검증 자동화, AI 기반 실사 기능을 총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