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제 정신이면…해외 투자은행 4월 안 슈퍼추경”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내수 불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충격적 통계 수치가 나왔다. 소매판매액 지수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매판매액 지수는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전년도 같은 기간보다 2.1% 하락했다. 이 지수는 백화점과 할인점, 면세점, 슈퍼마켓, 전문점 등 거의 모든 유통 매장의 판매액을 근거로 산출한다. 어떤 지표보다 소비 동향을 잘 보여준다. 이런 소매판매액 지수가 2% 이상 낮아진 건 2003년 신용카드 대란 이후 처음이다. 소비가 21년 만에 최악이라는 의미다.
불황에 계엄 여파로 자영업계가 울상을 짓고 있는 가운데 15일 오후 서울 종로 일대 모습. 이날 소상공인엽합회는 입장문을 통해 정치권이 초당적 협력을 통해 경제 살리기에 나설 것을 요청하는 한편 국면이 전환된 만큼 연말을 맞아 소비자들도 안심하고 소상공인 매장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2024.12.15. 연합뉴스
소매판매액 계엄 전 이미 21년 만에 최악
소매판매액 지수는 2023년에도 1.6% 뒷걸음질했다. 소비 침체가 2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모든 소비 제품 판매액이 2년 연속 감소한 것은 1995년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최초다. 문제는 이 지수가 12.3 내란 사태로 인한 소비절벽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지수까지 포함하면 하락 폭이 더 클 게 분명하다. 비상계엄 선포 이후 첫 주(지난해 12월 7~13일) 신용카드 사용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 넘게 줄었고 12월 마지막 주(21~27일)에도 1.5% 감소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내수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들은 극심한 소비 침체로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다. 내란 사태가 한 달 이상 지속되며 이제는 한계 상황에 직면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을 앞두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고 있어 물가가 다시 상승하면 내란 사태가 종결된다고 해도 소비가 살아나기 어렵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가계는 각각 수익성 악화와 부채 증가로 소비와 투자 여력이 소진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과 한국은행, 경제단체가 정부에 소비 진작용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도 이런 절박한 현실 때문이다.
소매판매액 지수 증감률. 연합뉴스
20조~30조 추경, 성장률 0.2%포인트 올려
급기야 국내 정치에 중립적인 해외 투자은행(IB)들도 경기 부양을 위한 추경 편성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추경을 통해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20조 원 이상의 ‘슈퍼 추경’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투자은행들은 최근 국내 경제 상황을 진단하며 이르면 1분기, 늦어도 2분기에는 정부가 추경을 편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프랑스의 BNP파리바는 기획재정부가 1분기에 20조~30조 원 규모로 추경을 편성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0.2%포인트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의 바클레이즈도 “한국 정부가 기존 예산을 1분기에 조기 집행한 후 1분기 경제지표를 반영해 4월에는 추경을 편성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규모가 20조~30조 원 수준일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해외 투자은행까지 나서 추경의 불가성을 언급한 것은 내란 사태로 인한 내수 불황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비상계엄 전만 해도 추경의 필요성 자체를 놓고 논란이 있었고 추경을 편성한다고 해도 10조 원 안팎일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내란 사태로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슈퍼 추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민주당도 추경 규모를 최소 20조 원으로 정했다.
“산소호흡기 달고 긴급 수혈도 해야 할 판”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50조 원의 슈퍼 추경을 편성해 설 연휴 전에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13일 출입기자단과의 신년간담회에서 △ 소상공인·자영업자에 최소 15조 원 △ 소득에 따라 지원하는 민생 회복 지원금 최소 10조 원 △신성장 산업에 최소 15조 원 등을 투입하는 ‘대한민국 비상 경영 3대 조치’를 제안했다. 그는 “윤석열 충격에 더해 트럼프 충격으로 올해 성장률 1%대라는 위기 상황에서 시간이 갈수록 돈이 더 들 것”이라며 “기존 정책과 방식에서 탈피해 산소호흡기도 달고, 긴급 수혈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민주당도 “정부가 상반기 예산 67%를 조기 집행하겠다고 했지만, 이 정도로는 대내외적 불확실성을 이겨내고 민생경제를 회복하기에 역부족”이라며 “적자국채를 발행해 편성한 추경으로 심리 진작 효과를 마련하고 내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국혁신당 역시 “내란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을 빨리 풀기 위해 가칭 ‘내란 회복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국회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20조~25조 원 규모로 긴급 추경을 편성해 1인당 20만~30만 원가량 지급하자는 것이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13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정치 현안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11.13. MBC 중계 화면 갈무리
예산 조기 집행에만 매달리는 정부·국민의힘
야당과 한국은행, 경제단체는 물론 해외 투자은행들도 추경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데도 정부와 국민의힘은 예산 조기 집행에만 매달리고 있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13일 국회를 찾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도 “추경 편성과 관련해 정부 입장에선 기본적으로 예산의 조기 집행에 방점을 두고 있다”며 “민주당에서 이야기하는 20조 원 전후의 추경보다 훨씬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서 내수를 좀 더 진작시키고 경제를 좋게 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