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원의 ESG투자트렌드】 거센 Anti-ESG 물결, 어디까지 갈까? [채용] 희망찬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월스트리트저널이 불길한 제목(‘The Latest Dirty Word in Corporate America: ESG’)의 기사를 내놓았다. 국내 언론에서는 한층 더 자극적인 제목을 입혀서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공화당의 Anti-ESG로 인해 ESG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격화되고, ESG를 고려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법안이 발의 또는 통과되면서 기업들이 더 이상 ESG라는 용어를 쓰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기사의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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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투자 트렌드를 다루면서 Anti-ESG는 피하고 싶어도 피해 갈 수 없는 주제다. 아직 그 영향이 주로 미국 내에 머물고 있지만 미국이라는 국가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처음 Anti-ESG를 접했을 때는 그 힘을 과소평가했었다.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억지 주장이라고 생각했고, 이미 많은 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은 ESG를 내재화했기 때문에 그 영향이 별로 크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텍사스와 같이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일부 주에서만 반짝하고 끝날 줄 알았다.
오판이었다. 공화당 경선의 주요 주자 중 한 명이었던 플로리다 주지사 론 드샌티스가 Anti-ESG를 적극적으로 본인의 아젠다로 내세우면서 ESG를 향한 반대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그 불길이 지나간 곳에는 ESG투자를 막는 법안들이 세워졌다. 투자 과정에서 ESG를 고려하지 못하게 하거나, ESG를 이유로 특정 산업을 배제하는 등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들이 속속 등장했다. 그리고 법적 불확실성이 커지자 투자 업계도 위축되기 시작했다.
ESG투자를 놓고 두 동강 난 미국: Anti-ESG v. Pro-ESG
최근 들어 눈에 띄는 움직임 중 하나는 미국 대형 금융기관이 기후변화 관련 이니셔티브를 줄줄이 탈퇴하고 있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Anti-ESG로 인한 법적 리스크가 그 주요 원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투자 관행에도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 Anti-ESG 법안이 통과된 주에 속한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는 그렇지 않은 주에 비해 ESG를 통합한다고 말하는 비중이 유의미하게 낮았다. 아래에 있는 두 개의 미국 지도가 이를 나타내고 있다. 첫 번째 지도는 ESG 관련 법안의 성격에 따라 각 주를 색으로 구분한 것이다. 붉은색과 노란색 주는 Anti- ESG 관련 법안이 통과되었거나 발의된 주를 의미한다. 파란색과 초록색 주는 반대로 ESG 투자를 촉진하는 법안이 있는 주다. 두 번째 지도는 각 지역별로 ESG를 통합한다고 응답한 기관투자자의 비중을 표시한 것이다. Anti- ESG법안이 있는 주에서는 그렇지 않은 주에 비해 그 비중이 현저히 낮다(청록색으로 표시된 주는 분석을 위한 데이터가 부족).
Anti-ESG 법안이 발의된 주(붉은색, 노란색)과 Pro-ESG법안이 발의된 주(파란색, 초록색)를 구분한 지도 /Ropes&Gray
Anti-ESG 법안이 발의된 주에서는 ESG를 통합했다고 응답한 기관투자자 비율이 유의미하게 낮다 /Callan Intitute
흔들리는 연기금 혼란스러운 민간 금융기관
연기금이 흔들리니, 연기금을 고객으로 하는 민간 금융기관들의 혼란이 가중되는 모양새다. 차라리 전 세계가 Anti-ESG가 되면 시장 대응이 편할 텐데, 미국의 절반은 Pro-ESG를 외치고 있고, 유럽이라는 또 하나의 거대한 시장에서는 ESG 관련 규제와 요구사항이 강화되고 있다. 아시아 시장에서도 ESG투자는 아직 확대 추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투자자들의 ESG투자에 대한 관심도 부침은 있으나 유지되고 있다.
시장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고 생각한 자산운용사들은 아직 ESG투자 프로세스와 투자 전략을 접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 셀룰리라는 미국 금융 컨설팅 업체가 2023년 4월, ESG펀드를 운용하는 미국 자산운용사 대상으로 Anti-ESG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조사를 실시했다. ESG를 고려하는 것을 중단하였거나 중단할 계획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매우 적었다. 그 대신 같은 투자 전략을 가지고 다른 용어와 마케팅 자료로 포장하는 수고를 택했다. 예를 들어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전략을 가진 펀드를 공화당 주에 있는 고객에게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기업에 투자하는 전략이라고 소개하는 식이다.
Anti- ESG 대응 방안/Cerulli Associates
“You can be anti-ESG. It’s hard to be anti-responsibility”
Anti-ESG의 거센 물결이 어디까지 덮칠까? 아직 공화당 우세주 내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Anti-ESG가 공화당 밖의 세상을 설득하기 위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수탁자 책임(Fiduciary duty)’이다. 수탁자 책임이라 함은, 내게 돈을 맡긴 이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며, 이를 위해 합리적이고 신중하게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Anti-ESG의 핵심 주장은 ‘수익률에 집중해’라는 것이다. 즉, 누군가의 돈을 맡았으면 다른 아젠다에 집중하지 말고 수익을 내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수탁자로서 적절한 태도라는 것이다. 반면 ESG투자를 옹호하는 핵심 주장은 ESG리스크를 고려하는 것이 수익률에 집중하는 올바른 태도라고 주장한다.
세계 대부분의 과학자가 합의해 발간한 보고서(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가 극한 기온, 폭우, 가뭄, 허리케인 등의 빈도와 강도에 영향을 줄 것임이 명시되고 있다. 100년에 한 번 발생할 이상기후 현상이 50년에 한 번, 20년에 한 번, 이런 식으로 빈도가 늘어나는 식이다.
전 세계 138개의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기관 연합체에서 최근 발표한 기후변화 시나리오 업데이트에서는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탄소가격이 최소 톤당 1200달러가 되어야 한다고 발표했다(현재 우리나라보다 약 10배 비싼 EU의 탄소 가격이 약 9만원이다).
내 돈을 맡아서 굴리는 사람이 이와 같은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을 고려하길 원하는가 하지 않기를 원하는가? 만약 그 돈을 20~30년 후에 돌려받는다면?
현재 예측되는 모든 위험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중하고 책임 있는 수탁자라면 예측가능한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 물론 단순히 결론 낼 일은 아니다. 기후리스크를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어떤 방법으로, 어느 수준으로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성실하게 분석한 결과 서로 의견이 다른 것과, 보기 싫다고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눈을 감고 있는 사람에게 믿고 맡기기는 어렵다.
서두에 소개했던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는 도발적인 제목과는 다르게 ESG라는 용어는 사라지지만 ‘ESG요소를 고려하는 행위’는 사라지지 않고 ‘Responsible’ 과 다른 용어로 바뀌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기사의 마무리는 다음과 같다.
“You can be anti-ESG. It’s hard to be anti-responsibility.”
☞ 박세원 팀장은
박세원 팀장은 국내 ESG리서치 기관에서 ESG리서치 및 의결권행사 등의 업무를 수행했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50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종합자산운용사인 키움투자자산운용에서 ESG전략팀을 맡아 ESG 투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자체적인 ESG평가 모형을 비롯한 ESG리서치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운용부서와 협력하여 ESG요소를 투자 프로세스에 통합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