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든 혁명가 노먼 베순을 호출하다 [카테고리 설정이 아직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의료 기상도는 쾌청과는 거리가 멀다. 병원 문턱은 높고 응급실은 만원이며, 돈 안 되는 필수 의료 분야는 텅텅 비어가는 실정이다. 강남의 성형외과 간판이 불야성을 이룰 때, 지방의 분만실은 폐쇄의 운명을 맞는다. 이 기묘하고도 비극적인 풍경 속에서 먼지 쌓인 역사책의 한 사내를 소환하는 일은 시의적절하다. 바로 노먼 베순(Henry Norman Bethune, 1890~1939)이다.
캐나다 출신의 이 흉부외과 의사는 안락한 서구인의 삶을 발로 차버리고 전장(戰場)터 찾아다닌 자발적 고행 전문가 이자, 죽어가는 사람 곁이라면 지옥 불에라도 뛰어들었던 불나방 의사 였다.
노먼 베순의 졸업 사진, 1922년쯤.(위키피디아)
잘나가던 의사, 왜 빨간색 에 물들었나
노먼 베순이 처음부터 성자는 아니었다. 젊은 시절의 그는 실력 좋은 의사로 부를 쌓았고, 세련된 양복을 즐겨 입던 멋쟁이 신사였다. 하지만 1926년, 그에게 시련이 닥친다. 결핵에 걸린 것이다. 당시 결핵은 가난한 자의 사형 선고 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그는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한다. 자기 몸을 실험대 삼아 당시로는 파격적인 인공 기흉술 (Artificial Pneumothorax)을 시도해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이다. 인공 기흉술의 핵심은 강제로 폐를 쭈그러뜨리는 것 이었다.
이 경험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그는 깨달았다. 병의 원인은 세균이 아니라 빈곤! 이라고 말이다. 이때부터 베순의 날카로운 기지는 사회의 모순을 향한다.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무료 진료소를 열었고, 캐나다 의료체계가 돈 없으면 죽어라 는 식의 야만성을 띠고 있다고 힐난했다. 그에게 사회주의는 복잡한 수식이 아니라 아픈 사람에게 제 때 약을 주는 상식 이었다. 그는 의료는 결코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주장했다. 당연히 기득권층에게 그는 불온분자 이자 공공의 적 이었다.
노먼 베순의 생가, 현재는 베순 기념관.(위키피디아)
스페인에서 중국까지 환자 있는 곳이 내 병원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베순은 주저 없이 짐을 쌌다. 파시즘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다. 세계 최초의 이동식 헌혈 부대 를 창설한 것이다. 피가 모자라 환자가 죽는다면, 피를 들고 현장으로 가면 될 것 아닌가! 라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피를 나르는 그의 모습은 민중들에게 구세주와 같았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938년, 일제 침탈에 신음하던 중국으로 건너간다. 옌안에서 마오쩌둥(毛澤東, 1893~1976)을 만난 베순은 팔로군(八路軍)의 의사가 되어 타이항(太行) 산맥의 험준한 산을 누볐다. 그는 부서진 문짝을 수술대로 쓰고, 기와 조각을 도구 삼아 수술을 집도했다. 심지어 자신의 피를 직접 뽑아 부상병에게 수혈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 민중들은 그를 백구은(白求恩) 이라 불렀다. 은혜를 구하러 온 하얀 사람 이라는 뜻이니 동양식 해학이 담긴 최고의 찬사였다. 그는 1939년, 수술 도중 손가락을 베어 감염된 패혈증으로 사망할 때까지 단 한 순간도 쉬지 않았다. 그의 죽음 앞에 마오쩌둥은 노먼 베순을 기념하며 란 글을 써 그의 고결한 정신을 기렸다.
1936~37년 스페인 내전 현장을 누볐던 캐나다 혈액 수혈 부대. 오른쪽이 노먼 베순 박사.(위키피디아)
2026년 한국, 왜 다시 베순인가
오늘 대한민국의 현실을 베순의 눈으로 들여다보자. 우리는 세계 최고의 의료 기술을 자부하지만, 속살은 곪아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첫째,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다. 첨단 기기가 즐비한 도심 한복판에서 환자가 실린 구급차가 갈 곳을 몰라 길 위에서 시간을 허비한다. 베순이 이 광경을 봤다면 90년 전 타이항 산맥 동굴에서도 사람을 살렸는데, 이 찬란한 문명국가의 길바닥에서 사람을 죽이느냐 고 불호령을 내렸을 것이다. 의료를 돈 버는 업으로만 치부하고 공공성을 방기한 결과다.
둘째, 지역의료의 소멸이다. 서울의 대형 병원은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지방은 아이를 낳을 병원조차 없어 원정출산에 나선다.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필수 의료시설을 폐쇄하는 자본의 논리는 의사는 환자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찾아가는 사람 이라 했던 베순의 철학과 정면 충돌한다.
셋째, 의료 인력 확충을 둘러싼 갈등이다. 누군가는 밥그릇을, 누군가는 정치적 득실을 따진다. 베순이라면 특유의 풍자를 섞어 이렇게 일갈했을지 모른다. 당신들의 청진기는 환자의 심장 소리를 듣는 도구인가, 아니면 주식시장의 종소리를 듣는 도구인가? 전문가 집단이 지식을 성벽 삼아 기득권을 지키려 할 때 사회는 병든다.
1938년 노먼 베순이 마오쩌둥에게 원수 계급을 부여받은 10인 중 한 명인 니에룽전(聶榮臻, 가운데)과 통역을 통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위키피디아)
베순이 남긴 시사점: 의료는 인권 이다
베순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세 가지 굵직한 가르침을 던진다.
첫째, 현장 중심의 사고다. 베순은 책상머리 행정이 아니라 진흙탕 속 전선에서 답을 찾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수치로 점철된 보고서가 아니라, 환자가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현장 밀착형 정책이다.
둘째, 전문가의 사회적 책임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흉부외과 기술자였으나 그 기술을 돈벌이에 쓰지 않았다. 기술은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일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는 평범한 진리를 몸소 실천했다.
셋째, 경계를 넘는 연대다. 캐나다 의사가 스페인과 중국의 아픔에 온몸을 던진 것은 그가 세계시민 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와 소외계층을 향한 우리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
중국 베이징 완핑성에 있는 베순 동상.(위키피디아)
우리 시대의 백구은 을 기다리며
노먼 베순은 떠났지만, 그가 남긴 질문은 2026년 우리 사회의 폐부를 찌른다. 의술은 누구를 향해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의료대란 이라는 유령과 싸우고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의사 숫자가 아니라, 의사들이 어디에서 누구를 위해 칼을 잡느냐에 있다. 베순이 수술 도중 손가락을 베여 죽음에 이른 것은 사고였지만, 그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필연이었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듯, 베순의 헌신과 박애 정신이 우리 사회의 병든 의료현장에 스며들길 소망한다. 정치권은 정쟁의 수단으로 의료를 이용하지 말고, 의료계는 이윤의 늪에서 벗어나 베순이 걸었던 그 험한 산길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그가 하늘에서 우리를 본다면 특유의 냉소 섞인 기지로 이렇게 물을 것만 같다. 그래, 당신들의 메스는 지금 무엇을 도려내고 있는가? 환자의 종양인가, 아니면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희망인가?
베순의 유언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말라 는 21세기 대한민국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각자도생의 시대, 우리는 다시 베순을 읽으며 연대의 온기를 찾아야 한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노먼 베순 광장에 세워진 그의 동상.(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