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왜 청년 정치인을 믿지 않는가 [칼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이 2018년 11월 주최한 2018 유권자 정치페스티벌 청년정치포럼에 참여한 6개 정당 청년위원회 및 대학생위원회 대표들이 정치적 요구를 담은 팻말을 보이고 있다.위원회가 모였다. 동행미디어시대 갈무리
경제학에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 이론으로 잘 알려진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경제학자이면서 뛰어난 정치학자였다. 그는 민주주의를 유능한 인재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경쟁적 엘리트 민주주의’로 이해했다. 사회 각 분야에서 능력과 자질을 검증받은 인재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국민은 그들 가운데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2026년 6·3 지방선거가 막 끝난 지금, 이 슘페터의 문제의식은 세대교체를 외쳐온 한국의 청년 정치가 어디에서 실패하고 있는지를 가장 날카롭게 비추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시민들은 특정 정당에 절대적 권력을 몰아주지 않았다. 행정을 맡길 기회는 주되, 의회에는 강력한 견제 장치를 심어두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 균형을 맞춘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다. 성과를 내라. 시민의 삶을 바꾸지 못하면 언제든 다시 심판하겠다.” 이번 지방 의회 선거 결과는 정책과 역량보다 줄서기가 우선되고, 시민보다 권력을 바라보며 성장한 정치 행태와 공천 과정에서 드러난 무능한 인물에 대한 시민들의 자로 잰 듯한 냉정한 심판이다.
그리고 그 경고의 중심에는 역설적으로 ‘청년 정치’가 있다.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청년 정치를 외치며 젊은 후보들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정작 청년 세대는 냉소한다. 정치권은 이를 청년의 ‘정치 혐오’나 ‘무관심’이라고 해석하지만, 그것은 본질을 놓친 분석이다. 청년들이 외면하는 것은 정치 그 자체가 아니라, 지금 정치권이 사람을 선발하고 성장시키는 불공정함이다.
평범한 청년들이 마주하는 일상은 거대한 생존 전쟁이다. 대학 4년 내내 이들의 삶은 소수점 두 자리의 학점 싸움, 끝없는 자격증 한 줄, 기준선이 계속 높아지는 토익 점수와의 사투로 채워진다. 방학조차 사치다. 스펙 한 줄을 더 얹기 위해 무보수나 다름없는 대외활동과 인턴 자리를 찾아 온 나라를 표류하며 이중삼중의 노동을 견뎌낸다.
졸업장은 해방이 아닌 더 가혹한 연옥의 시작이다. 공공기관 취업이라는 바늘구멍을 뚫기 위해, 청년들은 독서실의 좁은 책상에서 다시 수년의 시간을 저당 잡힌다. 철저하게 통제된 고독 속에서 두꺼운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교재를 수십 권씩 피를 말려가며 풀어내고, 전공 서적을 통째로 외운다. 서류 탈락의 허탈함, 필기시험의 1점 차 고배, 면접장 문을 나서며 느끼는 자괴감까지 수없이 반복되는 낙방 속에서 영혼이 깎여나가는 좌절을 배운 끝에야, 그들은 간신히 계약직의 문턱을 넘는다.
창업에 뛰어든 청년들은 더 가혹한 현실과 마주한다. 사업계획서를 수십 번 수정하고, 밤잠을 줄여 서비스를 개발한다. 투자 유치를 위해 자존심을 내려놓은 채 온 사방을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닌다. 그러나 시장은 자비가 없다. 단 한 번의 판단 착오만으로 사업은 무너질 수 있다. 그리고, 3년 안에 폐업하면서, 빚더미라는 파국을 고스란히 개인이 감당한다. 남은 것은 뼈아픈 실패의 낙인뿐이다. 이들에게 시장은 단 1%의 요행도, 한 치의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 가장 처절하고 냉정한 검증대다.
정치개혁을 주장하는 청년들과 이런 욕구가 분출된 2022년 국민의힘 나는 국대다 토론배틀 모습. 중앙일보 2022년 9월 8일 기사 갈무리
독일의 콘텐츠 채널 ‘쿠르츠게작트’가 제작한 「대한민국은 끝났다(South Korea is over)」 영상이 청년 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공유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청년들은 저출생과 지역 소멸, 국가 경쟁력 문제를 진심으로 걱정하며 경제 활성화와 구조 개혁을 요구한다. 청년들은 이처럼 자신의 인생을 걸고 현실의 소멸 위기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선거철 거리에서 마주하는 비슷한 나이의 청년 정치인들의 이력은 기이할 정도로 공허하다. 청년들이 느끼는 깊은 위화감과 환멸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학력이 낮은 것은 결코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 학력을 뛰어넘을 만한 사회적 성취도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검증받은 전문성은 커녕 대외활동 경험조차 ‘제로(0)’인 상태로 오직 정당의 공천장 하나에 기대어 의회에 진입한 인물이 수두룩하다. 그들의 이력을 채우고 있는 유일하게 설명 가능한 경력은 정당 대학생위원회, 청년위원회, 그리고 선거캠프와 같은 정치권 내부의 활동뿐이다. 정작 시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을 다루는 이들에게 세대 정치를 내세운 것 말고 무엇을 해보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침묵만 돌아온다.
정치권은 종종 청년들의 이러한 냉소를 학벌주의로 오해한다. 하지만 오늘날 청년들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학벌의 한계를 잘 안다. 대학 졸업장이 인생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들이 요구하는 것은 최소한의 학업 수준과 업무능력이다. 또한, 학력을 뛰어넘는 ‘사회적 성과’다. 청년들은 학력은 평범해도 산업 현장에서 전문성을 쌓아온 기술자나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창업가에게 아낌없는 신뢰를 보낸다. 성취와 실력이 학력을 압도했음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젊은 얼굴이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현실을 살아본 사람, 즉 정치 이전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져 본 사람이다.
독일의 정치경제학자인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를 단단한 널빤지에 천천히 구멍을 뚫는 작업”이라고 했다. 그러나 현실의 일부 청년 정치인들은 널빤지를 뚫어본 적이 없다. 기업의 매출 압박을 겪어본 적도, 창업 실패를 경험해본 적도, 월세가 밀리는 공포를 느껴본 적도, 직원들의 월급날을 걱정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시민의 삶을 설계하고 사회를 바꾸겠다고 말한다.
이것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는 기업의 임원 선발에 비유해보면 명확해진다. 부산의 한 민간기업이 임원을 채용한다고 가정해보자. 지원자들의 학력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주주 및 직원들이 궁금한 것은 오직 하나다. 현장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가? 매출을 늘렸는가, 신사업을 성공시켰는가, 조직을 이끌어봤는가?” 만약 현장 경험도, 구체적인 성과도 없이 줄을 잘 섰다”는 이유만으로 임원이 된다면 주주가 불안해하고, 그 기업은 얼마 못 가 파산할 것이다. 기업이 그렇게 운영되면 망하고, 정치가 그렇게 운영되면 시민이 피해를 본다.
2023년 4월 2일 한국일보 기획 기사 아프니까 청년정치다? 갈무리
더 심각한 것은 정당의 카르텔화(cartelization)다. 원래 청년 정치인은 기성 정치를 바꾸기 위해 등장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반대다. 정책보다 후견인을 찾고, 실력보다 계파를 찾으며, 시민보다 공천권자를 바라본다. 자기만의 전문성보다 정치적 충성도가 더 중요한 자산이 된다. 사회가 인재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정치인을 생산하는 구조 속에서, 청년 세대는 이 구조를 본능적으로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여기서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기형적인 역설이 등장한다.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직업이, 역설적으로 가장 낮은 검증 기준과 책임 기준을 적용받는다”는 비대칭성이다. 전문직이나 기업의 실무자 한 명을 채용하는 데도 수차례 검증이 이뤄지며, 음주운전이나 선거법 위반 등 범죄 전력은 취업과 승진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각종 범죄 전력과 반복된 논란이 있어도 공천권자의 눈도장만 받으면 다시 출마하고 당선되는 일이 벌어진다. 청년들은 자기소개서 오탈자 하나에도 불이익을 걱정하는데, 정치권에서는 훨씬 무거운 과오가 면죄부를 받는다. 이 기형적인 구조에서 청년들의 박탈감과 냉소가 출발하는 것이다.
이제 시선은 선거 이후의 인사와 시정 운영으로 향한다. 사람을 쓰는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한다. 만약 이번에도 실력보다 충성심이 앞서고, 현장 전문성보다 줄서기가 우선하며, 무능한 보은 인사가 반복된다면 시민들의 기대는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과거 지방정부가 인사 실패와 무능으로 인해 어떤 처절한 대가를 치러야 했는지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정당이 체질을 바꾸고 성과와 전문성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실력 있는 인재들이 정치의 이름으로 활동을 계속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치권은 종종 청년 정치인의 숫자를 늘리는 것을 청년 정치의 성공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청년 정치의 진정한 과제는 ‘숫자’가 아니라 ‘경로’다. 정치가 첫 번째 직업인 사람이 아니라, 사회에서 실력을 쌓고 정치가 두 번째 직업인 사람이 많아질 때 지방정치는 비로소 시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사람은 자신의 돈을 쓸 때 가장 신중하고 효율적이다”고 말했다. 민간 영역의 청년들은 바로 그런 시장의 원리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걸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실패하면 그 대가를 오롯이 자신이 지기 때문이다. 또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는 지식은 현장에 분산되어 있다”고 말했다. 현장을 모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지고도 좌절하는 청년들의 불안을 모르는 정치인, 실업의 공포와 창업의 두려움을 모르는 정치인, 월세가 밀리는 초조함과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모르는 정치인이 만드는 정책은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2023년 4월 26일 강원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강당에서 박지현 전 민주당공동비대위원장이 대한민국에 청년정치란 있는가: 순번기다리기와 들이받기 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23.4.26. 연합뉴스 자료사진
청년들은 더 이상 ‘젊음’ 자체에 감동하지 않으며,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젊은 얼굴을 내세운 가면이 아니다. 지금 청년들이 외면하는 것은 현실과 현장을 경험하지 못하고 ‘정치밖에 모르는 청년 정치인’이다. 그리고 이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지 않는 한, 정치의 세대교체는 영원히 공허한 구호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바다를 모르는 사람은 등대를 세울 수 없고, 폭풍을 겪지 않은 사람은 선장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없다. 정치권 내부의 줄서기 경력을 넘어, 사회에서 검증받은 인재들이 오직 경험과 역량으로 경쟁하는 시스템을 복원하는 것만이 청년 세대에게 다시 신뢰를 얻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공정성이다.
비판은 쉽고 냉소는 안락하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정치가 아무리 줄서기로 얼룩져 있을지라도 우리는 정치를 포기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최종적인 열쇠는 결국 정치에 있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 말미에서 정치란 모든 기대를 무너뜨리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소명이라며 다음과 같은 불멸의 문장을 남겼다.
자신이 세상에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 어리석고 비열할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 어떤 상황에 직면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dennoch)!’라고 말할 수 있는 확신을 가진 사람, 오직 그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기다리는 진짜 청년 정치는 정치권 내부의 줄서기 경력을 자랑하는 이들이 아니다. 냉혹한 현실에서 실력을 검증받고, 무너지는 지역 사회를 바라보며 절망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의 삶을 책임지겠다고 단단한 널빤지를 향해 송곳을 드는 인재들이다. 그런 인재들이 오직 역량으로 경쟁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 정치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이수영 시민기자 tndudfl1566@nate.com